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여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태웅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안지영한테 전화해.""네?" 왕여는 놀랐다.지금 이 타이밍에 안지영에게 연락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하늘 그룹 내부의 일을 처리하느라 한창 바쁠 텐데.안지영은 틀림없이 그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같이 점심 먹으려고.""..."차마 사실대로 말하기 죄송했지만, 왕여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았다."오늘 아침, 장선명 씨께서 아가씨한테 직접 아침 식사를 보냈습니다."그 말을 들은 나태웅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안지영한테 아침 밥을 줬다고?""네, 아침 일찍부터 준비했더라고요."장선명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지?피그스에서 돌아온 후, 나태웅은 장선명이 더욱 꼴 보기 싫어졌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자 그는 더욱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왕여는 그런 나태웅이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콜록!" 일부러 헛기침을 두 번 하고는 나태웅에게 일깨워 주었다."대표님, 지금은 아가씨한테 가장 어려운 시점이에요. 자신한테 더 뚜렷한 관심을 주는 남자에게 더욱 마음이 갈 겁니다. ""무슨 뜻이야?"왕여의 이 말에 나태웅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졌다.나태웅은 여전히 그 말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장선명 씨께서 지금 계속하여 안지영 씨 곁에 머물러있는데, 어떻게 보면 대표님한테는 불리한 상황일 겁니다.”"네 말은, 내가 아직도 가능성이 낮다는 거야?""..."이 사람 왜 이렇게 답답해? 안 뺏으면 피그스까지 데려간 보람은 더 이상 없잖아.됐어, 알아서 하라고 해.그러나 전에 안지영을 괴롭혀온 나태웅의 방식을 생각하면, 왕여도 이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여자들은 다들 부드럽게 다가오기를 바란다고요.""그건 멍청한 놈들이야. 안지영이 이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사람일 것 같아
그런데, 이걸 배준우한테 물어보는게 과연 맞는걸까?어찌 됐든 안지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은 다를 것이다. 배준우도 어리둥절했다."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게 맞긴 한거야?""형은 항상 고은영이랑 있어봐서 잘 알거 아니야.""그건 맞지. 근데 안지영은 다르잖아. 겁 많은 사람이 아니야.""..."안지영은 확실히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미 하늘 그룹까지 점점 장악하고 있는 것 같던데."그와 반대로 고은영은 아직도 배준우가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타입이었다. 그가 곁을 지키기 전에는, 줄곧 안지영이 그녀를 도와줬었다. 그리하여 배준우는 안지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늘 그룹은 지금 꽤나 혼란스러운 상태야. 네가 만약 안지영을 도와서 해결해준다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지."배준우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이 뿐이었다."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미 장선명이 나서서 해결하고 있더라고."“장선명이? 벌써?”"장선명 비서인 안열이 어젯밤부터 이미 안지영의 곁에서 돌봐주고 있더라고."나태웅은 말하면 말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말을 들은 배준우는 눈썹을 치켜 들었다."그럼 이젠 굳이 네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어쩐지 오늘 강성이 이렇게나 조용하더라니, 장선명이 벌써 손을 쓴 거였어! 어쩐지 오늘 하루동안 하늘 그룹 내부에 관한 소문은 하나도 돌지 않았다.장선명의 오른팔이 직접 나서서 안지영을 돕고 있는데 누가 감히 헛소문을 내겠는가?나서지 말라는 배준우의 조언에 나태웅은 더욱 초조해졌다."근데 너, 굳이 안지영을 뺏어야겠어?"배준우가 생각하기에는, 나태웅만큼 진심인 장선명이라는 재벌 2세를 상대하기에는 버겁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피그스에서는 교통사고도 겪었으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그러자 나태웅은 불쾌함을 보였다."뭐라고?!"장선명이 이렇게나 애를 써서 안지영을 자신의 곁에 두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나태웅은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다.사실 전에 배준우도 이런 방식으로 고은영을
사실 배준우는 애초에 량천옥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싶지 않았다.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목격한 그 여자를 찾아내야만 했다.그런데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가까이에 있던 고은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크게 놀랐다.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를 찾아내기만 하면 바로 죽이려 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온 그는 결혼할 생각을 한 적도 없었기에 결혼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고은영을 만나고 나서는 처음으로 한 여자와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 다."아, 목 말라."배준우가 고은영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자 잠에서 깬 그녀는 얼떨결에 몸을 뒤척이며 목이 마르다고 중얼거렸다.배준우는 얼른 가서 물을 따르고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너무 피곤한지 그의 품에 안겨 다시 잠에 들었다.그녀에 곁에 더 있고 싶었지만 피그스에 가 있느라 보름이란 시간을 지체한 배준우는 밀린 업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자리를 비켜 회사로 향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집사에게 고은영을 부탁 하였다."만약 12시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깨워서 밥 먹게 해줘.""알겠습니다.""그리고 얼큰한 국 좀 끓여줘. 요즘 많이 피곤했을거야.""네, 완벽하게 준비할 테니까 안심하세요." 집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 또한 그 전까지 배준우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나 관심을 갖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 셈이었다.그렇게 배준우는 회사에 도착했고 아침 일찍 회사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진청아는 꽉 찬 오늘의 일정들을 보고하였다. 잠시 후에 첫 일정인 오전 회의가 열렸는데 갑자기 배준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청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사장님, 괜찮으세요?" 배준우가 애써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명치가 심하게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병원 가자!"회의실은 순식간에 웅성대기 시작했다.진청아는 크게 놀랐다. "사, 사장님
배준우가 없으니, 그녀도 식욕이 없었다.혜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물었다. “혹시 아직 피곤하세요?”“왜?”“괜찮으시면 식사하시고 배 대표님께 음식을 전달 드리면 어떨까 해서요.”배준우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자는 소리를 듣고 고은영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지금 바로 가자!”“하지만 아침도 아직 안 드셨는데, 일단 뭐 좀 드셔야죠. 제가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알았어!”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녀는 순식간에 식사를 마무리했다.고은영은 식사를 하며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두번이나 전화를 했으나 배준우는 바쁜지 받지 않았다.그러자 고은영은 바로 진청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청아는 현재 배준우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그녀는 고은영의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 대표님, 사모님 전화입니다.”그러자 배준우가 바로 대답했다. “병원에 있다고 말하지 마.”그들은 방금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준우의 고통이 너무 심했기에 우선 수액을 맞기로 했다. 진청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들어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사모님.”“청아 씨, 배 대표 밥 먹었어? 아직 안 먹었으면 내가 음식 좀 가져갈게.”고은영이 배준우에게 식사를 배달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진청아는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배준우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눈빛에는 따뜻함이 가득찼다. 하지만 그는 진청아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진청아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고은영에게 말했다. “배 대표님께서는 오늘 오후에 접대가 있으셔서 현재 회사에 계시지 않습니다.”“접대가 있다고? 그럼 그 사람 술 못 마시게 해줘.”순간 고은영은 배준우가 접대를 간다는 얘기를 듣고 속으로 조금 실망했다.그러니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그녀는 진청아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진청아는 배준우를 보고 말했다. “사모님께서 신경 쓰이시나 봅니다.”“그러게.”배준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싱글맘인 진청아는 이러
장선명도 정오가 되자 안지영에게 점심을 전달해주었다. 푸짐한 점심을 먹으며 안지영이 말했다. "요즘 안 바쁘시나요?""내가 낮에 바쁠 일이 뭐가 있겠어? 밤에나 바쁘지!"하긴, 장선명 같은 사람들은 밤에 나갈 일이 많을 것이다."그럼 낮에는 쉬셔야겠네요?"안지영이 보기엔 장선명 같은 사람이라면 최소 오후 3시나 4시쯤엔 잠자리에 들 것 같았다. 그의 경우에는 낮에 많이 자 둬야 한다.하지만 장선명은 뜻밖에도, "네가 이렇게 고생시키는데 내가 어떻게 자겠냐?”라고 했다. “...”듣다 보니 점점 화가 나 안지영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아졌다. “어차피 제 일이니 그렇게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녀의 말투에는 웬지 모를 가시가 돋아 있었다.“네가 내 약혼자니까 네 고민이 나의 고민이야."그는 약혼자라는 세 글자를 매우 강조하며 말했다. 이에 안지영은 그에게 약간의 의지가 되며 알게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장선명이 사과했다. “지영아, 내가 미안해. 이번 일은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그 때 교통사고에서 장선명과 나태웅의 태도는 매우 달랐다. 장선명은 그와 달리 도피를 선택하지 않았다.이번 실수가 좀 크긴 했지만,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을 지고, 자신의 잘못만 인정하면 되었다. 그의 사과는 진심이었기에 안지영의 기분이 좀 나아졌다. "흥, 사과한다고 제가 용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나를 쉽게 용서한다면 그게 비정상이겠지." 장선명이 태연하게 말했다.그녀가 자신을 계속 만나주기만 하면 다행이었다.한편, 지금 그녀는 나태웅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어쨌든 안진섭은 아직도 병실에 누워있는 식물인간 상태이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이 모든 일을 자초한 나태웅이 원망스럽고원, 그 때 필사적으로 자신을 쫓아온 장선명이 미웠지만 장선명과 나태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선명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다.게다가 나태웅은 지금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나태웅을 떠올리자, 마침 왕여의 전화가 걸려왔다.
“...” 하늘그룹으로 바로 간다고?지금 이 두 사람이 만난다면 안 좋은 꼴을 볼 것이 뻔했다.하지만 나태웅이 계속 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왕여는 서둘러 그를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다.나태웅이 가는 와중에 장선명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안지영은 그가 보내준 밥을 먹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안열은 안지영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커피 한잔 드세요. 오늘 정오에 못 쉬실 것 같아서요." "네, 고마워요!"이제는 힘든 일만이 남아있다. 지금 그녀에게는 쉴 시간이 없다. 동지운의 야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녀는 줄곧 일에 쫓길 것이다."그 사람이 시간을 얼마나 줬어요?" 안지영이 안열에게 물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계속 옆에 있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너무나 아쉬웠다.안지영은 확신했다. 장선명은 안열에게 일정 시간을 줬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열 역시 숨기지 않았다. “한 달이요.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해요.”그러자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어쨌든 한 달 동안 안열만 있다면 충분했다.그리고 하늘그룹의 일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기에 이번 달 안에 모든 일을 정리해야 한다.두 사람은 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밖에서 주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실장님, 지금 지영 씨 만나기엔 어려우세요!”“비켜!”나태웅의 차갑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안지영과 안열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내 안열은 차분하게 말했다. "다른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 이 일은 혼자 해결하셔야겠네요.""그러게요."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안열, 이게 그녀의 약점이었다.과거 장선명을 탐했던 여자들을 그녀가 처리하는 것이 특히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결국 나태웅이 안으로 들이닥쳤고, 안열은 그 옆으로 걸어 나왔다.나태웅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는데 장선명의 사람을 보자 자연스레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다행히 안열에게 화를 내지
“당신이 나와 아버지를 공항으로 호송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보낸 건 절대 우리의 안전을 걱정해서가 아니겠죠.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많은 인원을 보낸 이유도 장선명이 나랑 당신이 같이 도망가는 거라고 오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나요? 아버지가 그를 나쁜 놈이라고 오해해서 미워하길 바랬던 거죠?안지영은 한 마디, 한 마디로 나태웅이 이전에 꾀한 속셈들을 낱낱이 밝혀냈다.그녀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그녀는 이 문제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에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나태웅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안지영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알아야 해. 나는 당신이 장선명과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았어!"그는 마침내 마음 속 가장 깊이 담아 둔 말을 꺼냈다. 그동안 그가 벌인 모든 일들은 안지영과 장선명을 헤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 말에 안지영은 실소했다. "하하하.. 예전부터 그렇게 알고 싶었던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그녀가 감정적으로 격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리분별은 못 하는 편은 아니었다.이제 모든 것이 확실 해졌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안지영의 냉소적인 눈빛을 마주한 나태웅은 순간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걸까? 그가 묻는 것은 안지영의 의견이었다."그래서라니요? 제 아버지는 병원에 계시고, 언제 깨어나실지 몰라요. 근데 우리 사이에 뭘 더 어쩌겠어요?”그래서라니?정말 기가차는 질문이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온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졌다.안진섭이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그와 안지영 사이에는 큰 벽이 생긴 것이다.원래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던 거리는, 이제... 두 사람을 완전히 갈라놓았다."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안지영은 지금 나태웅을 영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태웅이 소리쳤다. "안지영 씨, 장
배준우에게 말했다. “이거 한 번 봐봐!”그러자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직접 확인해 보던가!" 배지영이 차갑게 말했다.배준우는 봉투를 집어 들기도 싫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보고서 꺼내 바로 책상 밑 금고에 넣었다.배지영은 서류에 '검사 보고서'라고 적힌 걸 보고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왜 그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금고에 넣었는지만 궁금했다.그러나 그녀는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자신이 가져온 봉투를 보며 화난 듯한 말투로 소리쳤다. “그 여자의 정체가 이 서류에 나와있어!”그 여자란, 고은영을 가리켰다.배항준은 고은영이 배준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쭉 침묵을 지켰다.고은영은 배준우 곁에 있을 수 없었지만, 임신으로 인해 지금 그들이 계획한 모든 일들은 잠시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정체라고?"배준우의 말투가 조금 차가워졌지만 여전히 봉투를 열어 보지는 않았다.이를 본 배지영은 직접 봉투를 펼쳐 안에 들어있는 서류들을 꺼내고는 배준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봐, 고은영에 대한 것들이라고!"지난 보름 동안 배지영과 배윤은 줄곧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천의를 준 것이 배항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걸 믿지 않았었다.그래서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친듯이 알아보았고, 그 결과, 정말로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다. 배준우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배지영이 말했다. “량천옥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아이가 있었어. 딸 말이야.”“...”이 말을 들은 그의 눈빛은 몹시 싸늘해졌다. 그는 배지영을 위협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난 몇 년 동안 양천옥과 양일은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 그 아이를 찾지 않았어.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고은영이 나타나 그들 곁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래서 고은영이 양천옥의 딸이라는 거지?" “그래!”배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준우의 표정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어두웠는데, 한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