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가 고은영을 란완으로 보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량일은 이미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믿고 싶지 않아도 장항 프로젝트를 지키는 건 무리였다.량천옥은 길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량일의 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이 빌어먹을 계집애,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량천옥의 말에 량일의 눈빛이 흔들렸다.“넌 무슨 말을 그렇게 악랄하게 해?”량일은 량천옥의 말이 불쾌하게 느껴졌다.그녀의 얼굴도 지금 완전히 굳어 있다.하지만 량천옥은 오히려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니 더 섬뜩했다.“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봐?”“내가 악랄해요?”량천옥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지금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다.“아니, 너...!”“내가 왜 이러는데요! 엄마 때문이잖아요! 다 엄마 때문이잖아요!”량천옥은 결국 무너졌다.그녀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그녀도 전에는...!그녀에게도 아름다운, 희망 가득했던 청춘이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다 부서졌다.그녀는 지금도 그때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그 창백했던 모습...!옛 생각이 떠오르자, 량천옥은 몸이 더욱 떨렸다. 더 이상 회상할 용기도 없었다.“엄마가 나한테 계속 그랬잖아요. 꼭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아니에요?”량천옥의 원망에 량일은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항상 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를 것이라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자기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는 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확고했던 그 신념이!흔들리는 것 같았다.량일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그래요, 물러설 곳이 없어요!”량천옥은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그녀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있을까?지금 그녀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가 했던 악행 중 하나라도 폭로된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그녀는 그렇다 치지만, 배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잠시 장항 프로젝
“...”왜 상관이 없어!배준우가 그녀와의 결혼으로 배항준을 협박해 이렇게 된 건데!량천옥이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량일이 계속해서 말했다.“그 아이도 배준우의 바둑알에 불과해. 그 애가 없어도 다른 애가 있었을 거야!”량일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량천옥에게 고은영에게서 관심을 끄라고 일러주는 말이었다. 그녀들이 상대해야 할 사람은 고은영이 아니니 말이다.량천옥은 여전히 마땅치 않았다.“말은 그렇게 해도, 배준우가 찾은 이 바둑이 참...!”“그만해!”량천옥이 다 말하기도 전에 량천옥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엄마!”그녀는 점점 량일이 고은영의 편에 서서 말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감싼다고 느꼈다.도대체 왜?“일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량일은 더욱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오랫동안 량천옥이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나쁜 습관이다!어떤 일이 중요한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말이다.만약 량일이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지 않았다면, 진작에 배준우의 친 엄마와 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량천옥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량일의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사모님, 저 조보은이예요.”수화기 너머로 조보은의 알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순간, 량일의 얼굴이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이 여자는 고은영을 아예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량천옥은 이미 똑똑히 느꼈다.파렴치한 인간. 이 세상에 조보은만큼 파렴치한 인간은 없을 것이다.량일이 냉담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에요?”“사모님이 저한테 점심 전까지 그 계집애 주소를 주면, 제가 그 계집애를 데리 떠나면 저한테 20억 준다고 했잖아요!”조보은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량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까 봐 무서웠다.“필요 없어요. 우리 거래는 여기서 끝입니다!”방금 량천옥과 의논을 끝냈으니 더는 고은영을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란완 리조트에 있다!그녀는 조보은에게 고은영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알려줬다가 그녀가 거기에 가서
량천옥도 그녀의 변화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량천옥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그 아이의 출신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비난하는 거야?! 잊지 마, 그 애는 지금 배씨 가문 사모님이야!”“량 사모님...!”갑작스러운 량천옥의 태도 변화에 조보은은 어리둥절 했다.조보은이 더 말하기 전에 량천옥은 전화를 끊어버렸다.‘뚜-뚜-’ 소리에 조보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서정우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었던 서정우도 량일의 뜻을 알아 들었다.“고은영 데리고 떠날 필요 없어요?”서정우는 믿지 못하는 듯 물었다.조보은은 화가 치밀어 핸드폰을 이불 위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그 여자가 거래를 계속 번복했어!”“그럼 20억은 그냥 없던 일로 된 거예요?”서정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조보운을 쳐다봤다.20억을?조보은은 20억이라는 서정우의 말에 더 화가 나서 말을 잇지 못했다.“왜 갑자기 안 데리고 가도 된다는 거예요? 배씨 집안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계집애를.”“그러게, 누가 아니래?”아까 조보은도 량일에게 이렇게 말했다.하지만 량일의 반응은? 한마디로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도대체 무슨 태도인 거야? 이건 조보은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조보은은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났다.“부자들의 생각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그럼 이제 어떡해요?”서정우가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남은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병원 입원비조차 낼 수 없는 처지였다.서정우의 질문에 조보은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20억인데, 그냥 이렇게 날린다고?“망할 계집애! 분명히 그 계집애가 량 사모님이랑 무슨 거래를 한 게 틀림없어.”조보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틀림없이 고은영일 것이다.이 망할 계집애는 더 이상 용산 촌에 있을 때의 멍청한 계집애가 아니다. 요 몇 년 동안 강성에서 생활하면서 완전히 변했다.지금
그녀는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요즘 며칠 동안 두려움 속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렸는데, 이제야 드디어...... 끝이 보였다.배준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는 웃으며 말했다.“궁지에 몰려 더 이상 방법이 없나 보지?”량천옥을 말하는 거다!그녀에게서 F국 프로젝트를 넘겨받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결국!나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씨 사문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고, 진씨 가문에서도 너랑 은영 씨를 주시하고 있어.”그들은 진씨 가문과 량천옥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다.만약 배준우와 고은영이 진짜 결혼식을 올린다면, 양쪽 가문과 량천옥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 날 것이다.량천옥은 앞으로도 진씨 가문에 의지해야 할 일이 많다.그래서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씨 가문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배준우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한참 뒤, 배준우가 나태웅에게 가서 말했다.“인수인계할 때 네가 가.”“넌 안 가려고?” 나태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장항 프로젝트는 큰 프로젝트이기에 그는 요 몇 년 동안 동영그룹을 손에 넣은 뒤, 계속해서 장항 프로젝트를 손에 넣을 방법만을 생각해 왔다.나태웅은 지금 마침 돌파구가 생겼고, 드디어 프로젝트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그가 직접 갈 줄 알았다.배준우가 량천옥이 생명처럼 여기는 프로젝트를 이렇게 하찮게 여길 줄 몰랐다.배준우는 저쪽에 앉아 귤 한 조각을 입에 넣는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안 갈거야!”“그래, 알았어.”나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다른 업무 보고를 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나태웅이 간 뒤, 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손짓하며 말했다.“이리 와!”그는 기분이 좋은 듯해 보였고, 마치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고은영은 채 먹지 못한 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배준우는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확실해! 오늘 바로 인수인계할 거야.”그의 확실한 대답에 고은영의 마음속에는 환호성이 울렸다.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심지어 도망갈 계획까지 세웠으니 말이다!물론 그녀는 도망 같은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준우 같은 사람과는 절대 안 좋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평화롭게 헤어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 두려움을 억누르고 지금까지 기다렸다.그녀는 배준우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저희 계약도 이제 끝나는 거죠?”그녀의 말에, 그녀를 안고 있던 배준우의 손은 멈칫했고, 미소를 짓던 얼굴도 점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뭐?”고은영도 그런 배준우의 변화에 호흡이 더욱 무거워졌다.물어봐도 안 되는 건가?그녀는 배준우의 옷자라락을 움켜쥐고는 조심스레 말했다.“전에 저희가 결혼한 것도 장항 프로젝트를 뺏기 위해서 잖아요. 근데 이제 다 끝났으니..”“나 실장이 그렇게 알려줬어?”그가 날카로운 말투로 반문하자 고은영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봤다.“나 실장님은 절대 량천옥의 계략에 걸러들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이제 장풍 프로젝트를 넘겨받으셨으니까, 그날 밤 그 여자가 안배한 여자가 누군지도 중요하지 않잖아요?”장항 프로젝트를 손에 넣었으니, 해외의 다른 일부 업무도 그의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량천옥의 이전 계획은 모두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렸다.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그러니 그 여자가 대표님을 협박했었던 그 일도 이젠 풀렸겠죠?”“그 여자가 진짜 날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해?”차갑고 날카로운 말투였다.“......”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가?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때 확실히 량천옥이 남성 호텔에 여자를 보냈기 때문에 고은영도 실수를 하게 된 것이였다. 나중에는 인정
고은영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에 감히 반박할 용기가 없었다.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눈에 눈물이 고인 그녀의 얼굴에, 배준우의 차갑고 굳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배준우는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그럼, 나태웅이 한 말이니까, 나태웅한테 가서 따져!”“......”무, 무슨 뜻이지?나태웅한테 가서 따지라고? 그럼 200억 위자료는?그때 분명히 자기 입으로 말했는데!“대표님도 그렇게 말하셨잖아요!”그녀는 억울한 눈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마치 큰 손해를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러자 배준우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난 기억이 안 나는데?”“.........”기억이 안 난다는 건 무슨 뜻이지? 설마 인정하지 않는 건가?가뜩이나 얼굴한데 더 억월해졌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배준우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합의서라도 썼어?”합의서!이제 와서 합의서를 찾다니. 고은영은 그제서야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러는 거지?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까지 임신했는데, 이제 와서 인정하지 않는다니.고은영 마음속의 두려움이 이젠 완전히 분노로 바꼈다.하지만 여전히 배준우 앞에 그걸 표현할 용기는 없었다.그녀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저 졸리니깐 좀 잘게요!”말하고 배준우가 대답도 하기 전에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울면서 걸어갔다!그녀는 자신이 속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정말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강성 도시의 제일 재벌이 사기 결혼을 하다니. 누가 관여해 주는 사람은 없나?화가 난 고음은 방으로 돌아가 즉시 나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그녀에게 수십 통의 부재중전화가 걸려 와있었는데, 모두 낯선 번호들이었다.고은영은 상관하지 않고 먼저 나태웅에게 전화 걸었다.나태웅도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사실 나태웅과 배준우는 공통점이 많았다.
분명히 다 합의가 되었던 일이었는데, 고은영은 그날의 대화를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매번 배준우 곁에서 힘들 때마다 그 20억을 생각하며 버텼는데.지금 이건 무슨 뜻인지?지금 고은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만 나태웅은 의문스러운 듯한 말투로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어?”순간 고은영은 감정이 북받쳤다.“아니면요?”“정말 기억이 안 나!”수화기 너머 나태웅은 계속해서 생각나지 않는다고 우겼다.고은영은 머리가 아파졌다.“그럼 말해봐요.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실 건지. 제가 언제 대표님이랑 이혼하는지 말이예요!”기억하든 말든 상관없다.그녀가 배준우와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 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지금 고은영은 위자료 200억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배가 이미 불러오고 있으니, 빨리 떠나지 않으면 더 비참해질 거다.“너 이미 대표님이랑 결혼했으니까, 그건 대표님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 물어보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제 이혼해야 한다고 말하니, 배준우에게 물어보라고 해.”당시 그녀를 배준우와 결혼시킬 땐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땐 거의 협박하듯 말했다.그런데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고, 배준우에게 물어보라고 떠넘긴다.“다들 지금 대체 무슨 뜻인 거예요?”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억울해 죽겠는데, 지금 다들 기억이 안 나는 척하자 고은영은 더욱 화가나 미칠 지경이었다.“그것도 대표님한테 물어봐야 해!”고은영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다 배준우에게 물으라고? 장풍 프로젝트가 곧 배준우의 손에 들어오는데,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설마 지금보다 더한 상황이 올까?배준우와 나태웅은 그녀와 농담할 시간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니다!“나 지금 곧 배씨 본가에 도착해서 먼저 끊을게!”나태웅은 말하고 고은영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숨조차 쉬기 힘든 느낌이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영아.”“지영아, 나 속았나 봐!”고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수화기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 인정하지 않고 있어!”고은영은 흥분하며 말했다.“그럼 나 실장님은?”“나 실장님도 기억이 안 난대?”고은영은 말하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고?“대표님이랑 실장님이 다 그렇게 말해?”“응, 다 그렇게 말했어!”고은영은 울먹이며 말했다.고은영의 우는 소리에 안지영은 머리가 아파 났다.고은영은 지금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전에 그녀가 20억 위자료를 받는다는 말할 때부터안지영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다!이건 그녀가 임신이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배준우의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린 이유이다.그런데 지금은 끝이 안 보였다!안지영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말했다.“분명히 말해주는데, 지금 네 배 상태를 보면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지금 대표님이 그런 태도면, 너.... 그냥 도망가는 게 어때?”지금은 도망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합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혼을 안 해주면 난 어떡해?”이혼하지 않고 그냥 도망가 버린다면, 남편의 신분으로 그녀를 금방 찾아낼 것이다.“이혼도 안 해준대?”“모르겠어!”안지영의 물음에 고은영은 머리가 더 하얘졌다.안지영은 배준우가 이미 고은영에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 걸 보면, 이혼해주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녀에게 정말 가혹한 일이다.“나 먼저 진정 좀 할게.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말아봐!”지금 고은영뿐만 아니라 안지영의 머릿속도 완전히 혼란스러웠다.말하고 안지영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감정 의뢰를 마치고, 고은영의 일을 30분 동안이나 생각했는데, 생각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고은영은 방 안에 앉아있었다. 조용한 공간에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아주 불쌍해 보였다.혜나는 저 설탕 디저트를 들고 들어와, 혼자 외롭게 앉아 있는 고은영을 보고,옆으로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방금 도련님이 우영 선생님을 만나
‘이제 와서 쓸모없는 아들 대신 아내를 다시 데려가려고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장선명은 화가 나 머리가 지끈거렸다.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할아버지, 지영이가 나태범한테 끌려갔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못난 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화기 너머 장성현의 말투가 변하며 바로 장선명을 질책했다.“나씨 가문이 먼저 부끄러운 짓을 한 거예요. 저는 바로 나씨 가문으로 갈 테니 할아버지로 빨리 오세요.”장선명을 더 이상 장성현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안 가면?”장성현은 어린아이들 일로 인해 자신까지 나서는 건 체면이 상한다고 여겼다.‘나태범이 정말 손자며느리를 데려갔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그럼 어른한테 손댈 수밖에 없겠죠.”“너... 너 잠깐 기다려라.”장성현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답했다.장씨 가문이 비록 어두운 쪽 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특히 가풍이 엄격한 편이었는데 장성현은 아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한의 선은 지킬 수 있게 했다.그런데 장선명이 어른을 때리겠다고 하니 장성현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목적을 달성한 장선명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더 빨리 가.”“네.”구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속도를 더욱 높였다.구이준은 도심에서 차선을 변경해 가며 시속 100킬로까지 높였다.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그는 많은 운전자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그 사이 안지영은 이미 나태범의 사람들과 나씨 가문 본가에 도착해 있었다.대나무 숲과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법도 했지만 지금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안지영은 나태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나태범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너랑 장선명은 어울리지 않으니 결혼식은 취소해.”안지영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나태범을 바라보았다.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안지영이 캘리포니아반도를 막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차는 갑작스럽게 멈춰야 했다.앞좌석 운전기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아가씨.”“무슨 일이에요?”안지영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물었다.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로 인해 그녀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딪힐 뻔했다.당연히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모두 좋을 리 없었다.운전기사가 답하기도 전에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얼굴을 확인한 운전기사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나씨 가문 사람들입니다.”“뭐라고요?”‘나씨 가문 사람들? 나태웅은 장선명과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안지영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씨 가문 사람들이 안지영의 차에 다가왔다.그 사람들이 안지영이 있는 쪽 문을 열기 전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그는 후진하여 벗어나려 했지만 그제야 차가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아가씨, 얼른 선명 도련님한테 연락하세요. 이 사람들 전부 나태범 산하 사람들이에요.”나태범의 사람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아연실색했다.나태범이 직접 보낸 사람이라면 이는 일부러 안지영을 겨냥한 행동임이 분명했다.‘결국 나태웅과의 일이 어른들에게까지 번지고 말았구나.’“아가씨, 저희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직접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까요?”밖에 있던 사람은 차 문이 열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도 확고하고 단호한 태도가 묻어났다.안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젠장! 왜 다들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절대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운전기사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안지영은 화가 난 얼굴로 차 문을 열고 당당히 차에서 내렸다.“아... 아가씨!”운전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큰일 났네. 성격이 또 올라왔네.’운전기사는 장선명의 사람이었다.안지영이 장선명과 함께한 이후로 그녀의
‘여자를 갖고 논다고? 도련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밤에 발생했던 일들도 도련님 모르게 벌어졌던 일인데... 일을 조사해 범인을 밝혀냈을 때 그 범인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지.’“구이준.”“네.”구이준이 앞으로 나섰다.“웨딩드레스는 킹덤 타운으로 보냈어?”“네. 다 수선해서 보냈습니다.”그 말을 듣고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태웅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지영이가 직접 입어보고 고른 웨딩드레스야.”이 말은 나태웅의 위협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나태웅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었고 장선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그럼 거절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지?”“너도 예상하던 답 아니야?”장선명이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언제 장성명이 위협을 받아들였던가.나태웅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이전에 안지영을 찾아가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위해 그녀와 헤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나태웅은 장씨 가문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장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위협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아니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지영이를 빼앗아 간다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릴 헤어지게 하려는 거라면 나뿐만 아니라 강성 전체가 너희 나씨 가문을 경멸할 거야.”말을 마친 장선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더 이상 나태웅과 할 이야기가 없었다.태연하고 무서울 것 없는 장선명의 모습은 나태웅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장선명은 두 발짝 걸어 나가다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섰다.“참, 하늘그룹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늘그룹이 없어져도 나는 안지영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도록 할 방법은 많아. 하지만 너는? 지영이는 널 지금보다 더 원망할 거야.”‘안지영이 자신을 미워하더라고 나도 같이 미워하게 만들겠다고? 도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자기 판단이 흐린 것처럼 지영이도 반쯤 정신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장선명은 자
3분 후, 나태웅과 장선명이 마주 앉았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현장의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자 담배 두 개비씩 피울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진이훈과 구이준은 몸이 굳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세 번째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나태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래서 조건이 뭔데?”나태웅과 시간을 소모하려던 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조건?”또렷한 말투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나태웅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지금까지 병원에서 아픈 척한 것도 모두 안지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바보같이 순진한 안지영만이 진지하게 나태웅이 정말 미친 건지 아닌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그 여자가 널 미워하게 만들지 마.”나태웅은 이를 악물고 하나하나 힘줘 말했다.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나를 미워해야 하지?”장선명이 흥미롭게 물었다.안진섭과 얼마간 관계가 있을 뿐, 장선명은 다른 방면에서 안지영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하늘그룹이 너 때문에 없어진다면 널 미워할 거야. 날 미워하듯 널 미워하게 되는게 네가 진정 원하는 거야?”나태웅이 날카롭게 물었다.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장선명은 나태웅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하늘 그룹이 나 때문에 없어진다고? 나태웅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장선명은 담배를 담뱃갑에 도로 넣었다.“그렇다면 지영이는 널 미워하겠지?”“난 상관없어. 어차피 이미 미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나태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고개를 들어 장선명을 바라본 순간 그의 시선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나태웅은 싸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하늘그룹을 부숴버릴 거야. 그렇게 돼도 지영이가 너랑 무사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진이훈과 구이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나태웅이 말을 마친 순간 현장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