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현은 불만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 전에 배준우는 한 마디 덧붙였다.“이 일은 태웅이한테 처리하라고 해요.”배준우는 나태현에게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나태웅이 처리하도록 하라는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나태현에게 문제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나태현이 대답했다.“그래. 고마워.”이 일에 대해 배준우를 탓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태현도 더 말하지 않았다.‘근데 배준우가 나태웅이 처리하도록 하라고 해도 그 자식이 처리할 수 있겠어?’나태현은 이에 깊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이 전에 안지영과 죽기 살기로 싸웠던 장면이 떠올랐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그런 다음 나태현은 바로 나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나태웅은 회사에서 어제 안열의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안 풀린 상태였다.나태웅은 방금 왕여에게서 하늘 그룹에서 장부 조사를 끝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나태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보고 나태웅은 조금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너 어디야?”핸드폰에서 차가운 나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태웅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회사에 있어. 왜?”“동성에 땅 배준우가 하늘 그룹에 팔기로 했대.”“뭐?”그 말을 듣고 나태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친 숨을 뱉어냈다.하늘 그룹에서 하는 사람에 그 땅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그리고 안지영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 땅을 사려고 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도 문제가 뭔지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태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다 네가 저지른 일이야.”나태웅은 할 말이 없었다.“네가 무슨 수를 쓰든 그 땅 꼭 갖고 와야 해. 회사에서 그 땅에 대한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기획했다는 걸 알지?”그렇게 말한 뒤 나태현은 화를 내며 핸드폰을 던져 버리려다가 안심할 수 없어 전화를 끊기 전에 다시 소리를 질렀다.“여자는 네가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이 배준우의 추측이 맞았다.나태웅은 지금 너무 화가 나서 사무실에서 안지영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안지영이 받지 않는 것을 보고 나태웅은 바로 하늘 그룹으로 달려 갔지만 안지영은 회사에 없었다.왕여는 나태웅의 뒤를 따라왔다가 프런트 직원에게서 안지영이 한 시간 전에 이미 회사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왕여는 진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안 비서님도 같이 갔어요?”“네. 안 비서님과 대표님께서는 함께 떠나셨습니다.”두 사람이 함께 떠났다는 것은 어디로 가서 뭘 할지 이 순간 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그는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눈은 안지영을 찢어버릴 정도로 위험하게 빛났다.“동영 그룹으로 가.”“네.”왕여는 등 전체에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차에 타자마자 나태웅은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더욱 괴로운 일은 배준우에게 여러 번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세 회사가 다 다른 지역에 있었기에 나태웅이 먼저 하늘 그룹에 왔다가 다시 동영 그룹으로 가려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결국 길을 돌아가다 보니 나태웅이 배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반이었다.회사 직원들은 모두 무리 지어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나태웅은 바로 대표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진청아가 안지영과 안열을 정중하게 사무실 밖으로 안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그들의 뒤에는 재무팀, 실무팀 그리고 법무팀까지 함께 있었다.세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은 방금 사무실 안에서 어떤 절차를 끝냈는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안지영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감사합니다 진 비서님. 함께 점심이라도 할까요? 회사 아래에서요.”“안 대표님 별말씀을요. 저는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남아서 같이 못 갈 것 같습니다.”안지영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엘
안지영은 거리낌 없이 진흙 속에 몸을 던져 나태웅이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게 만들었다.나태웅은 숨이 막혀왔다.“그래 안지영 대단하네. 아주 독해.”“허.”안지영은 비웃음을 날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독하다고? 너 같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독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나태웅을 상대하기 위해 안지영은 하나를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독해지는 것이었다.안지영은 이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 나태웅을 보고 더는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아 안열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동영 그룹에서 나오자마자 안열은 복잡한 얼굴로 안지영의 옷소매를 잡았다. 안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안열을 바라보았다.“왜 그래요?”“방금 대표님의 말씀은 틀렸어요.”“뭐가요?”안지영은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나태웅 그 자식에게 조금 많이 욕을 퍼부었기에 도대체 어느 말이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안열은 헛기침하며 말했다.“성공적으로 상대에게 욕을 하는 건 상대를 개로 만드는 것이지 자기가 개가 되는 게 아니에요.”안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 사림이.’나태웅이 안열을 매번 공격할 때마다 실제로 나태웅은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전에 안열을 개라고 욕했다가 안열은 나태웅을 함께 물고 늘어졌다.두 번째로 안열을 개라고 불렀을 때는 바로 안열에게 귀에 피가 나도록 욕을 먹었다. 아무튼 안열은 한마디 욕을 들어도 참지 않았다.방금 안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안열이 나태웅에게 욕을 해줬을 것이다.그러나 안지영이 입을 열자 안열과 안지영은 함께 개가 되었고 심지어 나태웅 그 자식에게 진 느낌이 들었다.방금 안지영은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지금 안열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화가 났다.안지영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내가 가서 욕해주고 돌아올게요.”방금 나태웅을 위협하려고 그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사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나태웅이
동시에 와이프라는 말은 나태웅의 신경을 직접적으로 자극했다. 나태웅은 분노를 참으며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정말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완전히 달라진다더니.’나태웅은 너무 화가 났지만 배준우의 앞에서는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결국 그는 분노를 참으며 배준우의 사무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동영 그룹에서 나오자 왕여는 겁에 질려 나태웅의 뒤를 따랐다.“이 일은 이렇게 끝내는 건가요?”끝내다니?동성의 땅은 항상 천락 그룹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고 배준우도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하지만 전에도 천락 그룹에 팔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그래서 나태웅은 오늘 나태현이 배준우를 찾아가서 땅의 소유권을 문제를 완전히 담판 짓고 왔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다.그들은 수없이 계산했지만 배준우의 와이프가 안지영의 가장 친한 친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더욱더 배준우가 이 정도로 고은영을 싸고돌 줄은 몰랐다.“허 됐어.”나태웅은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고 말투에는 비꼬는 뜻이 가득했다.왕여는 그의 말투를 듣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나태웅의 근심보다 지금 더 분위기가 안 좋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진윤이었다. 진윤은 진정훈이 량천옥의 차에 치여 문이 떨어져 나간 차를 몰고 그를 만나러 온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그는 진정훈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진정훈이 말했다.“그 미친 여자가 그런 거야. 량천옥은 왜 죽지도 않아?”량천옥의 흉악한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아 진정훈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는 길 내내 량천옥을 저주했다.량천옥처럼 악독한 여자를 왜 하늘은 살려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정훈이 화가 난 표정을 본 진윤은 얼굴이 어두워졌다.“네가 량천옥을 또 건드린 거야?”“내가 어딜 가서 량천옥을 건드려? 난 그냥 배준우를 찾아갔는데 그 미친 여자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바로 찾아왔어.”진정훈은 말하다가
이 얘기를 꺼내는 진정훈의 말투는 아주 무거웠다.배준우가 그들에게 보여준 결과는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었지만 진정훈이 직접 가서 한 결과는 아니었다. 배준우가 그들에게 샘플을 줬을 때는 당연히 확인했기에 줬을 텐데 어떻게 결과가 다를 수 있을까?그렇다면 이 결과는 정말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일까?진정훈은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이 순간 진정훈은 이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은영과 량천옥의 검사 결과가 일치한다면 그가 계속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진씨 가문에서 도대체 누가 감정 결과를 조작했냐는 것이다.설마 정말로 누군가는 그들의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원하지 않는 것일까?“형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배준우는 분명 우리한테 뭔가를 숨기고 있어.”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도 봤잖아. 배준우가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라고 대답할 때 얼마나 망설이는지. 정말 문제가 없었다면 배준우가 망설일 필요가 있어? 도대체 왜 망설인 건데?”이 일은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을 진정훈은 단번에 파악했다.배준우의 태도로 보아 고은영은 확실히 진씨 가문과 관련이 있었다.게다가 그들에게 건네준 샘플은 고은영의 것이든 량천옥의 것이든 모두 배준우의 손을 거쳤으니 그 샘플로 얻은 검사 결과가 일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그러니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진씨 가문의 누군가가 샘플에 손을 댄 것이 확실했다.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정훈을 훑어보았다.“지금 중요한 건 배준우의 태도 문제가 아니야.”“그럼 뭔데?”“진씨 가문에서 도대체 누가 샘플에 손을 댔는지 네가 밝혀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를 찾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정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진씨 가문에 대해 말하자 진정훈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도대체 누가 그들이 여동생을 찾는 걸 바라지 않는 걸까?진정훈은 할머니의 차가운 태도가 떠 올랐다.“넌 가서 이 일이니 처리해.”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
오후에 나태현은 회사에 도착해 나태웅을 사무실로 부르려고 했지만 그는 회사에 없었다.이에 나태현는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났지만 어디에 풀 수 있는 곳이 없었다.이지훈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찾으셨어요?”나태현이 말했다."고은지의 딸이 치료받는 그 정신과 의사 전화번호 있어?”“있습니다.”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신과 의사는 당시 그들이 소개해 준 것이기에 당연히 번호를 갖고 있었다.단지 지금 나태현이 고은지를 묻는 것은 그렇다 해도 왜 고은지의 딸에 관해 묻는 것일까?‘아니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동성의 땅이 아니라는 거야?’이지훈도 나태웅 때문에 하늘 그룹에서 동성의 땅을 뺏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나태웅이 오후에 회사에 없는 것을 보니 분명 그 땅을 되찾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안지영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땅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나태현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아이 상황에 관해 물어봐.”비록 이틀 동안 고희주는 고은영의 옆에서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태현은 물어보고 싶었다.이지훈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야?’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나태현의 눈치를 살피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물어보겠습니다.”이지훈은 나갔다가 5분쯤 뒤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의사의 말로는 고 비서님 딸은 회복이 잘 되고 있지만 아직 1달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어요.”“회복이 잘 되고 있다고?”“네.”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 안의 무거웠던 공기가 훨씬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다음 순간 나태현이 계속 물었다.“그럼 고은지한테 전화해서 출근하라고 해.”“네?”‘출. 출근?’이지훈은 순간 충격을 받았다. ‘농담하는 거 아니겠지? 대표님이 직접 기존 직원을 재고용하겠다는 건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이지훈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고 나태현은 더 이
“엄마 일어났어? 어때? 아픈 데는 없어?”고은지가 깨어난 것을 본 고희주는 연달아 몇 가지 질문을 했다.고희주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고은지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왜 울고 있어? 우리 희주 울지 마.”“엄마.”고희주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궜다.고희주는 한 번도 고은지가 이렇게 아픈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고은영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앞으로 가서 고희주를 품에 안았다.“희주 착하지. 괜찮아. 울지 마.”“나 어떻게 된 거야?”고은지는 고은영이 아직도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얼마나 잤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은영이 말했다.“언니 계속 열이 났었어. 어디 아픈 곳은 없어?”“힘이 없어.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은지는 말할 힘도 없었다.그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렇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각통이 느껴지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감기 증상이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더 자 알겠지?”“그래 희주는 며칠 너한테 부탁할게.”고은영이 말했다.“부탁은 뭐가 부탁이야. 언니는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어렸을 때 고은지는 수년 동안 고은영을 남몰래 챙겨줬었다. 이제는 마침내 고은영이 고은지에게 보답할 기회가 온 것이다.고은지는 정말 아팠다.어제 병원에 왔을 때 열이 나리지 않았지만 다들 일반적인 감기인 줄 알았다.하지만 이제 보지 일반적인 감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방금 잠시 깨어났던 고은지는 또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고은지가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잠에 든 모습을 본 고희주의 작은 얼굴이 찌푸려졌다.“이모 엄마 괜찮은 거지?”“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사실 이 순간 고은영도 확신은 없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희주를 위로했다.고은영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할머니가 평소에 잔병치레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오히려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한번 아프면 크게 아프다고 했던 말이 떠 올랐
고은영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본 의사는 몇 가지 수치를 짚어 주며 그녀에게 말했다.“현재 검사 결과에 따르면 이 영역의 수치가 너무 높게 나오는데 저희는 환자분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추가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습니다.”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머릿속이 윙윙거리면서 터질 것 같았다.그녀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의사를 바라보았고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졌다.입술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백혈병?’이 병이 어떤 병인지 고은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백혈병은 듣기만 해도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었다.그런데 고은지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일까?고은영은 곧 질식할 것 같은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백혈병이요?”“네. 지금 당장 환자분을 데리고 추가 검사를 해주세요. 저희는 환자분에 대한 치료 방법을 논의해 보겠습니다.”고은영은 의사의 말에 온몸이 떨렸다.추가 검사와 치료 계획이라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 무섭게 들렸다.당시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의사는 그녀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지만 할머니는 결국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가능한 한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환자분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의사가 고은영에게 당부했다.고은영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혼이 나갔다는 말이 아마도 지금 그녀를 놓고 하는 말일 것이다.배준우는 퇴근 후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태현과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으니 일을 다 보면 일찍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의 전화를 받는 순간 고은영은 감정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었다.“준우 씨 어디예요?”전화를 받자마자 고은영은 울먹거리는 말투로 말했다.그 순간 사무실에 있던 배준우는 고은영의 말투에서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준우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