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현은 룸 밖에서 들어오는 이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고은지한테 전화했어?”“아니요. 아직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이지훈은 고개를 저었다.‘왜 이렇게 다급해하시지?’나태현의 가라앉은 표정을 본 이지훈은 원래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그래.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언제 빈말이었던 적이 있었나? 업무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야.’이지훈이 변명을 하기도 전에 나태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고은지한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이지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정말 이렇게 급한 일이었어?’이지훈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서둘러 몸을 돌려 룸을 나갔다.혼자 남겨진 나태현은 순간 긴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져 더욱 짜증 났다.한편 병원.고은영은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댄 채 핸드폰을 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무력해 보였다.배준우는 도착하자마자 고은영의 모습을 보고서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은영아.”배준우의 따뜻한 품과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자 고은영은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은영은 원래도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배준우의 옆에 있을 때도 비서실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그러니 오늘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도대체 왜 그래? 응?”배준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고은영이 입을 열었다.“언니가 언니가.”여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고은영은 할머니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고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었고 물건을 보내줬었던 사람이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일까?사람들은 그녀에게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
나태현이 온 것을 보고 고은영과 배준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준우가 그에게 물었다.“형이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배준우는 방금 병원에 오는 길에 나태현에게 전화로 고은지의 상황을 말했었다. 하지만 나태현이 이렇게 병원에 나타날 이유가 있을까?같은 남자로서 배준우는 분명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배준우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고은영을 바라보았다.고은영은 지금 고은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기에 나태현이 왜 병원에 왔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그냥 병원에 누군가를 보러왔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나태현이 말했다.“친구 보러 왔어요.”‘친구? 허.’배준우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는 상황이 조금 급해서 먼저 가볼게요.”그렇게 말한 뒤 고은영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나태현은 상황이 급하다는 배준우의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병실 안에서 고은지는 열이 내려갔는지 아까보다 덜 힘들어 보였다.고은영은 병실에 도착했을 때 고은지가 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은영아 너 아직도 안 갔어?”“응. 결과 받으러 선생님께 갔었어.”고은영은 마음속으로 심장이 요동쳤지만 억누르며 침착한 척했다.의사가 이런 환자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기에 이 순간 고은영은 고은지의 앞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결과가 어떤데? 문제없지?”“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다시 검사받으러 가야 해.”“오류가 있다고?”오류가 났다는 말을 들은 고은지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이 병원에서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네?’고은영이 말했다.“언니는 지금 좀 어때?”“많이 피곤한 느낌이야. 수액을 맞아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고은지가 말했다.수액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말에 고은영의 호흡이 가빠졌다.고은지가 말했다.“걱정하지 말고 준우 씨하고 돌아가.”“난 지금 언니 데리고 검사받으러 가고 싶은데?”지금 이 순간 고은영
하지만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빨리 돌아가 보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그녀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고은지가 의심할 수도 있었다.결국 간호사에게 부탁한 뒤 고은영과 배준우는 고희주를 데리고 함께 란완리조트로 돌아갔다.고은지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고은영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운 충격이었다.란완리조트에 돌아와서도 고은영은 밥을 한 숟가락도 넘길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보고 배준우가 말했다.“희주는 똑똑한 아이라 네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금방 눈치챌 거야.”고희주의 얘기를 꺼내자 고은영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하늘은 왜 고은지에게 이러는 것일까? 고은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그녀는 항상 착한 심성을 유지하며 살아왔다.그런데 왜 하늘은 착하디착한 고은지에게 하필 이런 타이밍에 또 시련을 주는 것일까?딸인 고희주는 거의 죽을 뻔하고 이제는 엄마인 고은지가 또 쓰러졌다.고은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파 또 울음을 터트렸다.결국 고은영은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울먹였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고은영은 집에 들어가기 전 눈물을 닦고 고희주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고은영이 아무리 감정을 잘 추슬러도 고희주는 한눈에 고은영이 울었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모 울었어?”고희주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고은영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조심스러워하는 고희주를 보고 고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우리 희주 어떻게 해.’불행은 항상 연속으로 찾아온다고 했던가. 고은지는 이미 바람을 피웠다는 누명 때문에 고생했고 지난번에는 하마터면 딸을 잃을 뻔했다. 그런데 이제는 고은지 본인의 차례가 온 것일까?고은영은 심호흡하며 입을 열었다.“안 울었어. 방금 날벌레가 눈에 들어가서 아파서 운 거야.”“그런 거야?”“그럼.”고은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고희주의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희주는 예민한 아이였기에 뭔가 이
다음날.고은영은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원래 고은영은 고은지에게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병실에 들어갔을 때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고은지가 거의 죽을 것 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고은영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간호사에게 눈빛을 보냈고 간호사는 제꺽 눈치채고서는 고은지에게 잠시 물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간호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병실의 문을 닫았다.“사모님.”“언니한테 또 무슨 일 생겼어요?”고은영은 마음속으로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특히 간호사의 무거운 눈빛을 보니 그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방금 언니분께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오신 뒤부터 계속 저 상태예요.”“네?”고은영은 깜짝 놀랐다.‘언니가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고? 지금 고작 몇 시지?’간호사가 계속 말하지 않아도 고은영은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고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메는 것 같았다.간호사는 그런 고은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아침에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들이 병실 앞을 지니시면서 몇 마디 의논을 나누셨는데 언니분이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어요.”“무슨 의논을 했는데요?”고은영은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간호사가 대답했다.“성인이 고열에 시달리는 것은 아이들과 다르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고은영을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만약 간호사가 그녀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벌써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은영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은지는 여전히 방금 그 자세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창백하면서도 피로가 너무 뚜렷하게 묻어 있는 얼굴을 보고 고은영은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언니.”고은영의 목소리를 들은 고은지는 힘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은영아.”고은지는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의 뒤를
고은영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이 순간 그녀는 한 글자도 더 꺼낼 수 없었다.고은지는 붉어진 눈으로 고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부탁해.”고은영은 고은지의 차가운 손을 잡는 순간 고은지가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그녀 자신도 떨고 있었다.고은영은 다소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내가 준우 씨한테 얘기할게. 하지만 언니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협조해야 해. 언니도 알겠지만 그 남자와 희주는 아무런 감정도 없을 거야.”고은영은 상대가 듣기 힘들 수도 있는 말을 꺼냈다.그녀는 최대한 에둘러 얘기하려고 했지만 고은지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고은지는 눈물을 흘리며 절망했다.“하지만 어찌 됐든 그 사람이 희주의 친아빠야.”고은지가 죽으면 그 남자가 고희주의 유일한 피가 섞인 가족이었다고은영이 말했다.“맞아. 희주의 친아빠지. 하지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친아빠가 아이를 학대하는지 알아? 아무리 그 남자를 찾는다고 해도 언니가 안심할 수는 없을 거야.”‘안심?’지금 이 순간 고은지가 마음속으로 가장 걱정하는 존재가 바로 고희주였다.사실 고은지는 요즘 자신의 건강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었다. 적어도 지난 한두 달 동안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다.하지만 고은지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또 고희주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고은지가 이런 몸 상태를 인지했을 때쯤 그녀가 완전히 쓰러질 거라고 누가 예쌍이나 했을까?“어찌 됐든 그 남자를 먼저 찾아야 해.”사람이든 귀신이든 고은지는 그 남자가 누군지 꼭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만약 좋은 사람이 아니면 고은지는 고희주를 보육원에 보내더라도 친아빠인 그 남자에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면...’고은지는 그 남자가 제발 좋은 사람이길 간절히 바랐다.“알겠어. 언니 뜻대로 할게. 먼저 그 남자를 찾자. 하지만 언니 꼭 치료를 잘 받아야 해.”고은영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치료라는 두 글자를 떠나지 못했다.고은지는 고개
안열의 비꼬는 말투에 나태웅은 위험한 눈빛을 번뜩이며 안열을 발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안열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손에 든 서류에 사인하며 나태웅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계속해서 말로 나태웅을 자극했다.“말도 마세요. 안 대표님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장 대표님께서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싶어요. 내가 남자였어도 안 대표님 같은 여자와 결혼했을 거예요.”“허. 안지영과 결혼하고 싶어? 그런 취향이었어?”안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롱의 뜻이 가득 담긴 나태웅의 말을 듣자 안열은 온몸이 떨려왔다.‘그래. 이 비겁한 자식아. 안 대표님은 어차피 너 같은 남자한테 아까워. 뭐 내가 그런 취향이냐고? 여자한테 이게 할 소리야? 정말 인간도 아니네. 근데 이런 인간은 인간 대접해 주면 안 되지. 아니면 나만 손해 볼 텐데.’안열은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내가 그런 취향이면 나 대표님뿐만 아니라 장 대표님한테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나 대표님 인성으로는 안 대표님이 아니라 평생 와이프를 찾기 어렵겠어요.”순간 나태웅의 호흡이 무거워졌다.‘이 여자가 정말. 내가 고작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몰아붙여?’안열은 나태웅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와이프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암컷은 나 대표님을 싫어할 거예요.”“그 입 좀 다물어.”‘이 여자 입을 확 꿰매버릴 수도 없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점점 더 말이 심해지네? 역시 장선명 옆에 있는 사람이야. 장선명보다 저 짜증 나는 인간이야.’나태웅의 위협적인 말투를 들은 안열은 고개를 들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아니요. 천락그룹에서야 내가 말할 권리가 없지만 여기는 달라요. 아주 차고 넘치거든요.”나태웅은 차가운 웃음을 뱉어냈다. ‘천락그룹에서 말할 권리가 없었다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거야? 그게 적은 거라고?’지금 천락그룹에서는 안열이 길
“말해 봐. 배준우가 널 괴롭힌 거야? 내가 그 자식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지영은 화를 내며 욕을 뱉기 시작했다.그녀는 이전에 배준우에게 죽을 뻔한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태웅이라는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골칫덩어리를 알게 되었다.어찌 됐든 안지영은 고은영에 관해서 쉽게 이성을 잃었다.“지영아.”고은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안지영이 되물었다.“정말 배준우 그 자식이야? 나하고 그 자식한테 가자. 가서 따지자.”“아니.”“그럼 배씨 가문 사람들이야? 아니면 진씨 가문 사람들?”안지영도 요즘 진씨 가문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특히 배항준과 진성택은 비밀리에 서로 연락한다고 했다.물론 이런 정보들은 보안이 철저했지만 지금 안지영의 사회적 위치에서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니면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그렇게 없나? 설마 진유경이 아직도 배준우와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한 안지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안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전에 진씨 가문에서 제안해 온 프로젝트 제안도 바로 거절했었다.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과 안지영은 절대로 협력하지 않았다.고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다 아니야.”“그럼 도대체 뭔데? 나한테 얘기를 해 봐.”안지영은 정말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도대체 누가 안지영을 이 정도로 울렸는지 알고 싶었다.고은영은 떨리는 입술로 안지영에게 말했다.“우리 언니 때문이야.”“고은지? 그럴 리가?’고은지라는 말에 안지영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떨었다.비록 안지영은 고은지를 자주 보지 못했지만 고은지가 어떤 사람인지 고은영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고은지는 정말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다.‘아니 그렇게 착한 사람이 은영이를 괴롭혔다고? 불가능해. 절대 불가능해.’안지영의 충격받은 표정을 본 고은영은 그녀가 오해했음을 알고 더욱 떨리는 목
안지영은 가장 오만한 방법으로 고은영을 괴롭힌 사람들을 쫓아낸 뒤 고은영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 맛있는 밥을 먹었고 그제야 고은영의 불쌍한 두 눈에 웃음기가 보였다.이 순간 고은영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본 안지영이 말했다.“그리고 조금 잔인하게 말해서 넌 은지 언니가 죽으면 딸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지? 그런 거라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당연히 그 계집애도 먹여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더 이상 슬퍼하지 마.”“지영아.”“됐어 됐어. 별로 큰 일도 아니야. 이렇게 울 일도 아니라고.”안지영은 고은영이 울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역시 안지영의 통쾌한 위로로 고은영은 정말 울음을 뚝 그쳤다.“아니야. 언니는 안 죽어. 희주도 반드시 언니가 키울 거야.”“그래. 언니 보고 키우라 해. 다시 건강해져서 키우면 되지. 병원비가 부족해? 그램 내가 줄게.”안지영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모든 것을 다 책임지겠다는 듯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고은영을 찾으러 온 배준우가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안지영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배준우를 보고 멈칫했다.안지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배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안지영 씨. 하지만 내 생각에 은영이한테는 지금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안지영은 입술을 삐쭉거렸다.‘이 사람 왜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이지? 아니 이게 뭐 화를 낼 일이야?’안지영은 조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나도 알죠. 배 대표님은 필요 없으시다는 걸. 하지만 은영이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뭔가 분위기가 점점 더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배준우의 지금 저 눈빛은 뭐야? 뭔가 날 경계하는 듯한 느낌인데? 아니 근데 날 경계해서 뭐 해?’배준우는 안지영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이고서는 울어서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고은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또 울었어?”부드러운 말투가 아까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