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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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취침 준비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전…”“부인, 잊지 마시오. 이 저택에 처가 부인 한 명밖에 없지만 어마마마가 항시 지켜보고 있다는걸.”“저는…”이육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신혼 부부가 벌써 방을 나눠 쓰겠다는 뜻이오? 이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은 해보았는가?”소우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육진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말했다.“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렇다고 내 뜻을 오해하지는 말게.”이육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소우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이육진을 쳐다보았다.뭘 오해하지 말라는 거지?“이 모든 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오.”이육진의 직설적인 말에 소우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악역과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낸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한편, 소우연이 실망한 듯 한숨을 살짝 내쉬자 이육진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정연에게 미리 가서 준비하라고 하고 저도 곧 본채로 돌아가겠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고 이육진은 그런 소우연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이 방도 꽤 깔끔하게 잘 정리한 것 같은데 여기서 자도 괜찮겠네.”소우연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이육진을 쳐다보았다. 원칙대로라면 소우연은 이 저택에 들어오고 나서 따로 별채를 정해서 지내야 한다.하지만 그 별채가 이런 방식으로 정해질 줄은 몰랐다.“네, 알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우연은 바로 문 앞으로 가서 정연을 불렀다.“정연아, 왕야께서 씻을 수 있게 욕조 물을 준비하거라.”곁방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정연과 명심은 재빨리 대답한 뒤, 하인을 시켜 욕조물을 받아왔다.“전 약방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소우연의 말에 이육진은 어디선가 꺼낸 책을 쓱 훑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의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구나.”이육진 손에 든 책은 소우연이 오늘 읽었던 의서였다.“전 모든 일에 진심입니다. 재미로 대충 하는 게 아니니 왕야께서는 저를 믿으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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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안 돼… 안 돼…”뼛속까지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던 소우연은 희미한 신음을 내뱉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악몽을 꾸었음을 깨달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침대에 상반신을 일으킨 채 앉아 있던 이육진과 시선이 맞닿았다.“부인, 악몽을 꾼 것이오?”소우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저, 저 때문에 깨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조심스럽고 망설이는 듯한 소우연의 목소리에 이육진의 심장은 순간 움찔했다.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구를 위로해 본 적이 없는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릴 뿐이었다.겁에 질린 소우연이 점점 심하게 몸을 떨던 그때, 이육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무서워할 것 없네. 내가 곁에 있잖소.”‘이 남자가 지금 날 위로해주고 있는 건가?’흠칫하던 소우연은 이육진의 다정한 손길에 조금씩 진정이 되고 있었다.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이육진의 손길은 너무 따듯했고 그 따스함은 어느새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전생에 이렇게 그녀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준 사람이 없었고 이번생에서도 처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갑지만 이육진은 그녀의 체면을 확실하게 지켜주었다. 만약 이육진이 소우연을 모른 척했다면 그녀는 손발이 잘리지 않더라도 이 저택에서 괴롭고 힘든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왕야…”떨리는 목소리로 이육진을 부르던 소우연은 이육진의 손을 머리에서 내려 두 손으로 꼭 잡았다.“너무 고맙습니다.”툭.고요한 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이육진의 손등에 떨어졌고 그 촉감은 너무도 낯설었다.“무서운 꿈을 꾼 것이오?”이육진이 소우연의 손을 꼭 잡으며 묻자 소우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무 끔찍한 꿈이었습니다.”사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전생에 소우연이 직접 겪었던 끔찍한 기억들이었으며, 비록 이번 일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발과 심장은 여전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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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정신을 번쩍 차린 소우연은 머릿속에 모든 게 가짜라고 했던 이육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저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 그녀에게 손수건을 챙겨준 것만 해도 이미 너무 대단한 일인데 더 이상 욕심을 내서는 절대 안 된다.마음을 다잡은 소우연은 이육진을 쳐다보며 말했다.“왕야께서 이건 그저 꿈이라고 하셨지만 만약 신혼 첫날 제가 정말 도망쳤다면 이 꿈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요? 소씨 가문 사람들은 저를 가족으로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이육진은 말문이 막혔다.소우연이 말한 것처럼 신혼 첫날 그녀가 도망쳤다면 이육진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아도 어마마마가 나서서 소우연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이육진은 소우연이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앞으로 부인이 본분만 잘 지키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 저택에서 계속 이렇게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오.”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 평생 왕야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이육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우연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녀는 이번생에 이육진 곁에만 있을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혹 부인은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오?”혹시 소우연은 처녀였을 때 이육진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육진이 이렇게 얼굴이 망가지고 다리가 못 쓰게 되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아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진규가 조사한 사실에 따르면 소우연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사내는 평서왕의 아들 이민수이고 꽃가마에 오르기 전에도 분명 회남왕 관저에 시집오기 싫다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한편, 이육진이 이렇게 묻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소우연은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이 경성에 왕야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분명 소우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내가 따로 있다는 걸 알면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조금이나마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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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네.”앳된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 소녀는 부스럭거리며 뭔가 만지고 있었고 이육진을 위해 약을 발라주겠다고 했다.이육진은 정신을 번쩍 차렸고 이내 분노와 원망, 복수심으로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지만 지금 이런 몸으로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내 모습이 너무 흉하고 추하지 않느냐?”이육진의 물음에 소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고쳐드리겠습니다.”소녀는 이육진의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육진은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이육진은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이 부장에게 배신을 당하여 장막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겨우 정신을 차린 이육진은 힘겹게 기어서 장막을 벗어났지만 이 부장은 이육진을 살려둘 생각이 없는 듯 검을 빼서 이육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얼굴에 화상을 크게 입은 이육진은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제대로 싸울 수도 없었다. 이 부장은 그 점을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검으로 이육진의 얼굴을 베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를 몇 번이나 힘껏 찔렀다.이육진은 이를 악문 채 이 부장에게 반격했고 결국 이 부장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눈앞이 점점 흐려지던 이육진은 다친 몸을 끌고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다가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뛰어들었다.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육진은 이 부장만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그런 일을 겪고도 그의 얼굴이 멀쩡할 수 있을까? 이 부장이 살해되긴 했지만 이육진은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았다.이육진은 분명 황태자의 신분으로 상운국 차기 황제인데 이 부장이 미치지 않고서 이육진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이육진을 잘 따르면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텐데 대체 왜 이육진을 죽이려고 한 걸까? 그 배후에 과연 누가 있는 걸까? 이 부장은 또 무슨 이유로 그자에게 충성을 다한 걸까?예전 생각에 빠져 있던 이육진이 호위 무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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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그럼 내 다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도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리도 충분히 나을 수 있습니다.”이육진은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복수를 하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살아남아야만 이 부장이 왜 그를 배신했는지 확실하게 알아낼 수 있다.그 뒤로 소녀는 매일 찾아와 이육진에게 치료를 해주었고 식사도 챙겨주었다.덕분에 이육진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었고 시력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소녀는 이육진 얼굴에 감은 붕대를 풀어 주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이육진은 소녀가 왜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나중에 남강에 사람을 보내 은인인 소녀를 여러 번이나 찾았지만 소녀에 관한 소식은 전혀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소녀에게 불가피한 상황이 있어서 더는 찾아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이육진을 살려준 소녀가 정말 소우연이라면 그때 당시 소우연의 나이는 불과 열세 살이었기에 지금과 목소리가 다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소우연 몸에서 나는 약초 향은 그때 당시 그 소녀에게서 났던 약초 향과 똑같았다.“진규야, 혹시 소씨 가문 첫째 딸도 의술을 익혔다고 하더냐?”이육진의 물음에 진규가 대답했다.“왕비님께서 왕야의 얼굴을 고쳐드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소인 생각엔 의술을 할 줄 아시는 것 같습니다.”진규도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이육진이 아무런 대꾸도 없자 진규가 눈치를 보다가 말을 이어갔다.“소씨 가문에서 대외적으로 소문을 내지는 않았지만 소씨 가문 둘째 따님은 의학 천재이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의서를 독학했고 집안 사람들을 위해 많은 약들을 조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 장군님께서 군중에서 병사들에게 쓰고 계신 약들도 전부 소씨 가문 둘째 따님이 만든 거라고 합니다. 왕야를 살려준 사람은 분명 의학을 배운 자였습니다. 그럼 왕비님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 둘째 따님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소우희… 그 여자가 만든 약을 한 병 구해와.”“알겠습니다.”진규가 돌아서던 그때, 이육진이 말을 보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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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한편, 배나무 별채에서.소우연은 시녀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마당에서 약재를 말리고 있었다.이육진의 눈에, 밝은 햇빛 아래 비친 소우연은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하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조차 그녀의 미소는 고왔고, 말투는 한없이 온화했다.행동 하나하나가 겨울에 피어난 동백꽃처럼 상대방을 기분 좋고 편하게 해주었다.‘그녀가 맞을까? 그녀가 맞을 거야.’이때, 멀리 서있던 이육진을 제일 먼저 발견한 명심이 큰소리로 말했다.“왕야께서 오셨습니다.”마당에 있던 하인들과 소우연은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고 이육진은 그런 소우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이내 표정을 숨겼다.소우연은 이육진의 그런 미소를 발견했지만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이육진이 그렇게 웃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왕야께서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소우연이 다가가 휠체어를 밀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왕야가 평소에 외출을 거의 안 하시고 서재에만 계신다고 했던 정연의 말이 떠올랐다.그래서 이육진의 피부는 핏기 없이 창백할 정도로 하얬고, 본래 흉터가 짙은 얼굴은 오랜 시간 햇빛을 받지 못해 더욱 초췌해 보였다. 앙상한 손가락마저 뼈가 도드라져 보일 만큼 야위어 있었다.“부인이 무엇을 하느라 이리도 바쁜지, 그리고 내 얼굴을 어떻게 치료해 줄 생각인지 확인하러 왔소.”흠칫하던 소우연은 이내 이육진 앞으로 다가가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왕야, 제가 왕야를 고쳐드릴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당황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육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부인이 정말 내 얼굴에 난 흉터들을 티가 안 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그녀에게 다리도 맡길 수 있다는 이육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린 소우연은 맹세하듯 말했다.“제가 왕야를 반드시 고쳐드릴 겁니다.”피식 웃던 이육진이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그럼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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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향이 참 좋소. 이 차는 어디서 산 것이오?”이육진이 소우연을 빤히 쳐다보며 묻자 소우연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보였다.“이 차는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환절기에 몸이 으스스하고 기침이 날 때 이 차를 마시면 많이 나아집니다.”“부인이 직접 만들었다고?”“네.”“소문에 의하면 소씨 가문 둘째 따님도 의술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자도 이 차를 만들 줄 아시오?”순간, 표정이 확 굳어진 소우연이 대답했다.“의술이 뛰어나다… 혹 왕야께서 군영에서 쓰는 약들도 전부 소우희가 만든 걸로 알고 계십니까?”이육진이 대답을 하지 않자 소우연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소우희는 의술을 전혀 모릅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있지만 언젠가 그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날 겁니다.”“그럼 부인의 뜻은 그자가 의술을 전혀 못한다는 말인가? 약을 만들 줄도 모르고?”“당연히 모릅니다!”소우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육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왜…”“소씨 가문의 일은 한두 마디로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국 거짓말은 들통날 겁니다.”소우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소우희는 언젠가 다시 진정향을 구하러 소우연에게 찾아올 것이고 소우연에게 부탁하는 것 외에 소우희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좋소.”이육진이 갑자기 피식 웃자 소우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처음보는 희망찬 눈빛에 조금 놀라웠다.‘지금도 눈빛이 저렇게 반짝이는데 다치기 전에는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멋있는 사내였을까?’“왕야, 저를 믿으십니까?”소우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이육진이 대답했다.“이곳 별채에 약초 향이 이렇게 가득한데 나도 시도는 해보고 싶네.”완전한 믿음이 아니라 그저 시도라는 말에 소우연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어찌 됐든 소우연은 이육진의 신임을 얻기 위해 매일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절대 왕야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그래.”이육진을 보고 있으면 소우연은 자신이 어렸을 때 남강 외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가 진 나인과 함께 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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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이육진은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비파차를 쭉 들이켰다.“향이 참 좋소.”“왕야 입맛에 맞으시면 제가 비파차를 항시 준비해두겠습니다.”“그래.”핏기가 조금씩 돌고 있는 이육진을 보며 소우연이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왕야, 외람된 말이지만…”이육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소우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머뭇거렸고 이육진이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왕야, 제가 의술을 많이 익히긴 했지만 신의는 아닙니다. 그리고 신의라고 해도 환자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왕야를 치료하는 동안은 제 당부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그 말은 나에게 부인의 명에 따르라는 뜻인가?”이육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소우연이 연신 손을 내저었다.“그런 뜻이 아닙니다. 치료에 관한 일에서만 제 당부를 들어주셨으면 해서 얘기하는 겁니다.”이육진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소우연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의 표정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동의할 기색이 보이지 않아, 일단은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래, 치료에 있어서는 내 부인의 말을 듣겠소.”고개를 번쩍 든 소우연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육진을 쳐다보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너무 감사드립니다, 왕야.”감사하다고?이육진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소우연을 쳐다보았고 소우연은 이내 이육진이 들고 있던 잔을 받아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뒤, 휠체어를 밀고 마당으로 나갔다.“왕야께서 동의하셨으니 오늘 첫 당부를 드리겠습니다. 마당에서 햇빛 쪼임을 해주십시오.”이육진은 예상치 못한 당부에 흠칫하다가 바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한편, 멀리서 지켜보던 정연은 소우연이 이육진을 모시고 마당으로 나오자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그녀뿐만 아니라 마당에 서있던 시녀와 하인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렇게 30분 정도 지나자 소우연이 방에서 양산 하나를 챙겨 이육진을 가려주었고 위로 쓱 쳐다보던 이육진이 말했다.“오늘 햇빛도 따스하고 풍경도 좋은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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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자리에서 일어난 소우연은 이육진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었으나, 이육진은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갑자기 눈을 지그시 감았다.“국물을 마시고 싶소.”소우연은 이육진의 요구대로 국물을 떠서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한 모금 삼키던 이육진은 갑자기 사레에 걸린 듯 기침을 하더니, 결국 국물을 사방으로 뿜어버렸다.화들짝 놀란 소우연이 얼른 말했다.“왕야,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사레에 걸려서 국물이 폐에 흘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소우연의 말에 흠칫하던 이육진은 남강에서 있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소녀가 이육진에게 탕약을 먹일 때 앞을 볼 수 없었던 이육진은 급하게 마시다가 사레에 걸렸었다.그때 소녀가 해준 말이 있었다.“도련님,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사레에 걸려 국물이 폐에 흘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생각에 잠겨 있던 이육진이 소우연을 보며 말했다.“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소.”“괜찮습니다. 제가 조금 더 천천히 드리겠습니다.”남강에 있을 때, 소녀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괜찮습니다. 천천히 마셔도 됩니다.”목소리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같은 말투에 같은 약초 향이었다.눈을 천천히 뜬 이육진은 한층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았고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의 시선이 왠지 낯설었다.“왕야?”이육진이 그릇을 손에 들며 말했다.“이젠 나 스스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소.”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육진은 책을 보고 있었고 소우연은 그 곁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의서를 공부하고 있었다.이때, 진규가 방으로 들어와 이육진에게 아뢰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이육진은 별채 곁에 있는 곁방을 가리키더니, 문득 소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부인이 이 별채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옆에 있는 곁방을 나와 함께 쓰는 서재로 만드는 게 좋겠소.”“네?”이육진은 이미 따로 서재가 있지 않나? “부인은 날 치료해줄 약을 만들어야 해서 약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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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몇 대가 큰 복을 받는다…도대체 어떤 신분을 소유하면 몇 대나 큰 복을 받을 수 있을까?그건 바로 만인지상에 있는 황후이다.때문에 소씨 가문 모든 사람들은 소우희에게 심혈을 기울였다. 만약 이육진이 지금 이 꼴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현재 황태자의 신분일 것이고 소씨 가문 사람들은 소우희를 회남왕 관저에 시집 보내려고 갖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몸과 얼굴이 망가진 이육진은 절대 황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소씨 가문에서는 소우희를 회남왕에게 시집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소우희 대신 소우연을 보낸 것이다.그리고 소우희는 자연스럽게 소우연을 대신하여 평서왕 세자와 혼인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훗날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 소씨 가문의 부귀영화를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정신 나간 사람들! 그자들은 소우희가 황후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확신한 건가?”이육진은 결코 소씨 가문이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가게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빨래방 시녀는 전에 왕비님 곁을 지키던 시녀라고 합니다. 마침 그 시녀가 소씨 저택 하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 목격해서 소인이 물어봤습니다.”턱을 괸 채로 한참동안 침묵하던 이육진이 입을 열었다.“왕비는 이 저택에 시집올 때 시녀 한 명도 데리고 오지 못했어. 소씨 가문에서는 내가 왕비를 죽일 거라고 확신한 건가?”진규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이육진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이육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차별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그게 얼마나 슬프고 외로운 일일지 알 것만 같았다.이육진은 지금 그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황위를 황족 다른 자제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으며 더 이상 이육진을 고려하지 않았다.몸과 얼굴이 망가졌다는 이유로 황족들에게 있어서 이육진은 괴물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난폭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괴물이었다.“왕야, 지금까지 이 저택에 시집온 여인들이 전부 살해됐으니 소씨 가문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진규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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