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에게 말했다. “이거 한 번 봐봐!”그러자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직접 확인해 보던가!" 배지영이 차갑게 말했다.배준우는 봉투를 집어 들기도 싫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보고서 꺼내 바로 책상 밑 금고에 넣었다.배지영은 서류에 '검사 보고서'라고 적힌 걸 보고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왜 그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금고에 넣었는지만 궁금했다.그러나 그녀는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자신이 가져온 봉투를 보며 화난 듯한 말투로 소리쳤다. “그 여자의 정체가 이 서류에 나와있어!”그 여자란, 고은영을 가리켰다.배항준은 고은영이 배준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쭉 침묵을 지켰다.고은영은 배준우 곁에 있을 수 없었지만, 임신으로 인해 지금 그들이 계획한 모든 일들은 잠시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정체라고?"배준우의 말투가 조금 차가워졌지만 여전히 봉투를 열어 보지는 않았다.이를 본 배지영은 직접 봉투를 펼쳐 안에 들어있는 서류들을 꺼내고는 배준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봐, 고은영에 대한 것들이라고!"지난 보름 동안 배지영과 배윤은 줄곧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천의를 준 것이 배항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걸 믿지 않았었다.그래서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친듯이 알아보았고, 그 결과, 정말로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다. 배준우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배지영이 말했다. “량천옥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아이가 있었어. 딸 말이야.”“...”이 말을 들은 그의 눈빛은 몹시 싸늘해졌다. 그는 배지영을 위협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난 몇 년 동안 양천옥과 양일은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 그 아이를 찾지 않았어.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고은영이 나타나 그들 곁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래서 고은영이 양천옥의 딸이라는 거지?" “그래!”배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준우의 표정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어두웠는데, 한
고은영은 그렇게 꾹 참고 배준우가 돌아오기만을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배준우가 회사에서 오지 않고 외박을 했다는 것이다. 고은영은 아침에 일어나 흐트러짐 없는 배준우의 이불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억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씩씩대며 휴대폰을 들고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응답이 없었다. "아직도 안 받는다고?!"이때 고은영은 배준우가 어제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이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도대체 무슨 문제이길래 이럴까? 고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진청아에 전화했다.진청아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배 대표가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바빴던 거야?" 고은영은 불만을 억누르며 약간의 원망 섞인 말투로 물었다.돌아오지 않았으면서 전화조차 없었다니!전화기 반대편 진청아는 말 하기를 머뭇거리는 듯 하자 고은영이 다시 물었다. "말해 줄 수 없어?"“사모님, 좀 있으면 누군가가 찾아갈 거예요."“어? 누가?”"보시면 알 거예요. 이제 막 일어나셨을 텐데 아침부터 드세요." 진청아는 고은영이 이제 막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아침 식사 후 정신을 차리고 회사에 가기로 결심했다. 혜나는 그녀가 씻는 것을 도와주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고은영이 제일 좋아하는 계란죽을 아침으로 준비했고,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다른 반찬들도 맛이 훌륭했다."몇 개 싸서 나중에 회사로 보내줘." "알았어요." 혜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계속 멍한 상태로 밥을 먹었다. 배준우가 밤새도록 문자 한 통 없었고, 돌아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머리에 맴돌았다. 식사를 반쯤 했을 무렵, 양복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은 한 남자가 서류가방을 들고 들어왔다.라 집사는 그를 보자마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진 변호사
"전부터 긴가민가 했는데, 역시나 계약이었네요. 저런 여자가 어떻게 대표님 옆에 설 자격이 있겠어요!”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라 집사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조용!"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기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라 집사는 차마 갈피를 잡지 못했다.자연스레 사람들은 이에 대해 함부로 떠들기 시작했다.두 시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고소하다는 듯 고은영을 노려 보았다.그리고 고은영 역시 이러한 조롱 속에 점차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고, 여전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주보고 있는 진 변호사를 바라보며 멍하니 물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한거죠?" 계약? 파혼? 진 변호사는 방금 한 말을 반복하지 않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셨으니 대표님도 함부로 대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란완리조트는 지금부로 고은영 씨의 소유가 될 것이고, 대표님께서는 파혼 수수료 1억을 지급하실 겁니다!"그의 말에 고은영은 가슴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파혼?그러니까 파혼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이다. 배준우가 이혼을 하겠다고 한 게 맞았다.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말했던 거짓말쟁이는 결국 그녀를 속였던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고은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훗날 고은영 씨가아이를 출산하실 시 자신이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출근을 원하신다면 일 자리를 알아봐 준다고도 하셨습니다. 좋은 자리로 준비해 주실 겁니다."진 변호사는 계속해서 설명을 했지만, 고은영은 지금 어떠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온통 배준우가 이혼을 원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헤어지지 않는 걸로 합의를 본다 해도,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예전의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긴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
고은영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전화를 끊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머리 속은 “윙윙”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는 정오를 지나 오후까지 소파에 멍하게 앉아 있었고, 배준우는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그리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고은영은 자신이 배준우와 정말로 끝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몸에 힘이 없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를 지켜보던 혜나 역시 마음이 아팠다."사모님, 울지 마세요. 산모가 울면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하지만 고은영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배준우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생각만 할 뿐었다. 적어도 그 순간들 만큼은 가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역시 우리의 결혼은 이제 단순 계약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근데 왜 이제와서 계약이 된 것일까? “흑, 흑…”고은영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혜나가 물었다. “기사님에게 회사까지 데려다달라고 해서 대표님한테 직접 물어보시는 게 어때요?" "진 비서가 그 사람이 다시는 날 보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 사람이 보지 않겠다고 하면 상대가 만나러 가면 되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혜나는 고은영이 정말 안타까웠다.이제 임신 7개월차이지만 배준우 쪽에서 헤어지자고 하면 그녀는 억지로라도 헤어져야 했다.이건 너무 무책임한거 아닌가?비록 자신이 모시는 대표님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혜나는 반발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임산부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 사람을 만나러 가도 되는 걸까?"고은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혜나를 바라보았다.이전에는 그녀가 원할 때 언제든지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대표님은 여전히 사모님의 남편이신걸요."상황이 어떻든 확실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혜나가 거듭 강조하는 것을 듣자, 고은영 역시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계속 함께 할 수
"물어볼 필요도 없어!"사실 그들이 지금 온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배준우는 항상 모든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심사숙고했다.그런 그가 관계를 끝내자고 제안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니.. 그녀가 여기에 온 것은 자기 자신 얼굴에 먹칠하는 짓일 뿐이었다.쓸쓸해하는 고은영을 보며 혜나는 더욱 괴로워했다. "그럼 돌아가요.."이미월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마주했으니 고은영도 여자로써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묻고 싶었던 수많은 질문들도 이제는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졌음이 틀림 없었다. 란완리조트로 돌아온 고은영은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집사에게 건넸다. “진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와서 가져가라고 하세요!” “사모님!”라 집사 역시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연히 그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이전에 배준우가 고은영을 아끼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변화했고 마침내 동행할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만하자고 난리를 피우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은영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나와 턱까지 흘러내려갔다.결국 고은영은 아무 말없이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라 집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혜나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라 집사에게 제지당했다. "잠시 혼자 있게 해 드려라!"혜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과 대표님께서 정말 이혼하시는 걸까요? 서류에 대표님께서이미 서명했잖아요…!”“...”아침에 진 변호사가 가져온 이혼 서류에는 배준우의 서명이 이미 되어 있었다.혜나는 더욱 안타까워했다. "변호사에게 꼭 서류를 넘겨줘야 하나요?" "잠깐만!" 만약, 내일 두 사람이 화해한다면?라 집사는 순간 생각했다. 혹시 배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오늘이 지나고 후회하는 건 아닐까?라고. 그러나 배준우의 주변 사람이라면 배준우가 한 평생 무엇인가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 안.장선명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량천옥 딸 맞아? 그럴 리가 없는데?"고은영과 량천옥은 전혀 닮지 않았고, 성격도 딴판이었다.그녀가 정말 량천옥의 딸이라면, 량천옥과 닮지는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배준우에게 소심한 비서가 있다는 사실은 상류층 전체가 알고 있을 것이다.배준우는 짜증스럽게 담배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나는 단지 량천옥 때문에 이혼한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인데? 그 사람이 너한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장선명은 충격을 받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더니 역시 속으로 여자가 자신과 급이 맞는지 아닌지 따지고 있었단 말인가?그렇다면 이건...!배준우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았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예민함과 위태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이해가 안 돼. 이제 와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다니.. 양천옥이 조금 밉긴 하지만 그 사람 딸은 너에게 해가 될만한 어떤 짓도 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도 그 사람을 좋아하잖아, 그치?"좋아한다고?이 말에 배준우의 가슴이 저려왔다.예전의 그는 사랑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은영이 나타난 뒤, 배준우는 자신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았어, 알았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나가서 술이나 마시자. 마시다 보면 현실에서 도피할 수도 있고, 네 내면의 진실을 보게 될 수도 있어."시간은 벌써 저녁 7시가 넘었기에 장선명은 배준우를 데리고 나왔다.이럴 때는 실컷 취한 뒤 잠에 들어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장선명은 진윤과 육범수도 불렀다. 배준우는 지금 같이 즐겨줄 친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네 사람은 밤새 술을 들이켰다. 결국 새벽까지 마시다가 매직의 룸에서 잠에 들었다.바로 그때, 누구의 전화인지, 휴대폰이 계속
한편, 혜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고은영은 아이를 가진 지 벌써 7개월이 되었고, 지금이 임산부에게 가장 힘든 시기라고 했다.이럴 때 혼자 떠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배준우는 바로 편지를 뜯어 훑어보았다.편지에는 대부분 최근 그녀를 돌봐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아이는 그에게 책임지게 할 수 없다며 아이와 함께 잘 지내겠다는 말들뿐이었다.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는 배준우를 보며 라 집사가 물었다. “혹시 사모님께서 어디로 가신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까?”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감히 편지를 뜯어볼 수도 없었다.이제 라 집사 일행은 고은영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어디에 가서 그녀를 찾아야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지금 공항과 정류장에는 모두 사람을 보낸 상태였지만 여태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찾지 못 한게 뻔했다. 장선명도 합세했는데 말이다. 란완 리조트 전체에 먹구름이 낀 것을 보고는 장선명이 물었다. “도와드릴까요?”장선명을 본 배준우는 아픈 듯 미간을 문질렀다.“지금 안지영한테 좀 물어봐 줘.”“뭘 물어봐?”“고은영이 도대체 어디에 간 건지!” 배준우의 말투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이런 바보 같은, 설마 자기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건가?임신 7개월 차에 집을 나가다니! 자기 명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거야?란완 리조트도 다 준다는데 왜 도망간 거야?많은 생각들이 배준우의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고은영은 조보은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용산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게다가 자기가 량천옥의 딸인 것도 모르니, 량천옥을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다.그럼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을 알만한 유일한 사람은 안지영뿐일 것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한통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선명은 배준우가 안지영에게 찾아가 물어보라고 하니, 조금 고민이 되었다. “안지영이 정말 알까?”“네가 이렇게 묻는 게,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 몰라서야? 아니면 안지영이 그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고은영이 갑자기 집을 나간 것을 알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안지영 또한 그 소식을 듣고 회의를 마치고 나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녀는 너무 놀랐다.“뭐라고요? 그 바보가 집을 나갔다고요? 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고은영이 집을 나가? 돼지가 나무를 타겠다!안지영이 봐온 고은영은 항상 겁이 많은 친구였다. 그동안 안지영이 없었다면 고은영은 아마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근데 이런 바보가 집을 나가? 집을 나갈 줄도 안다고?!믿을 수 없다며 바로 부인하는 안지영의 태도를 보자, 장선명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심오해졌다.아무 말도 없이 훑어보는 눈빛에는 불신이 가득했다.그리고 이런 장선명이 침묵에 안지영도 이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머리가 아파 이마를 짚고 말했다. “진짜 집을 나갔어요?”“아니면 내가 이 아침부터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겠어? 어젯밤에 계속 배준우랑 같이 있었어. 아침에 직접 전화 내용도 다 들었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란완 리조트로 갔는데 거긴 벌써 난리가 났어. 은영 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래서, 그 바보가 진짜 도망간 거라고?도대체 왜?예전에 진실을 숨겼을 때 그렇게 놀랐었어도, 그녀는 결국 다 이겨냈다.이제 다 깨달았으면서 대체 왜 도망간건지 싶었다. 안지영은 곧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장선명을 보며 말했다.“은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선명씨는 알고 있죠?”당연히 뭔가 대단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 바보가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다.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안지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은영이랑 대표님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배준우의 말대로 이 두 사람은 정말 한 통 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안지영이 듣자마자 바로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진짜 어디 갔는지 몰라?”장선명은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