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오빠가 나에게 이런 말투로 말한 적이 있었나?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말투였다!이 몇 년간 친어머니가 해외로 떠난 후 량천옥이 배 사모님이라는 위치를 등에 업고 기세 등등하게 구는 동안, 국내에서 그녀에게 의지할 곳은 오빠밖에 없었는데!그러나 지금의 제 오빠는 마치 여자에게 미쳐서, 누가 봐도 고은영을 감싸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배지영은 약간 짜내듯, 말을 이었다.“오빠랑도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아!”“무슨 이야기?”여전히 불쾌함이 드러나는 말투였다.내가 집에 없는 줄 알고 특별히 찾아온 건 무조건 고은영을 찾아온 걸 텐데.그럼 내가 없는 사이 고은영과 무슨 얘기를 하려고?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추측이지만, 아마도 100% 확실할 것이다. 대체 여기까지 저를 봐오면서도 아직도, 제 일에 이렇게 간섭을 하려고 하다니!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건가?“일단 서재 가서 얘기해!”한편 배지영도 당황한듯 보였다.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고은영을 감싸고돌다니. 이렇게 된 이상 고은영 본인 앞에서 고은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글렀다.저를 끌고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동생을 보는 배준우의 눈가에는 이미 신경질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의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집사를 불렀다.“아가씨를 서재에 모셔다드려.”“네!”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자기와 엄마에게 숨겨 왔다니 도무지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그런데 정작 가족인 저는 와본 적도 없는 이곳에 고은영은 먼저 와서, 같이 살림 차려 살고 있다니!그렇다면 오빠가 고은영에 대한 신임이 벌써 어머니와 동생을 넘어선단 말인가?거기까지 생각하니 배지영의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아가씨, 이쪽으로 모시지요.”집사가 나서서 따라오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오빠가 직접 저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남아서 고은영을 달랠 말이라도 한두 마디 하고 오려는 거겠지!짜증과 분노가 한층 더 치솟
배지영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히 따스하게 고은영을 위로해 주는 배준우라던가, 앙큼한 불여우처럼 그의 품에 안겨서 뭐라 뭐라 조잘댔을 고은영에 대한 상상이 가득차있었지만, 사실 그건 그녀의 완전한 착각이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달래주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고은영의 성질머리에 화들짝 놀라서 쫓겨 왔을 뿐이니까.그는 그저 1층으로 내려가 혜나를 시켜 침실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고은영이 먹을 것을 좀 챙겨 주라고 하느라 시간을 조금 더 썼을 뿐이었다.그러나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했던 배지영은, 오빠가 들어서자마자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재빠르게 말을 시작했다.“엄마가 일주일 뒤에 온다고 했어!”“그래? 돌아오신다고?”배준우는 차갑게 웃었다. 약간 뜬금없는 말이었다.배지영은 약간 의아해져서 배준우를 바라 보았다.“오빠?”“어머니 보고 지금 오지 말라고 말씀드려둬. 여기 지금 상황이 아주 복잡해.”“이미 다 끝난 일인데, 량천옥이 뭐 더 이상 어쩌겠어?”예전이라면 어머니가 귀국하기엔 확실히 상황이 어수선하기는 했다.량천옥이 위세 등등하게 온 배 씨 집안을 장악하고, 온 강성에서도 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귀국해 봤자 본인만 괴로울 뿐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이 배 씨 집안에서 쫓겨날 예정인 지금에서야 말이 달라지지!요 몇 년 사이 배지영의 머릿속에서는 어서 빨리 어머니를 귀국시키고, 다시 원래의 그 당당한 사모님으로 복귀시킬 생각뿐이었다.그런데 오빠라는 인간은 대체!화를 못 참는 기색이 역력한 동생을 보며, 배준우가 갸우뚱거렸다.“너는 진짜로 지금 어머니가 돌아올만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안 될게 뭐가 있어? 량천옥이 배 씨 집안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응?”쫓겨난다고?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하지만 배지영이 저렇게까지 확정 지어 말하다니, 배준우의 눈빛이 깊어졌다.직감이 배지영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너 무슨 일을 한 거야?”“아무것도 안 했어!”하지만 대답하기 전에 흠칫하는 모습하
굳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배지영에게, 배준우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이어졌다.“배지영, 다시는 내 뒤에서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안 그러면…!”안 그러면 뭐?이미 배준우의 목소리와 어조에서는 배지영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압적인 위협이 가득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 하더래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뒷말이 충분히 와닿았다. “오빠 정말….!”“너 알지, 내가 뭘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지!”무엇을 가장 혐오하냐고?배준우가 가장 혐오하는 건 바로 앞뒤 다르게 행동하며 몰래 계략을 짜는 거였다.하지만 이걸 계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녀는 당연히 오빠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명확한 적의를 띄고 차갑게 저를 노려보는 두 눈에 결국 배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던 배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그만 돌아가.”“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할 거야. 엄마가 전화로 얼마나 난리였는지 알아? 꼭 치워버리라고 말했어.”“그만해, 이제!”결국 큰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마주친 두 눈도 아까 전보다도 더욱 차가워져 있어, 온도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배지영은 결국, 결국에는 마음속으로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제 오빠가 저 고은영이라는 여자에게 진심이라는걸.. 온 강성에서 떠들어 대던 그 루머가 진짜였다! 그런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다니!그러나 동시에 배지영은 알고 있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해도 늦었고,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기사 불러 줄 테니 돌아가.”내쫓는 태도마저 이렇게나 명확한 것을.말 해야 되는 것들도 이미 다 말했으니, 결국 더 말해 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물러 났다.비록 오늘 하고자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어쨌든지 간에 오빠에게 명명백백히 전해야 되는 이야기였다.배준우와 고은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마어마한 신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하지만 결과는…!물론 아직 결혼과 이혼을 겪기 전이라 그녀는 강성에 돌아오자마자 전화 한 통으로 사무실에 불려 갔다.이연 팀장님도 자리에 있었고, 안지영은 머리를 쓱쓱 긁으면서 불만을 털어놓았다: “계약은 이미 체결 완료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왜 야근해야 하죠?”전에 자칫 놓칠뻔한 고객을 그녀가 다시 그 마음을 돌려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가?최근 전전긍긍하면서 출근하는 안지영은 현재 마음이 아주 초조했다!이연은 고객 자료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 “새로운 고객 자료입니다. 내일 출국 예정이니, 오늘에 반드시 해결해야 해요.”자료를 한가득 건네받은 안지영은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가 없었다.“영업부서에 직원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저 입니까?”“이건 작은 대표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일입니다!”작은 대표님이라면, 나태웅!현재 나태웅과 나태현 모두 회사에 나오기에 구분하기 위해서 작은 대표님과 대표님으로 호칭하고 있다.그녀는 나태웅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죠?” 안지영은 언짢은 말투로 물었다.이 얘기를 들은 이연 팀장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았다: “작은 대표님께서 당신과 그런 장난이나 하고 있을 한가한 사람으로 보입니까?”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안지영은 왠지 나태웅이 일부러 그녀를 골탕 먹이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왜지? 그녀는 도대체 언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얌전히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이연이 말했다. “어서 가서 일해요! 함께 남아서 도와줘요!”“그건 안 됩니다, 오늘 아들이 전화 와서 저녁에 꼭 집에 오라고 했어요.”말을 하면서 이연은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안지영은 갑자기 폭풍에 휩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마음속으로 나태웅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마음먹었다고 확신했다.이건 절대로 그녀 혼자의 착각이 아니다!“그럼 작은 대표님께서 사무실에 계시나요?”“아마 안 계실 텐데요? 오후에는 계셨는데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연 팀장은 퇴근 준비를
사무실에 안지영과 나태웅 두 사람만 남았을 때도 역시 남자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조금 전 안지영의 화 역시 그의 차가움에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고, 나태웅이 화낼 때, 결국 그녀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심호흡하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주일에 거의 매일 같이 야근하니,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이런 흉악한 늑대 앞에서, 안지영은 감히 횡포를 부리지 못했다.나태웅: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인데, 건강도 따라 줄 거야.”무슨 뜻이지? 뭐가 또 능력이 있다는 거야? 아니, 능력이랑 건강 상태는 또 무슨 연관이 있는데?안지영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무뚝뚝하게 나태웅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건강이 좋다고 해도, 이대로 계속 간다면 나빠지겠죠?” “……”“저는 제 몸을 아낍니다. 여기엔 실적을 달성하러 온 것 뿐이지, 출근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맞아, 단지 200억 원의 실적을 달성하는 것뿐, 그한테 팔려 온 것은 아니다!마치 그녀가 그에게 죄라도 지은 것처럼,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은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이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어?생각할수록 안지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출근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네.”합의서와 근로계약서는 엄연히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그녀는 단지 실적만 달성하면 되고, 그녀가 언제 어떻게 하든 이는 모두 그녀가 혼자 알아서 할 일이다.어찌 지금과 같겠는가? 그녀는 지금 감옥살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아, 딱 한 달이야!”“네?”남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안지영은 또 어리둥절했다.천락그룹에 온 후, 그녀는 이 남자와 소통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당신이 아까 직접 얘기하지 않았어? 우린 단지 합의된 거래일 뿐이라고?”“네!”“그럼 한 달 내에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완성하면 되겠네.”“뭐라고요?” 안지영은 크게 놀랐다!이젠 그녀는 완전히 깨달았다. 나태웅은 그녀가 한 달 내에 200억 원의
”급하게 실적을 달성하는 것이 힘들다면, 다른 방법도 있어.”다른 방법이 있다고?나태웅이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기에, 그녀는 바로 정신이 돌아왔다. “다른 방법은 뭔데요?”“장선명과 깨끗이 정리하는 것!” “……” 이게 무슨 다른 방법이라는거지?눈가에 맺혔던 희망은 순식간에에 사라졌고, 서류를 품에 안고서는 얘기했다. “지금 바로 가서 야근할게요!”이게 무슨 방법이야? 이건 완전히 그녀를 호랑이 굴에 떠미는 식이잖아?나태웅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 이 여자가 정말!“다 당신을 위해서야.”“감사합니다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그녀를 위해서라고? 웃기시네!그녀가 먼저 장선명을 찾아갔고, 지금 동영그룹의 위기가 해결되니 자신더러 파혼하라고?강성에서 장씨 가문이라면 쉬이 건드릴 수 없는 가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만약 장씨 가문과 등지게 되면, 이번 생에서 그녀는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안지영은 바보도 아니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그리고 장선명은 혼인 관계는 최대 3년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그녀가 이를 악물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사무실 문이 ‘쾅’하고 닫혔다!그 찰나, 나태웅의 표정은 지옥에서 나온 사탄처럼 차갑고 무서웠다.이 여자가 진짜로 장선명과 결혼할 생각인가? 그녀가 이 결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 걸었고, 상대방은 곧장 전화 받았다. “대표님!”“장선명과 약속 잡아, 지금 당장 봐야겠어.” 나태웅은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한편 수신자 황민호는 나태웅이 장선명을 만나겠다는 얘기에 몹시 놀랐다.최근 며칠 동안 나태웅, 장선명 그리고 안지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황민호는 잘 알고 있었다.지금 나태웅이 장선명을 만나겠다는 얘기에 황민호는 저도 모르게 걱정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설득했다. “지금은 많이 늦었습니다. 장 선생님께서 이미 주무시고 계실지도 모르고요!”“그런 사람이 이 시간에 잘 것 같
장선명은 나태웅의 비서 황민호의 전화를 받았을 때, 조금 놀란 눈치였다.특히 황민호가 전화한 이유를 알기에 더더욱 그는 심기가 좋지 않았다. “지금요?”“네, 지금 대표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장선명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고, 곧 저녁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나태웅이 지금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고개 돌려 ‘매직’ 두 글자를 보면서 얘기했다, “맞은편 커피숍에서 보죠!”매직이라 하면, 장씨 가문이 운영하는 산업 중 하나였다. 또한 장선명이 주로 관리하는 산업이다.장씨 가문은 겉으로 정당한 사업을 하지만, 장선명은 이와 반대였다.장씨 가문 첫째와 둘째 아들은 부동산과 에너지 사업을 하고, 그가 주로 하는 것은 클럽이었다!전국에 천 개가 넘는 매직과 같은 산업은 전부 그가 관리하고 있었다!표면으로 보기엔 보통 클럽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실제로 암암리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안지영이 그를 찾아가기 전에 이 방면으로 많이 알아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말 믿는 사람들이였고 적어도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다.……30분 뒤. 나태웅은 커피숍에 도착했고, 맞은편 시끌벅적한 매직과 반대로 커피숍에서는 은은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런 멜로디는 고상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장선명은 앞에 있는 커피잔을 들었다: “늦은 시간에 나를 만나자고 한 건, 그 여자 때문인가?”그는 직설적인 사람이기에 말을 돌리지 않았고 시간 낭비도 하기 싫었다.담배를 쥐고 있던 나태웅의 손은 잠시 멈칫하더니 차갑게 장선명을 보면서 얘기했다: “너와 그 여자는 절대로 약혼할 수 없어!”“그래?”장선명은 의미심장하게 나태웅을 바라보면서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달랐다.“준우가 너한테 얘기했지?”“얘기했어. 그런 일이 있었다니, 참 유감이야.” 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웃는 표정이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였다.특히 ‘유감’이라는
”이 조건이면 되겠어?”“나 혼자서도 되찾을 수 있어!” 장선명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태연한 표정으로 나태웅을 보았다.마치 그 조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래? 이미 6개월이나 지났는데, 가져올 수 있었다면……!”뒷말을 잊지 않았지만, 그 뜻은 아주 명확했다.동성 구역을 잃은 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그의 태도에 장선명은 조금 불편했다.이 기간에 그는 되찾으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지금까지 그 배후를 만나보지 못했다.현재 동성은 그에게 진짜로 골치 아픈 존재라고 할 수 있다.그가 얘기하기 전에 나태웅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파혼 약속을 하면, 동성은 내일 당신 손에 들어올 거야.”“내일? 당신이 여간 자신 있는 게 아니구만!”그가 반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을, 지금 나태웅이 하룻밤에 해결한다고 얘기한다.장선명은 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지만 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야?”나태웅은 무뚝뚝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할 얘기는 이미 다 했고, 그 외의 얘기는 그 역시 쉽게 하지 않을 것이다.분위기는 삽시간에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장선명에게 있어 동성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는 더더욱 중요했다.그 배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 심지어 지금은 동성을 다 빼앗겼지만, 그 배후가 그가 관리하는 다른 구역에 언제든지 손을 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나태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장선명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 뜻대로 안 해!”“당신 결국 동의하게 될거야.” 나태웅은 냉랭하게 얘기했다.장선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태웅의 이러한 자신감에 그의 웃음은 점점 차가워졌다.자기 앞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보아하니 나태웅이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오늘은 이만 돌아가, 당신이 제시한 조건은 나한테 아무런 유혹도 없어.”그리고 사내대장부가 기본적인 도덕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이런 일로 자기 약혼녀까지 내놓을 수는 없지 않았다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