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문연진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문연진이 구씨 가문을 떠나면서 이미 포기한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승훈 오빠라고 부르며 일부러 약선 요리까지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오늘 밤 네 경쟁 상대는 문연진이야.”박근형은 강하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다가와 귓속말로 중얼거렸다.“문연진은 언어에 재능이 있고 이번 미션이 고대 유물과 관련된 건데 문씨 가문 어르신이 이 분야의 전문가라서 문연진이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이 분야에서는 너보다 조금 유리할지도 몰라.”그래도 아끼는 제자가 남에게 이용당하는 건 원치 않았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특별히 준비도 많이 하고 정보도 많이 찾아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박근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강하리의 실력을 믿었다.하지만... 그는 슬쩍 저쪽에 있는 심사위원 테이블을 바라보았다.오늘 밤 이 대회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연진이 이쪽으로 걸어왔다.“강하리 씨, 우리 또 만나네요.”강하리는 싱긋 웃으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문연진 씨, 반가워요.”박근형은 옆에서 살짝 의아한 모습이었다.“둘이 아는 사이야?”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연진이 먼저 대답을 꺼냈다.“몇 번 만난 적 있어요.”박근형의 눈빛이 번뜩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강하리를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교수님, 제 걱정은 마세요, 괜찮아요.”박근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와 문연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난 가서 준비하고 있을게.”박근형이 나가자 문연진은 강하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강하리 씨, 오늘은 승훈 오빠가 그쪽 편 안 들겠죠?”말을 하며 그녀는 또다시 웃었다.“남자에게 빌붙기만 하는 여자는 노리개와 다름없다는 말을
박근형은 오늘 강하리가 지더라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심사위원석에 앉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복잡했다.강하리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터라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몇 명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모두 가운데 앉아 있는 문씨 가문 어르신, 문원진을 바라봤다.이때 문원진의 얼굴엔 다소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그가 오늘 굳이 문연진에게 이 대결을 하라고 했던 건 문연진이 강하리보다 열등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여 많은 인맥을 동원해 이 상황을 만들었고 심사위원들에게도 미리 언질을 해 둔 뒤였다.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연진은 강하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강하리라는 여자가 이기면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착한 손녀도 사람들에게 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는 손녀의 몫이 되어야만 했다.사실 대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속으로 이미 답이 나왔지만 최종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연진이 이기게 되었다.“강하리 씨도 잘했지만, 우리가 봤을 때 강하리 씨는 통역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협상하는 걸로 보였어요. 통역사는 통역사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문연진 씨가 통역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심사위원들의 결론이 나오자 회의실 전체가 술렁였다.강하리는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 채 방음실 입구에 서 있었다.처음으로 너무 잘해도 탈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문연진은 옆 방음실 문 앞에서 강하리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강하리 씨, 오늘 결과에 만족하시나요?”강하리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웃었다.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연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문연진 씨가 떳떳하게 이겼다고 생각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네요.”문연진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조금 옅어지더
“속상해?”남자의 눈에는 아픔이 묻어났다.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눈꼬리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곳에 맺힌 물기를 살짝 문질렀다.강하리는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B시로 출장 왔어.”강하리는 눈가에 번지는 서글픔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억울한 건 괜찮다고 쳐요. 근데 내키지는 않아요. 내가 분명 더 잘했는데.”“맞아, 네가 백만 배는 더 잘했지.” 구승훈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까, 어때?”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며 한참 후 웃음을 터뜨렸다.“외교부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좋아요. 됐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구승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내가 참견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능하지.”그렇게 말한 뒤 그는 강하리에게 옆을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그제야 강하리는 자신의 옆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교부의 중요한 임원들이었다.진태형을 비롯해 백아영과 심준호까지 왔다.심준호 옆에는 징계 위원회 직원들도 있었다.강하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다가 구승훈을 돌아보았다.구승훈이 웃었다.“모두 옆 회의실에서 너와 문연진의 대결을 지켜봤어. 누가 이기고 졌는지도 똑똑히 봤지. 진 장관님이 사적으로 해결했는지, 문씨 가문이 부당하게 힘을 썼는지 다 알고 있어. 신고한 사람도 찾았고 이미 징계 위원회로 가서 모함한 거라고 자백했어. 너와 진 장관님은 이제 결백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밤에 제대로 정의 구현할 수 있으니까.”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끝이 시큰해졌다.원래는 별로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려 진태형을 바라보았다.“삼촌, 남은 일엔 더 간섭하지 않을게요.”진태형은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방금 결과를 발표한 직원을 차갑고 엄숙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훌륭한 통역사는 통역사다운 모습을 보여라, 누가 보면 네가 협상하러 올라간 줄 알겠다. 자, 그럼 그쪽이 올라와서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말해 보시죠?”방금 결과를 발표하던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고 진태형은 말을 이어갔다.“여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잊어버리고 특혜를 받았는지, 징계 위원회 분들이 전부 똑똑히 밝혀낼 겁니다, 오늘 이 대결의 결과에 대해서는...”진태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연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진 장관님, 제 실력이 강하리 씨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 오늘 밤 이 기회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문연진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당황했다.아무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정의 구현을 하려던 상황이 문연진의 말 때문에 마치 진태형이 외교부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그들에게 기회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졌고 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네 거야, 네가 양보하게?”당황한 문연진의 얼굴이 서서히 하얗게 질렸다.구승훈의 어투에는 여전히 조롱이 가득했다.“애초에 이 기회는 네가 훔친 거니까 이제 돌려준다고 하는 게 맞지, 문연진 씨, 이 정도 도리도 모르나?”문연진의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려 있다가 한참 후 싱긋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 오해에요. 이 기회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거고 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양보하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됐어요?”심준호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공정한 경쟁이라니요, 조금 전 대결은 우리 모두가 지켜봤어요. 문연진 씨는 이런 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합니까? 공정한 경쟁이 무슨 뜻인지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문연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심준호에게 밉보일 수 없었기에 도움을 청하듯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문원진이 손녀를 위해 나서려는데 진태형이 먼저
강하리가 뒤돌아보니 주해찬이 문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못본 사이 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의 모습은 더 활기차 보였다.주해찬은 진태형과 함께 와서 강하리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구승훈이 강하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이제 막 떠나려는 그녀를 보며 도저히 참지 못한 그가 불러세운 것이었다.강하리의 눈에 미소가 담겼다.“선배, 오랜만이네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렇게 말한 뒤 강하리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던 그의 가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동안 연성에 가본 적이 없고 특별히 연성에 대해 들은 것도 없었지만 구승훈과 강하리가 화해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정주현이 매일 같이 그에게 푸념을 널어놓았으니까.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그럭저럭요, 선배는요?”주해찬은 눈가의 씁쓸함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냥 그래.”강하리가 다른 말을 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았다.“주해찬 씨 요즘 맞선 본다면서요? 어때요, 잘 되어가나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제가 듣기로 구승훈 씨도 맞선을 본다던데요.”구승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주해찬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고 그녀는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좀 받을게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가 옆으로 걸어가자 구승훈의 시선은 그녀를 쫓았고 주해찬은 그런 그의 표정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구승훈 씨, 그렇게 매달리면서 손 놓지 않겠다면 앞으로 잘해주세요. 잘해주지 않으면 내가 또 데려갑니다.”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며 주해찬을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주해찬 씨, 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는데?”주해찬의 눈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난 자격 없죠. 하지만 구승훈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구승훈 씨, 정말 하리를 사랑해요, 아니면 그저 당신 소유욕 때문인가요?”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주해찬 씨,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주해찬은 그를 바라보았다.
“주해찬 씨, 시간도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야, 애초에 너를 힘들게 한 건 우리 가족이었으니까 이별을 선택한 너를 탓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너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선배 말이 사실이에요?”구승훈은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하리야...” 강하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건 확실히 구승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구승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화났어?”“아니요.” 대답을 마친 강하리가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가자 구승훈은 서둘러 따라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웠다.차에 탄 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 화 풀어, 응?”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론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기도 하고, 오늘처럼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녀를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가끔은 그가 정말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손에 얻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차 안엔 끔찍한 적막이 감돌았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그 일 말고 또 나한테 수작 부린 거 있어요?”구승훈의 목울대가 일렁거렸다.많았다.“일부러 다쳤어. 전에 팔 다쳤을 때 피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때렸을 때도 피할 수 있었어... 교통사고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어.” 강하리는 멍하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독하게 자신이 다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강하리는 답답함이 밀려왔다.“구승훈 씨, 자기 몸으로 장난하는 게 재밌어요?”구승훈은 그녀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
강하리가 멈칫했다.벌써 12시가 넘었는데 3시 비행기라면...적어도 두 시에는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구승훈은 축 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좀 거둬줘, 응?”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소파에서 자요.”구승훈은 서둘러 말했다.“샤워하는 거 도와줄까?”“필요 없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았다.문제는 더 진도를 나가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했다.한 시간 조금 넘게 남은 시간으로는 전희만으로도 부족했다.강하리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구승훈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그녀가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상대방에게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고 강하리는 그를 힐끗 바라본 뒤 침대로 향했다.구승훈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수건으로 하체만 감싸고 나왔다.강하리는 순간 당황했다.분명히 목욕 가운이 있었는데 왜 굳이 수건만 두르고 나왔을까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문득 그의 복부에 있는, 길지는 않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흉터에 시선이 갔고 다소 흉측하기까지 했다.순간 입가에 차오른 말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소파는 불편해. 아무 짓도 안 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적당히 해요.”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누웠다.“정말 아무것도 안 해, 하리야. 너랑 잠시만 이대로 같이 있고 싶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용한 방 안에서 귓가엔 온통 구승훈의 숨소리만 울려 퍼지자 강하리의 심장이 어느새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구승훈이 자신을 위해 힘들게 뛰어다닌다는 걸 잘 알았다.그녀는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잠깐 쉬어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했다.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옷깃 안으로 파고들며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움켜쥐었다.강하리의 몸이 심하게 굳어지며 경고하듯 그를 불렀다.“
구승훈이 보낸 건 사진 한 장이었다.비행기에서 찍은 일출, 하늘의 절반을 물들인 찬란한 아름다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강하리는 그 사진에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물렀다가 저장한 뒤 휴대폰을 베개 밑에 넣고 잠이 들었다.진태형이 데리러 올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주해찬이었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어젯밤에 잘 잤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다행이다, 잘 못 잤을까 봐 걱정했어.”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하리야, 너랑 구승훈 씨 화해한 거야?”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아직요.”아직 화해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강하리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구승훈이 다가오는 걸 점점 거절하기 힘들었다.다만 구씨 가문 사람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주해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짐을 챙겨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주해찬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하리야, 내가 잘못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고 주해찬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잘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애초에 그렇게 포기하는 게 아닌데.지금 구승훈의 상황은 그와 비슷했지만 분명한 건 구승훈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만약 자신도 그때 조금만 버텼다면 지금 그들 사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강하리는 구승훈의 전화가 왔을 때 막 차에 올라탄 상태였다.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영상통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출발했어?”말을 마친 구승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주해찬 차에 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진 장관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라고 보냈어요.”구승훈이 차갑게 웃었다.“진 장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저 사람을 보내?”“구승훈 씨, 말조심해요!”말을 가려 할 여념이 없었던 구승훈은 지금 당장 다시 날아가고 싶었다.“주해찬도 이번 일에 참여해?”강하리는 지금까지도 이번 일 구성원에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