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보은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그게.... 사돈, 오해에요. 이 계집애가!”“어떤 속셈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용수는 그 여편네 딸처럼 멍청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리 친형제여도 계산은 똑바로 해야죠. 고은지는 내 며느리니 이젠 우리 가문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런 허황한 꿈은 깨세요!”진여옥은 조보은에게 확실하게 경고하였다.조보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다시 창백해졌다.비록 진여옥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고은지는 만감이 교차했다.조보은은 겨우 화를 참으며 말했다.“사돈, 그 말은 옳지 않아요. 우리 은지가 조씨 가문에 시집가면 우리는 한 가족과도 마찬가지에요. 가족끼리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겠어요? 아닌가요?”“누가 가족이에요?”진여옥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그나마 남았던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다.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물었다. “고은지가 우리 가문에 들어와서 이바지한 게 뭐 있어요? 오히려 우리 가문에서 서정우 학비까지 다 내줬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쪽 며느리까지 신경 써야겠어요?”“학비는 은지가 결혼 전에 모은 돈이지 조씨 가문의 돈이 아니잖아요.”조보은도 슬슬 화를 내기 시작했다.결혼 전에 고은지의 월급이 높았다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여 그녀는 조씨 가문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끊임없이 고은지에게 돈을 요구하며 선수쳤다.진여옥은 가식조차 떨지 않는 조보은을 보고 버럭 화를 내며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그래서 앞으로도 쭉 돈 뜯어낼 생각이세요?!”“내 딸한테 돈 달라는데 문제 있어요?”조보은의 인내심도 바닥을 쳤다.고은지가 조씨 가문에 시집간 뒤로 조보은은 조씨 가문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다 겪었다.그런데 진여옥이 완전히 패를 까버리고 말하자 조보은도 더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참지 않았다.뻔뻔한 말을 이렇게 뻔뻔하게 내뱉는 조보은의 모습에 진여옥은 말 문이 막혔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조보은은 자기가 진여옥의 기세를 꺾었다고
고은지는 멍한 표정으로 조보은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제 만족하세요?”“아니, 은지야......”“이혼, 내일이면 이혼하시라네요. 만족하시냐고요?”고은지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녀는 수년간 조보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진여옥은 그게 지겨워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수년간의 인내가 순식간에 무너졌다!조보은은 뭐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고은지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러 뭐라 할 수 없었다. “만족하세요? 만족해요?”“언니.”고은영이 고은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서라도 고은지를 달래고 싶었다.하지만 조보은이 한 짓을 생각하니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조보은이 말했다.“내가 뭐 이혼시키라고 했어? 네 시어머니 왜 저러니!”고은지의 울부짖음에 조보은은 바로 잘못을 진여옥에게 떠밀었다.하지만 진여옥이 저렇게 화를 낸 것은 단연 조보은 때문이다.모든게 조보은의 잘못이다!고은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말했다.“은영아, 너 먼저 돌아가.”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순간 고은지는 이런 엄마가 있는 한,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진여옥이 오늘 이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불씨가 피어올랐을 것이다.고은지가 고은영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니 조보은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가긴 어딜 가. 혼수는 어쩌고!”“당신한테 엄마 자격이 있기나 해요? 무슨 자격으로 은영이한테 혼수를 내놓으라고 하세요?!”고은지는 또 한 번 격분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고은지의 말에 조보은은 그나마 남아있던 미안한 마음도 한순간에 사라졌다.“고은지! 너 말 똑바로 해. 내가 왜 자격이 없지? 넌 내가 낳았고, 내가 키웠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엄마가 날 낳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에요!”고은지는 한 글자 한 글자 날카롭게 내뱉었다. 이 말은 전에 고은영도 한 적 있었다!고은지의 말투에는 피맺힌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런 고통
그녀는 고은지의 정서가 이렇게 격앙될 줄 생각도 못 했다. 고은지는 고은영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조보은에게 맞섰다.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조보은도 깜짝 놀랐다.“너, 너 뭐 하는 짓이야! 그 칼 당장 내려놔!”“언니, 칼 내려놔!”고은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고은지를 바라봤다.혹시라도 고은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정말 두려웠다.“은영이 착하지. 너 먼저 가.”“언니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고은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네가 가야 내가 편해져. 그러니까 내 말 들어..... 자, 이젠 그만 가.”지금 고은지는 고은영을 부른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그리고 일찍 이렇게 강하게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긴 세월 동안 내가 왜 날 괴롭히게 놔뒀을까.’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고은영은 또 어떻게 그녀를 놔두고 떠난단 말인가?고은영은 애써 목소리를 누르고 고은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언니, 우선 칼 내려놓자!”“너 제발, 그냥 가!”고은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고은지의 정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격앙됐다.칼을 든 그녀의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고, 하얀 목덜미에서 새빨간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하며 소리를 질렀다.“언니!”“가!”고은지가 울부짖었다.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상처는 점점 더 깊어졌다.고은영은 놀라서 더는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당장 갈 테니까 언니 흥분하지 마!”혹시라도 고은지가 더 흥분할까 봐 고은영은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고은영 마음속의 고은지는 온화하고 침착한 사람이다.하지만 오늘 갑자기 찾아온 조보은과, 완전히 관계가 틀어진 진여옥 때문에 그녀는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고은영은 그런 고은지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고은지는 그저 고은영이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랐다.“가라고!”그녀의 정서는 완전히 무너졌다.고은영은 두 다리를 벌벌 떨며 말했다.“응, 갈게, 언니. 흥분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골목에서 뛰쳐나온 고은영은 저 멀리 가로등 아래에 세워진 배준우의 차를 발견했다.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는 그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었다.방금 격렬했던 상황과 지금 배준우가 그녀를 기다리는 장면은 극과 극의 상황을 만들어 냈다.하나는 그녀를 숨 막히게 했고, 하나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고은영이 비틀거리며 차에 올랐다.문을 닫는 순간, 배준우도 전화를 끊고 그녀를 향해 물었다.“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야?”배준우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그녀가 열이 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시름 놓았다.고은영은 두 눈을 붉히며 배준우를 바라봤다.순간 배준우는 깜짝 놀라 황급히 물었다.“왜 그래?”고은영이 말했다.“계속 여기서 기다렸어요?”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그녀를 기다린지도 거의 1시간이나 되었다.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나려고 하자 고은영이 불러세웠다.“잠깐만요.”“왜?”배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시간이 늦었으니 배준우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불안해서 그래요. 조금만 있다 가요.”격앙된 고은지의 정서에 고은영은 도무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고은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두려웠다.배준우가 물었다.“무슨 일인데?”배준우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감지했다.고은영은 고개를 숙였고, 이내 그녀의 구슬 같은 눈물이 손등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비록 조보은 앞에서는 강한척 했지만 사실 그녀도 제 발이 저렸다.그리고 진여옥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준우씨와의 결혼이 가짜라서 다행이야. 만약 진짜였다면...... 그렇다면 내 인생은 뒤죽박죽이 되었겠지.’배준우는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보더니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울어?”고은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깨는 점점 더 떨려왔다.배준우는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건네주었다.고은영은 휴지를 받아 들고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그녀는 흐르는
배준우는 한숨을 쉬더니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바로 이 부근에서 사는 회사 직원에게로.그는 직원을 시켜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남자의 일사불란한 행동을 지켜보는 이 순간..... 고은영의 마음은 더없이 따뜻해졌다.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녀는 늘 먼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그녀는 늘 혼자였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배준우는 그녀에게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전화를 끊은 배준우가 말했다.“10분만 기다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배준우가 당장 떠나자고 하지 않아서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고은지가 정말 걱정되었다. 고은지의 떨리는 몸을 생각하면, 오늘 밤 그녀가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었는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아니면 항상 차분하던 그녀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조영수가 집에 들어오자 조보은은 조영수를 끌고 진여옥의 말과 행동을 일러바쳤다. 그때 마침 진여옥이 방에서 나왔고 두 여자는 또 한 번 설전을 벌였다.결국 조영수가 한마디 했다.“내일 이혼서류 접수합니다!”이로써 양측의 설전도 끝이 났다.이 결혼은, 이젠 정말 끝이 날 것이다.조보은은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은지야, 너도 생각이란 걸 좀 해봐! 네 동생이 결혼하는데, 엄마인 내가......”“자격없어요! 엄마는 그럴 자격 없어요! 당장 나가요!”고은지의 정서는 또 한 번 격앙되었고, 조보은의 바뀐 태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조보은의 태도가 바뀐 데는 그저 고은영의 결혼에서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다.더군다나 배준우의 신분과 재력은 조보은을 흥분시킨다.하지만 고은지는 조보은이 고은영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굳게 먹었다.“안 가요?”“너 왜 이래!”“돈이 그렇게 좋아요? 내 목숨까지 줄까요?”고은지는 갑자기 조보은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가더니 손에 들린 과도를 쥐여주며 자기 배에 갖다 댔다.조보은은 깜짝 놀라 과도를 던져버리려고 했다!하지만 쉽지 않았다.
저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배준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상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배준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변해버린 배준우의 표정에 고은영은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그래, 알겠으니까 이만 들어가 쉬어.”말을 끝낸 배준우는 전화를 끊고 그는 고은영을 바라보았고, 고은영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배준우가 말했다.“네 언니 집에 일이 생겼어.”워낙 담력이 크지 않은 그녀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손이 덜덜 떨려왔다.그녀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어떤 일이요?”“경찰과 구급차 모두 도착했으니 자세한 건 가봐야 알 수 있어.”상황을 봐준 직원도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저 조 씨 가문이 현재 혼란스럽다는 것만 말해주었다.이웃들은 모두 조씨 가문 저택에 몰려들었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그도 잘 몰랐다.경찰과 구급차까지 대동했다는 말에 고은정은 점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몇 걸음 걷던 그녀는 이내 이상함을 눈치채고 뒤돌아보았고, 뒤에는 배준우가 따라오고 있었다.고은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뭐해요?”배준우가 물었다.“왜?”“준우 씨는 여기 있어요!”고은영이 다급히 말했다.고은지가 그녀를 지키듯이 그녀도 배준우를 지키고 싶었다.아니면 본능적으로 배준우를 이 일에서 제외하는 것일 수도 있다.어쨌든 그들의 결혼은 진짜가 아니기에 그녀는 배준우가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너......”“아니면 먼저 돌아가요. 나 혼자 갈게요.”조보은과 배준우를 만나게 하면 안 되기에 고은영은 다급히 말했다. 고은영은 경찰도 왔다는 소식에 아마 조보은이 조씨 가문 사람을 다치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했다.진여옥의 태도를 생각하니 조보은의 성격에 가만 둘 리가 없다.조보은은 눈이 돌아가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배준우가 물었다.“정말 나 필요 없어?”“네, 괜찮아요. 나 혼자
의사는 고은지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고 조영수와 진여옥도 고은지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고은영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고은영은 눈물을 흘리며 시선을 고은지의 창백한 얼굴에 고정했다.“나 아니야, 정말 아니야!”조보은은 넋을 잃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곧 고은지의 심장박동이 회복되었고 의료진은 바로 그녀를 구급차에 태웠다.진여옥은 조영수를 따라 구급차에 오르려고 했지만 조영수가 막았다.“엄마는 집에서 희주 돌보고 있어.”“그래, 돈 충분해? 가져다줄까?”이 순간, 진여옥의 얼굴에는 평소와 같은 악랄함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구급차에 함께 올라 병원에 가려는 그녀의 모습은 진심으로 보였다.조영수는 고개를 저었다.“충분할 거야!”고은영도 구급차에 타려고 했지만 진여옥이 그녀를 잡았다.“넌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어.”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하지만 구급차 문은 굳게 닫힌 채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그제야 고은영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조보은에게로 향했다.경찰은 아직 가지 않았고, 고은영은 진여옥에게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네 언니가 기절하기 전에 그랬는데, 엄마가 한 짓이래.”“우리 언니를 죽이려 했다고요?”고은영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그 장면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나와 네 형부는 다른 방에 있어서 구체적인 일들은 잘 몰라.”하지만 고은지가 조보은을 지목했으니 그들은 당연히 경찰에 신고할 수 밖에 없었다!지금 경찰은 조보은을 연행하려고 한다.고은영은 조보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그렇다면 조사에 잘 협조하게 해야죠.”그녀의 목소리를 더 없이 차가웠다. 조보은을 위해 경찰과 교섭하려는 의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그 말에 진여옥은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조보은의 평소 행동을 생각하니 고은영의 냉담함이 이해가 되었다.그녀는 고은지도 고은영처럼 이런 어머니에게 냉담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랐다!조보은은 정말 역겨운 인간이다. 돈 한 푼이라도 더 뜯어가려고 항
황급히 달려가는 고은영의 뒷모습에 배준우는 복잡하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 다 자기처럼 돈만 좋아하는 줄 아나 봐.’고은영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조영수는 초조한 얼굴로 응급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고은영이 조영수를 불렀다.“형부.”조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고은영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오늘 밤 일은 도대체 어떻게 발생한 건지, 그들은 현장에 없었으니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날 때 그 칼은 분명 고은지의 손에 들려있었다.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고은지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발악했고, 상황이 극도로 치달으면서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시간은 점점 지나갔다!이내 의사가 응급실에서 나와 마스크를 벗었고, 조영수는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제 아내 지금 어떤가요?”조영수의 절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했다.고은영은 평소에 조영수와 진여옥을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오늘 밤 고은지가 응급차에 오를 때, 그녀는 그제야 이 두 사람이 어쩌면 그녀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의사가 말했다.“상처는 깊지 않은데 과다출혈로 몸이 아주 허약해진 상태입니다.”“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상처가 깊지 않다는 말에 조영수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고은영이 물었다.“의식은 있어요?”“네, 의식은 찾았으니 곧 나올 겁니다.”“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고은영도 얼른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고은지가 깨어났다는 말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의사가 가고, 고은지는 간호사에 의해 응급실에서 밀려 나왔다.고은영이 달려갔다.“언니!”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은지를 불렀다.조영수도 앞으로 나와 고은지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었고 고은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조영수를 바라봤다.조영수는 한숨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줄곧 조보은에게 시달렸고, 오늘 진여옥의 말을 듣고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병실!고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
그 처참한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진호영과 진정훈은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았다.두 사람이 달려가 보니 병실의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김영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성택을 껴안고 있었고 진유경도 진성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침대 위의 진성택은 이미 눈을 감았다.의사와 간호사들도 두 사람의 소리를 듣고 얼른 달려왔다.5분 후. 의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안타깝게도 환자분은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아버지... 제발 눈 좀 떠봐요! 이대로 가지 마요! 안 돼요!”진유경이 눈물범벅으로 얘기했다.김영희도 눈물을 훔치면서 얘기했다.“성택아, 이렇게 우리를 두고 가면 어떡하니! 나와 유경이는 어떻게 해...”“그러게요, 아버지. 저랑 할머니는 아버지뿐이에요. 제발 가지 마요. 눈 좀 떠보세요.”두 사람은 그렇게 울면서 밖을 흘깃거렸다.진호영이 다가가려고 할 때 진정훈이 진호영의 손목을 잡았다.진호영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진정훈을 쳐다보았다.진성택의 사망에 진호영도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하지만 진정훈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도 짜증이 더욱 많았다.진성택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하지만 김영희와 진유경의 뻔한 연기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진성택은 진유경을 평생 아껴왔지만 진정훈에게 있어서 진유경은 아무것도 아니다.진호영은 그런 진정훈을 보고 약간 정신을 차렸다. 진호영은 증오심이 가득 묻은 두 눈으로 진유경을 쳐다보았다.진유경이 눈물을 흘리는 건 진성택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진성택의 죽음으로 인해 전에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진성택은 죽기 직전까지도 진유경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다. 진유경이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하지만 결국 아무도 진유경을 받아주지 않았다.진유경은 양딸인 데다가 진윤과 진정훈에게서 호감을 사지 못했기에 다른 가문에서는 진유경과 혼사를 맺고 싶지 않아 했다.유일하게 진유경을 받아들이는 허씨 가문은 진유경이 싫어했다.이젠 진
고은영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을 때 진정훈과 진호영이 돌아왔다.두 사람은 고은영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은영아, 뭐라고 하셨어?”진정훈이 먼저 물었다. 진호영은 어두워진 고은영의 표정을 보면서 감히 물을 수 없었다.고은영은 진정훈을 보고 또다시 진호영을 쳐다보았다.지금 고은영의 표정은 진호영이 고은영을 끌고 올 때보다 더욱 어두웠다.“나한테 진유경을 부탁한다고 하셨어.”“...”“...”두 사람은 고은영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렸다. 진정훈은 싸늘한 눈으로 진호영을 쳐다보았다.“중요한 얘기라는 게, 저런 거였어?”고은영에게 진유경을 맡기는 것. 그게 죽기 직전에 하고 싶은 말이었다니.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진호영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진호영은 고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미안해. 난 아버지가 그런 일로 널 부를 줄 몰랐어.”고은영은 진호영의 사과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진정훈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진유경에게 주식을 남겨주었으니 진유경의 주식을 정훈 오빠한테 빼앗기지 않게 챙겨주라고 했어.”“...”“...”두 사람은 또 그대로 얼어붙었다.정말 진유경 때문에 고은영을 부른 것이었다니.도대체 얼마나 진유경을 아끼기에 죽기 직전에도 친딸을 불러 양딸을 맡기려 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고은영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먼저 갈게.”“그래. 잘 가.”진정훈이 고개를 저으면서 얘기했다.고은영은 그대로 떠났다.진씨 가문에 아무 기대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공허하고 적적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진호영은 떠나는 고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다.진정훈이 진호영을 보면서 말했다.“이제야 안 거야?”“난 전혀 몰랐어... 아버지가 진유경의 일로 은영이를 부른 걸 알았다면 은영이를 불러오지 않았을 거야.”진호영은 정말 후회했다.진호영은 그저 고은영이 진성택의 친딸이니까... 친딸에게 해줄 말이 있을 줄 알고 데려온 것인데.결국 진성택은 모든 것을 진유경에게
거기까지 들은 고은영의 표정은 잿빛이 되었다.진성택도 그걸 알아차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어두워진 고은영의 눈을 보면서 이어서 얘기했다.“나도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다만. 하지만 은영아, 난 정말 유경이가 걱정돼. 그러니 네가 유경이를 잘 챙겨줘. 그럴 수 있지?”진성택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은영을 되찾아온 다음부터 진성택은 고은영 앞에서 진유경을 잘 챙겨주라는 말을 했다.죽기 전까지도 말이다.“나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준우 씨한테 부탁하는 거예요?”그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전에 김영희가 진유경을 데리고 배준우를 찾아왔을 때도 고은영은 그저 묵묵히 참았다.하지만 진성택이 또 이런 말을 꺼내다니.뭘 어떻게 챙겨주라는 건지.고은영이 무슨 능력으로 챙겨주라는 건지.“은영아, 그게 아니라...”진성택이 말을 더듬었다.고은영은 손을 빼내고 얘기했다.“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진유경이 걱정되면 데려가면 되잖아요. 죽어서도 계속 돌봐주면 되겠네요.”“...”고은영의 말을 들은 진성택은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내 말을 오해한 것 같은데... 배준우한테 도움을 청하는 건 아니야.”“...”“전에 정훈이 뭐라고 해서 네 엄마가 남겨준 주식을 너와 유경이한테 나눠줬잖아. 정훈이가 유경이 몫을 빼앗아가지 않게 잘 좀 챙겨줘.”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화가 끓어올랐다.죽기 직전까지도, 진성택은 진유경을 걱정하고 있었다.하지만 고은영은 그 정도로 마음 약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아무리 고은영이 나약해 보이고 연약해 보여도 마음만은 단단한 사람이었다.“제가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정훈 오빠가 진유경의 주식을 빼앗을까 봐 걱정하시는데... 그건 원래 진유경 몫이 아니었어요. 결국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진성택이 진유경에게 주식을 남겨뒀을 줄은 몰랐다.진정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고은영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은영아, 잠깐만...”진성택은 밖으로 나가려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