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세가 사람들이 떠나간 후 정태웅의 뒤편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기척을 느낀 정태웅이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윤구주가 서 있었다.“저하, 줄곧 여기 계셨군요?”“그래.”윤구주는 짧게 대답한 후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남궁서준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았다.“꼬맹이가 떠나서 많이 아쉬우신가 봐요?”정태웅은 그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겠어. 내 동생인데. 하지만 꼬맹이의 미래를 위해서 이대로 보내주는 게 맞아.”윤구주의 말에 정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꼬맹이를 위한 선택이셨군요.”윤구주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화궁.윤구주는 정태웅과 함께 백화궁으로 돌아왔다.백화궁 입구에 막 도착해보니 거기에는 차량 여러 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경찰차도 보였다.이에 사람들 쪽을 바라보니 바로 앞에 암부 제36여단 여단장인 원건우와 서남 경찰서장인 육명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은 윤구주와 정태웅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휘사 님을 뵙습니다.”원건우는 윤구주의 정체를 아직 모르기에 정태웅에게만 인사를 올렸다.정태웅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두 사람을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여기는 왜 왔어? 특별한 일 없으면 찾아오지 말랬잖아.”원건우가 답했다.“중요한 보고가 들어와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뭔데, 빨리 얘기해.”정태웅이 귀찮은 얼굴로 물었다.원건우는 윤구주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외부인 앞에서는 얘기하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 뜻을 눈치챈 정태웅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뭐해, 말 안 하고. 그리고 옆은 왜 자꾸 힐끔거리는 건데? 얘기하기 싫으면 이만 돌아가. 나 피곤해.”그 말에 원건우는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아닙니다. 지금 당장 얘기하겠습니다. 크흠, 저희가 입수한 소식에 의하면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수십 명의 킬러가 서남지역에 발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 킬러들은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은 놈들이고요.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미
암부 지휘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국제킬러들을 막지 않고 그냥 들여보내는 걸까?원건우와 육명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정태웅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어 밖으로 나갔다. 서남 여단장과 육명진이 나가고 나서야 정태웅은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저하, 그 겁대가리 없는 놈들이 정말 온 것 같습니다.”윤구주는 백화궁으로 향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전부 다 올 때까지 기다려서 죽일 거야.”윤구주는 열 팀의 국제킬러들이 제 목숨을 노리는지도 모르고 태평하게 내일은 소채은과 쇼핑도 하며 맛있는 것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대스타의 은설아의 방.탁시현의 일을 계기로 은설아는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그 대가가 지금 바로 치르는 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치러야 할 것이었다.그래서 은설아는 연예계를 떠나고 싶었다.어차피 천음 엔터의 일로 공연과 활동도 전부 정지되어 이미 연예계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었으니 지금 은퇴한다 해도 아무도 저를 잡지 않을 것이다.“됐어!”“나 안 해! 은퇴할 거야! 이런 생활 이젠 지긋지긋해.”은퇴를 결심하자 은설아는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2년 동안 연예인을 한다고 그래도 돈을 꽤 모아놓은 데다 예쁜 미모까지 있으니 연예인을 안 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마음의 짐을 덜어낸 은설아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욕조에 물을 받고는 그 위에 장미꽃 잎을 떨어트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그렇게 온몸으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으니 또 그놈의 윤구주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밤에 잠을 잘 때도 그러더니 젠장.“설마 내가 은인님을 좋아하나?”윤구주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은설아가 빨개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은인님은 이미 그렇게 예쁜 여자친구도 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내 맘엔 영웅님 말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도 없어.”...어느 화려하기 그지없는 별
처음에는 은설아를 천음 엔터에서 잘 키워서 대스타를 며느리로 맞으려고 했으나 지금은 제 아들이 그런 연예인 나부랭이 때문에 죽었으니 은설아도 살려둘 수 없었다.“내가 그년 사는 게 죽기보다 못하게 만들어 줄 거야!”음침한 말을 뱉은 탁천수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로비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로비 뒤쪽에는 비밀공간인 암실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마침 향문에서 온 주술사 명재경이 있었다.그는 다가오는 탁천수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인사를 올렸다.“회장님!”“사부님께서는 회장님 말씀대로 그 연예인에게 피의 저주를 걸고 계십니다.”“들어가서 확인해보지.”명재경은 탁천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돌로 된 문을 열어젖혔다.문이 열 리가 스산한 암실이 탁천수의 시야에 펼쳐졌다.암실은 아주 컸는데 내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침했다.명재경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내부에는 큰 제단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외눈 나사의 조각상이 놓여있었다.그리고 백발의 얼굴에는 노란빛을 띠는 노인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그 모습으로 보아 그가 바로 마재경이 말한 사부님이라는 향문 태현문에서도 내공이 태허경지에 오른 주술사 같아 보였다.그의 이름은 진구양이었고 나이는 불혹을 넘어섰는데도 온몸에서 뿜어내는 음습한 기운에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탁천수마저 진구양을 보고 몸을 떨어댔다.진구양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며 손에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은설아의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그리고 사진의 뒤에는 검은 개의 피로 쓰여진 은설아를 사주팔자가 적혀져 있었다.이게 바로 지금껏 지현과 주문으로 이름을 날려온 향문 술법이었다.그중에서도 진구양은 태허경지에 오른 주술사였으니 그 명성이 더 대단했다.탁천수가 그런 진구양을 제 아들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이리 부른 것이었다.“음귀오로, 주술개천!”“사세피고, 태현귀일!”“피의 저주!”진구양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들어 빠르게 허수아비를 향해 3번의 주술법인을 퍼부었다
그리고 향문에서 왔다는 주술사가 주문을 외울 때 백화궁에도 바람이 일었다.음풍이었다.그 음풍에 창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집에서 소채은과 시간을 보내던 윤구주도 그 음풍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바람이 부는 거야?”소채은도 어디서 온 음풍인지 몰라 일단 창문부터 닫았다.“채은아, 이리와!”“응? 왜 그래 구주야?”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자 소채은이 멈칫하며 놀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봤다.윤구주가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 대고 휘젓자 윤구주에게서 뿜어져 나온 현기에 맞은 음풍은 귀신이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난생처음으로 들어보는 괴이한 소리에 소채은 얼른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를 질렀다.“이 소리 뭐야? 나 너무 무서워 구주야...”윤구주는 소채은을 품에 안으며 다독였다.“괜찮아, 진정해 채은아.”“죽으려고 환장했나, 누가 감히 격공주술을 걸어!”격공주술이 뭔지 몰랐던 소채은이 윤구주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뭐야?”“나중에 알려줄게. 일단은 장에 얌전히 있어. 알겠지?”“응.”소채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본 윤구주가 술법으로 순식간에 방 밖으로 나왔다.정원에 도착하자 윤구주의 시린 두 눈에서 금색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금색 눈동자로 주변의 훑어보던 윤구주의 눈에 은설아의 방으로 향하고 있는 사악한 기운이 보였다. “은설아 씨한테 보낸 거였네.”윤구주는 다시 몸을 흔들더니 순식간에 은설아의 방앞으로 와 소리쳤다.“은설아 씨!”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은설아에 윤구주는 방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윤구주가 들어오자마자 사악한 기운이 은설아의 방을 겹겹이 에워쌌다.윤구주는 코웃음을 치고는 손바닥으로 그 기운들을 밀어내자 또 아까와 같은 귀신 울음소리를 내며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져버렸다.그리고 윤구주가 다급히 은설아를 찾아 뛰어갔을 때는 목욕을 하고 있던 은설아의 얼굴이 원래의 미모를 잃고 귀신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
남은 4기는 윤구주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그리고 지금 시행 중인 술자지는 윤구주가 천하의 술법들을 교묘하게 섞어서 만들어 낸 신통이었다.신통에는 술법의 근원부터 화진 전체 술법의 핵심들이 다 들어있었다.윤구주는 “술” 자지를 시행한 뒤 두 손을 교차시켜 은설아의 머리 위로 눌렀다.펑!말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하늘도 놀랄만한 술법의 기운이 은설아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그리고 윤구주가 팔기지의 “술” 자지를 쓸 때 천 리 밖 밀실에서 탁천수와 얘기 중이던 진구양은 심장이 '쿵' 하는 느낌에 얼른 은설아의 사진을 붙여놓은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는데 그때는 이미 허수아비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뭐야!”“내 피의 저주를 푼 놈이 있어!”깜짝 놀란 진구양이 두 손을 움직이며 다시 주술을 걸려고 할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운이 심장을 짓누르며 '펑' 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태현문 주술사의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며 진구양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사부님!”“진 술사!”옆에 서 있던 수하와 탁천수가 단번에 쓰러져 피를 흘려대는 명망 높은 향문 주술사를 보며 다들 어안이 벙벙해 했다.현기에 제대로 맞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진구양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고수야! 젠장! 이번에는 진짜 고수라고!”“진 술사, 왜 그러십니까?”다급히 물어오는 탁천수에 진구양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아무래도 그년 옆에 저와 같은 고수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술법이 너무 강해서... 제 피의 저주를 풀고 또 격공으로 저를 죽일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은 저도 처음입니다. 아까 제가 저주를 빨리 풀지 않았더라면...”진구양이 더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탁천수 같은 사람이 그 뒤에 이어질 말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럼 그 년을 못 죽인단 말씀이시죠 지금?”탁천수의 질문에 진구양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제가 회장님 돈을 받은 이상 무슨 수를 써서든 성공시키겠습니다. 그전에 그 고수와 맞설
“네.”윤구주는 아까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정말 죽을 뻔했다는 말에 깜짝 놀란 은설아는 눈물까지 흘렸다.“걱정 마요. 그 주술은 이미 내가 막아냈어요. 그리고 그 사람도 다치게 만들었으니까 당분간은 아무 짓도 못 할 거예요.”윤구주의 위로를 듣고 있던 은설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고마워요, 은인님!”그러자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은설아의 백옥같은 몸이 윤구주의 시야에 들어왔다.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 몸에 긴 다리까지 더해지는 윤구주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제야 제가 목욕을 하느라 옷을 다 벗은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린 은설아는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은설아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윤구주에게 제 알몸을 보여줬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와 다시 욕조 속으로 몸을 숨겼다.“그... 은인님, 제...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고양이처럼 바들바들 떠는 은설아를 보던 윤구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나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리고 이젠 안전하니까 얼른 씻고 나와요.”말을 마친 윤구주가 밖으로 나오자 연규비와 정태웅이 인기척을 듣고 달려왔다.“저하!”“제가 아까 자다가 사악한 기운을 느껴서 바로 은스타님 방으로 달려왔어요!”“저하, 그 연예인분은 괜찮으십니까?”정태웅과 연규비 모두 대가 경지에 오른 상급 대무사였기에 당연히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둘은 기운을 느끼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아까 어느 미친놈이 격공주술을 걸어서 은스타님을 죽이려고 했어. 지금은 다 해결했어.”“격공주술이라고요? 누가 그런 짓을 합니까?”수련자라면 태허경지에 올라도 함부로 격공으로 사람을 죽이는 짓은 못 하는데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정태웅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게다가 그 주술 대상자가 은설아였으니 정태웅과 연규비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천 리 밖에서 거는 격공주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
“은스타님을 죽이려 한 건 분명 천음 엔터 그 망할 놈의 사장일 거예요.”정태웅이 화가 나서 소리치는 말에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왔으니 우리도 좀 움직여봐야겠지.”말을 마친 윤구주는 정태웅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뚱땡이, 네가 해줄 일이 있다!”정태웅은 윤구주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저하!”“암부에 가서 전해. 오늘 서남경찰서 전체 휴가라고. 아무도 당직 서지 못하게 해!”윤구주의 명령에 의아했던 정태웅이 되물었다.“휴가요?”“그래.”“왜 갑자기 휴가를 주시는 겁니까 저하?”“오늘 밤은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으니까.”정태웅은 그제야 이해한 듯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저하 말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그리고 하나 더.”“말씀하십시오.”“암부에 내일 아침 성에 널린 시신들 거둬 가라고 해.”시신 수거라는 말에 정태웅과 연규비는 심장이 철렁했지만 정작 윤구주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늘 높이 뛰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그들은 오늘 밤에 화진에 피바람이 불 걸 예상했다.누군가가 감히 화진 제일 신왕을 건드렸으니....달이 뜬 밤이 되자 백화궁 근처의 30층이 넘은 고층 건물 위에 누군가 신처럼 올라 서 있었다.그 훤칠한 얼굴에 달빛이 비추자 길게 뻗은 기럭지가 그림자가 되에 건물 위에 드리워졌다.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천만이 넘는 사람들의 화려한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이제 시작해야지.”말을 마친 윤구주의 눈에서 갑자기 물결이 치기 시작했다.윤구주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바로 신념술이었다.수련자의 신식과 비슷한 신념은 내공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내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념술이 더욱 강했다.주위의 풀들도 윤구주의 신념을 느낀 건지 가볍게 떨어댔다.그리고 신념술을 행하고 있는 윤구주는 주위의 풀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사람 신혼의 움직임까지 다 느낄 수 있었다.윤구주의 전성기에는 반경 10킬로
정태웅이 윤구주의 명령대로 암부에 지시하는 것도, 연규비가 잠옷으로 갈아입으며 잘 준비를 하는 것까지, 윤구주에게 가장 가까운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빠짐없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펼쳐졌다.그는 골목 어귀에서 술에 취한 남자 둘이 욕을 하며 노상 방뇨를 하는 것도 보았고 나이 지긋한 노인이 라디오를 들으며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여자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것도 보았으며 강가의 커플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사랑을 나누는 것도 보았다.수많은 광경들이 윤구주 눈앞에 선명히 나타났지만 그것들은 윤구주가 알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윤구주가 찾고 있는 건 저를 죽이려고 서남까지 침입한 국제킬러들이었다.그래서 윤구주는 또 한 번 현기를 모으며 신념술을 다시 시행했다.신념술이 빠르게 퍼져나가자 윤구주의 새까맣던 머릿속에 수많은 불빛들이 나타났다.밤하늘의 별들마냥 빼곡히 머릿속을 채운 불길들은 바로 사람의 정신의 불이었다.정신의 불은 저마다 주인의 생기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젊은 사람은 그 기운이 강했고 나이든 노인이거나 어린아이는 미약했다.수많은 기운들이 윤구주 머릿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오랜 훈련과 수련을 거친 무사의 불빛은 활활 타오르는 성화마냥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때마침 윤구주의 머릿속에도 그런 불빛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서남에 헬스를 하는 사람들이 많나 보네.”제 머릿속의 불빛들을 훑어보던 윤구주는 비록 강한 불빛들을 보았지만 그건 무사의 불빛이 아니라 그냥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불빛임을 알고 있었다.무사의 불빛은 그런 사람들과는 또 달랐다.그렇게 또 한 번 거르고 나니 마침내 무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3킬로미터 밖의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들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국제킬러였다.“드디어 찾았다.”입꼬리를 올려 웃은 윤구주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금빛 연꽃이 두 눈에 피어났다.윤구주가 손으로 미간을 누르자 그 연꽃들이 하늘로 흩뿌려지며 국제킬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이렇게 자국을 남겨놓으면 찾기가 더 쉬워질 것이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