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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작가: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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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이 갑자기 난입해 소동을 일으킨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상황을 임유진이 목격했다는 점이었다.

강지혁이 이후에 책임을 묻는다면 고이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생각에 고이준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이어서 그는 조용해진 의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강씨 저택에 갑자기 나타나 이런 일을 벌인 건 두려움 때문일까? 직장을 잃어버릴까 봐 임유진에게 최면을 건 적이 없다고 증명하려고 급했던 것일까?

이런 이유는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원래 그는 안은영을 해외 회의에 참석하게 하고 겸사겸사 휴가를 보내게 한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이준의 눈빛이 변하였다. 강지혁 곁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한 가지 도리를 깨달았었다.

‘비정상적인 일의 흐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마도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때, 강씨 저택에서는 강지혁이 임유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 아침 식사부터 하자.”

“혁아,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임유진은 그와 함께 부엌으로 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 네가 본 것처럼, 네가 예전에 진료를 받았던 의사가 여기 와서 소란을 피웠어.”

강지혁은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나중에 더 좋은 의사를 찾아서 네 두통이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다시 확인해볼게.”

그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려고 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안은영 선생님을 알아? 내가 선생님을 찾아간 게 최면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야?”

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며 마음속의 의문을 털어놓았다.

강지혁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점점 입가에서 사라져 갔다.

“오늘은 네 생일인데 꼭 이런 얘기를 해야겠어?”

“혁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

임유진이 말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웠다. 자신과 관련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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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강지혁의 대답에 임유진의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왜 그런 거야?” “왜냐고?”그는 갑자기 팔을 들어 임유진을 조심스럽게 안아 주었다. “그럼 너는 왜 의사를 찾아 최면을 받으려 했어? 강현수와의 기억을 되찾고 싶었던 거야? 그 기억이 그렇게도 아쉬웠어? 두 사람은 어렸을 때 단 하루만 같이 지냈을 뿐이야. 지금 네 곁에는 내가 있잖아.”강지혁의 목소리는 마치 평범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분했지만 임유진의 귀에 들리는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과 강현수가 어렸을 때 단 하루만 같이 지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마치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은 그녀였던 것처럼! 임유진의 몸이 굳어진 것을 느끼고 강지혁은 그녀를 더 세게 안았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으며 속삭였다. “그 기억 찾지 마. 나 하나로 부족해?”그녀는 반드시 그 기억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기억을 모두 묻어버리기로 했었고 그저 자신만의 작은 비밀로 삼으려 했을 뿐이었다. “나와 강현수 씨 사이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강지혁에 의해 말이 끊겼다. “됐어, 말하지 마! 나는 너와 강현수 사이의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아!”그는 임유진을 꽉 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혁아, 들어봐... 들어줘...”“이미 말했잖아. 너와 강현수 사이의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다고! 어제 두 사람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나는 그것을 모른 척할 수 있어. 하지만 앞으로 강현수와 어떤 연락도 하지 마! 강현수를 마음에 두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리워하지도 마!”그의 팔은 마치 임유진을 완전히 자신의 몸속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강지혁이 양보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여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양보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자존심, 그의 존엄이 모두 임유진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갖고 싶었다. 임유진은 강지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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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게 바로 강지혁이 말한 여기까지 하자는 뜻인가?!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미완성 케이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때 그녀는 이 케이크를 볼 때 마음이 기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가 시큰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끝나면... 이대로 끝나면, 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영원히 오해가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녀는 얘기를 분명하게 해야 했다! “혁아, 나와 강현수 씨 사이는 정말...”임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무겁게 내려앉아 모든 소리를 막았다. 강지혁은 그녀의 입술을 벌주듯 한 번 깨물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너와 강현수 사이의 일 다시는 언급하지 말자고. 두 사람이 예전에 어땠는지 상관없어, 너는 앞으로 내 옆에만 잘 있으면 돼.”입술은 분명 뜨겁지만, 임유진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강지혁은 그녀의 설명을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며,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녀가 곁에 있는 것뿐인가? “그럼 내가 이미 기억이 돌아왔고 나와 강현수 씨가 겪은 어릴 때 일을 이미 다 기억해냈다고 해도 상관없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윽고 주변의 공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은 듯했다. 강지혁의 동공이 갑자기 급격히 수축하며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너... 기억났어?”그의 목소리에는 눈치채기 어려운 떨림이 있었다. “응, 기억났어.”임유진이 말했다. 강지혁의 얼굴색은 갑자기 안 좋아졌고 까만 눈동자 속에는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기억이 이미 돌아왔다. 임유진은 그녀와 강현수 사이의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그가 한 모든 것들이 헛된 노력에 불과했다!“하하... 하하... 하하하... 기억이 돌아왔었구나!”강지혁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는 임유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웃음은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터뜨리고 싶은 듯한 모순된 느낌을 주었다. “혁아, 그만 웃어.”임유진이 소리쳤다. 그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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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그녀가 그의 아버지 사진 앞에서 한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믿어야 했다!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강지혁이라는 것을 믿어야 했다! 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믿는다면, 할머니의 팔찌를 숨기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믿지 않았다, 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차가운 얼음물에 잠긴 것처럼 느껴졌다. 강지혁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믿으라고 했지만, 강현수가 그녀를 업고 오는 모습을 봤을 때, 그녀가 기억을 찾기 위해 그를 속이며 병원에 여러 번을 갔을 때,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최악이었다! 임유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네가 나를 믿는 게 어렵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강현수는...”“됐어!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강지혁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움켜쥐며 모든 소리를 막았다.“강현수는 너를 믿는 거야? 그래서 강현수는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거야?”강현수, 강현수... 그녀의 마음속에 강현수는 마치 낙인처럼 새겨져 있어 그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일까? 그는 강현수를 임유진에게서 지우려고 번번이 시도했지만, 결코 완벽하게 지워낼 수 없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었고,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그녀의 목을 바로 꺾을 수 있었지만... 그의 손은 계속 떨고 있었다. 심하게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이렇게 화나게 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쓸 텐데 그 사람이 임유진일 때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로 느껴졌다!“혁아, 겁쟁이가 무엇인지 알아? 바로 네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그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하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렇다, 다칠까 봐 겁나는구나! 겁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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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지쳤어?” 임유진은 더듬거리며 마치 그의 말만 반복할 수 있는 로봇처럼 말했다. “그래, 나 지쳤어. 그래서 우리 사이는 끝났어!” 강지혁이 말했다. 너무 지쳤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도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면, 이렇게 떨리고 불안하게 지낼 것이라면, 그는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의 마음속에 언제나 강현수를 위한 자리가 있다면, 그 나머지 몫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을 때, 그는 이생에서 절대로 아버지처럼 자신을 배신한 여자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임유진은 몸이 굳은 채로 일어섰다. 그가 바로 그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어젯밤, 그는 그녀와 너무나도 친밀했고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마치 거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단지 지쳤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건가? 그렇다면 그들의 관계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그는 이 모든 것을 단지 게임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그녀는 그 속에 빠져들었던 게 아닐까. “만약...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그녀의 자존심은 이미 오래전 감옥에 갇혔을 때, 남들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그리고 출소 후, 강지혁은 그녀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조금씩 다시 맞춰줬다. 지금, 그녀는 그 조각난 자존심으로 이 말을 꺼냈다.그녀는... 강지혁을 사랑한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더는 너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강지혁은 극도로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한 후, 마치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은 듯 부엌을 나갔다. 그녀를 혼자 남겨두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몸속에서 파도치듯 퍼져나갔다, 7월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임유진은 추위에 떨었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뜨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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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지금의 그녀는 울지도 못하는 걸까?...아마도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도록 정해진 것 같다. 소민준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아직도 교훈이 되지 못했나 보다. 그녀가 강지혁을 사랑하게 될 줄이야! 임유진과 강지혁은 원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날 밤, 그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교집합도 없었을 것이다. 얘기를 해보면 결국은 그녀가 먼저 그를 건드렸던 것이고 그 결과 게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그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뿐이다. 임유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방을 나왔다. 이 시각의 강씨 저택은 아주 조용했고 심지어 사용인조차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이러한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많은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모든 기가 다 빨린 듯 겨우 침실로 돌아왔다. 기분은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뿐이야.”그녀는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여자에게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여자는 화장이 번지지 않았고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 예쁜 얼굴이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얼굴색은 유난히 창백했고 눈동자에는 짙은 자조와 억눌린 씁쓸함이 가득했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마치 감옥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혼자 살아가야 하고 모든 일에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설사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더라도 간신히 살아남아야 한다. 사실... 두려워할 게 없다. 그녀는 이미 이전에 모든 것을 겪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임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일어나 옷장을 열어 처음 왔을 때 월세방에서 가져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그녀는 이 옷들을 아직 버리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최소한 그녀는 자신의 것을 입고 떠날 수 있으니, 그에게 빚진 것 없이 말이다. 그녀는 벗어둔 옷들을 깔끔하게 접어놓고 방을 다시 정리했다.처음에 월세방을 나올 때 가져온 물건들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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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사이의 게임은 이로써 끝이 났다!28번째 생일, 그녀는 오늘 또다시 하늘이 얼마나 무심하고 잔혹한지 깨닫게 되었다.임유진은 가녀린 몸으로 두 개의 캐리어를 끌면서 힘들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렇게 드디어 이 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집사와 마주쳐버렸다.집사는 임유진이 조금 낡은 듯 보이는 옷을 입은 채 어딘가로 떠나듯 캐리어를 들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유진 씨,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이곳을 떠나려고요. 저희 이제 헤어졌으니 제가 여기 머무를 이유도 없겠죠.”뭐라고?!집사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깜짝 놀란 듯 보였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 그럴 리가!오늘은 임유진의 생일이라 강지혁이 집사에게 저녁 만찬은 특히 신경을 써달라고 직접 지시까지 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게다가 임유진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 같지가 않아 더더욱 혼란스러웠다.임유진은 제자리에 굳은 듯 서 있는 집사를 뒤로하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강씨 저택을 나왔다.임유진이 사라지고 나서야 집사는 정신을 차린 듯 강지혁의 비서 고이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알렸다.전화를 받은 고이준은 집사와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했고 시선을 옆으로 돌려 강지혁을 바라봤다.헤어졌다고? 두 사람이?!두 눈이 제대로 달린 사람이라면 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 여자에게 진심인 강지혁의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헤어질 만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오늘 예상치 못하게 벌어졌던 일 때문일 것이다. 오은영을 내보낸 후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눴고 그러다 몇 분 후 강지혁 혼자 이곳으로 왔다.고이준은 만약 임유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이곳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강지혁과 그녀가 처음 만난 곳이었으니까. 또한, 강지혁의 아버지 강선우가 얼어 죽은 곳이기도 하다.매년 강선우의 기일이면 강지혁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하지만 오늘은 기일도 뭣도 아니었고 다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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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은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정처 없이 걷다가 강씨 저택에서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 벤치에 어느 정도 앉아있었을까,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전화가 거의 끊어질 때쯤 휴대폰을 꺼냈고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한지영이었다.임유진은 그녀의 이름을 보는데 문득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통화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어디야? 나랑 연신 씨 지금 너희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임유진은 그제야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고 생일 파티에 한지영과 백연신도 초대했다는 것을 떠올렸다.하지만 이제 생일 파티는 부질없어져 버렸다!“오지 마. 나랑 강지혁 헤어졌어. 생일 파티는 없을 거야.”임유진은 지금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쓰게 느껴졌다.한편, 이 말을 들은 한지영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물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헤어졌다니? 너랑 지혁 씨가? 왜? 아니, 그보다 너 지금 어디야?!”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지영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임유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해서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임유진이 만약 욕이라도 하고 울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담담한 거로 봐서 임유진은 지금 고통을 꾹 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마치 감옥에 있을 때 그 많은 고통을 전부 마음속 한구석에 담아둔 것처럼 말이다.임유진은 그 시절,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래졌고 결국에는 어둠에 잠식당했었다.그러다 출소한 후 강지혁과 만나며 그녀도 이제 사랑을 하고 원래의 밝은 임유진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또다시 그 절망밖에 없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한지영은 그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유진아, 내 말 들려? 너 어디 있냐고! 대답해!”한지영이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임유진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너 지금 얘기 안 하면 나 연신 씨한테 부탁해서 너 사는 지역 CCTV 전부 돌리라고 할 거야. 경찰에 신고도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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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유미는 임유진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유진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그게... 다음에 만나면, 그떄 얘기해 줄게요.”임유진은 애써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높였다.“윤이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오늘 못 먹은 케이크는 내가 다음에 꼭 사주겠다고도 얘기해주고요.”“유진 씨,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 찾아와요. 빈말 아니에요.”탁유미는 어느샌가 임유진을 정말 자신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출소 후 이경빈을 피해 급급히 도망가느라 친구들과는 전부 연락이 끊어져 버렸고 S 시에 정착한 뒤에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는 임유진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됐고 언제부턴가 그녀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게 됐다.“고마워요, 언니. 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요.”임유진은 그녀를 안심시킨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입 밖으로 내뱉은 말처럼 그녀는 정말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이건 그저 또 한 번의 실연일 뿐이고 또 한 번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졌을 뿐이다.아니, 억울함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지옥보다는 조금 나은 지옥이겠다. 지금의 그녀는 적어도 자유의 몸이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철창에 갇혀 누군가의 발길질에 힘없이 쓰러져 당하고만 있었던 그런 나날은 다시는 없을 테니까.임유진은 문득 수중에 있는 휴대폰을 바라봤다.강지혁이 전에 선물해줬던 휴대폰은 어제 산속에서 고장이 났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유심칩만 꺼낸 후 원래 쓰던 핸드폰을 쓰게 되었다.결국, 그녀는 그저 강씨 저택에 들어섰을 때와 똑같이 그곳을 나온 것뿐이다. 휴대폰, 옷, 신발 등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전의 그녀가 썼던 물건들이다.임유진은 자신이 마치 12시가 지나면 볼품없는 여자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느껴졌다.그때, 은색 포르쉐 한 대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멈춰 섰고 한지영이 다급하게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헐레벌떡 임유진에게로 달려왔다.“유진아, 너...”그녀는 임유진의 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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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은 갑작스러운 소민준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오늘 장례식 참석 목록에 소씨 가문은 없었다. 그런데도 소민준이 이렇게 들어와 있다는 건 이곳 직원을 매수했던가 참석 인원에게 간절히 부탁한 게 틀림없다.소민준의 뒤로 소민영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왔다.“그런데 솔직히 우리 오빠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알죠? 오빠가 헤어져 주지 않았으면 강지혁 씨랑 결혼하지도 못했을 거 아니에요. 안 그래...”“소민영!”소민준은 소민영이 쓸데없는 소리로 임유진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크게 호통쳤다.“빨리 유진이한테 사과해!”그러고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미안해. 민영이가 철이 없는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다시 한번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나나 우리 집안이나 너한테는 미안한 마음뿐이야. 한 번만 봐주라... 제발...”임유진은 그 말에 문득 일전 강지혁이 진씨 가문을 상대하려 했던 것이 떠올랐다.소민준이 장례식까지 찾아와 이렇게 비는 걸 보면 아마 진씨 가문을 건드리는 동시에 소씨 가문도 건드린 것 같다.“사실 나도 그때 너 그렇게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어. 특히 네가 억울했다는 게 밝혀진 뒤로는 더더욱. 만약 내가 그때 널 위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했으면 네가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거야. 정말... 너를 볼 면목이 없어.”소민준의 얼굴에는 후회의 감정이 잔뜩 서려 있었다. 게다가 눈시울까지 붉어진 것이 아마 다른 여성들이 봤으면 그가 잘못한 게 무엇이든 바로 용서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임유진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열연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녀는 당시 진세령의 옆에 딱 붙어 서서 그녀의 손톱이 하나하나 뽑히는 걸 그저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피가 흥건한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소민준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선했다.심지어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제일 후회되는 일이 바로 그녀와 함께했었던 일이라고까지 했다.그렇게도 차갑고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남자인데 임유진이 지금 그의 아련한 얼굴을 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6화

    강현수의 시선이 너무 지독하게 한곳에 꽂혀있던 탓인지 조문객들이 하나둘 이쪽을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강현수, 뭐 할 말 있어?”그때 강지혁이 임유진의 손을 잡으며 강현수를 노려보았다. 꼭 이 여자는 내 것이니 이만 꺼지라는 것 같았다.강현수는 잘 포개져 있는 두 사람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결국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을 떼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한은정은 그 광경에 그제야 안도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물론 안도한 건 한은정뿐만이 아니었다. 임유진 역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강지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임유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강지혁이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오늘은 할아버지 장례식이라 강현수도 뭔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여기서 일을 벌이면 그건 집안 간의 대립으로 이어질 테니까.”강지혁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임유진의 손을 더 꽉 잡았다.“강현수도 알 거야. 자기한테는 이제 그 어떤 기회도 없다는 걸.”그 뒤로 장례식은 순탄하게 진행됐다.임유진은 큰 배를 손으로 지탱하며 계속해서 강지혁의 곁을 지키다 조문객들이 조금 빠지고 나서야 밖에 있는 휴식 구역으로 가 휴식을 취했다.배 속의 아이들도 오늘은 분위기가 무거운 날인 걸 아는지 작은 태동만 있을 뿐 크게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임유진은 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그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 몇몇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강현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경호원은 그가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를 제지했다.“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임유진이 먼저 물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의 얼굴을 보며 방금 그녀가 배 속의 아이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던 장면을 떠올렸다.무척이나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5화

    게다가 이제는 강문철도 없으니 임유진이 강씨 가문이 안주인이라는 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또한 임유진은 임신까지 했으니 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나면 그때는 그 누구도 그 자리를 감히 탐낼 수 없게 된다.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강지혁을 대하는 것처럼 그녀를 대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아내로서 줄곧 강지혁의 곁에 있었다.강씨 가문은 S 시에서 가장 뿌리가 깊고 또 유명한 가문이라 장례식장도 컸고 조문객들도 훨씬 많았다.강지혁은 임유진이 무리라도 할까 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이만 쉬라고 했지만 임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그의 곁을 지켰다.“나 아직 괜찮아. 진짜 힘들면 너한테 얘기할게. 나도 내 몸 귀한 줄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임유진도 자신이 아이셋을 가진 임산부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그때 조문객들이 입구를 바라보며 강현수의 이름을 불렀다.이에 임유진은 살짝 움찔하더니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강현수와 마지막으로 본 것도 이제는 몇 달 전이었다.한때는 생사를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결국에는 썩 유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강현수는 오늘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임유진이 그를 바라봤을 때 그의 시선 역시 임유진에게 닿아있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을 보자마자 옆으로 늘어트린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사람을, 오랜 기간 마치 습관처럼 떠올렸던 사람을 그는 번번이 놓쳐버렸다.임유진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 가능성마저도 자기 손으로 부숴버렸다.그 결과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지금 그 남자의 곁에 서 있게 되었다.강현수는 이제 영원히 그녀 곁에는 있을 수 없게 되었다.강현수네 가족이 강지혁과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강현수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부모님과 달리 아무 말도 하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4화

    어쩌면 강지혁은 줄곧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돌아온 그에게 유일한 버팀목이라고는 강문철밖에 없었으니까.“나는 솔직히 네 할아버지가 고마워. 혁이 너를 이렇게 멋있게 키워줬잖아. 그리고 나랑 만나게 해줬고.”임유진은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혁아, 네가 원하는 가족 간의 사랑은 앞으로 내가 줄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줄 거야.”그 말에 강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임유진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아까 네가 그랬지?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다 다르다고. 그럼 너는?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뭔데?”강지혁이 임유진의 체향을 들이마시며 물었다.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늘 이렇게 마음이 진정되고 몸이 편안해졌다.“나?”임유진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혁이 너랑 우리 아이들이야.”“유진아, 나는 욕심이 많아. 나는 너를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아. 그게 우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나는 싫어. 나는 내가 네 마음속 1순위였으면 좋겠고 너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눈을 깜빡였다.설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질투하는 건가?“혁아, 너는 내 마음속 1순위야. 물론 아이들도 너무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너랑은 결이 조금 달라. 혁이 너는 나한테 유일무이한 존재잖아.”임유진은 두 손을 둘러 가볍게 강지혁을 끌어안았다.이미 배가 불러올 대로 불러와 완전히 꼭 끌어안지는 못했지만 싸늘한 방 공기를 녹이기에는 충분했다.“내가 너한테 유일무이한 존재라고?”“응. 널 대신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물론 아이들을 낳고 진정한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이건 장담해. 그리고 네가 원하면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더 많이 널 사랑해줄게. 혁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3화

    별채로 가는 길에는 늘 조명이 켜져 있기에 어두운 저녁이라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임유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강지혁이 방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지혁은 불빛을 받으며 시선을 내린 채 바로 앞에 있는 냉동관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혁아.”임유진은 그를 부르며 천천히 옆으로 다가갔다.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지혁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돌렸다.“오지 말라니까. 여기는 나 혼자 있으면 돼.”“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왔어.”임유진은 강지혁의 바로 앞에 서서 그의 볼을 매만졌다.지금은 1월이라 날씨가 무척이나 추웠다. 게다가 지금은 밤이고 별채 쪽에는 보일러도 없었기에 바깥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추웠다.“오늘 밤도 여기 있을 거야?”임유진이 물었다.“응. 그래도 날 키워주셨으니 할 도리는 다해야지.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에 사람들 많이 올 거야. 너는 몸이 불편하니까 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출산할 시기가 임박한 것도 아닌데 뭐.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에 나도 참석할 거야. 만약 몸이 불편하거나 하면 바로 너한테 얘기할게.”강지혁은 그 말에 임유진의 손을 살짝 잡았다.“너한테는 좋은 기억 하나 없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네 할아버지잖아. 네 유일한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도, 아무리 끝까지 나를 손주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어도 나는 할아버지 가시는 길을 너와 같이 보내드려야 할 의무가 있어.”다른 건 없었다.그저 강지혁의 어린 시절을 곁에서 지켜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임유진은 충분히 감사했다.강지혁은 그 말에 그녀의 손을 조금 세게 쥐었다.“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그 말은 그냥...”“알아. 네 할아버지는 그저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것으로 행복한 결과를 낳을 거라는 걸 믿지 못하시는 분이었던 거지. 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일도 있고 네 아버지 일도 있어서 많이 무서우셨을 거야. 너도 나중에 불행하게 될까 봐.”임유진이 말했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2화

    강지혁은 마치 강문철에게 자신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려는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얘기했다.강문철은 그 말에 눈동자를 돌려 자신의 유일한 손주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몇 초 후 이제는 모든 게 다 피곤한 듯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집안에서... 여자한테 미친 인간 치고... 멀쩡한 사람을 못 봤다. 네가... 계속해서 이러면 너도 언젠가는...”강문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옆에 있던 종합모니터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그 소리에 강문철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누군가의 생명이 바로 눈앞에서 멎었다.조금은 무서웠던 노인이, 강지혁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노인이 이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모든 게 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강지혁은 삐 소리가 들린 뒤로 임유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렇게 계속 힘을 주다가 임유진의 입에서 아프다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손을 놓아주었다.“미안. 아팠지?”강지혁은 어느새 빨개진 그녀의 손을 다시 잡으며 초조한 눈길로 물었다.“괜찮아. 그것보다 할아버지...”“응. 가셨어.”강지혁의 얼굴은 가족을 잃은 사람 같지 않게 무척이나 평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임유진은 알고 있다.아무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어도 강문철은 강지혁의 할아버지고 유일한 가족이었다. 강선우가 죽은 뒤로 그의 곁을 지켜줬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강지혁은 몸을 돌려 편히 잠든 강문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리고 임유진은 그런 강지혁의 옆에 서서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강문철의 장례식은 3일 뒤로 정했다.그 3일 동안 시신은 냉동관에 넣은 채 강씨 저택의 별채에 두기로 했다.그리고 그 3일 동안 강지혁은 그 어떤 외부인도 별채에 들이지 않았다.별채는 강씨 가문 사람 외에는 허락하지 않는 특별한 곳이었으니까.강선우가 죽었을 때도 그의 시신은 잠시 이 별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1화

    강지혁은 임유진의 고집에 결국 알겠다며 그녀와 함께 집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한 후 강지혁은 뒤따라온 경호원에게 임유진의 곁을 맡기고 혼자 병실로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빼빼 마른 강문철이 흰색 병상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남자도 병마와 세월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더니 마지막 힘을 쥐어짜 입을 움직였다.“왔... 니...”“네, 저 왔어요.”강지혁이 곁으로 다가오며 대답했다.사실 강지혁은 강문철에게 대단한 가족 간의 정은 느끼지 못했다.실제로 강문철은 강지혁이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느낄만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강문철은 언제나 강지혁을 자신의 뒤를 이어 강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하나의 장기 말로 여겨왔다. 물론 그 장기 말도 쓸모가 없었다면 진작 버렸을 것이다.“이제는... 강씨 가문의 모든 게 네 손에... 달렸다. 만약... 네가 가문을 망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문철이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할 말은 그게 끝이에요?”강지혁이 강문철을 빤히 바라보았다.이에 강문철은 탁한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 병실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유진... 그 아가씨... 밖에 있지? 들어오라고 해...”그 말에 강지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유진이 건드릴 생각하지 마세요.”“이 꼴로... 내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차피... 그 아가씨 옆에는... 네 사람 천지일 텐데.”강지혁은 그가 두 손으로 직접 키운 손주이자 가문의 후계자이기에 강지혁의 생각 같은 건 이미 훤히 꿰고 있었다.강지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강문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저... 마지막으로 해줄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 것뿐이다...”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안색도 창백해진 것이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강지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발걸음을 옮겨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임유진의 손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0화

    “그래? 그럼 만약... 내가 너한테 상처를 줘도 너도 똑같이 나 안 볼 거야? 내가 아무리 용서해달라고 빌어도 나 용서 안 해줄 거야?”강지혁은 목구멍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내뱉었다.이에 임유진은 몸을 돌려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강지혁을 바라보았다.“혁아, 너 대체 왜 그래? 요즘 따라 너무 불안해 보여. 무슨 일 있는 거야?”강지혁은 자신의 불안해 보인다는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확실히 그는 요 며칠 줄곧 불안해하고 있었다.탁유미와 이경빈의 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신과 임유진의 결말도 그들과 똑같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혹시 방금 내가 한 말이 널 불안하게 만들었어? 혁아, 내가 언니를 이해한다고 했던 건 소민준과의 일이 생각나서 그랬던 거야. 네가 괜한 생각을 할 게 아니라고. 네가 나한테 상처 줄 리가 없잖아. 그리고...”임유진은 손을 들어 조금 우울해 보이는 강지혁의 눈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전에 내가 말했잖아. 네가 정말 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해도 울면 봐주겠다고.”그녀는 강지혁의 눈에 담긴 우울함이 사라질 수 있게 일부러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그러자 그 말을 들은 강지혁의 눈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유진아, 너를 향한 내 감정은 언제나 그대로일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강지혁은 임유진의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에 가져갔다.“그러니까 너도 약속해. 날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임유진은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탁유미와의 대화에서 사람의 감정은 언젠가는 변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는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감정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고 있다.소민준과의 관계에서 질릴 대로 질려 그에게 모든 감정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고 그와 영원히 하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응, 영원히 너만 사랑할게. 절대 변하지 않을게. 약속해.”임유진은 진지한 얼굴로 그에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49화

    임유진은 한지영이 정신을 차린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녀가 활기를 되찾아줘서 참으로 고마웠다.한지영은 백연신과 그렇게 헤어진 후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며 회복에 힘썼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까지 했다.“고작 남자랑 헤어진 것뿐인데 뭐. 연애가 다 이런 거 아니겠어? 사랑했다가 또 헤어졌다가. 그래서 결혼까지 가는 게 기적이라는 말도 있잖아. 열렬히 사랑했으니 그거로 난 됐어. 혹시 알아? 퇴원한 뒤에 진정한 내 운명이 나를 찾아올지.”“다행이네요.”탁유미는 한지영의 말을 전해 듣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유진 씨랑 지영 씨는 나처럼 이러지 말고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의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대화를 나누던 임유진과 탁유미는 병실 밖의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는 것을 몰랐다....임유진은 탁유미에게 인사한 후 강지혁과 함께 강씨 저택으로 돌아왔다.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강지혁이 뒤에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왜 그래?”갑작스러운 포옹에 임유진이 물었다.사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지혁은 오늘따라 말수가 무척이나 적었고 시선은 거의 창밖에 고정하다시피 했다.그 모습에 임유진이 몇 번이나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물었지만 강지혁은 그때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대답을 피했다.“그냥... 갑자기 안고 싶어져서.”강지혁은 낮게 중얼거리며 아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그는 이경빈을 따라 탁유미의 병실 앞으로 왔다가 비스듬히 열린 문틈 사이로 임유진과 탁유미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탁유미가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은 다시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했을 때 이경빈은 휘청하며 그대로 주저앉았고 입을 틀어막으며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그 순간만큼은 우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맨날 안으면서 아직도 부족해?”임유진이 실소하며 물었다.“응. 부족해.”강지혁에게는 어쩌면 평생 부족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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