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는 깜짝 놀란 나머지 뒤로 물러났다.다시 자세히 쳐다보니 방금 샤워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는 벌거숭이 상체에 반바지만 입고 있었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신하균을 몰래 쳐다본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자세히 쳐다본 적은 없었다.이 몸매... 이 복근...릴리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왜 옷을 안 걸치고 있어요! 저는 이런데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고요!”아까는 너무 긴장해서 잘 보지 못해 다시 힐끔 쳐다보았다.‘옷을 입었을 때는 약해 보였는데 근육이 장난 아니네...’“남자가 밖에서 자신을 잘 보호해야죠! 이렇게 쉽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거란 말이에요.”릴리는 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진지하게 나무랐다.그녀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고 있던 신하균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저는 밖이 아니라 제 집에 있는 건데요?”릴리는 고개를 홱 돌려 눈을 크게 뜨고 째려보았다.“신하균 씨!”“왜요?”“왜 그렇게 염치가 없어요? 제 집이 왜 신하균 씨 집이 된 거예요? 아무리 제가 전에 신하균 씨한테 호감이 있었다고 해도 저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되죠! 그리고 그것도 옛날 일이라 지금은 다르다고요! 계속 이러는 거... 염치없는 짓이에요!”“...”릴리는 화가 나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거기다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분명 부끄러우면서 일부러 괜찮은 척 남을 가르치다니...신하균은 벽에 기대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말했다.“방 번호부터 확인해 보실래요?”릴리는 멈칫하면서 고개를 쳐들었다.“여긴 한 층에 한 가구만 있어 저희가 이웃일 일도 없어요. 같은 동일 수는 있겠는데 같은 층 이웃일 리는 없겠죠?”“...”릴리는 고개를 쳐든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러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집은 분명 14층인데 왜 13층에서 내린 거지?’신하균은 뻘쭘한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
“잠깐만요.”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자 릴리는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취소하고 고개 돌려 그를 보고 얘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신하균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불쾌한 말들은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기분 안 좋아요?”“하균 씨라면 금방 납치됐다가 풀려났는데 기분 좋겠어요? 트라우마가 안 생기겠어요?”릴리는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의 문에 기대있었다.“...”새벽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릴리를 보호하라는 명분으로 보낸 자신의 부하에게 일부러 물었었다. 수다쟁이인 그 부하는 신하균이 한마디 묻자 그때의 상황을 빠짐없이 다 말했다. 그 부하는 말하면서도 점점 흥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때까지 이 정도로 반전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금까지도 연약한 모습으로 있다가 바로 포위를 뚫는 작은 맹수처럼 돌변하였다. 녹이 슨 무딘 칼로 그녀는 최대의 공격치를 끌어냈고 두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겁먹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얕보는 것을 역이용하여 최고의 타이밍을 잡아 빠르고 정확하고 잔인하게 반격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고 군더더기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그렇게 열세에 놓였다면 그 정도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못 내렸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다 듣고 난 신하균은 놀랍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소홀하지 않고 그녀가 고우신을 따라가게 두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이런 것들을 홀로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신하균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트라우마 생기죠.”릴리는 눈을 깜빡이며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하균 씨 납치된 적 있어요?”신하균은 릴리를 보면서 말했다.“릴리 씨, 너무 이상한 쪽에 관심을 두는 거 아니에요?”“...”‘이상한 건가?’“식사했어요? 안 했으면 같이 할래요?”신하균은 다시 대화를 시도하며 화제를 돌렸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지금 나랑 데
‘이 남자 건망증이 있는 거 아니야? 지금 뭐라는 거야, 분명히 자기가 먼저 오라고 했으면서!’“중식을 주문할 거예요. 생선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매운 게 좋아요, 안 매운 게 좋아요?”신하균은 자연스레 식사했다는 그녀의 말을 건너뛰고 휴대폰을 보면서 또 물었다. 그를 보는 릴리의 시선이 더 미묘해졌다.“누구한테 들었어요?”신하균의 손가락이 살짝 멈칫하더니 그 자세 그대로 눈을 치켜뜨면서 그녀를 보았다. 깊은 눈동자는 시커멨고 그녀가 알수 없는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었다.“매운 거요! 매울수록 좋아요!”릴리가 대답했다.“날씨가 더운데 매운 거 많이 먹으면 탈 나요.”“...”릴리는 매운 걸 먹기도 전에 화끈거리는 느낌을 느꼈다. 쓸데없이 그의 말에 대답했고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쪼르르 그를 따라 들어왔다. 아마도 자신이 시끌벅적한 은하타운에서 나와 쓸쓸한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게 그에게는 불쌍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배달을 기다리면서 신하균은 과일을 깎으러 갔고 릴리는 1인용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은 많이 움직이지 않았고 시선은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마도 어떤 소식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신하균은 시선을 내려서 그녀를 보았다. 눈앞의 이 여자는 몸매가 아담하고 팔다리도 가녀린데 이렇게 연약한 여자가 부하의 얘기 속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마워요. 거기 두세요.”고개를 든 릴리는 그의 손에 들린 접시를 보고 친절하게 말했다. 신하균은 허리를 숙여 접시를 그녀의 앞에 놓았다. 소파에 책상다리하고 앉아있다가 살짝 움직이자 릴리의 치마가 살짝 위로 들렸다. 살짝 굳어진 신하균의 시선이 그녀의 오른쪽 무릎과 종아리에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멍이 크게 들어있었는데 매끄러운 종아리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그의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무른 탓인지 릴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다가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 아래로 숙였다. 이를 눈치챈 릴리는 아무렇지 않게 치마를 정리하면서 무릎에 난 멍을 가렸다.“저기요, 그렇게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넋이 나간 사이에 신하균은 그녀의 손을 내리고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갔을 때 마침 무릎과 종아리의 멍이 드러났고 어색한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신하균은 그녀의 종아리를 들어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고 약상자에서 약을 꺼냈다. 이 행동 때문에 릴리는 뒤로 살짝 넘어가 소파에 기대게 되었고 작은 손은 반사적으로 치마를 꼭 잡았다. 신하균은 릴리의 작은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약을 손바닥에 부어 살짝 문지른 후 조심스럽게 그녀의 무릎에 천천히 펴 발랐다.손바닥이 닿는 순간, 릴리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스읍!”“많이 아파요?”“당연히 아프죠! 상처가 났는데 안 아플 리가 있겠어요?”“그런데도 아까 별일 아니라고요?”“...”릴리는 아파서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 이 남자는 다 괜찮은데 유독 저 입이 문제였다. 신하균은 그녀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멍이 든 자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무릎에서부터 종아리까지 멍이 든 곳은 빠짐없이 다 문질렀다. 릴리는 종아리의 상처에 고통이 느껴지던 때로부터 뜨거운 느낌이 드는 걸 느끼면서 마음속에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다리를 빼내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세요. 잘 문질러야 내일 멍이 없어져요.”낮은 음성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였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문지르지 않아도 며칠 지나면 없어져요.”릴리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하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어젯밤에 얘기를 안 한 거예요?”릴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아니에요.”어젯밤에는 완전 긴장을 풀고 있었고 그녀한테는 전체 계획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였다. 몸에 느껴지는 이깟 아픔 따위는 진작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건 어젯밤에 신하균이 차에서 릴리의 손에 난 작은 상처들에 약을 발라줬을 때,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던 그녀가 사실은 아주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신하균은 이 일에 대해 더 얘기하지 않고 그녀의 상처를 문지르며 물었다.“또 어디 다쳤어요?”릴리가 고개를 저었다.“없어요.”신하균은 말없이 조용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깊은 두 눈동자에 검은 기운이 몰려있어 그녀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릴리는 자신을 쳐다보는 신하균에 어색해져서 불쑥 말을 꺼냈다.“진짜 없어요! 내가 옷이라도 벗어서 확인시켜줘요?”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거실에는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바닥에 한쪽 무릎만 꿇고 허리를 곧게 편 채 팔뚝의 근육 라인이 딱딱하게 갈라진 남자, 소파에 기대 가늘고 긴 다리를 남자의 팔에 올려놓은 채로 얼굴이 붉어지고 치마가 흐트러진 여자, 이 장면에 방금 그 멘트를 더하면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딱 좋았다...릴리는 이 분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혀를 깨물고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다리를 빼냈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뭐라 말하려 했는데 신하균이 먼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릴리 씨만 동의한다면 안 될 것도 없죠.”릴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면서 두 손을 가슴 앞에 천천히 교차하여 방어하는 자세로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신하균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 채로 담담하게 릴리를 보고 있었다. 릴리를 훑어보는 그 눈빛은 정말로 옷을 벗기려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아니에요. 정말 더 다친 곳이 없어요! 무릎에 있는 건 상처도 아니에요. 어제는 그저 살짝 통증만 느껴지고 멍도 안 들었다가 오늘에야 나타난 거예요.”“...”이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에 릴리가 잠식될 때쯤, 현관문의 벨 소리가 울렸다. 릴리는 번뜩 고개를 돌려서 구세주라도 만난 듯 소리쳤다.“배달이 도착했어요!”신하균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보더니 현관으로 갔다. 릴리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고 자신을 질타하면서...신하균은 말을 괘씸하게 한다거나 남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이렇게 빨리 가요?”신하균은 할 일이 없어 곁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홀가분하게 있은 지가 언제였던지 생각했다. 홀가분하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신하균은 휴가가 많지 않았지만, 매번 휴가 때마다 뭘 할지 몰랐다. 신주리는 그의 외모가 너무 티가 나서 파파라치에 찍힐까 봐 두려워 촬영장에 오지 못하게 했다. 본가에 돌아가면 부모님은 자잘한 만남과 사교 모임에 그를 부르기 좋아하여 이후에는 본가에 가지도 않았다. 하여 그는 얼마 되지도 않은 휴가 때에 집에서 잠을 자거나 팀 훈련을 나갔다. 이렇게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 본 적이 극히 드물었기에 사치스럽게 느껴져 끝내기가 아쉬웠다...“빠르다고요? 오빠, 지금 12시에요! 오빠가 아니지, 아저씨! 어르신은 밤에 일찍 주무셔야죠. 밤을 자꾸 새다가는 몸이 망가져서 여자친구도 못 만나요!”릴리는 능청스럽게 말하고 맨발로 바닥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갔다. 신하균의 시선은 그녀의 맨발에 멈추었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까지 그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었다.“다음에는 신발 안 벗어도 돼요.”“네?”릴리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을 울려 신하균이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신하균이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만약 지금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늦지 않았겠죠?”릴리는 멈칫하더니 몸을 곧게 펴면서 말했다.“당연하죠! 하균 씨 아직 인기 많잖아요! 그날 김솔 언니가 하균 씨 곁에 붙어 다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거절하지 않겠죠?”신하균은 미간을 찌푸렸다.“나는 김솔한테...”말이 끝나기 전에 릴리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주아 언니?”릴리는 전화를 받으면서 신하균을 향해 손을 젓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의 소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라졌고 신하균은 어두운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망할 계집애, 전화해도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사실 신주리는 오전부터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도희가 카톡방에서 강유리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