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나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이런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사건이 터진 지 한참 지나도 육경서가 입장을 밝히지 않으니 묵인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하여 신주리 팬과 커플 팬들은 무차별 공격을 하며 육경서가 어장 관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신주리와 유미나 모두 육경서 어장의 물고기였다. 육경서 팬들은 공격과 반격을 동시에 해야 했고 그를 위해 뒤치다꺼리를 하려니 솔직히 마음이 힘들었다. ‘우리가 어장 관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다시 돌아와 육경서는 세 측에서 압력을 가하자 드디어 진실을 밝혔다.“맞아. 초청장을 내가 보내라고 했어.”의아한 릴리와 싸늘하기 그지없는 신하균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신하균은 육경서 이 자식이 오늘 합리적인 이유를 대지 않는다면 죽여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반면에 신주리는 그저 순간 움찔하더니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뒷말을 기다렸다...“이 자리에서 이유를 밝힐 수 없어. 그때 가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그는 이 상황에서도 겁대가리 없이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맹세하는데 딱 이번 한 번만 내가 참여했어. 나머지는 나와 아무 상관 없어.”“그 여자가 아리송한 말로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는 걸 즐기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오해받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서울 가을 패션 발표회에 많은 스타들이 참석했고 연예계, 패션계 인사들 외에도 재벌 집 사모님과 아가씨들도 다수 참석해 장관을 이뤘다. 언제부터 생긴 규정인지 몰라도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분과 지위가 높을수록 좌석이 앞으로 배치되었다. 유미나는 오늘 외모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고 화장했지만 맨얼굴처럼 보이는 피부는 삶은 달걀처럼 맑고 촉촉했다. 그리고 워낙 청순가련형 이미지인 데다 발끝까지 드리운 순백색 드레스를 입으니 더욱 여리여리해 보였다. 이 드레스는 몇 달 전부터 육경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수입이 좋아진 덕에 거금을 들여 마련한 것이고 생애 제일 비싼 드레
“맨 앞줄이긴 한데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앞자리에 못 앉겠어. 그리고 디자이너 친구가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내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했어.”“네?”후배는 순간 멍하더니 이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오늘 이렇게 예쁜데 컨디션이 안 좋다고요? 언니 좌석을 친구한테 양보해 주면 언니는 어떻게 해요?”그러자 유미나는 대범하게 웃으며 말했다.“친구 좌석에 앉으면 돼. 저기 뒤쪽이야.”유미나는 맨 끝의 좌석을 가리켰고 거긴 위치뿐만 아니라 시선도 별로 좋지 않았다. 후배는 육경서가 유미나에게 저런 좌석의 초청장을 줬으리라곤 전혀 생각 못 했기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는 친구를 위해 좌석을 양보한 선배가 안타까운지 친절하게 말했다.“언니, 제가 매니저와 함께 왔는데 좌석이 가지런히 배치되었어요. 매니저가 방금 개인 사정이 있다고 일 보러 나가고 자리가 비었는데 제 옆자리에 앉으실래요?”“...”그 말에 유미나의 눈이 순간 반짝였고 후배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니 중간에서도 앞부분 좌석이었다.이 정도 좌석이라면 중상층 부류를 의미했고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면 여기에 앉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미나는 거만을 떨며 손사래 치더니 자기는 이런 발표회에 별로 관심이 없으니 뒤에서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고 단순한 후배는 그녀가 그다지 강력하게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억지로 좌석으로 끌고 갔다.그러자 유미나는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 앉더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무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내 신분에 대충 걸맞지...’“미나 언니 혹시 들으셨어요? 오늘 주리 언니 피날레 드레스가 이번 시즌 최고 작품이래요. 완전히 제 스타일이에요.”후배가 열정적으로 설명하자 그녀는 눈꼬리를 살짝 치켜들며 담담하게 물었다.“그래? 네가 좋아한다면 내가 한 벌 선물해 줄게. 나한테 좌석을 내어준 답례야.”그러자 후배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언니, 진짜에요? 그 드레스는 한정판이고 제가 오래전부터 찜해
유미나는 오늘 어떻게든 릴리와 친분을 맺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는 신주리가 오늘날 이 지위가 있게 된 것은 육경서의 배경 덕분일 뿐만 아니라 재벌 사모님 절친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지금 육경서의 배경을 빌어 인지도를 쌓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비난하는 이유가 신주리는 여자 친구이고 유미나는 그냥 친구이기 때문이다.하여 이제 재벌 절친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맞아. 강릴리. 너도 저 여자가 육경서와 신주리를 속여 연애 예능에 출연시킨 걸 알고 있지? 그 일 때문에 미안해서 신주리를 응원해 주러 온 거야.”“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후배가 무의식적으로 묻자 유미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리며 말했다.“릴리한테 초청장을 내어준 사람이 나야.”...앞줄에 앉은 릴리는 자기 초청장이 ‘이렇게’ 얻어온 것인 줄도 모르고 한산하게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더니 절친 단톡방에 발송했다. 릴리: [목줄 채워서 끌려왔어. 희대 사건이 있다고 해서...]조보아: [이런 발표회에 뭐가 볼 게 있어? 찜해놓은 브랜드가 있으면 바로 주문 가능한데 설마 예약이 안 될까 봐?]예약이 안 된다는 건 구매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예약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장에 갈 필요가 없는 법이다. 조씨 가문 아가씨도 차츰 성숙하면서 사교 범위를 많이 줄였다...릴리: [피날레 모델이 주리 언니야. 브랜드 홍보해 주러 주리 언니가 여기 와있어. 보아 언니 혹시 주리 언니 얕잡아보는 거야? 혹시 연예인 무시하는 거야? 두 사람 가짜 우정이였어?]갑자기 들이닥친 누명에 조보아는 깜짝 놀라 연신 설명했다.[무슨 헛소리야? 내가 어떻게 주리를 앝잡아볼 수 있겠어? 주리는 광고모델이니까 할 수 없이 가야 하지만 무슨 대단한 곳이라고 네가 직접 갔어?]신주리는 브랜드 광고모델이기에 패션위크에는 반드시 참석해 브랜드 효과를 올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건 단지 많은 스케줄 중의
“아버님, 어머님.안녕하세요. ”육경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깍듯이 인사를 올리더니 물었다.“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그러자 신명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좌석에 앉아 아무 말 없었고 한영숙이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딸 라이벌이고 네 소꿉친구인 그 아이가 오늘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보러 왔어.”육경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세 사람의 모습이 상당히 친숙해 보였고 게다가 포스가 장난이 아니라서 쇼를 관람하는 앞줄 게스트 중에서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특히 뒤에 앉은 두 사람은 시종일관 앞줄을 주시했고 유미나 옆에 앉은 후배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낮은 소리로 물었다.“미나 언니, 저 두 분이 육 도련님과 잘 아는 사이에요? 누구예요? 대단한 분들 같아요.”유미나는 육경서와 릴리만 알았고 나머지는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옆에 앉은 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무대 뒤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나중에 알려줄게. 친구가 찾아서 나갔다 올게.”말하는 동시에 유미나가 몸을 일으켜 나가자 후배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릴리를 따라 나간 것임을 눈치채고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만일 유미나와 친해지면 자기도 신분 상승해 재벌 층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다른 한편. 화장실에서 나오던 릴리는 갑자기 뛰쳐나온 사람과 부딪히려는 순간 그 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가 자기 쪽으로 쏟아져 내리려는 것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상대는 연신 사과하며 말했다.“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처 발견하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릴리 쪽으로 쏟아지려던 커피가 그 여자의 드레스에 쏟아져내렸다. 릴리는 커피로 얼룩진 그녀의 하얀 드레스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보더니 눈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전 괜찮은데 그쪽 드레스 어떻게 해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유미나는 말없이 서 있었고 그녀도 사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
한편, 육시준 역시 갑자기 나타나 계약 결혼이네 한달에 천만 원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유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내민 곳은 뒤쪽이었다.“자료 좀 주실래요?”어젯밤 차에 남긴 정보에 따라 비서가 이미 강유리의 뒷조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무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넘기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1000만원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0 하나는 더 붙여야지. 그래야 육씨 집안 사모님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테니까.”목소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유리는 0 하나는 더 붙여야 한다는 말에 꽂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하이고? 요즘 호스트는 가격 흥정을 이렇게 하나? 하긴,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부잣집 사모님 한 명 제대로 잡으면 월에 억은 쉽게 받겠어. 하지만...’“5000만원, 이 정도에서 끝내지. 적당히 해.”해외에서 매달 임천강에게 용돈 명목을 부쳐준 돈이 겨우 2000만원 남짓, 강유리가 부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호구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데... 5000만이든 1억이든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지?”“내가 그쪽을 고용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주는 거지.”이에 육시준은 다시 강유리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얼핏 얼핏 보이는 요염함이 매력적인 정교한 얼굴, 지금까지 그의 돈에 빠져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만함을 넘어 어딘가 고고하기까지 한 눈빛...‘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좋아.”잠시 후 얘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선다.하지만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강유리는 우뚝 멈춰서더니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꽂힌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가 저 차 주인한테 빚을 좀 진 게 있거든.”강유리를 보는 육시준의 눈이 또 묘하게 변하고...비서 역시 상황이 묘하게 변하고 있다 싶지만 육시준의
충격으로 일렁이는 육경서의 눈동자는 제발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말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했지만 육시준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비서에게 분부했다.“강유리, 그리고 그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줘요.”3년 동안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가 귀국하자마자 결혼이라니.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강행하는 걸 보면... 뭐에 쫓기는 듯한데.육시준은 그 답이 그녀의 집안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알겠습니다. 해외 유학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어제 비서가 급하게 구한 자료에선 그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3년 간 도피 유학을 떠났다는 정보가 전부, 그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아니요.”‘그건 그 여자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어...’하지만 육경서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다.여기 오면서 비서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어제 일부러 육시준 차에 스크래치를 내놓고 오늘 못 알아보는 척 결혼 제안을 한 여자라던데...‘아무리 생각해도 꽃뱀 같단 말이야. 뭔가 냄새가 나... 구린 냄새가...’“형, 그 여자 진짜 형 얼굴 모르는 거 맞아?”서울시에서 한정판 롤스로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육시준 한 사람뿐.그의 차가 곧 그의 얼굴이자 이름 같은 존재인데 아무리 갓 귀국했다지만 그걸 못 알아봤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동생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육시준 역시 고개를 저었다.“글쎄..”“그런데 왜...”“내가 알아서 해.”동생의 말을 잘라버린 육시준이 말을 이어갔다.“아, 아주머니한테 내 짐 좀 정리해 달라고 부탁해 줘. 오늘부터 와이프랑 같이 살아야 하니까.”한편, 강유리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들른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마침 저녁 시간, 문 앞에 차를 댄 강유리는 검은색 철문 옆에 적힌 글씨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성홍주”강민영이 세상을 뜬 뒤로 성홍주는 강유리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재산을 전부 빼앗은 것도 모자라 첫사랑과 낳은 사생아까지 집안에 들였다.빨리 어른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