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봐. 배준우가 널 괴롭힌 거야? 내가 그 자식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지영은 화를 내며 욕을 뱉기 시작했다.그녀는 이전에 배준우에게 죽을 뻔한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나태웅이라는 떨쳐버리려고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골칫덩어리를 알게 되었다.어찌 됐든 안지영은 고은영에 관해서 쉽게 이성을 잃었다.“지영아.”고은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안지영이 되물었다.“정말 배준우 그 자식이야? 나하고 그 자식한테 가자. 가서 따지자.”“아니.”“그럼 배씨 가문 사람들이야? 아니면 진씨 가문 사람들?”안지영도 요즘 진씨 가문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특히 배항준과 진성택은 비밀리에 서로 연락한다고 했다.물론 이런 정보들은 보안이 철저했지만 지금 안지영의 사회적 위치에서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아니면 이 세상에 좋은 남자가 그렇게 없나? 설마 진유경이 아직도 배준우와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한 안지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안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전에 진씨 가문에서 제안해 온 프로젝트 제안도 바로 거절했었다.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과 안지영은 절대로 협력하지 않았다.고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다 아니야.”“그럼 도대체 뭔데? 나한테 얘기를 해 봐.”안지영은 정말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도대체 누가 안지영을 이 정도로 울렸는지 알고 싶었다.고은영은 떨리는 입술로 안지영에게 말했다.“우리 언니 때문이야.”“고은지? 그럴 리가?’고은지라는 말에 안지영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떨었다.비록 안지영은 고은지를 자주 보지 못했지만 고은지가 어떤 사람인지 고은영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고은지는 정말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다.‘아니 그렇게 착한 사람이 은영이를 괴롭혔다고? 불가능해. 절대 불가능해.’안지영의 충격받은 표정을 본 고은영은 그녀가 오해했음을 알고 더욱 떨리는 목
안지영은 가장 오만한 방법으로 고은영을 괴롭힌 사람들을 쫓아낸 뒤 고은영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 맛있는 밥을 먹었고 그제야 고은영의 불쌍한 두 눈에 웃음기가 보였다.이 순간 고은영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본 안지영이 말했다.“그리고 조금 잔인하게 말해서 넌 은지 언니가 죽으면 딸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지? 그런 거라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당연히 그 계집애도 먹여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더 이상 슬퍼하지 마.”“지영아.”“됐어 됐어. 별로 큰 일도 아니야. 이렇게 울 일도 아니라고.”안지영은 고은영이 울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역시 안지영의 통쾌한 위로로 고은영은 정말 울음을 뚝 그쳤다.“아니야. 언니는 안 죽어. 희주도 반드시 언니가 키울 거야.”“그래. 언니 보고 키우라 해. 다시 건강해져서 키우면 되지. 병원비가 부족해? 그램 내가 줄게.”안지영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모든 것을 다 책임지겠다는 듯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고은영을 찾으러 온 배준우가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안지영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배준우를 보고 멈칫했다.안지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배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안지영 씨. 하지만 내 생각에 은영이한테는 지금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안지영은 입술을 삐쭉거렸다.‘이 사람 왜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이지? 아니 이게 뭐 화를 낼 일이야?’안지영은 조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 나도 알죠. 배 대표님은 필요 없으시다는 걸. 하지만 은영이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뭔가 분위기가 점점 더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배준우의 지금 저 눈빛은 뭐야? 뭔가 날 경계하는 듯한 느낌인데? 아니 근데 날 경계해서 뭐 해?’배준우는 안지영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이고서는 울어서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고은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또 울었어?”부드러운 말투가 아까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안열의 전화를 끊은 뒤 안지영은 곧바로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장선명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고 안지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나도 마침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너한테서 먼저 전화가 왔네.”“어디 있어요? 점심 같이 먹을까요?”장선명도 마침 자기에게 전화하려던 참이었다는 말을 듣고 안지영은 바로 물었다.회사에 돌아갈 수 없으니 그녀는 지금 할 일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그녀는 너무 한가해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그러나 핸드폰 반대편에서 그녀의 제안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던 장선명이 말했다.“만약 나하고 점심을 같이 먹고 싶으면 함께 매하리로 가자.”“선명 씨 매하리에 가요? 거기에 뭐 하러 가는데요?”안지영은 깜짝 놀랐다.매하리라면 그녀도 들어본 적 있었다. 여행 앱에서 인기가 많은 명승지였다.하지만 그곳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거의 도보로 다녀야 했다.간단히 말해서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장선명처럼 도시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굳이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매하리로 갈 필요가 있을까?“그쪽에 프로젝트가 있어서 일주일 동안 있으려고. 나하고 같이 갈래?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일주일이요? 시간이 너무 긴 거 아니에요?”“길지 않아. 회사에 안열이 있으니까 네가 신경 쓸 것도 없잖아?”안지영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뭐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나?’확실히 동지운의 문제가 해결된 뒤로 딱히 그녀가 직접 신경 쓸 일은 없었다.그리고 이렇게 말을 꺼내니 그녀도 정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장선명은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안지영은 아주 좋아했다.동영그룹에 입사하기 전 그녀는 한 달 동안 사람이 적은 서쪽을 따라 여행을 다녀왔었다.그런데 마지막으로 매하리에 도착하기 전에 안태환이 보낸 사람에게 잡혀 돌아왔고 그 뒤로는 동영그룹에 출근했기에 더 이상 여행을 다닐 기회가
고은영이 말했다.“하지만 난...”“그냥 갖고 있으라면 갖고 있어. 뭘 나한테 그렇게 수줍어해? 만약 배준우가 널 괴롭히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원래도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 고은영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지영은 더욱 안심할 수 없었다.배준우는 전문가팀과 미팅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안지영이 고은영에게 카드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고 바로 얼굴이 어두워졌다.고은영은 사실 본인에게 돈이 조금 있으면 안지영의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정말 괜찮아. 나 돈 있어.”“있어도 갖고 있어. 지금 언니도 이렇게 아픈데 네가 넉넉하게 갖고 있어야지.”배준우의 뒤에서 따라오던 진청아는 배준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두말할 것도 없이 진정아는 정말 고은영에게 안지영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지만 지금은 눈치를 줄 수밖에 없었다.“큼큼.”진청아가 마른기침을 두 번 하자 역시나 안지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안지영은 배준우가 나온 것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다음 순간 안지영은 강제적으로 고은영의 손에 카드를 쥐여 주고서는 몸을 일으켰다.“나 먼저 갈게.”“나 정말...”고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다급하게 도망쳤다.고은영은 손에 들린 카드를 보더니 배준우를 바라보며 긴장했다.배준우는 안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그동안 하늘 그룹에서 돈을 많이 벌었나 보네.”진청아는 대답하지 않았다.부인할 수 없는 것이 안열이 하늘 그룹에 있는 동안 확실히 하늘 그룹은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은영은 손에 들린 카드를 보다가 다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배준우는 그녀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다시는 이런 거 받지 마.”고은영은 억울한 듯 말했다.“내가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응. 다음부터는 받지 마. 알겠지?”자기 와이프가 자꾸 다른 사람의 돈을 그것도 여자의 돈을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어찌 됐든 배준우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불만이었다.고은영은 아주 단호하
만약 고은지가 갑자기 이런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 남자를 찾으려고 이렇게 결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배준우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언니는 익산 그 여자의 친딸이 아니지?”“아니에요.”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조보은의 친딸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런 사람과 평생 엮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조금 곤란할 수도 있겠네.”“왜요?”곤란이라는 말에 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했다.배준우가 말했다.“너와 네 언니도 사실은 혈연관계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아이 말고 지금 고은지와 어떤 사람도 혈연관계가 없는 거 아니야?”“그렇죠.”고은영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현재로서는 이것이 사실이었다.배준우가 말했다.“백혈병 환자는 일반적으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 데 가장 일치 확률이 눞은 건 혈육이래.”그리고 고은지는 현재 혈연관계라고는 딸 고희주 한 명뿐이었기에 만약 일치한다고 해도 이식을 알 수는 없었다.배준우는 뒤에 말을 잇지 않았지만 고은영은 그의 말속에 뜻을 이해했다.고은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그럼 나도 가서 검사를 받아볼까요? 난...”“가서 해 봐. 다 운에 달렸으니까.”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심장이 또다시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그렇다면 결국 이제 가장 주요한 것은 고은지의 혈육을 찾는 것일까?그 남자를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고은지의 치료 성공률을 높이려면 가족을 찾아야 했다.“맞아. 고은지의 가족을 찾아야 해. 일단 골수 기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은 올렸는데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비록 다소 잔인한 말들이었지만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지금의 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고은지는 지금 급성 백혈병이었고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고은영도 고은지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고은지가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될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또 배준우의 말
배준우는 고은영이 순간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넌 찾고 싶지 않아?”“찾고 싶지 않아요.”“왜?”이런 질문을 배준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말을 꺼냈으니 배준우도 고은영이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배준우가 이유를 묻자 고은영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다시 한번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좋든 나쁘든 난 이미 혼자서 이렇게 컸어요. 부모님의 보호가 가장 필요했을 때는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를 사람들 난 이제 필요 없어요.”사실 고은영은 지금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함께 절망적인 날들을 겪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친부모를 많이 원망했다.그런 원망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그래서 이제 고은영은 친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본능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거부했다.량천옥과 량일은 레스토랑에 들어왔을 때 고은영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들어버렸다. 특히 고은영의 필요 없다는 말이 량일과 량천옥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그 결과 원래 식사를 하러 왔던 두 사람은 배준우와 고은영이 자신들을 발견하기 전에 레스토랑에서 몰래 빠져나왔다.“엄마 들었어? 은영이가 나를 미워해. 은영이가 정말 날 원망하고 있어.”량천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원래도 고은영과의 재회에 별로 자신이 없었던 량천옥은 이제 고은영의 원망 가득한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찢어질 듯 아팠다.량일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량천옥에 비해 량일은 직접 손녀를 버린 사람이었기에 이 순간 마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천옥아.”“은영이가 날 정말 미워해. 은영이가 날 미워하고 있어.”량천옥은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고 량일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답답함을 느꼈다.“은영이가 우리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거야.”량천옥은 이 말을 듣자마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량일을 바라보았다.량일은 깊은 한숨을 쉬며 떨리는
량천옥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아이가 지금 이 정도로 그녀를 미워하는데 그녀가 어떻게 다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고은영은 미친 듯한 량천옥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떨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저 사람 왜 저래요?”“별일 아닐 거야. 가자.”배준우는 고개를 저으며 고은영의 손을 잡고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고은영은 저런 상태의 량천옥을 처음 봤다. 하지만 지난번 회사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다. 이유는 그녀도 몰랐지만 량천옥은 미친 것처럼 행동했다.차에 오른 뒤 고은영은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저택에 또 새로운 여자가 들어와서 살고 있죠?”사실 고은영은 시아버지 배항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녀가 남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지만 시아버지에 대해 그녀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불만은 품은 적이 있었다.배준우의 어머니와 량천옥 그리고 지금은 또 김다정이라는 여자까지 나타났다.어찌 됐든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고 더럽게 느껴졌다.배준우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어디서 들었어?”고은영은 투덜거리며 말했다.“밀크티 사러 갔을 때 들었어요.”비록 이 일을 란완리조트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고은영의 앞에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고은영이 밖으로 나갔을 때 시아버지가 지금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람들은 배항준이 노년의 나이에 자기 자식들과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고 했다.배준우가 대답했다.“맞아. 그런 일이 있지.”“그래서 량천옥이 저렇게 미쳐버린 거예요?”고은영이 물었다.이어서 배준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혼잣말을 이었다.“아니지. 량천옥의 성격이라면 이런 식으로 슬퍼하진 않을 텐데? 량천옥이라면 배씨 저택에 찾아가서 그 여자를 찢어버려야 맞죠. 저렇게 미친 것처럼 우는 건 량천옥답지 않아요.”량천옥에 대한 고은영의 평가를 들은 배준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한 번 쳐다
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렇게 할 거야.”고은지는 꼭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긍정적인 멘탈을 유지하며 병원에서 꼭 살아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희주는 괜찮아?”간호사에게서 그녀가 이틀 동안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말을 듣고 고은지는 희주가 놀라진 않았을지 걱정했다.고은영이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언니는 지금 치료에만 집중해야 해. 알겠지?”고은지가 말했다.“그래 알겠어.”그녀는 정서적으로 지난번보다 비교적 안정되어 보였고 이미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하지만 한 가지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이었었으니 바로 고희주의 친아빠를 찾는 것이었다.자기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은지의 첫 번째 반응은 누가 자기와 골수 이식을 할 수 있을까도 아니고 자기 혈육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직 희주의 친아빠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은지는 먼저 희주의 친아빠를 찾아서 어떤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야 희주에 대한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비록 백혈병도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고은지는 지금 최악의 결과에 대비해야 했다.“은영아. 그 사람 일 빨리 서둘러야 해.”“알겠어.”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고은지가 말을 이었다.“난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희주야.”희주의 말을 꺼내자 고은지는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딸을 걱정하고 있었다.고은영은 앞으로 다가가 미음을 그녀에게 먹여주며 말했다.“알겠어. 나도 언니 마음 다 이해해.”고은지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사실 지금 고은영도 마음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더 말하면 할수록 울어버릴 것 같아 차라리 하려던 말을 꾹 참았다.량일과 량천옥은 겨우 집에 도착했지만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서로 침묵을 지켰다. 고은영이 배준우에게 한 몇 마디에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두 사람 사이의 무거운 분위기를 깬 것은 전화 한 통이었다. 바로 배항준의 전화였다.핸드폰으로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