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강지혁이 샤워할 동안 그의 방 안에서 기다렸다.기다리지 않으려 해도 어차피 이 저택은 그의 것이고 그녀가 갈 곳이라고는 그녀의 방밖에 없으니 따로 도망칠 공간도 없었다.그러니 괜히 힘 뺄 필요가 없다.강지혁의 방은 그녀의 방과 크기가 비슷했다. 가구 역시 나무색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그의 방 한 벽면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이 벽도 설마 ‘피의 방’처럼 피로 물들어 있는 건 아닐까?임유진은 소름이 돋은 채로 벽을 향해 다가갔다. 무서운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열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인테리어용일 지도 모른다.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샤워를 마친 강지혁이 안에서 걸어서 나왔다.그는 허리춤에 타올 하나만 달랑 두르고 있었고 그 덕에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그리고 그의 두 눈은 나오자마자 임유진을 쫓았다.임유진은 순간 포식자 앞에 선 소동물이 된 느낌이 들었다.강지혁은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왔고 임유진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발이 뭔가에 걸려 몸 전체가 뒤로 넘어가게 되었다.“꺄!”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는 커튼을 아래로 끌어내렸다.커튼이 아래로 흘러내린 동시에 강지혁의 팔이 넘어지는 그녀의 몸을 덥석 받아냈다.임유진과 강지혁의 두 눈이 마주쳤다.“고... 마워.”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그녀는 어색하게 몸을 바로 세우며 그의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그러다 옆에 있는 벽을 보는 순간 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임유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서히 나머지 커튼도 열어젖혔다.벽에는 사진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었고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은 오직 한 사람, 임유진이었다.“내 사진이 왜...”“왜 저기 붙어 있냐고?”강지혁은 그녀 대신 말을 이으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임유진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임유진은 그의 시선을 받고는 목이 타며 입술이 바싹 말라왔다.강지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지금 이렇게 임유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임유진은 그가 기댄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지금 몸무게의 절반 정도 되는 무게를 전부 다 그녀의 어깨에 실었다.강지혁은 마치 피곤이 극에 달한 사람처럼 어디 편히 기댈 곳을 찾고 있는 듯했다. 잠깐이어도 좋으니 기대기만 해도 좋다는 것처럼 말이다.그리고 임유진은 지금 그의 기댈 곳이 되었고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을 통틀어 그녀가 유일한 기댈 곳인 것 같았다. 만약 이대로 그를 밀어내면 강지혁은 망망대해에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세상에.임유진은 자기가 생각하고도 말도 안 된다며 스스로를 비웃었다.강지혁의 유일한 기댈 곳이 그녀일 리가 없다. 지금 그는 단지 피곤함 때문에 이러는 것뿐이다.“그럼 쉬어. 나는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임유진은 천천히 그를 밀어내고 발걸음을 돌렸다.하지만 막 한걸음 내디디려는 찰나 갑자기 몸이 뒤로 넘어가더니 강지혁에 의해 순식간에 침대와 그의 몸 사이에 갇혀버렸다.“이거 놔!”임유진이 화들짝 놀라 서둘러 그를 밀어냈지만 강지혁은 그럴수록 더 세게 안아왔다.“아무 짓도 안 해. 그냥... 이렇게 안고만 있을게.”강지혁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완전히 파묻은 채 그녀의 숨결과 체온을 느꼈다.이렇게 해야만 비어있는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고 나아가 안심하고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자신을 강제로 취하기라도 할까 봐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말대로 그저 꼭 끌어안고 있기만 했다.다만 지금 그의 두 팔은 마치 애착 인형이라도 품에 끌어안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를 다시 밀어내보려고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가는 그가 정말 어떻게 할지도 몰라 임유진은 그저 그의 품에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그녀의 몸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두 손은 강지혁의 가슴팍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아까 샤워하고 나온 뒤 그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잠든 그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워 보이지도 않았고 압박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기도 했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다만 지금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유약해 보였다.유약하다고?임유진은 바로 실소를 터트렸다.그러고는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의 품에서 완전히 몸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강지혁이 무의식중에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이윽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에 놀란 임유진이 서둘러 손을 빼려고 하자 강지혁은 점점 더 세게 조여오기 시작했다. 마치 간신히 손에 넣은 보물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이다.임유진은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아무리 움직여도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설마 이대로 함께 자야 하는 건가?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다시 한번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그러기를 몇 번, 임유진은 이쯤 되니 강지혁이 사실 이미 깬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물론 깨어있을 때처럼 힘이 셌지만 그는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고 그저 손을 꽉 잡는 것 외에 다른 짓은 하지 않았다.결국 임유진은 스스로와 타협하기로 했다.강지혁과 한 침대에서 잔 것이 처음도 아니니 문제 될 건 없다고 말이다.임유진은 잠깐 망설이다 옆에 있는 이불을 끌어와 서로에게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최대한 그와 거리를 벌려 침대 끝쪽 자리로 갔다.오늘은 어쩌면 제대로 자지 못할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달리 임유진은 금방 잠이 들었고 심지어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눈을 떴다.그녀는 눈을 비스듬히 뜬 채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지금이 몇 시지? 그리고 여기는 또 어디지?임유진은 아직 몽롱한 채로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오른팔이 뻣뻣한 느낌과 함께 누군가에게 잡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에 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앞에 강지혁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의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기는 하고?”임유진이 되물었다.그러자 강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열 때문인지 그 웃음마저 허약해 보였다.“아니. 내 동의 없이 넌 여기서 못 나가.”임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이런 말을 할 때인가?“그래서 약은? 너 지금 얼굴 불덩이야. 당장 약 먹어야 한다고.”이렇게 된 건 다 밤새 비를 맞고 있어서일 것이다.“없어.”강지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럼 너 휴대폰 어디 있어? 고 비서님한테 연락해서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겠다고 전해.”“병원 안 가도 돼. 며칠 쉬면 괜찮아 질 거야.”“그러면 해열제라도 사 오라고 해.”강지혁은 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열어젖히더니 침대에서 내려왔다.“너 설마 약 먹기 무서워서 그래?”그저 한번 해본 말이었는데 강지혁은 몸을 흠칫하더니 꽤 복잡한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빨개진 얼굴이 지금은 한층 더 빨개진 것 같기도 했다.설마 진짜 약 먹기 무서웠던 건가?임유진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전에 약을 사다 줬을 그는 잘만 받아먹었다.“너 나 사랑해?”강지혁이 대뜸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어왔다.임유진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래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아니.”그 대답에 강지혁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자조하듯 웃어다.“그런데 내 걱정은 왜 해? 내가 이렇게 열이 나는 게 너한테는 속 시원하고 좋은 거 아니야?”“내가 속 시원해지길 바란다면 날 여기서 내보내 줘.”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을 이를 꽉 깨물더니 그녀를 세게 노려보았다.“날 사랑하기 전까지 넌 여기서 못 나가. 나갈 생각 같은 거 꿈도 꾸지 마.”임유진은 어쩐지 강지혁이 마치 떼쓰는 아이 같아 보였다. 그것도 어지간히 고집부리는 3살짜리 아이 말이다.열 때문인 걸까?강지혁은 말을 마치고는 욕실로 걸어갔다.이에 임유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너 지금 네가 얼마나...”
“너야말로 괜찮아? 머리는? 안 아파?”임유진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이리저리 쓰다듬었다.아까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꽤 큰 거로 보아 어쩌면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부딪힌 것일 수 있다.그녀는 그의 머리를 체크하는 데만 여념이 없어 지금 두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잊고 있었다.그리고 임유진이 그의 몸 위에 기댄 채 손을 뻗어 머리를 매만지는 바람에 두 사람의 몸은 더욱더 세게 밀착되었다.강지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내가 아프다고 대답하면 속상해할 거야? 나 걱정해줄 거야?”임유진은 그 말에 움직이던 손을 멈칫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제야 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깨달았다.그녀의 입술은 지금 아슬아슬하게 그의 볼 가까이에 있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아픈 거면 지금 당장 고 비서님한테 전화해. 그리고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해. 가는 김에 너 열 나는 것도 의사한테 보이고. 아픈 거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 마. 너 목숨 여러 개 아니야.”강지혁은 그녀의 진지한 말에 갑자기 씩 웃었다.“역시 너는 내가 죽는 건 싫은 거야. 그렇지?”열 때문에 빨개진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지니 예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유약해 보이기도 했다.임유진은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고 그의 웃음 때문에 심장이 망치로 얻어맞은 듯 아파 났다....다행히도 강지혁은 결국 고이준에게 전화를 걸었고 열이 나고 있음을 알린 뒤 체온계와 해열제를 가져오라고 했다.고이준은 혹시 몰라 의사도 함께 데려왔다.의사는 강지혁의 상황을 체크한 후 두 가지 약을 건넸다. 그러고는 만약 이틀 정도 지켜보다 계속 열이 내리지 않으면 그때는 병원으로 가 다시 검사해야 한다고 전했다.그 말에 강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병원으로 가기 싫은 눈치였다.“이제 그만 나가.”고이준은 강지혁의 말에 그를 한번 쳐다보다 옆에 있는 임유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저희 대표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임유진은 아무런
“언제 한번 호기심으로 여러 알 먹은 적이 있었고 그때 3일 내리 잠만 자고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가 위세척도 했어. 그리고 그날 그 도우미가 여태 약을 바꿨다는 사실을 듣게 됐지.”강지혁은 임유진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그거 알아? 그 여자는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당시 나한테 제일 잘해줬던 사람이었어. 매일 나한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고 나를 보살펴줬어. 그리고 그렇게 다정하게 웃으면서 매일 나한테 수면제를 건넸던 거야.”임유진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어떻게 제 한 몸 편해지겠다고, 어떻게 고작 데이트 때문에 애한테 그런 짓을 해? 수면제를 많이 먹이면 너한테 어떤 영향이 가는지 생각 안 했대?”만약 강지혁이 계속해서 수면제를 받아먹었다면 아마 어릴 때부터 질병을 달고 살았을 수도 있다.“이 세상에 자기 이익을 위해 쉽게 남한테 해를 끼치는 사람은 많아.”“그 도우미는 나중에 어떻게 됐는데?”임유진이 물었다.“바로 잘렸어.”강지혁은 그저 잘렸다고만 했지만 강문철이라면 아마 더 한 벌을 내렸을 게 분명했다.“그래서 넌 그때부터 약 먹는 걸 싫어했던 거야?”“응.”강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을 먹으려고 할 때면 그날 위세척했던 고통과 아무런 힘도 없이 병상에 며칠을 누워있어야만 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심지어 그때 강문철은 그의 병실로 와서는 병상에 누워있는 손자에게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약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알려주었다.“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또다시 누군가를 그렇게 쉽게 믿었다가는 그때는 병원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 차가운 바닥에 묻히게 될 거다. 네가 아무리 내 손자라고 해도 나는 멍청한 놈을 도와주지 않아. 이런 기본적인 경계심도 없는 인간은 우리 집에 있을 자격 없다.”강지혁은 그날 확실히 깨달았다. 강문철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어쩌면 강문철은 처음부터 도우미가 약을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남들의 눈에 그는 강씨 가문의 사랑받는 도련님으로 보였겠지만 실
강지혁은 임유진이 주는 건 먹을 수 있다고 했다.이건 그녀를 믿고 있다는 표현인 걸까?그렇다면 왜 그녀가 주는 약은 덥석 받아먹으면서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도 의심했던 거지?만약 강지혁이 그녀의 마음을 믿었더라면 두 사람은 애초에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물론 지금에 와서 이런 생각을 되뇌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강지혁은 자고 있을 때조차도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다.임유진은 욕실로 가 타올을 들고 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엄마.. 엄마...”강지혁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엄마를 불렀다.임유진은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뭐라고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꿈속에서 엄마를 만나기라도 한 건가?임유진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강지혁이 아직 어렸을 때 그의 엄마는 구질구질한 생활이 싫어 그와 강선우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고 했다.그리고 그렇게 집을 나간 뒤로 단 한 번도 강지혁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임유진은 강지혁의 가슴팍에 있던 흉터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많이 옅어진 상태였지만 당시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어린아이에게 이런 상처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을 정도의 치명상이 될 수도 있었다.이런 상처가 생긴 이유는 강지혁이 떠나는 엄마를 붙잡으려 했기 때문이다.“엄마... 싫어... 나 두고 가지 마.... 나랑 아빠 두고 가지 마... 제발...”그의 미간은 점점 더 세게 찌푸려졌고 속눈썹은 파르르 떨렸다.금방이라고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방금 닦아낸 땀이 다시 한번 그의 이마에 맺혔다.강지혁은 지금 마치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 같았다.아니... 어릴 때 꿈을 꾸고 있을 테니 꿈속에서 그는 지금 아이일 테지...임유진은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아무도 너 두고 어디 안 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착하지...”임유
방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이곳에 강지혁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강지혁은 임유진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서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텅 빈 두 손을 바라보았다.강제로 이 집에 가둬 놓아도 임유진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떠나지 말라고, 옆에 있어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결국 그들만의 방식으로 곁을 떠나버린 그의 엄마와 아빠처럼 임유진도 떠나버렸다.결국 돌고 돌아 그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언제부터 혼자인 걸 신경 썼다고...임유진을 만나기 전 그는 늘 혼자였다. 이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스스로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다시 혼자가 됐다고 마음이 허전할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분명 그러한데 자꾸 고통이 마음의 틈을 비집고 나와 온몸에 뿌리를 내린다.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강지혁은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보며 눈동자가 점점 흔들렸다.“벌써 일어난 거야? 죽 끓여왔어.”임유진은 손에 든 죽을 침대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졌다.아직도 조금 뜨겁기는 했지만 전보다는 많이 나았다.“열은 조금 내린 것 같은데... 체온은 이따 다시 재줄게.”“방금... 죽 끓이러 갔었던 거야?”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응, 너 깨고 나면 배고플까 봐. 반 시간쯤 뒤에나 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깼네?”임유진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죽은 아직 뜨거우니까 조금 식히고 먹어.”“알았어.”강지혁은 죽을 한번 보고는 다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그럼 그 전까지는... 계속 이 방에 있었던 거야?”“아니면?”임유진은 줄곧 그의 옆에 있었다.강지혁이 악몽 때문에 몸을 뒤척이며 힘없이 중얼거릴 때면 그녀는 옆에서 다정하게 그의 말에 일일이 대답해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강지혁은 그제야 다시 편안한 얼굴을 했다.그렇게 그가 완전히 편히 잠든 후에야 임유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강지혁은 눈앞에 있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