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가 끝나고 이튿날 밤에 신주리는 릴리의 거처로 들이닥쳤다.월계만 모 동의 14층.가녀린 몸매의 젊은 아가씨가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머리에는 야구모자를 썼으며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한산하게 문에 기대서는 점점 거세게 노크하며 소리 질렀다.“문 열어. 집에 있는 거 알아. 나를 속일 용기는 있으면서 날 만날 용기는 없어?”신주리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나려 할 때 엘리베이터가 “띵”하고 울렸고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는 신주리를 보자 흠칫하며 물었다.“너 왜 여기에 있어?”그러자 신주리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쪽은 왜 여기에 있어? 그사이에 구원투수를 모셔 왔어?”신하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네 고함이 아래층까지 다 들렸어. 왜 이렇게 소란을 피워? 네가 쉬는 날이라고 다른 사람도 쉬는 줄 알아?”신주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신하균의 아래위를 훑더니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건물 품질이 별로인가 봐? 날도 아직 안 어두워졌는데 누가 초저녁부터 잠을 자?”신하균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주리는 다시 문에 대해 고함을 질렀다. “문 안 열면 공작 어른한테 전화해서 나를 속이고 사기계약을 체결하고 내가 예능에 출연한 틈을 타 외간 남자와 야반도주했다고 이를거야.”그러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작고 가녀린 여자가 잠옷을 입고 하품을 하며 잠에서 덜 깬 눈빛으로 물었다.“주리 언니, 언제 왔어?”그러더니 그녀의 노기등등한 눈빛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재빠르게 문을 닫으려고 하자 신주리가 릴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 손으로 문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를 밀치며 쌩하니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고는 어떤 사람이 자기 일에 방해될까 봐 이내 문을 밖으로 밀면서 말했다.“강릴리, 너 오늘 내 손에 죽었어.”“사람 살려...”마지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철컥하
그러자 파트너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안 그래도 다들 심심했는데 여기까지 온 바에 저녁이라도 얻어먹고 가면 안 될까요?”신하균은 말없이 굳게 닫힌 릴리 집 대문을 바라봤다.아까까지 요란법석이던 집안이 다소 조용해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팀원들과 함께 식사하기 좋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오늘은 안 될 것 같으니 먼저 팀원들하고 식사해. 내가 살게.”“역시 신 도련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특전사로써 임무 수행 중 절대 되돌아가서는 안 되고 마침 또 저녁 먹을 시간인지라 이 기회에 신하균에게 크게 한 턱 얻어먹지 않으면 오는 내내 걱정했던 자신한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오늘 제대로 한 수 배웠기에 이제부터 사랑에 눈이 먼 사람과 파트너 할 때에는 지령의 진위에 대해 잘 식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신하균이 전화를 끊고 나서 집안에서 개 짖는 소리와 여자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고 시간이 거의 된 것 같아 노크하면서 말했다.“주리야. 문 열어.”의외로 이번에는 안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2분 가까이 지난 뒤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신주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 서 있었다.집안에 들어서자 아까까지도 졸음이 채 가시지 않아 흐리멍덩한 모습이던 릴리가 잠옷과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채로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눈물자국으로 얼룩졌고 코끝이 빨개서는 마치 유린이라도 당한 것만 같았다. 신하균이 들어서자 릴리는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경찰이 바로 문 앞에 서있으면서도 자기 구조요청을 무시한 것이 화났고 내일 경찰서에 민원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하균은 그런 릴리의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물었다.“대체 둘이 뭐 한 거야?”“얘가 나한테 사기 쳤어.”“주리 언니가 날 간지럽혔어요.”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그제야 신하균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 친구가 여동생한테 사기 쳤고 여동생의 피비릿내 나는 복수가 바로 간지럽히는 것이었다.
신하균은 그런 릴리의 속심을 꿰뚫어 보고 이내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자 핸드폰에 찍힌 대화 내용을 본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눈까풀을 파르르 떨었다.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더니 감동의 물결이 넘실대는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신 팀장님 정말 고마워요. 하균 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제부터 다시는 이런 장난을 치지 않을게요.”이런 릴리의 반응에 신하균은 만족했는지 이내 고개를 돌려 신주리에게 도발의 눈빛을 발사했고 그녀는 화가 나 툴툴거렸다.‘내가 오늘 복수하러 온 것이지. 두 사람이 깨 볶는 걸 보러 온 거 아니야.’그리고 아무리 봐도 이 두 사람이 이상했고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연애하면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 해도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한바탕 화풀이하고 난 신주리는 그제야 진정이 되는지 강표를 품에 안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저녁 식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사건의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릴리와 신주리 사이에 앉아 양쪽 말을 듣던 신하균은 미동 없는 표정으로 신주리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연애 예능인 줄 뻔히 알면서도 출연했단 거야?”그러자 신주리는 말문이 막혔는지 멈칫하더니 말했다.“그렇게 됐어. 육경서 그 자식이 헤어지자고 했으니 새 남자 친구를 찾는 게 지극히 정상이지 않아?”“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어.”신하균이 차분한 말투로 핀잔을 주자 신주리는 예쁜 눈을 흘기며 힘껏 노려보고는 말했다.“그런데 오빠는 왜 왔어? 일 다 봤으면 빨리 가. 릴리하고 할 말이 엄청나게 많아.”“왜? 친오빠가 친구보다 못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거야?”신하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전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었다.“당연히 절친보다는 친오빠가 못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절친이 아까워.”아까까지 죽기 내기로 싸우던 두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화해한 모양이다.신주리와 입씨름하기 귀찮은지 신하균은 아예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좀 있으면 경서가 올 거야.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보다
“강릴리, 너 헛소리하지 마.”육경서가 다급하게 제지했다. 이제야 두 사람 사이의 모순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는데 더 이상 다른 오해를 낳아서는 안 된다. 그러자 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뭐야? 두 사람 헤어진 것 아니었어?”그러자 신주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헤어졌어.”육경서도 잇따라 말했다.“헤어지긴 했는데 다시 대시하는 중이니까 너 절대 훼방 놓지 마. 아니면 절대 가만 안 둬.”릴리는 토끼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의아해했다. 예능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만나기만 하면 기를 쓰고 싸우고 누구도 먼저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릴리는 어제 오후 라이브 방송을 끝까지 다 봤고 카메라가 병실 앞을 찍을 때 들려왔던 말소리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그리고 병실 내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훈훈해졌음을 느꼈다.특히 육경서의 태도가 변화된 것을 보고 릴리는 고난 속에서 다시 사랑이 싹텄고 이번 기회에 두 사람의 사이가 많이 완화된 줄로 알았다.하지만 이건 단지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이고 사적으로는 여전히 아웅다웅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경서 오빠 괜찮아? 혹시 황산이 오빠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을까? 살짝 정신이 이상해.”릴리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묻자 육경서는 펄쩍 뛰며 말했다.“내가 볼 때는 네가 정상이 아니야. 난 아주 멀쩡해.”그러자 릴리는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아무리 봐도 이상해.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받긴 했어? 후유증이라도 남은 것 아니야?”육경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틈을 타 신하균이 황산이 뭐냐고 물었다.그는 아직 2G에 멈춰있었고 전 세계가 아는 일을 그만 모르고 있었다.하긴 이틀 동안 본가에 안 갔으니 모를 만도 했다.본가에 갔더라면 신주리의 열성팬인 부모님이 말해줬을 텐데 말이다.릴리는 앞뒤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말했다.“구체적인 건 이제 동영상으로 확인해 봐요.”그러자 신하균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입을 꾹 다물고는
‘오동나무’가 육경서 매니저의 닉네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유미나가 제대로 허세를 부렸고 전에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육경서와 신주리에 관한 글이라도 감히 상대를 @못 하더니 이번에는 당당하게 육경서의 매니저를 @했다. 상대방이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바빠서 확인할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만일 헛소문이라면 소속사에서 제일 먼저 부인 기사를 냈을 텐데 감감무소식인 걸 봐서는 진짜인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이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진입했다.“#육경서, 유미나에게 초청장 발송#”이 글에 제일 큰 반응을 보인 것은 유미나의 팬들이었다.“미나 언니와 경서 오빠가 진짜였어. 두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가족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라는데 어떤 여자 한 명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진다는 게 말이 돼?”“맞아. 며칠 전에 어떤 팬들이 뻔뻔하게 우리 언니를 모함하더니 여자 친구면 다야?”“재벌 2세인데 어떻게 여자 친구가 한 명밖에 없겠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가 봐? 하늘을 난다고 다 봉황인 줄 알아?”“그래. 경서 오빠가 좋다고 하니 그날 네가 거짓말한 거 용서할게.”“...”팬이든 댓글부대든 유미나의 인터뷰 사건을 정당화하기에 애를 썼다.비록 동영상이 강제로 철회되긴 했지만 육경서가 유미나를 바람맞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기에 이 글이 뜨자 그녀의 팬들은 환호를 지르며 자기 아이돌을 응원했다. 하여 이 일을 아는 사람들로부터는 유미나가 거짓말했다는 혐의가 벗겨지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와 육경서의 관계를 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러모로 보나 초청장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유미나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주리 팬을 너무 얕잡아봤고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커플 팬의 공격력을 미처 감지 못하는 바람에 유미나가 한창 의기양양하고 있을 때 그들로부터 엄청난 ‘축사’를 받았다.“축하해요. 육경서에게 빌붙으려고 그렇게 노력하더니 겨우 패션 발표회 초창장이 얻어걸렸네요.
글을 올렸다가 만일 육경서가 부정하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니저가 인터뷰 사건 때문에 유미나의 평판이 나빠져 광고주들이 탐탁지 않아 하기에 이런 시기에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많은 자원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여 육경서 매니저가 가져다준 초청장이 바로 제일 좋은 증명 방법이 되어버렸다. 유미나는 매니저의 말에 마음이 동했고 오랜 고민 끝에 이 글을 SNS에 업로드한 결과…유미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매니저에게 항의했다.“내가 너무 나대지 말자고 했죠? 신주리 팬들이 어떻게 날 욕하는지 한번 봐봐요.”그러자 매니저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욕하라고 해. 노이즈 마케팅 몰라? 이러면서 너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더 올라가는 거야. 너한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데 왜 두려워해?”매니저는 유미나가 몇년이나 무명 생활을 하면서도 배경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가족의 반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고 신주리와 육경서 팬이 앞다투어 공격하는 것으로 봐서는 반은 성공한 셈이다.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뜰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자격이 있는 건 맞는데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봐봐요. 나를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제삼자’라잖아요. 저와 경서는 순수한 친구 사이인데 이건 모함 아닌가요?”그 말에 매니저가 순간 침묵했고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판단해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싶었다.그러더니 싸늘하고도 의미심장한 말소리가 들려왔다.“미나야.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내 앞에서는 그따위 짓거리 벌이지 마. 어떻게 모든 일이 네 마음대로 될 수 있어? 네가 처음에 그 두 사람의 인기를 빌어 뜨려고 작정했을 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 못 했어? 사람들이 널 질책한다는 건 너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거야. 어떻게 나쁜 일을 하고도 칭찬받을 생각을 해?”“무슨 헛소리 하는 거예요?”“좋은지 싫은지 하나만 선택해. 싫다고 하면 검색어 바로 철회할 거야. 육경서, 신주리 같은 대
유미나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이런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사건이 터진 지 한참 지나도 육경서가 입장을 밝히지 않으니 묵인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하여 신주리 팬과 커플 팬들은 무차별 공격을 하며 육경서가 어장 관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신주리와 유미나 모두 육경서 어장의 물고기였다. 육경서 팬들은 공격과 반격을 동시에 해야 했고 그를 위해 뒤치다꺼리를 하려니 솔직히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가 어장 관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다시 돌아와 육경서는 세 측에서 압력을 가하자 드디어 진실을 밝혔다.“맞아. 초청장을 내가 보내라고 했어.”의아한 릴리와 싸늘하기 그지없는 신하균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신하균은 육경서 이 자식이 오늘 합리적인 이유를 대지 않는다면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반면에 신주리는 그저 순간 움찔하더니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뒷말을 기다렸다...“이 자리에서 이유를 밝힐 수 없어. 그때 가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그는 이 상황에서도 겁대가리 없이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맹세하는데 딱 이번 한 번만 내가 참여했어. 나머지는 나와 아무 상관 없어.”“그 여자가 아리송한 말로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오해받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서울 가을 패션 발표회에 많은 스타들이 참석했고 연예계, 패션계 인사들 외에도 재벌 집 사모님과 아가씨들도 다수 참석해 장관을 이뤘다. 언제부터 생긴 규정인지 몰라도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분과 지위가 높을수록 좌석이 앞으로 배치되었다. 유미나는 오늘 외모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고 화장했지만 맨얼굴처럼 보이는 피부는 삶은 달걀처럼 맑고 촉촉했다. 그리고 워낙 청순가련형 이미지인 데다 발끝까지 드리운 순백색 드레스를 입으니 더욱 여리여리해 보였다. 이 드레스는 몇 달 전부터 육경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수입이 좋아진 덕에 거금을 들여 마련한 것이고 생애 제일 비싼 드레
“맨 앞줄이긴 한데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앞자리에 못 앉겠어. 그리고 디자이너 친구가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내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했어.”“네?”후배는 순간 멍하더니 이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오늘 이렇게 예쁜데 컨디션이 안 좋다고요? 언니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해 주면 언니는 어떻게 해요?”그러자 유미나는 대범하게 웃으며 말했다.“친구 좌석에 앉으면 돼. 저기 뒤쪽이야.”유미나는 맨 끝의 좌석을 가리켰고 거긴 위치뿐만 아니라 시선도 별로 좋지 않았다. 후배는 육경서가 유미나에게 저런 좌석의 초청장을 줬으리라곤 전혀 생각 못 했기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친구를 위해 좌석을 양보한 선배가 안타까운지 친절하게 말했다.“언니, 제가 매니저와 함께 왔는데 좌석이 가지런히 배치되었어요. 매니저가 방금 개인 사정이 있다고 일 보러 나가고 자리가 비었는데 제 옆자리에 앉으실래요?”“...”그 말에 유미나의 눈이 순간 반짝였고 후배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니 중간에서도 앞부분 좌석이었다.이 정도 좌석이라면 중상층 부류를 의미했고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면 여기에 앉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미나는 거만을 떨며 손사래 치더니 자기는 이런 발표회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 뒤에서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고 단순한 후배는 그녀가 그다지 강력하게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억지로 좌석으로 끌고 갔다.그러자 유미나는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 앉더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무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내 신분에 대충 걸맞지...’“미나 언니 혹시 들으셨어요? 오늘 주리 언니 피날레 드레스가 이번 시즌 최고 작품이래요. 완전히 제 스타일이에요.”후배가 열정적으로 설명하자 그녀는 눈꼬리를 살짝 치켜들며 담담하게 물었다.“그래? 네가 좋아한다면 내가 한 벌 선물해 줄게. 나한테 좌석을 내어준 답례야.”그러자 후배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언니, 진짜에요? 그 드레스는 한정판이고 제가 오래전부터 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