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은 거리낌 없이 진흙 속에 몸을 던져 나태웅이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게 만들었다.나태웅은 숨이 막혀왔다.“그래 안지영 대단하네. 아주 독해.”“허.”안지영은 비웃음을 날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독하다고? 너 같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독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나태웅을 상대하기 위해 안지영은 하나를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독해지는 것이었다.안지영은 이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 나태웅을 보고 더는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아 안열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동영 그룹에서 나오자마자 안열은 복잡한 얼굴로 안지영의 옷소매를 잡았다. 안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안열을 바라보았다.“왜 그래요?”“방금 대표님의 말씀은 틀렸어요.”“뭐가요?”안지영은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 나태웅 그 자식에게 조금 많이 욕을 퍼부었기에 도대체 어느 말이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안열은 헛기침하며 말했다.“성공적으로 상대에게 욕을 하는 건 상대를 개로 만드는 것이지 자기가 개가 되는 게 아니에요.”안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 사림이.’나태웅이 안열을 매번 공격할 때마다 실제로 나태웅은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전에 안열을 개라고 욕했다가 안열은 나태웅을 함께 물고 늘어졌다.두 번째로 안열을 개라고 불렀을 때는 바로 안열에게 귀에 피가 나도록 욕을 먹었다. 아무튼 안열은 한마디 욕을 들어도 참지 않았다.방금 안지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안열이 나태웅에게 욕을 해줬을 것이다.그러나 안지영이 입을 열자 안열과 안지영은 함께 개가 되었고 심지어 나태웅 그 자식에게 진 느낌이 들었다.방금 안지영은 이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지금 안열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화가 났다.안지영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내가 가서 욕해주고 돌아올게요.”방금 나태웅을 위협하려고 그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사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나태웅이
동시에 와이프라는 말은 나태웅의 신경을 직접적으로 자극했다. 나태웅은 분노를 참으며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정말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완전히 달라진다더니.’나태웅은 너무 화가 났지만 배준우의 앞에서는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결국 그는 분노를 참으며 배준우의 사무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동영 그룹에서 나오자 왕여는 겁에 질려 나태웅의 뒤를 따랐다.“이 일은 이렇게 끝내는 건가요?”끝내다니?동성의 땅은 항상 천락 그룹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고 배준우도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하지만 전에도 천락 그룹에 팔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그래서 나태웅은 오늘 나태현이 배준우를 찾아가서 땅의 소유권을 문제를 완전히 담판 짓고 왔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은 몰랐다.그들은 수없이 계산했지만 배준우의 와이프가 안지영의 가장 친한 친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더욱더 배준우가 이 정도로 고은영을 싸고돌 줄은 몰랐다.“허 됐어.”나태웅은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고 말투에는 비꼬는 뜻이 가득했다.왕여는 그의 말투를 듣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나태웅의 근심보다 지금 더 분위기가 안 좋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진윤이었다. 진윤은 진정훈이 량천옥의 차에 치여 문이 떨어져 나간 차를 몰고 그를 만나러 온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그는 진정훈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진정훈이 말했다.“그 미친 여자가 그런 거야. 량천옥은 왜 죽지도 않아?”량천옥의 흉악한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아 진정훈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는 길 내내 량천옥을 저주했다.량천옥처럼 악독한 여자를 왜 하늘은 살려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정훈이 화가 난 표정을 본 진윤은 얼굴이 어두워졌다.“네가 량천옥을 또 건드린 거야?”“내가 어딜 가서 량천옥을 건드려? 난 그냥 배준우를 찾아갔는데 그 미친 여자가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바로 찾아왔어.”진정훈은 말하다가
이 얘기를 꺼내는 진정훈의 말투는 아주 무거웠다.배준우가 그들에게 보여준 결과는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었지만 진정훈이 직접 가서 한 결과는 아니었다. 배준우가 그들에게 샘플을 줬을 때는 당연히 확인했기에 줬을 텐데 어떻게 결과가 다를 수 있을까?그렇다면 이 결과는 정말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일까?진정훈은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이 순간 진정훈은 이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은영과 량천옥의 검사 결과가 일치한다면 그가 계속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진씨 가문에서 도대체 누가 감정 결과를 조작했냐는 것이다.설마 정말로 누군가는 그들의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원하지 않는 것일까?“형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배준우는 분명 우리한테 뭔가를 숨기고 있어.”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도 봤잖아. 배준우가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라고 대답할 때 얼마나 망설이는지. 정말 문제가 없었다면 배준우가 망설일 필요가 있어? 도대체 왜 망설인 건데?”이 일은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을 진정훈은 단번에 파악했다.배준우의 태도로 보아 고은영은 확실히 진씨 가문과 관련이 있었다.게다가 그들에게 건네준 샘플은 고은영의 것이든 량천옥의 것이든 모두 배준우의 손을 거쳤으니 그 샘플로 얻은 검사 결과가 일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그러니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진씨 가문의 누군가가 샘플에 손을 댄 것이 확실했다.진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정훈을 훑어보았다.“지금 중요한 건 배준우의 태도 문제가 아니야.”“그럼 뭔데?”“진씨 가문에서 도대체 누가 샘플에 손을 댔는지 네가 밝혀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를 찾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정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진씨 가문에 대해 말하자 진정훈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도대체 누가 그들이 여동생을 찾는 걸 바라지 않는 걸까?진정훈은 할머니의 차가운 태도가 떠 올랐다.“넌 가서 이 일이니 처리해.”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
오후에 나태현은 회사에 도착해 나태웅을 사무실로 부르려고 했지만 그는 회사에 없었다.이에 나태현는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났지만 어디에 풀 수 있는 곳이 없었다.이지훈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찾으셨어요?”나태현이 말했다."고은지의 딸이 치료받는 그 정신과 의사 전화번호 있어?”“있습니다.”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신과 의사는 당시 그들이 소개해 준 것이기에 당연히 번호를 갖고 있었다.단지 지금 나태현이 고은지를 묻는 것은 그렇다 해도 왜 고은지의 딸에 관해 묻는 것일까?‘아니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동성의 땅이 아니라는 거야?’이지훈도 나태웅 때문에 하늘 그룹에서 동성의 땅을 뺏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나태웅이 오후에 회사에 없는 것을 보니 분명 그 땅을 되찾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안지영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땅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나태현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아이 상황에 관해 물어봐.”비록 이틀 동안 고희주는 고은영의 옆에서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태현은 물어보고 싶었다.이지훈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야?’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나태현의 눈치를 살피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물어보겠습니다.”이지훈은 나갔다가 5분쯤 뒤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의사의 말로는 고 비서님 딸은 회복이 잘 되고 있지만 아직 1달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어요.”“회복이 잘 되고 있다고?”“네.”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 안의 무거웠던 공기가 훨씬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다음 순간 나태현이 계속 물었다.“그럼 고은지한테 전화해서 출근하라고 해.”“네?”‘출. 출근?’이지훈은 순간 충격을 받았다. ‘농담하는 거 아니겠지? 대표님이 직접 기존 직원을 재고용하겠다는 건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이지훈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을 보고 나태현은 더 이
“엄마 일어났어? 어때? 아픈 데는 없어?”고은지가 깨어난 것을 본 고희주는 연달아 몇 가지 질문을 했다.고희주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은 고은지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왜 울고 있어? 우리 희주 울지 마.”“엄마.”고희주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궜다.고희주는 한 번도 고은지가 이렇게 아픈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고은영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앞으로 가서 고희주를 품에 안았다.“희주 착하지. 괜찮아. 울지 마.”“나 어떻게 된 거야?”고은지는 고은영이 아직도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얼마나 잤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은영이 말했다.“언니 계속 열이 났었어. 어디 아픈 곳은 없어?”“힘이 없어.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은지는 말할 힘도 없었다.그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 같았다.그리고 이렇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각통이 느껴지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감기 증상이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더 자 알겠지?”“그래 희주는 며칠 너한테 부탁할게.”고은영이 말했다.“부탁은 뭐가 부탁이야. 언니는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어렸을 때 고은지는 수년 동안 고은영을 남몰래 챙겨줬었다. 이제는 마침내 고은영이 고은지에게 보답할 기회가 온 것이다.고은지는 정말 아팠다.어제 병원에 왔을 때 열이 나리지 않았지만 다들 일반적인 감기인 줄 알았다.하지만 이제 보지 일반적인 감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방금 잠시 깨어났던 고은지는 또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고은지가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잠에 든 모습을 본 고희주의 작은 얼굴이 찌푸려졌다.“이모 엄마 괜찮은 거지?”“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사실 이 순간 고은영도 확신은 없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희주를 위로했다.고은영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할머니가 평소에 잔병치레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오히려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한번 아프면 크게 아프다고 했던 말이 떠 올랐
고은영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본 의사는 몇 가지 수치를 짚어 주며 그녀에게 말했다.“현재 검사 결과에 따르면 이 영역의 수치가 너무 높게 나오는데 저희는 환자분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추가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습니다.”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머릿속이 윙윙거리면서 터질 것 같았다.그녀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의사를 바라보았고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졌다.입술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백혈병?’이 병이 어떤 병인지 고은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백혈병은 듣기만 해도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었다.그런데 고은지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일까?고은영은 곧 질식할 것 같은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백혈병이요?”“네. 지금 당장 환자분을 데리고 추가 검사를 해주세요. 저희는 환자분에 대한 치료 방법을 논의해 보겠습니다.”고은영은 의사의 말에 온몸이 떨렸다.추가 검사와 치료 계획이라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이 무섭게 들렸다.당시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의사는 그녀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지만 할머니는 결국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가능한 한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환자분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의사가 고은영에게 당부했다.고은영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혼이 나갔다는 말이 아마도 지금 그녀를 놓고 하는 말일 것이다.배준우는 퇴근 후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태현과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으니 일을 다 보면 일찍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의 전화를 받는 순간 고은영은 감정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었다.“준우 씨 어디예요?”전화를 받자마자 고은영은 울먹거리는 말투로 말했다.그 순간 사무실에 있던 배준우는 고은영의 말투에서 분명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준우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
나태현은 룸 밖에서 들어오는 이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고은지한테 전화했어?”“아니요. 아직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이지훈은 고개를 저었다.‘왜 이렇게 다급해하시지?’나태현의 가라앉은 표정을 본 이지훈은 원래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그래.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언제 빈말이었던 적이 있었나? 업무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야.’이지훈이 변명을 하기도 전에 나태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고은지한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이지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정말 이렇게 급한 일이었어?’이지훈은 바로 머리를 끄덕였다.“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서둘러 몸을 돌려 룸을 나갔다.혼자 남겨진 나태현은 순간 긴장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낯설게 느껴져 더욱 짜증 났다.한편 병원.고은영은 창백한 얼굴로 벽에 기댄 채 핸드폰을 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무력해 보였다.배준우는 도착하자마자 고은영의 모습을 보고서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은영아.”배준우의 따뜻한 품과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자 고은영은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은영은 원래도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배준우의 옆에 있을 때도 비서실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그러니 오늘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도대체 왜 그래? 응?”배준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고은영이 입을 열었다.“언니가 언니가.”여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고은영은 할머니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고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었고 물건을 보내줬었던 사람이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일까?사람들은 그녀에게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
나태현이 온 것을 보고 고은영과 배준우는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준우가 그에게 물었다.“형이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배준우는 방금 병원에 오는 길에 나태현에게 전화로 고은지의 상황을 말했었다. 하지만 나태현이 이렇게 병원에 나타날 이유가 있을까?같은 남자로서 배준우는 분명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배준우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고은영을 바라보았다.고은영은 지금 고은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기에 나태현이 왜 병원에 왔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그냥 병원에 누군가를 보러왔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나태현이 말했다.“친구 보러 왔어요.”‘친구? 허.’배준우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저희는 상황이 조금 급해서 먼저 가볼게요.”그렇게 말한 뒤 고은영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나태현은 상황이 급하다는 배준우의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병실 안에서 고은지는 열이 내려갔는지 아까보다 덜 힘들어 보였다.고은영은 병실에 도착했을 때 고은지가 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은영아 너 아직도 안 갔어?”“응. 결과 받으러 선생님께 갔었어.”고은영은 마음속으로 심장이 요동쳤지만 억누르며 침착한 척했다.의사가 이런 환자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기에 이 순간 고은영은 고은지의 앞에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결과가 어떤데? 문제없지?”“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다시 검사받으러 가야 해.”“오류가 있다고?”오류가 났다는 말을 들은 고은지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이 병원에서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네?’고은영이 말했다.“언니는 지금 좀 어때?”“많이 피곤한 느낌이야. 수액을 맞아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고은지가 말했다.수액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말에 고은영의 호흡이 가빠졌다.고은지가 말했다.“걱정하지 말고 준우 씨하고 돌아가.”“난 지금 언니 데리고 검사받으러 가고 싶은데?”지금 이 순간 고은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