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릴리, 너 헛소리하지 마.”육경서가 다급하게 제지했다. 이제야 두 사람 사이의 모순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는데 더 이상 다른 오해를 낳아서는 안 된다. 그러자 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뭐야? 두 사람 헤어진 것 아니었어?”그러자 신주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헤어졌어.”육경서도 잇따라 말했다.“헤어지긴 했는데 다시 대시하는 중이니까 너 절대 훼방 놓지 마. 아니면 절대 가만 안 둬.”릴리는 토끼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의아해했다. 예능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만나기만 하면 기를 쓰고 싸우고 누구도 먼저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릴리는 어제 오후 라이브 방송을 끝까지 다 봤고 카메라가 병실 앞을 찍을 때 들려왔던 말소리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그리고 병실 내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훈훈해졌음을 느꼈다.특히 육경서의 태도가 변화된 것을 보고 릴리는 고난 속에서 다시 사랑이 싹텄고 이번 기회에 두 사람의 사이가 많이 완화된 줄로 알았다.하지만 이건 단지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이고 사적으로는 여전히 아웅다웅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경서 오빠 괜찮아? 혹시 황산이 오빠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을까? 살짝 정신이 이상해.”릴리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묻자 육경서는 펄쩍 뛰며 말했다.“내가 볼 때는 네가 정상이 아니야. 난 아주 멀쩡해.”그러자 릴리는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아무리 봐도 이상해.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받긴 했어? 후유증이라도 남은 것 아니야?”육경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틈을 타 신하균이 황산이 뭐냐고 물었다.그는 아직 2G에 멈춰있었고 전 세계가 아는 일을 그만 모르고 있었다.하긴 이틀 동안 본가에 안 갔으니 모를 만도 했다.본가에 갔더라면 신주리의 열성팬인 부모님이 말해줬을 텐데 말이다.릴리는 앞뒤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말했다.“구체적인 건 이제 동영상으로 확인해 봐요.”그러자 신하균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입을 꾹 다물고는
‘오동나무’가 육경서 매니저의 닉네임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유미나가 제대로 허세를 부렸고 전에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육경서와 신주리에 관한 글이라도 감히 상대를 @못 하더니 이번에는 당당하게 육경서의 매니저를 @했다. 상대방이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바빠서 확인할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만일 헛소문이라면 소속사에서 제일 먼저 부인 기사를 냈을 텐데 감감무소식인 걸 봐서는 진짜인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이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진입했다.“#육경서, 유미나에게 초청장 발송#”이 글에 제일 큰 반응을 보인 것은 유미나의 팬들이었다.“미나 언니와 경서 오빠가 진짜였어. 두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가족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라는데 어떤 여자 한 명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진다는 게 말이 돼?”“맞아. 며칠 전에 어떤 팬들이 뻔뻔하게 우리 언니를 모함하더니 여자 친구면 다야?”“재벌 2세인데 어떻게 여자 친구가 한 명밖에 없겠어?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가 봐? 하늘을 난다고 다 봉황인 줄 알아?”“그래. 경서 오빠가 좋다고 하니 그날 네가 거짓말한 거 용서할게.”“...”팬이든 댓글부대든 유미나의 인터뷰 사건을 정당화하기에 애를 썼다.비록 동영상이 강제로 철회되긴 했지만 육경서가 유미나를 바람맞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기에 이 글이 뜨자 그녀의 팬들은 환호를 지르며 자기 아이돌을 응원했다. 하여 이 일을 아는 사람들로부터는 유미나가 거짓말했다는 혐의가 벗겨지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와 육경서의 관계를 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러모로 보나 초청장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유미나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주리 팬을 너무 얕잡아봤고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커플 팬의 공격력을 미처 감지 못하는 바람에 유미나가 한창 의기양양하고 있을 때 그들로부터 엄청난 ‘축사’를 받았다.“축하해요. 육경서에게 빌붙으려고 그렇게 노력하더니 겨우 패션 발표회 초창장이 얻어걸렸네요.
글을 올렸다가 만일 육경서가 부정하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니저가 인터뷰 사건 때문에 유미나의 평판이 나빠져 광고주들이 탐탁지 않아 하기에 이런 시기에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많은 자원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여 육경서 매니저가 가져다준 초청장이 바로 제일 좋은 증명 방법이 되어버렸다. 유미나는 매니저의 말에 마음이 동했고 오랜 고민 끝에 이 글을 SNS에 업로드한 결과…유미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매니저에게 항의했다.“내가 너무 나대지 말자고 했죠? 신주리 팬들이 어떻게 날 욕하는지 한번 봐봐요.”그러자 매니저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욕하라고 해. 노이즈 마케팅 몰라? 이러면서 너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더 올라가는 거야. 너한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데 왜 두려워해?”매니저는 유미나가 몇년이나 무명 생활을 하면서도 배경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가족의 반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고 신주리와 육경서 팬이 앞다투어 공격하는 것으로 봐서는 반은 성공한 셈이다.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뜰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자격이 있는 건 맞는데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봐봐요. 나를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제삼자’라잖아요. 저와 경서는 순수한 친구 사이인데 이건 모함 아닌가요?”그 말에 매니저가 순간 침묵했고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판단해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싶었다.그러더니 싸늘하고도 의미심장한 말소리가 들려왔다.“미나야.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 내 앞에서는 그따위 짓거리 벌이지 마. 어떻게 모든 일이 네 마음대로 될 수 있어? 네가 처음에 그 두 사람의 인기를 빌어 뜨려고 작정했을 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 못 했어? 사람들이 널 질책한다는 건 너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거야. 어떻게 나쁜 일을 하고도 칭찬받을 생각을 해?”“무슨 헛소리 하는 거예요?”“좋은지 싫은지 하나만 선택해. 싫다고 하면 검색어 바로 철회할 거야. 육경서, 신주리 같은 대
유미나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이런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사건이 터진 지 한참 지나도 육경서가 입장을 밝히지 않으니 묵인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하여 신주리 팬과 커플 팬들은 무차별 공격을 하며 육경서가 어장 관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신주리와 유미나 모두 육경서 어장의 물고기였다. 육경서 팬들은 공격과 반격을 동시에 해야 했고 그를 위해 뒤치다꺼리를 하려니 솔직히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가 어장 관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다시 돌아와 육경서는 세 측에서 압력을 가하자 드디어 진실을 밝혔다.“맞아. 초청장을 내가 보내라고 했어.”의아한 릴리와 싸늘하기 그지없는 신하균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신하균은 육경서 이 자식이 오늘 합리적인 이유를 대지 않는다면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반면에 신주리는 그저 순간 움찔하더니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뒷말을 기다렸다...“이 자리에서 이유를 밝힐 수 없어. 그때 가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그는 이 상황에서도 겁대가리 없이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맹세하는데 딱 이번 한 번만 내가 참여했어. 나머지는 나와 아무 상관 없어.”“그 여자가 아리송한 말로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오해받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서울 가을 패션 발표회에 많은 스타들이 참석했고 연예계, 패션계 인사들 외에도 재벌 집 사모님과 아가씨들도 다수 참석해 장관을 이뤘다. 언제부터 생긴 규정인지 몰라도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분과 지위가 높을수록 좌석이 앞으로 배치되었다. 유미나는 오늘 외모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고 화장했지만 맨얼굴처럼 보이는 피부는 삶은 달걀처럼 맑고 촉촉했다. 그리고 워낙 청순가련형 이미지인 데다 발끝까지 드리운 순백색 드레스를 입으니 더욱 여리여리해 보였다. 이 드레스는 몇 달 전부터 육경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수입이 좋아진 덕에 거금을 들여 마련한 것이고 생애 제일 비싼 드레
“맨 앞줄이긴 한데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앞자리에 못 앉겠어. 그리고 디자이너 친구가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내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했어.”“네?”후배는 순간 멍하더니 이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오늘 이렇게 예쁜데 컨디션이 안 좋다고요? 언니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해 주면 언니는 어떻게 해요?”그러자 유미나는 대범하게 웃으며 말했다.“친구 좌석에 앉으면 돼. 저기 뒤쪽이야.”유미나는 맨 끝의 좌석을 가리켰고 거긴 위치뿐만 아니라 시선도 별로 좋지 않았다. 후배는 육경서가 유미나에게 저런 좌석의 초청장을 줬으리라곤 전혀 생각 못 했기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친구를 위해 좌석을 양보한 선배가 안타까운지 친절하게 말했다.“언니, 제가 매니저와 함께 왔는데 좌석이 가지런히 배치되었어요. 매니저가 방금 개인 사정이 있다고 일 보러 나가고 자리가 비었는데 제 옆자리에 앉으실래요?”“...”그 말에 유미나의 눈이 순간 반짝였고 후배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니 중간에서도 앞부분 좌석이었다.이 정도 좌석이라면 중상층 부류를 의미했고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면 여기에 앉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미나는 거만을 떨며 손사래 치더니 자기는 이런 발표회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 뒤에서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고 단순한 후배는 그녀가 그다지 강력하게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억지로 좌석으로 끌고 갔다.그러자 유미나는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 앉더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무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내 신분에 대충 걸맞지...’“미나 언니 혹시 들으셨어요? 오늘 주리 언니 피날레 드레스가 이번 시즌 최고 작품이래요. 완전히 제 스타일이에요.”후배가 열정적으로 설명하자 그녀는 눈꼬리를 살짝 치켜들며 담담하게 물었다.“그래? 네가 좋아한다면 내가 한 벌 선물해 줄게. 나한테 좌석을 내어준 답례야.”그러자 후배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언니, 진짜에요? 그 드레스는 한정판이고 제가 오래전부터 찜해
유미나는 오늘 어떻게든 릴리와 친분을 맺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는 신주리가 오늘날 이 지위가 있게 된 것은 육경서의 배경 덕분일 뿐만 아니라 재벌 사모님 절친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지금 육경서의 배경을 빌어 인지도를 쌓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비난하는 이유가 신주리는 여자 친구이고 유미나는 그냥 친구이기 때문이다.하여 이제 재벌 절친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맞아. 강릴리. 너도 저 여자가 육경서와 신주리를 속여 연애 예능에 출연시킨 걸 알고 있지? 그 일 때문에 미안해서 신주리를 응원해 주러 온 거야.”“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후배가 무의식적으로 묻자 유미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리며 말했다.“릴리한테 초청장을 내어준 사람이 나야.”...앞줄에 앉은 릴리는 자기 초청장이 ‘이렇게’ 얻어온 것인 줄도 모르고 한산하게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더니 절친 단톡방에 발송했다. 릴리: [목줄 채워서 끌려왔어. 희대 사건이 있다고 해서...]조보아: [이런 발표회에 뭐가 볼 게 있어? 찜해놓은 브랜드가 있으면 바로 주문 가능한데 설마 예약이 안 될까 봐?]예약이 안 된다는 건 구매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예약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장에 갈 필요가 없는 법이다. 조씨 가문 아가씨도 차츰 성숙하면서 사교 범위를 많이 줄였다...릴리: [피날레 모델이 주리 언니야. 브랜드 홍보해 주러 주리 언니가 여기 와있어. 보아 언니 혹시 주리 언니 얕잡아보는 거야? 혹시 연예인 무시하는 거야? 두 사람 가짜 우정이였어?]갑자기 들이닥친 누명에 조보아는 깜짝 놀라 연신 설명했다.[무슨 헛소리야? 내가 어떻게 주리를 앝잡아볼 수 있겠어? 주리는 광고모델이니까 할 수 없이 가야 하지만 무슨 대단한 곳이라고 네가 직접 갔어?]신주리는 브랜드 광고모델이기에 패션위크에는 반드시 참석해 브랜드 효과를 올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건 단지 많은 스케줄 중의
“아버님, 어머님.안녕하세요. ”육경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깍듯이 인사를 올리더니 물었다.“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그러자 신명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좌석에 앉아 아무 말 없었고 한영숙이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딸 라이벌이고 네 소꿉친구인 그 아이가 오늘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보러 왔어.”육경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세 사람의 모습이 상당히 친숙해 보였고 게다가 포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쇼를 관람하는 앞줄 게스트 중에서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특히 뒤에 앉은 두 사람은 시종일관 앞줄을 주시했고 유미나 옆에 앉은 후배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낮은 소리로 물었다.“미나 언니, 저 두 분이 육 도련님과 잘 아는 사이에요? 누구예요? 대단한 분들 같아요.”유미나는 육경서와 릴리만 알았고 나머지는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옆에 앉은 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무대 뒤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나중에 알려줄게. 친구가 찾아서 나갔다 올게.”말하는 동시에 유미나가 몸을 일으켜 나가자 후배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릴리를 따라 나간 것임을 눈치채고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만일 유미나와 친해지면 자기도 신분 상승해 재벌 층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다른 한편. 화장실에서 나오던 릴리는 갑자기 뛰쳐나온 사람과 부딪히려는 순간 그 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가 자기 쪽으로 쏟아져 내리려는 것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상대는 연신 사과하며 말했다.“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처 발견하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릴리 쪽으로 쏟아지려던 커피가 그 여자의 드레스에 쏟아져내렸다. 릴리는 커피로 얼룩진 그녀의 하얀 드레스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보더니 눈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전 괜찮은데 그쪽 드레스 어떻게 해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유미나는 말없이 서 있었고 그녀도 사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