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볼 필요도 없어!"사실 그들이 지금 온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배준우는 항상 모든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심사숙고했다.그런 그가 관계를 끝내자고 제안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니.. 그녀가 여기에 온 것은 자기 자신 얼굴에 먹칠하는 짓일 뿐이었다.쓸쓸해하는 고은영을 보며 혜나는 더욱 괴로워했다. "그럼 돌아가요.."이미월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마주했으니 고은영도 여자로써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묻고 싶었던 수많은 질문들도 이제는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졌음이 틀림 없었다. 란완리조트로 돌아온 고은영은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집사에게 건넸다. “진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와서 가져가라고 하세요!” “사모님!”라 집사 역시 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연히 그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이전에 배준우가 고은영을 아끼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변화했고 마침내 동행할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만하자고 난리를 피우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은영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나와 턱까지 흘러내려갔다.결국 고은영은 아무 말없이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라 집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혜나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라 집사에게 제지당했다. "잠시 혼자 있게 해 드려라!"혜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과 대표님께서 정말 이혼하시는 걸까요? 서류에 대표님께서이미 서명했잖아요…!”“...”아침에 진 변호사가 가져온 이혼 서류에는 배준우의 서명이 이미 되어 있었다.혜나는 더욱 안타까워했다. "변호사에게 꼭 서류를 넘겨줘야 하나요?" "잠깐만!" 만약, 내일 두 사람이 화해한다면?라 집사는 순간 생각했다. 혹시 배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오늘이 지나고 후회하는 건 아닐까?라고. 그러나 배준우의 주변 사람이라면 배준우가 한 평생 무엇인가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 안.장선명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량천옥 딸 맞아? 그럴 리가 없는데?"고은영과 량천옥은 전혀 닮지 않았고, 성격도 딴판이었다.그녀가 정말 량천옥의 딸이라면, 량천옥과 닮지는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배준우에게 소심한 비서가 있다는 사실은 상류층 전체가 알고 있을 것이다.배준우는 짜증스럽게 담배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나는 단지 량천옥 때문에 이혼한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인데? 그 사람이 너한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장선명은 충격을 받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더니 역시 속으로 여자가 자신과 급이 맞는지 아닌지 따지고 있었단 말인가?그렇다면 이건...!배준우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았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예민함과 위태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이해가 안 돼. 이제 와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다니.. 양천옥이 조금 밉긴 하지만 그 사람 딸은 너에게 해가 될만한 어떤 짓도 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도 그 사람을 좋아하잖아, 그치?"좋아한다고?이 말에 배준우의 가슴이 저려왔다.예전의 그는 사랑을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은영이 나타난 뒤, 배준우는 자신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았어, 알았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나가서 술이나 마시자. 마시다 보면 현실에서 도피할 수도 있고, 네 내면의 진실을 보게 될 수도 있어."시간은 벌써 저녁 7시가 넘었기에 장선명은 배준우를 데리고 나왔다.이럴 때는 실컷 취한 뒤 잠에 들어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장선명은 진윤과 육범수도 불렀다. 배준우는 지금 같이 즐겨줄 친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네 사람은 밤새 술을 들이켰다. 결국 새벽까지 마시다가 매직의 룸에서 잠에 들었다.바로 그때, 누구의 전화인지, 휴대폰이 계속
한편, 혜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고은영은 아이를 가진 지 벌써 7개월이 되었고, 지금이 임산부에게 가장 힘든 시기라고 했다.이럴 때 혼자 떠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었다. 배준우는 바로 편지를 뜯어 훑어보았다.편지에는 대부분 최근 그녀를 돌봐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아이는 그에게 책임지게 할 수 없다며 아이와 함께 잘 지내겠다는 말들뿐이었다.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는 배준우를 보며 라 집사가 물었다. “혹시 사모님께서 어디로 가신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까?”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감히 편지를 뜯어볼 수도 없었다.이제 라 집사 일행은 고은영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어디에 가서 그녀를 찾아야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지금 공항과 정류장에는 모두 사람을 보낸 상태였지만 여태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찾지 못 한게 뻔했다. 장선명도 합세했는데 말이다. 란완 리조트 전체에 먹구름이 낀 것을 보고는 장선명이 물었다. “도와드릴까요?”장선명을 본 배준우는 아픈 듯 미간을 문질렀다.“지금 안지영한테 좀 물어봐 줘.”“뭘 물어봐?”“고은영이 도대체 어디에 간 건지!” 배준우의 말투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이런 바보 같은, 설마 자기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건가?임신 7개월 차에 집을 나가다니! 자기 명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 거야?란완 리조트도 다 준다는데 왜 도망간 거야?많은 생각들이 배준우의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고은영은 조보은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용산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게다가 자기가 량천옥의 딸인 것도 모르니, 량천옥을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다.그럼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을 알만한 유일한 사람은 안지영뿐일 것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한통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선명은 배준우가 안지영에게 찾아가 물어보라고 하니, 조금 고민이 되었다. “안지영이 정말 알까?”“네가 이렇게 묻는 게,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 몰라서야? 아니면 안지영이 그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고은영이 갑자기 집을 나간 것을 알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안지영 또한 그 소식을 듣고 회의를 마치고 나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녀는 너무 놀랐다.“뭐라고요? 그 바보가 집을 나갔다고요? 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고은영이 집을 나가? 돼지가 나무를 타겠다!안지영이 봐온 고은영은 항상 겁이 많은 친구였다. 그동안 안지영이 없었다면 고은영은 아마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근데 이런 바보가 집을 나가? 집을 나갈 줄도 안다고?!믿을 수 없다며 바로 부인하는 안지영의 태도를 보자, 장선명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심오해졌다.아무 말도 없이 훑어보는 눈빛에는 불신이 가득했다.그리고 이런 장선명이 침묵에 안지영도 이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머리가 아파 이마를 짚고 말했다. “진짜 집을 나갔어요?”“아니면 내가 이 아침부터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겠어? 어젯밤에 계속 배준우랑 같이 있었어. 아침에 직접 전화 내용도 다 들었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란완 리조트로 갔는데 거긴 벌써 난리가 났어. 은영 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래서, 그 바보가 진짜 도망간 거라고?도대체 왜?예전에 진실을 숨겼을 때 그렇게 놀랐었어도, 그녀는 결국 다 이겨냈다.이제 다 깨달았으면서 대체 왜 도망간건지 싶었다. 안지영은 곧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장선명을 보며 말했다.“은영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선명씨는 알고 있죠?”당연히 뭔가 대단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 바보가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다.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안지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른다고 하지 마세요. 은영이랑 대표님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배준우의 말대로 이 두 사람은 정말 한 통 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안지영이 듣자마자 바로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진짜 어디 갔는지 몰라?”장선명은
고은영은 몇 번이고 량천옥을 따로 만났었는데, 그럴때마다 그녀는 량천옥이 고은영을 괴롭히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당시에 량천옥은 그녀를 괴롭힌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조금 이상하기도 했었다.그녀뿐만 아니라 량일도 똑같았다!“말했던 적 있지?”“네, 말했었어요. 변한것 같애요!” 안지영은 등골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량천옥이 고은영의 친엄마라고?친엄마라니......!그동안 량천옥과 배준우의 관계를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안지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녀는 갑자기 고은영이 더 안쓰러워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은영이랑 배준우씨가 건너지 못할 강을 앞에 두고 있는 거잖아? 그렇게 순진한 아인데, 하늘은 왜 이런 장난을 치는 걸까..?’“어제부터 지금까지 진짜 전화도 안 왔어?” 장선명은 계속 고은영의 행방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기 바빴다. 비록 안지영은 고은영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표현했지만, 그는 정확하게 하기 위해한 번 더 묻고 싶었다.어쨌든 지금 배준우 쪽은 다급해서 미칠 지경이니까 말이다. 그러자 안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짜 안 했어요. 저 못 믿어요?”“널 못 믿는 게 아니라. 정말 알았으면 해서 그런 거야!”“......”안지영은 정말 다급해졌다.이번에 고은영이 집을 나가 버리고 정말 그녀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다급히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 저 편에서는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차가운 말만 들릴 뿐이었다.고은영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거는 그녀의 모습을 본 장선명이 말했다. “배준우도 오전 내내 전화를 걸고 있는데, 진작부터 꺼져있었어!”“그럼 지금 빨리 찾으러 가요!” 안지영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이 바보가 이번에는 자기한테까지 숨겼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사실 고은영은 안지영까지 자기 때문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은영은 배준우가 안지영을 찾아가 그녀의 행방을 물을 것을 알고 있었기
장선명이 보기에 배준우와 량천옥은 원수지간이고, 고은영에게 이미 마음이 있는 상태라면 반드시 참으려 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일에도 사적인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그들이 아는 배준우라면, 이번 일은 고은영과 량천옥은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그럼 또 다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안열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안지영에게 말했다. “곧 회의해를 해야 합니다.”“아, 네!” 안지영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예전 같았으면 그녀는 고은영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바로 뛰쳐나가 그녀를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일도 처리하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몸을 일으킨 순간, 그녀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또 장선명에게 말했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뭐를?”“사람 시켜서 고은영을 찾아주세요. 그리고 찾아도 배 대표님께서 모르게 해요!”장선명은 그녀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안지영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안지영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바보가 지금 도망간 건 자기가 대표님이랑 틀어지고 대표님이 아이를 빼앗아갈까 봐 그런 거예요.”이 바보가 아무리 바보 같아도 사실 많은 걸 신경 쓰고 있다고요.그 당시에 아무리 아이를 지우라고 말해도 그녀는 원치 않았다. 게다가 가족애도 강한 그녀이기에 그녀는 아이를 계속 자기 곁에 두려고 할 것이다.만약 배준우가 아이를 원한다고 해도, 그녀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건 무서워서 도망간 거 아닌가?고은영을 잘 알고 있는 안지영이기에, 고은영이 이번에 도망간 것은 정말 아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도와줄게!”“절대 대표님께서 알아서는 안 돼요.” 안지영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은영의 일에 더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그녀가 지금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건 장선명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장선명과 배준우가 아주 친하다
그러자 장선명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이야? 정말 아이가 문제냐니?”여자의 배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고, 아이를 낳기전엔 그 아이의 엄마도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지! 이게 무슨 말인가!지금 배준우의 강경한 말투는 단지 책임을 지겠다는 거지, 빼앗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건가?“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얘기해 보는 건 어떠냐? 그런 말은 어떤 여자라도 함부로 믿지 않을 거야.” 장선명이 끙끙댔다.이와 같은 일을 예전에 그는 직접 본 적이 있었다.5년 전, 자신의 큰 형인 장서경이 죽자 집안 사람들이 임신한 형수한테 아이를 지우라고 난리를치자 형수는 그만 화가 나서 해외로 떠나 버렸다.결국 지난 2년 동안 조카를 놓지 못해 목숨 걸고 형수를 쫓아다녔다.그의 조카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귀엽고 착한 아이였기에 큰 형이 왜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했는지 알 것 같었다. 그렇게 큰 형도 예전에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딸 바보가 되었다.하지만 배준우는 지금 그와 이런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단지 하루라도 빨리 고은영을 찾아내고 싶었다. 결국 장선명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만 끊을게!”“......”이렇게 끊는다고?정씨 어르신 쪽에 있던 배준우가 정씨 어르신에게 고은영이 사라진 사실을 전하자 어르신의 낯빛이 순시간에 어두워졌다.아무리 배씨 가문의 계승자를 마주하더라도, 그는 정중하게 굴지 않았다. “자네 그 당시에 나한테 은영이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지 않았는가? 겨우 이렇게 돌본 겐가? 대채 왜 도망간 것이냐 말이다!”자신이 아끼는 그녀가 도대체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한 건지 배준우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준우는 정씨 어르신이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그의 낯빛도 좋지는 않았다. 침묵이 계속 된 후 배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안 왔나요?”“안 왔다네!” 정씨 어르신은 생각도 하지
정 씨 어르신이 자리를 떠난 후,배준우의 주위는 매우 혼란스러웠다.고은영을 찾기 위해 많은 부하들을 파견시켰고, 심지어 그 또한 직접 나서서 공항으로 가 고은영의 행방을 찾아보기도 했다.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진청아는 온 하루 그의 곁을 따라다니며 우울해있는 그를 걱정하였다. 비서로서도 꽤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준우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아직도 소식이 없어?"진청아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없습니다.”그녀 또한 틈만 나면 전화를 걸어 물었지만 전해온 소식은 없었다.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했지만,그들은 여전히 고은영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얻지 못했다. 소식을 접한 나태웅도 발 벗고 나섰다."우리 쪽에서도 이미 사람들을 파견시켜서 찾고 있어.""필요 없어." 배준우는 시큰둥히 말했다.피그스에서의 교통사고를 겪은 후로부터 배준우는 그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하지만 나태웅은 그걸 알 리가 없었다."만약 피그스에서 일어났던 일이 다시 한번 고은영한테 일어난다면 난 절대 가만 있지 않을거야."그제서야 눈치 챈 나태웅은, 자신의 이 호의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들었다. 하지만 피그스에서 있었던 일은 단지 사고였다니까...게다가 그때 장선명이 쫓아간 책임도 있는데,왜 나한테만 이렇게 사나운거야?하지만 배준우는 여전히 단호했다."너는 안지영이나 신경 써."그동안 나태웅은 줄곧 배준우를 부러워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꾸리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그런데 지금은 모든걸 다 잃게 됐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일인걸까?그동안 멀쩡히 잘 지내던 사람이.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나태웅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곧이어 그는 착잡한 마음으로 동명 그룹에서 나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전화를 꺼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나태웅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다.결국 기어코 하늘 그룹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