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정처 없이 걷다가 강씨 저택에서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벤치에 어느 정도 앉아있었을까,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전화가 거의 끊어질 때쯤 휴대폰을 꺼냈고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한지영이었다.임유진은 그녀의 이름을 보는데 문득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통화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어디야? 나랑 연신 씨 지금 너희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임유진은 그제야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고 생일 파티에 한지영과 백연신도 초대했다는 것을 떠올렸다.하지만 이제 생일 파티는 부질없어져 버렸다!“오지 마. 나랑 강지혁 헤어졌어. 생일 파티는 없을 거야.”임유진은 지금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쓰게 느껴졌다.한편, 이 말을 들은 한지영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헤어졌다니? 너랑 지혁 씨가? 왜? 아니, 그보다 너 지금 어디야?!”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지영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임유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해서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임유진이 만약 욕이라도 하고 울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담담한 거로 봐서 임유진은 지금 고통을 꾹 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마치 감옥에 있을 때 그 많은 고통을 전부 마음속 한구석에 담아둔 것처럼 말이다.임유진은 그 시절,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래졌고 결국에는 어둠에 잠식당했었다.그러다 출소한 후 강지혁과 만나며 그녀도 이제 사랑을 하고 원래의 밝은 임유진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또다시 그 절망밖에 없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한지영은 그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유진아, 내 말 들려? 너 어디 있냐고! 대답해!”한지영이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임유진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너 지금 얘기 안 하면 나 연신 씨한테 부탁해서 너 사는 지역 CCTV 전부 돌리라고 할 거야. 경찰에 신고도 할 거야
탁유미는 임유진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유진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그게... 다음에 만나면, 그떄 얘기해 줄게요.”임유진은 애써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높였다.“윤이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오늘 못 먹은 케이크는 내가 다음에 꼭 사주겠다고도 얘기해주고요.”“유진 씨,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 찾아와요. 빈말 아니에요.”탁유미는 어느샌가 임유진을 정말 자신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출소 후 이경빈을 피해 급급히 도망가느라 친구들과는 전부 연락이 끊어져 버렸고 S 시에 정착한 뒤에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는 임유진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됐고 언제부턴가 그녀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게 됐다.“고마워요, 언니. 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요.”임유진은 그녀를 안심시킨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입 밖으로 내뱉은 말처럼 그녀는 정말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이건 그저 또 한 번의 실연일 뿐이고 또 한 번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졌을 뿐이다.아니, 억울함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지옥보다는 조금 나은 지옥이겠다. 지금의 그녀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철창에 갇혀 누군가의 발길질에 힘없이 쓰러져 당하고만 있었던 그런 나날은 다시는 없을 테니까.임유진은 문득 수중에 있는 휴대폰을 바라봤다.강지혁이 전에 선물해줬던 휴대폰은 어제 산속에서 고장이 났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유심칩만 꺼낸 후 원래 쓰던 핸드폰을 쓰게 되었다.결국, 그녀는 그저 강씨 저택에 들어섰을 때와 똑같이 그곳을 나온 것뿐이다. 휴대폰, 옷, 신발 등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전의 그녀가 썼던 물건들이다.임유진은 자신이 마치 12시가 지나면 볼품없는 여자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느껴졌다.그때, 은색 포르쉐 한 대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멈춰 섰고 한지영이 다급하게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헐레벌떡 임유진에게로 달려왔다.“유진아, 너...”그녀는 임유진의 낡은
“유진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모텔보다 호텔이 나은 것 같은데?”한지영이 조금 답답한 듯 말했다.“내가 지금 가진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래.”임유진이 돈 걱정을 하자 한지영이 다급하게 말을 했다.“돈 때문이라면 내가...!”“지영아, 마음만 받을게. 이제는 그 누구한테도 기대고 싶지 않아서 그래.”임유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한지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친구의 자존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모텔에 도착한 후 한지영은 백연신에게 음식 배달을 부탁했고 그가 방에서 나간 후에야 비로소 임유진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강지혁이 지쳤대. 나를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대. 우리가 연애하는 동안 강지혁은 단 한 번도 나를 믿은 적이 없었던 거야.”임유진은 쓰게 웃었다.“난 연애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지영아.”“유진아,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한지영은 임유진을 와락 끌어안았다.“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우리 친구잖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내가 꼭 강지혁보다 좋은 남자친구 소개해 줄게. 그래서 우리 보란 듯이 잘살아 보는 거야! 그러니까 유진아... 힘들면 힘들다고 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지 마.”임유진은 한지영 어깨에 기대 그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야 마음속 서러움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만 같았다.결국, 그녀의 구원자는 예전에도 지금도 한지영뿐이었다.이 고마움을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다 갚을 수 있을까?“지영아, 나 눈물이 안 나와...”그때 굳게 닫혔던 입술이 열리며 임유진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아마 예전에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메말랐나 봐.”“너...”“괜찮아.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하지 않아. 고작 헤어진 것뿐이잖아. 전에도 잘 견뎌냈으니까 이번에도 괜찮을 거야.”임유진의 담담한 말투에 한지영은 잠깐 침묵하
지금은 그를 잊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이 마음이 철저하게 잊히도록. 앞으로 혁이라는 남자는 없고 오직 강지혁만 남도록.소원을 빈 후 임유진은 서서히 눈을 떴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촛불을 꺼버렸다.“내가 자를게.”임유진은 케이크를 세 조각으로 자른 후 두 조각을 한지영과 백연신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넣었다.케이크는 달아야 하는 건데 왜 지금은 이토록 쓰게 느껴지는 걸까?케이크를 다 먹은 후 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오늘 여기서 같이 자자고 제안했다.“아니야. 나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연신 씨랑 돌아가.”하지만 임유진은 괜찮다며 거절했고 한지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돌아가기로 했다.“그럼... 알겠어.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푹 자! 내일 다시 올게!”“응, 잘 가. 연신 씨도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백연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지영은 여전히 걱정되는 듯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지영아, 나 정말 괜찮아. 어서 가.”임유진이 또 웃는다. 그리고 한지영은 또 심장 언저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아마 당분간은 이 상태가 쭉 이어질 듯하다.모텔에서 나온 후 한지영은 차에 타서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왜, 아직도 유진 씨가 걱정돼?”백연신이 물었다.“당연하죠.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어떻게 괜찮겠냐고요!”한지영은 불만을 토로하면 할수록 강지혁을 향한 불만이 더욱 켜졌다. 그러고는 한때 강지혁을 좋게 봤었던 자신도 원망스러워졌다.“역시 강지혁을 만나야겠어요. 지금 당장 그 집으로 가요!”한지영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씩씩거리며 말했다.“지금?”그러자 백연신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네, 지금! 싫어요? 그럼 택시 타고 갈게요.”한지영은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릴 것처럼 몸을 돌렸고 백연신이 그녀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싫을 게 뭐 있어. 근데... 너 마음의 준비는 한 거야? 친구 대신 분풀이 좀 했다가 강지혁을 건드리게 되면 어떡하려고?”“상관없어요.”한지영은 임유진의 억지웃음
“왜요?”한지영은 굳이 흙탕물에 뛰어들겠다는 이 남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백씨 가문 사업이 정식적으로 S 시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 앞으로 강지혁과 비즈니스적으로 엮일 일도 많아질 텐데 만약 지금 강지혁을 건드리게 되면 S 시에서의 사업은 여러모로 힘들어질 수도 있다.“내가 만약 너 때문이라고, 너를 위해서라면 누구를 건드리게 돼도 상관없다고 말하면 믿을 거야?”백연신이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그의 짙은 눈빛에 한지영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가 하는 말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하지만 지금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한지영의 머릿속은 지금, 이 순간 그를 믿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고이준은 집사로부터 백연신과 한지영이 지금 막 떠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제야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오늘은 유난히 바람 잘 날 없는 하루였다.그리고 그 하루 끝에서 유일하게 걱정되는 사람은 역시 강지혁이었다. 아까 그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은 장장 3시간을 주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눈앞에 놓인 미완성 케이크만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이다.고이준은 강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대체 왜 임유진을 그토록 사랑하면서 오늘 갑자기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까.혹시 안은영이 찾아온 것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아니면... 그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물론 그게 어떤 이유이든지 이건 부하직원이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될 일이다.그때,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강지혁이 갑자기 손을 올리더니 미완성이었던 케이크에 크림을 묻히고 데코를 하며 천천히 케이크를 완성하고 있었다.고이준은 그의 옆에서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그렇게 얼마 안 가 케이크가 완성되고 강지혁은 2와 8이 적힌 초를 케이크 중앙에 꽂은 후 불까지 붙였다.그 모습은
앞으로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가 강현수 곁으로 갈까 봐 매일 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강현수가 그녀의 마음속에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추측하며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며 고작 사랑 때문에 폐인이 되거나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강지혁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드디어 주방에서 나와 홀로 2층으로 올라갔다.고이준은 멀어져가는 상사의 뒷모습을 조금 복잡한 얼굴로 바라봤다.만약 이 세상에 그 누군가가 강지혁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면...고이준은 지금 자기도 모르게 임유진의 이름 석 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음 날 아침, 임유진이 잠에서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가 놓여있었다. 이건 어제 한지영과 백연신이 준 선물이지만 그녀는 어젯밤 풀어보지 않았다.서서히 몸을 일으킨 후, 선물을 뜯어보니 거기에는 정장 차림의 여자 인형이 들어있었고 변호사 배지까지 단 인형은 어딘가 모르게 그녀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인형 아래에는 한지영이 쓴 글도 있었다.[유진아, 생일 축하해! 나는 네 하루하루가 행복으로만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원하는 꿈도 꼭 이루길 바랄게! PS. 인형의 왼손 손바닥을 누르면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야!]꿈? 행복?그녀가 과연 이런 걸 또다시 바랄 수 있을까?임유진은 손으로 인형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다가 버튼 같은 게 있는 걸 발견하고 꾹 눌렀다.그러자 인형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꼭 정의를 실현하는 좋은 변호사가 될 거야. 그래서 의뢰인들이 재판이 끝난 후 나한테 의뢰하길 잘했다고, 천만다행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이건... 임유진 그녀의 목소리이다!처음 로펌에 들어갔을 때 한지영이 축하한다며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녀가 했던 말들이었다.한지영이 그때의 동영상을 여태 간직하고 생일 선물로 그 말만 잘라 인형에 넣어 둘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임유진은 문득
이런 상황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에게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 말은 즉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같이 가. 차로 움직이면 편할 거야.”그렇게 두 사람은 부동산으로 향했다. 임유진이 원하는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기에 두세 군데 돌아본 후 바로 적당한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월 34만 원짜리 방이지만 교통도 편리하고 주위에는 마트와 시장도 있어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하지만 한지영의 눈에는 그녀가 선택한 지역의 치안이 좋지 않아 보였고 괜히 친구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이곳에 평생 있을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저녁에는 최대한 적게 외출하면 돼. 아무 문제 없을 거야.”한지영도 지금 당장은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오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사에 돌입했고 먼저 월세방을 대청소한 다음 마트에서 기본적인 생필품을 사들였다.몇 시간 후, 이사가 일단락되고 한지영은 떠나기 전 그녀에게 신신당부했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알았지?”“응, 그럴게.”그렇게 한지영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임유진이 돌연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왜 그래?”그에 한지영이 조금 놀란 듯 물었다.“지영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임유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어제 한지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버스 정류장에서 홀로 무너졌을 것이다.매번 임유진이 절망의 늪에서 허덕일 때면 항상 한지영이 그녀를 구출해주곤 했다.한지영은 친구의 손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말했잖아. 우리는 평생 친구라고. 앞으로도 무슨 일 생기면 네 옆에 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응.”임유진의 답에는 울먹거림이 묻어있었다.만약 그 언젠가 한지영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임유진은 자신의 전부를 내걸고 그녀를 지켜줄 것이다....한지영을 보낸 후 임유진은 이제부터 살게 될 자신의 집을 바라봤다. 전에 살던 곳과 얼추 비슷한 크
임유진은 문득 고개를 숙여 자신의 평평한 배를 바라봤다.어쩌면 이번 생은 정말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전에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라 포기했지만, 지금은 몸이 괜찮아도 마음이 괜찮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임유진이 식당에 도착한 건 저녁 8시가 다 돼서였고 다행히 피크 타임은 피할 수 있었다.“왔어요?”탁유미는 임유진을 반갑게 맞이하고는 조금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밥은 먹었어요?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그럼 언니, 나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요.”“잠깐만 기다려요.”탁유미는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주방장에게 부탁했고 몇 분 후 뜨끈한 칼국수가 임유진 앞에 놓였다.“먹어요. 하루 지나긴 했지만, 생일 축하해요!”“고마워요.”임유진은 아무 말 없이 식사하기 시작했다. 탁유미는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먼저 손님을 받고 주방일도 돕다가 임유진이 식사를 마친 후에야 다시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어제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탁유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나 강지혁이랑 헤어졌어요. 지금은 그 집에서 나왔고요.”하룻밤 지나고 나니 이런 얘기도 평정심에 할 수 있게 됐다. 이대로라면 그를 향한 마음들도 조만간 전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한편 탁유미는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더더욱 걱정이 일었다. 그녀 역시 힘든 사랑에 다치고 할퀴어 넝마가 된 사람이라 임유진의 평온함도 그저 고통을 억누르고 있는 것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에게 힘이 나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자격도 없거니와 이 상황에서 어떤 위로를 건네야 좋을지 감이 서지 않았다.오직 시간의 흐름만이 그녀의 상처를 전부 치유해 줄 수 있는 건 아닐까?“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 아니에요.”임유진은 탁유미 눈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을 읽고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참, 이건 내가 윤이 주려고 산 케이크예요. 어제는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