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닭은 먹음직스럽게 잘 익혀졌고,고은지는 또 두 가지 반찬까지 준비하여 대접했다. 조희주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순순히 먹고 있었다. 그런데 고은지가 갑자기 닭다리하나를 그릇에 넣었주자,철이 든 아이는 눈치를 보고는 닭다리를 다시 고은지에게 건네주었다."엄마랑 이모가 먹어. 이건 너무 커서 난 못 먹어!"당연히 못 먹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눈치가 보여서였다.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은지는 마음이 좀 아팠다."희주야, 넌 지금 한창 클 때야. 얼른 먹어."그리고는 또 다시 닭다리를 딸의 그릇에 넣어주었다.하지만 아이의 고집은 얼마나 센지!바로 그때, 고은영이 재빨리 말했다."희주는 이거 먹고, 이모가 엄마한테 닭다리 줄게. 이모 뱃속에 있는 아기가 닭고기 싫어하거든.” 조희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은지를 바라보기만 했다.고은지는 그런 고은영을 말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동생으로서는 언니가 잘 챙겨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으니까.그제서야 고은지는 울컥한 마음으로 닭고기를 한 입 먹었다."얼른 먹어.""응." 그러자 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냠냠 먹기 시작했다.점심을 다 먹고 난 후, 조희주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고은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다.자신의 어리석음이 아이를 이렇게까지 해친 것 같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고은영은 그런 그녀를 달래주었다. "울지 마 언니. 응?""은영아, 그 남자 꼭 찾아줘!"이 순간만큼은, 고은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무슨 일이 있든 반드시 그 남자를 찾으려 마음 먹었다.그러자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꼭 찾아낼거야."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는 고은지의 모습을 처음 본 고은영도 스스로 자책했다.그날 밤 난 왜 그 방에 가 보지 않았을까? 난 왜 소홀했을가? ......얼마 뒤, 오후 4시가 되었고, 고은영은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고은지는 그녀에게 저녁까지 해 주고 싶었지만 고은영은 사양했다.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혼자서 마
기사의 연락을 받자마자 고은영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량천옥은 그녀를 발견하고도 아무 말 않았다.웬일로 자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는 량천옥의 태도를 확인한 고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곧이어 기사가 차문을 열어주었다."타세요, 사모님."사모님이란 세 글자를 어렴풋이 들은 량천옥은 마음이 복잡했다.이전과 같았으면 애초에 벌컥 화를 내고 혼쭐을 냈을 것이다.배항준의 부인인 자신이 멀쩡이 아직 살아있는데, 배준우의 여자를 사모님이라 모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차마 뭐라 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은영이 자신의 딸이니까...어쩌다 둘의 운명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가.차에 오른 뒤, 고은영은 긴장감을 풀고는 잠시 한숨 돌렸다. "차 브레이크 같은건 다 검사해봤어?"비록 량천옥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긴 했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가 익숙치 않았던 고은영은 여전히 내심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이 여자가 얼마나 광기 가득한 미친 여자인데, 한시도 방심할 수는 없어!그러자 기사는 고은영을 달래주었다."안심하세요. 오늘 아침 란완에서 떠나기 전에 한번 검사을 마쳤어요. 전 그 후로 줄곧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요."그 말을 들은 고은영도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었다."그래도 돌아가는 길,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해."순간 그녀는 전에 겪었던 교통사고를 떠올렸다.그 날, 택시 기사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괜히 억울한 누명을 쓸게 뻔했다."네, 알겠습니다."평소보다 예민해있는 고은영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사는 매우 느린 속도로 운전하였다.그렇게 그들은 순조롭게 란완으로 돌아왔다.방금 무려 두차례의 국제회의에 참석한 배준우는 안색이 좋지 않은 고은영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른 물었다. "무슨 일이야?""아, 깜짝이야.""어?""량천옥 그 여자, 지금 단단히 미친 것 같아요. 글쎄 오늘 그린빌까지 찾아왔더라고요.왜 그랬겠어요? 당연히 날 죽이려고 그러는거지.”분노가 극에 달하면 눈에 뵈는게 없는
저녁에 배준우는 주방에 고은영을 위한 만두를 준비해 주라고 일러 두었다. 밀가루 음식을 전혀 선호하지 않는 배준우를 위한 스테이크도 주방에서 착실히 함께 준비해둔 건 물론이었다.고은영이 언니의 이야기를 꺼낸 건 한창 저녁을 먹으며 배준우가 와인 한 잔을 즐기던 도중이었다.“언니는 아무래도 6년 전의 그 남자가 대체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정도는 당연히 알아 둬야지.”어떤 여자가 제 아이의 친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상태로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런 공허함도 세상에 더는 없을 것이다.누가 됐다고 한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할 터.“그러면 그냥 슬쩍 한번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고은영의 말투는 다소 조심스러웠다.그럴만했다. 제대로 알아내기 전까지는 무조건 모든 것이 비밀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애꿎은 고은지와 조희주 모녀에게 2차 가해가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저녁을 다 먹고 난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둘을 위한 란완 리조트는 승마장과 수영장은 물론이고, 골프장까지 풀 옵션으로 갖추어져 있는 개인 별장이었다.멀리서 털이 부드럽고 반짝이는 게 언뜻 봐도 잘 관리된 듯한 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은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승마도 하실 줄 아세요?”“응. 아이 낳고 나면 가르쳐 줄게.”낳고 나면, 가르쳐 준다고?마음 한구석이 뭔가 봄바람이 분 양 간지러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진다.그 둘은 아직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사이였다.미래, 그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당장 그녀 본인조차 어떠한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그러나 불안한 와중에도 미래에 결국 이 남자와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떨어진 듯 아파지는 것이었다.란완 리조트 내부에는 잘 가꿔진 정원들도 있었는데, 그 정원 안에는 세상 온갖 곳에서 온 신기한 화초들이 다수 재배되고 있었다. 가까워지지 않았더라면
”알겠어요, 나갈게요.”도우미가 떠나고, 혜나와 둘만 남자 고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예전에는 아가씨가 여길 자주 오지 않으셨죠?”“큰 아가씨는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었죠!”그렇구나.아마도 배준우가 그전까지는 본가의 사람들까지, 심지어는 배지영까지 속여가며 지내 왔던 듯싶었다. 배 씨 집안의 그 어느 누구도 이 란완 리조트의 주인이 누군지 몰랐다는 말이니까.배지영은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친동생인데도, 그녀까지 모르고 있었다니!고은영은 다시금 마음이 싸하게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가장 가까운 가족임에도 믿을 수 없다니! 배준우라는 남자는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온 걸까?홀로 걸어오는 그 길이 얼마나 피폐하고 지쳐 있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고은영은 슬립 로브 한 장만 걸친 상태로 계단을 내려갔다.한편 소파에 앉아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본 배지영은 속으로 조금 놀랐다.맞춤 제작한 듯한 슬립 로브 한 장이 예전의 고은영에게서는 도무지 숨길 수 없던 촌티를 숨겨 주고 있었다.아니, 단순히 로브 탓일까? 요사이 배준우와 함께 지내온 시간이 짧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든 고은영에게서는 예전과는 다른 어떤 분위기가 풍겼고, 그 귀티 나는 듯한 분위기는 배지영을 약간 불쾌하게 만들었다.“무슨 일이신가요?”소파 맞은편에 앉은 고은영을 가만히 바라보던 배지영이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천의 건도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언니께서도 준비 하고 계시나요?"고은영도 배지영이 말하는 ‘준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난번 카페에서의 둘의 만남에서는 없었던 그 어떤 태도가, 고은영에게 생겨있었다.“저는 아가씨의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그 말을 들은 배지영의 눈썹이 찡그려졌다.지금 배 씨 집안에서는 모두들, 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진심이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그렇다면 천의 건이 마무리되어도, 그들의 사이는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 뭐 이런 말을 내게 하고 있는 건가?“그 말은 저희 오빠를 떠
한 번이라도 오빠가 나에게 이런 말투로 말한 적이 있었나?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말투였다!이 몇 년간 친어머니가 해외로 떠난 후 량천옥이 배 사모님이라는 위치를 등에 업고 기세 등등하게 구는 동안, 국내에서 그녀에게 의지할 곳은 오빠밖에 없었는데!그러나 지금의 제 오빠는 마치 여자에게 미쳐서, 누가 봐도 고은영을 감싸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배지영은 약간 짜내듯, 말을 이었다.“오빠랑도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무슨 이야기?”여전히 불쾌함이 드러나는 말투였다.내가 집에 없는 줄 알고 특별히 찾아온 건 무조건 고은영을 찾아온 걸 텐데.그럼 내가 없는 사이 고은영과 무슨 얘기를 하려고?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추측이지만, 아마도 100% 확실할 것이다. 대체 여기까지 저를 봐오면서도 아직도, 제 일에 이렇게 간섭을 하려고 하다니!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건가?“일단 서재 가서 얘기해!”한편 배지영도 당황한듯 보였다.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고은영을 감싸고돌다니. 이렇게 된 이상 고은영 본인 앞에서 고은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글렀다.저를 끌고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동생을 보는 배준우의 눈가에는 이미 신경질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의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집사를 불렀다.“아가씨를 서재에 모셔다드려.”“네!”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자기와 엄마에게 숨겨 왔다니 도무지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그런데 정작 가족인 저는 와본 적도 없는 이곳에 고은영은 먼저 와서, 같이 살림 차려 살고 있다니!그렇다면 오빠가 고은영에 대한 신임이 벌써 어머니와 동생을 넘어선단 말인가?거기까지 생각하니 배지영의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아가씨, 이쪽으로 모시지요.”집사가 나서서 따라오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오빠가 직접 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남아서 고은영을 달랠 말이라도 한두 마디 하고 오려는 거겠지!짜증과 분노가 한층 더 치솟
배지영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히 따스하게 고은영을 위로해 주는 배준우라던가, 앙큼한 불여우처럼 그의 품에 안겨서 뭐라 뭐라 조잘댔을 고은영에 대한 상상이 가득차있었지만, 사실 그건 그녀의 완전한 착각이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달래주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고은영의 성질머리에 화들짝 놀라서 쫓겨 왔을 뿐이니까.그는 그저 1층으로 내려가 혜나를 시켜 침실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고은영이 먹을 것을 좀 챙겨 주라고 하느라 시간을 조금 더 썼을 뿐이었다.그러나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했던 배지영은, 오빠가 들어서자마자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재빠르게 말을 시작했다.“엄마가 일주일 뒤에 온다고 했어!”“그래? 돌아오신다고?”배준우는 차갑게 웃었다. 약간 뜬금없는 말이었다.배지영은 약간 의아해져서 배준우를 바라 보았다.“오빠?”“어머니 보고 지금 오지 말라고 말씀드려둬. 여기 지금 상황이 아주 복잡해.”“이미 다 끝난 일인데, 량천옥이 뭐 더 이상 어쩌겠어?”예전이라면 어머니가 귀국하기엔 확실히 상황이 어수선하기는 했다.량천옥이 위세 등등하게 온 배 씨 집안을 장악하고, 온 강성에서도 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귀국해 봤자 본인만 괴로울 뿐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이 배 씨 집안에서 쫓겨날 예정인 지금에서야 말이 달라지지!요 몇 년 사이 배지영의 머릿속에서는 어서 빨리 어머니를 귀국시키고, 다시 원래의 그 당당한 사모님으로 복귀시킬 생각뿐이었다.그런데 오빠라는 인간은 대체!화를 못 참는 기색이 역력한 동생을 보며, 배준우가 갸우뚱거렸다.“너는 진짜로 지금 어머니가 돌아올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안 될게 뭐가 있어? 량천옥이 배 씨 집안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응?”쫓겨난다고?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하지만 배지영이 저렇게까지 확정 지어 말하다니, 배준우의 눈빛이 깊어졌다.직감이 배지영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너 무슨 일을 한 거야?”“아무것도 안 했어!”하지만 대답하기 전에 흠칫하는 모습하
굳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배지영에게, 배준우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이어졌다.“배지영, 다시는 내 뒤에서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안 그러면…!”안 그러면 뭐?이미 배준우의 목소리와 어조에서는 배지영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압적인 위협이 가득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 하더래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뒷말이 충분히 와닿았다. “오빠 정말….!”“너 알지, 내가 뭘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지!”무엇을 가장 혐오하냐고?배준우가 가장 혐오하는 건 바로 앞뒤 다르게 행동하며 몰래 계략을 짜는 거였다.하지만 이걸 계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녀는 당연히 오빠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명확한 적의를 띄고 차갑게 저를 노려보는 두 눈에 결국 배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던 배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그만 돌아가.”“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할 거야. 엄마가 전화로 얼마나 난리였는지 알아? 꼭 치워버리라고 말했어.”“그만해, 이제!”결국 큰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마주친 두 눈도 아까 전보다도 더욱 차가워져 있어, 온도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배지영은 결국, 결국에는 마음속으로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제 오빠가 저 고은영이라는 여자에게 진심이라는걸.. 온 강성에서 떠들어 대던 그 루머가 진짜였다! 그런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다니!그러나 동시에 배지영은 알고 있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해도 늦었고,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기사 불러 줄 테니 돌아가.”내쫓는 태도마저 이렇게나 명확한 것을.말 해야 되는 것들도 이미 다 말했으니, 결국 더 말해 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물러 났다.비록 오늘 하고자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어쨌든지 간에 오빠에게 명명백백히 전해야 되는 이야기였다.배준우와 고은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마어마한 신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하지만 결과는…!물론 아직 결혼과 이혼을 겪기 전이라 그녀는 강성에 돌아오자마자 전화 한 통으로 사무실에 불려 갔다.이연 팀장님도 자리에 있었고, 안지영은 머리를 쓱쓱 긁으면서 불만을 털어놓았다: “계약은 이미 체결 완료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왜 야근해야 하죠?”전에 자칫 놓칠뻔한 고객을 그녀가 다시 그 마음을 돌려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가?최근 전전긍긍하면서 출근하는 안지영은 현재 마음이 아주 초조했다!이연은 고객 자료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 “새로운 고객 자료입니다. 내일 출국 예정이니, 오늘에 반드시 해결해야 해요.”자료를 한가득 건네받은 안지영은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가 없었다.“영업부서에 직원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저 입니까?”“이건 작은 대표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일입니다!”작은 대표님이라면, 나태웅!현재 나태웅과 나태현 모두 회사에 나오기에 구분하기 위해서 작은 대표님과 대표님으로 호칭하고 있다.그녀는 나태웅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죠?” 안지영은 언짢은 말투로 물었다.이 얘기를 들은 이연 팀장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았다: “작은 대표님께서 당신과 그런 장난이나 하고 있을 한가한 사람으로 보입니까?”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안지영은 왠지 나태웅이 일부러 그녀를 골탕 먹이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왜지? 그녀는 도대체 언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얌전히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이연이 말했다. “어서 가서 일해요! 함께 남아서 도와줘요!”“그건 안 됩니다, 오늘 아들이 전화 와서 저녁에 꼭 집에 오라고 했어요.”말을 하면서 이연은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안지영은 갑자기 폭풍에 휩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마음속으로 나태웅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마음먹었다고 확신했다.이건 절대로 그녀 혼자의 착각이 아니다!“그럼 작은 대표님께서 사무실에 계시나요?”“아마 안 계실 텐데요? 오후에는 계셨는데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연 팀장은 퇴근 준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