“너... 지쳤어?” 임유진은 더듬거리며 마치 그의 말만 반복할 수 있는 로봇처럼 말했다. “그래, 나 지쳤어. 그래서 우리 사이는 끝났어!” 강지혁이 말했다. 너무 지쳤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도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면, 이렇게 떨리고 불안하게 지낼 것이라면, 그는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의 마음속에 언제나 강현수를 위한 자리가 있다면, 그 나머지 몫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을 때, 그는 이생에서 절대로 아버지처럼 자신을 배신한 여자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임유진은 몸이 굳은 채로 일어섰다. 그가 바로 그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어젯밤, 그는 그녀와 너무나도 친밀했고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마치 거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단지 지쳤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건가?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그는 이 모든 것을 단지 게임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그녀는 그 속에 빠져들었던 게 아닐까. “만약...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그녀의 자존심은 이미 오래전 감옥에 갇혔을 때, 남들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그리고 출소 후, 강지혁은 그녀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조금씩 다시 맞춰줬다. 지금, 그녀는 그 조각난 자존심으로 이 말을 꺼냈다.그녀는... 강지혁을 사랑한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더는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강지혁은 극도로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한 후, 마치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은 듯 부엌을 나갔다. 그녀를 혼자 남겨두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몸속에서 파도치듯 퍼져나갔다, 7월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임유진은 추위에 떨었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뜨거웠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지금의 그녀는 울지도 못하는 걸까?...아마도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도록 정해진 것 같다. 소민준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아직도 교훈이 되지 못했나 보다. 그녀가 강지혁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임유진과 강지혁은 원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날 밤, 그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교집합도 없었을 것이다. 얘기를 해보면 결국은 그녀가 먼저 그를 건드렸던 것이고 그 결과 게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뿐이다. 임유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방을 나왔다. 이 시각의 강씨 저택은 아주 조용했고 심지어 사용인조차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많은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모든 기가 다 빨린 듯 겨우 침실로 돌아왔다. 기분은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야.”그녀는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여자에게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여자는 화장이 번지지 않았고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 예쁜 얼굴이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얼굴색은 유난히 창백했고 눈동자에는 짙은 자조와 억눌린 씁쓸함이 가득했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마치 감옥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혼자 살아가야 하고 모든 일에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설사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더라도 간신히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두려워할 게 없다. 그녀는 이미 이전에 모든 것을 겪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일어나 옷장을 열어 처음 왔을 때 월세방에서 가져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그녀는 이 옷들을 아직 버리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것을 입고 떠날 수 있으니, 그에게 빚진 것 없이 말이다. 그녀는 벗어둔 옷들을 깔끔하게 접어놓고 방을 다시 정리했다.처음에 월세방을 나올 때 가져온 물건들은 별로
그들 사이의 게임은 이로써 끝이 났다!28번째 생일, 그녀는 오늘 또다시 하늘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혹한지 깨닫게 되었다.임유진은 가녀린 몸으로 두 개의 캐리어를 끌면서 힘들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렇게 드디어 이 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집사와 마주쳐버렸다.집사는 임유진이 조금 낡은 듯 보이는 옷을 입은 채 어딘가로 떠나듯 캐리어를 들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유진 씨,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이곳을 떠나려고요. 저희 이제 헤어졌으니 제가 여기 머무를 이유도 없겠죠.”뭐라고?!집사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깜짝 놀란 듯 보였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 그럴 리가!오늘은 임유진의 생일이라 강지혁이 집사에게 저녁 만찬은 특히 신경을 써달라고 직접 지시까지 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게다가 임유진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 같지가 않아 더더욱 혼란스러웠다.임유진은 제자리에 굳은 듯 서 있는 집사를 뒤로하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강씨 저택을 나왔다.임유진이 사라지고 나서야 집사는 정신을 차린 듯 강지혁의 비서 고이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렸다.전화를 받은 고이준은 집사와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했고 시선을 옆으로 돌려 강지혁을 바라봤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두 눈이 제대로 달린 사람이라면 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 여자에게 진심인 강지혁의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헤어질 만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오늘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던 일 때문일 것이다. 오은영을 내보낸 후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눴고 그러다 몇 분 후 강지혁 혼자 이곳으로 왔다.고이준은 만약 임유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곳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강지혁과 그녀가 처음 만난 곳이었으니까. 또한, 강지혁의 아버지 강선우가 얼어 죽은 곳이기도 하다.매년 강선우의 기일이면 강지혁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하지만 오늘은 기일도 뭣도 아니었고 다년간
임유진은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정처 없이 걷다가 강씨 저택에서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벤치에 어느 정도 앉아있었을까,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전화가 거의 끊어질 때쯤 휴대폰을 꺼냈고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한지영이었다.임유진은 그녀의 이름을 보는데 문득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통화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어디야? 나랑 연신 씨 지금 너희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임유진은 그제야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고 생일 파티에 한지영과 백연신도 초대했다는 것을 떠올렸다.하지만 이제 생일 파티는 부질없어져 버렸다!“오지 마. 나랑 강지혁 헤어졌어. 생일 파티는 없을 거야.”임유진은 지금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쓰게 느껴졌다.한편, 이 말을 들은 한지영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헤어졌다니? 너랑 지혁 씨가? 왜? 아니, 그보다 너 지금 어디야?!”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지영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임유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해서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임유진이 만약 욕이라도 하고 울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담담한 거로 봐서 임유진은 지금 고통을 꾹 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마치 감옥에 있을 때 그 많은 고통을 전부 마음속 한구석에 담아둔 것처럼 말이다.임유진은 그 시절,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래졌고 결국에는 어둠에 잠식당했었다.그러다 출소한 후 강지혁과 만나며 그녀도 이제 사랑을 하고 원래의 밝은 임유진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또다시 그 절망밖에 없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한지영은 그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유진아, 내 말 들려? 너 어디 있냐고! 대답해!”한지영이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임유진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너 지금 얘기 안 하면 나 연신 씨한테 부탁해서 너 사는 지역 CCTV 전부 돌리라고 할 거야. 경찰에 신고도 할 거야
탁유미는 임유진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유진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그게... 다음에 만나면, 그떄 얘기해 줄게요.”임유진은 애써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높였다.“윤이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오늘 못 먹은 케이크는 내가 다음에 꼭 사주겠다고도 얘기해주고요.”“유진 씨,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 찾아와요. 빈말 아니에요.”탁유미는 어느샌가 임유진을 정말 자신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출소 후 이경빈을 피해 급급히 도망가느라 친구들과는 전부 연락이 끊어져 버렸고 S 시에 정착한 뒤에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는 임유진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됐고 언제부턴가 그녀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게 됐다.“고마워요, 언니. 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요.”임유진은 그녀를 안심시킨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입 밖으로 내뱉은 말처럼 그녀는 정말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이건 그저 또 한 번의 실연일 뿐이고 또 한 번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졌을 뿐이다.아니, 억울함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지옥보다는 조금 나은 지옥이겠다. 지금의 그녀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철창에 갇혀 누군가의 발길질에 힘없이 쓰러져 당하고만 있었던 그런 나날은 다시는 없을 테니까.임유진은 문득 수중에 있는 휴대폰을 바라봤다.강지혁이 전에 선물해줬던 휴대폰은 어제 산속에서 고장이 났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유심칩만 꺼낸 후 원래 쓰던 핸드폰을 쓰게 되었다.결국, 그녀는 그저 강씨 저택에 들어섰을 때와 똑같이 그곳을 나온 것뿐이다. 휴대폰, 옷, 신발 등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전의 그녀가 썼던 물건들이다.임유진은 자신이 마치 12시가 지나면 볼품없는 여자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느껴졌다.그때, 은색 포르쉐 한 대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멈춰 섰고 한지영이 다급하게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헐레벌떡 임유진에게로 달려왔다.“유진아, 너...”그녀는 임유진의 낡은
“유진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모텔보다 호텔이 나은 것 같은데?”한지영이 조금 답답한 듯 말했다.“내가 지금 가진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래.”임유진이 돈 걱정을 하자 한지영이 다급하게 말을 했다.“돈 때문이라면 내가...!”“지영아, 마음만 받을게. 이제는 그 누구한테도 기대고 싶지 않아서 그래.”임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한지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친구의 자존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모텔에 도착한 후 한지영은 백연신에게 음식 배달을 부탁했고 그가 방에서 나간 후에야 비로소 임유진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강지혁이 지쳤대. 나를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대. 우리가 연애하는 동안 강지혁은 단 한 번도 나를 믿은 적이 없었던 거야.”임유진은 쓰게 웃었다.“난 연애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지영아.”“유진아,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한지영은 임유진을 와락 끌어안았다.“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우리 친구잖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내가 꼭 강지혁보다 좋은 남자친구 소개해 줄게. 그래서 우리 보란 듯이 잘살아 보는 거야! 그러니까 유진아... 힘들면 힘들다고 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지 마.”임유진은 한지영 어깨에 기대 그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야 마음속 서러움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만 같았다.결국, 그녀의 구원자는 예전에도 지금도 한지영뿐이었다.이 고마움을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다 갚을 수 있을까?“지영아, 나 눈물이 안 나와...”그때 굳게 닫혔던 입술이 열리며 임유진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아마 예전에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메말랐나 봐.”“너...”“괜찮아.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하지 않아. 고작 헤어진 것뿐이잖아. 전에도 잘 견뎌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임유진의 담담한 말투에 한지영은 잠깐 침묵하
지금은 그를 잊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이 마음이 철저하게 잊히도록. 앞으로 혁이라는 남자는 없고 오직 강지혁만 남도록.소원을 빈 후 임유진은 서서히 눈을 떴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촛불을 꺼버렸다.“내가 자를게.”임유진은 케이크를 세 조각으로 자른 후 두 조각을 한지영과 백연신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케이크는 달아야 하는 건데 왜 지금은 이토록 쓰게 느껴지는 걸까?케이크를 다 먹은 후 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오늘 여기서 같이 자자고 제안했다.“아니야. 나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연신 씨랑 돌아가.”하지만 임유진은 괜찮다며 거절했고 한지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돌아가기로 했다.“그럼... 알겠어.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자! 내일 다시 올게!”“응, 잘 가. 연신 씨도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백연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지영은 여전히 걱정되는 듯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지영아, 나 정말 괜찮아. 어서 가.”임유진이 또 웃는다. 그리고 한지영은 또 심장 언저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아마 당분간은 이 상태가 쭉 이어질 듯하다.모텔에서 나온 후 한지영은 차에 타서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왜, 아직도 유진 씨가 걱정돼?”백연신이 물었다.“당연하죠.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어떻게 괜찮겠냐고요!”한지영은 불만을 토로하면 할수록 강지혁을 향한 불만이 더욱 켜졌다. 그러고는 한때 강지혁을 좋게 봤었던 자신도 원망스러워졌다.“역시 강지혁을 만나야겠어요. 지금 당장 그 집으로 가요!”한지영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지금?”그러자 백연신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네, 지금! 싫어요? 그럼 택시 타고 갈게요.”한지영은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릴 것처럼 몸을 돌렸고 백연신이 그녀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싫을 게 뭐 있어. 근데... 너 마음의 준비는 한 거야? 친구 대신 분풀이 좀 했다가 강지혁을 건드리게 되면 어떡하려고?”“상관없어요.”한지영은 임유진의 억지웃음
“왜요?”한지영은 굳이 흙탕물에 뛰어들겠다는 이 남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백씨 가문 사업이 정식적으로 S 시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 앞으로 강지혁과 비즈니스적으로 엮일 일도 많아질 텐데 만약 지금 강지혁을 건드리게 되면 S 시에서의 사업은 여러모로 힘들어질 수도 있다.“내가 만약 너 때문이라고, 너를 위해서라면 누구를 건드리게 돼도 상관없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백연신이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의 짙은 눈빛에 한지영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가 하는 말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하지만 지금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한지영의 머릿속은 지금, 이 순간 그를 믿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고이준은 집사로부터 백연신과 한지영이 지금 막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제야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오늘은 유난히 바람 잘 날 없는 하루였다.그리고 그 하루 끝에서 유일하게 걱정되는 사람은 역시 강지혁이었다. 아까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은 장장 3시간을 주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눈앞에 놓인 미완성 케이크만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이다.고이준은 강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대체 왜 임유진을 그토록 사랑하면서 오늘 갑자기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까.혹시 안은영이 찾아온 것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아니면... 그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물론 그게 어떤 이유이든지 이건 부하직원이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될 일이다.그때,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강지혁이 갑자기 손을 올리더니 미완성이었던 케이크에 크림을 묻히고 데코를 하며 천천히 케이크를 완성하고 있었다.고이준은 그의 옆에서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그렇게 얼마 안 가 케이크가 완성되고 강지혁은 2와 8이 적힌 초를 케이크 중앙에 꽂은 후 불까지 붙였다.그 모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