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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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소우연이 대답을 하려던 그때, 이육진이 다시 한번 경고했다.“잘 생각해보고 대답하는 게 좋을 것이오. 날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말고!”“제가 어찌 감히 왕야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전 소우희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곧 원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그래, 알겠소.”전에 이육진은 언젠가 기회를 찾아 소우연을 포함한 소씨 가문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려고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지금 이 순간부터 소우연이 3년 전 이육진을 구해준 사람이 맞든 아니든 소우연의 목숨은 살려둘 것이다.이육진이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면서 정연에게 방으로 들어와 왕비의 시중을 들라고 명령했고 소우연은 이육진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알겠다고? 대체 뭘 알겠다는 거지?이때, 방으로 들어온 정연이 소우연에게 말했다.“왕비님, 의원께서 왕비님은 요즘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음식을 드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이 야채죽과 산삼차를 준비했습니다. 소인이 식사를 도와드리겠습니다.”고개를 끄덕이던 소우연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왕야께서는 식사를 하셨느냐?”흠칫하던 정연이 대답했다.“왕비님께서 다치시고 나서 왕야는 한 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식사를 못하셨습니다.”“그럼 왕야께서 혹시 지금 서재로 간 것이냐?”정연은 아마도 그랬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그러셨을 겁니다.”“그럼 왕야께도 식사를 보내 드리거라.”“알겠습니다.”정연은 눈앞에 있는 이 왕비가 보면 볼수록 참 신기했다. 회남왕의 망가진 얼굴이나 못 쓰는 다리를 전혀 거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왕야 걱정만 하고 있다.이렇게 예쁜 미모를 가진 여인이 왕야까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으니 다른 여인 대신 시집왔다는 것만 빼면 너무 완벽했다.“난 이제 다 먹었으니 얼른 왕야께 가져다 드리거라. 왕야께서도 많이 시장하실 것이다.”“네, 소인 바로 서재에 다녀오겠습니다.”조금 뒤, 서재 밖에서.정연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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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날밤, 하늘에서 또다시 눈이 펑펑 내리시 시작했고 침대에 누운 소우연은 마음속으로 이육진이 이제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바로 이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소우연은 재빨리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조금 뒤, 침대 위로 올라온 이육진이 낮은 목소리로 소우연을 불렀다.“부인.”흠칫 놀란 소우연은 이유진이 왜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건지 의아하며, 눈을 떠야 할지 고민했다.“이 눈이 그치면 나와 함께 궁으로 들어가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인사를 드리게.”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소우연은 눈을 살짝 뜨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전 왕야 결정에 따르겠습니다.”이육진은 너무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소우연을 보며 그녀가 예전에 이민수에게도 이랬을까 궁금해졌다.‘당연히 그랬겠지. 이민수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큰 약혼자인데.’한편, 이육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소우연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이육진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 정말 너무 무서웠습니다.”“난 부인이 전혀 안 무서운 줄 알았는데?”“그럴 리가요? 정말 엄청 놀랐습니다.”하지만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서도 소우연은 이육진이 다쳤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연기가 너무 진부한 거 아닌가?이육진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소우연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왕야, 전 정말 놀란 겁니다. 나중에 혼자 외출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전 죽을 수밖에 없겠지요?”“그럴 리 없소.”입술을 살짝 오므리던 이육진이 소우연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외출할 때 호위무사를 데리고 다니는 게 좋겠소.”그 말은 이제 이육진이 소우연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뜻인가?잠시 고민하던 소우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왕야, 외람된 요구지만 혹시 제가 진맥 한번 해드려도 되겠습니까?”“진맥은 왜?”“소자는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사옵니다. 하여 단 한 번이라도 칭찬을 받아보고자 밤낮없이 의서를 익혔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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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소우연은 창가에 앉아 창문을 열고는 시녀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명심이와 아이들은 매년 눈이 올 때마다 눈사람을 만드는데 질리지도 않은가 봅니다.”곁에 있던 정연의 말에 소우연이 웃으며 대답했다.“즐거워 보여서 참 좋구나.”사람들은 회남왕 이육진의 성격이 난폭하고 감정 기복도 심하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저택에 있는 시녀들은 어떻게 저렇게 밝고 해맑을 수 있을까?“그러고 보면 왕야는 밖에 떠도는 소문처럼 그리 어려운 분이 아니지 않느냐?”정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왕야께서는 무서운 면을 외부인과 적에게만 보여주십니다.”정연은 고개를 돌려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왕야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신부를 바라보았다. 왠지 이번에는 왕야 곁에 진정한 배필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적에게만 보여준다…”“그렇습니다. 왕야께서 감정 기복이 심하신 건 맞지만 이유 없이 화를 내시지는 않으십니다.”고개를 끄덕이던 정연은 소우연에게 따듯한 화차를 한 잔 따라주며 말을 이어갔다.“왕야께서 왕비님을 대하시는 태도가 남다르십니다.”소우연은 정연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정연이 말한 것처럼 소우연은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목숨 잃고 밖으로 버려진 신부가 아니기에 다들 소우연을 특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그럴 수도 있지.”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연은 말머리를 돌려 소우연에게 화차를 마셔보라고 권했다.소우연은 옅은 미소를 띠며 화차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그녀는 생각했다. ‘악인도 결국 사람이니, 칠정육욕이 없을 수야 없겠지?’그는 언제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필시 사랑도 정마저도 끊어낸 자일 것이다.전생에서, 혈육의 정과 사랑은 마치 바늘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러왔고, 그 고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그러나 이번 생의 그녀는, 그런 굴레를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자신을 위해 살고자 했다.그리고 소우희와 이민수, 이 두 사람과는 다시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으리라!이로부터 며칠 뒤.눈이 녹기 시작했고 마당을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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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이육진과 소우연은 가까이 다가가 덕빈 마마께 큰절을 올렸고, 덕빈 마마는 환히 웃으며 손을 가볍게 흔드셨다.“이만 고개를 들 거라.”“감사하옵니다, 어마마마.”소우연은 윗몸을 일으키자마자 손을 뻗어 이육진의 휠체어를 잡아주었고 한 치도 불만이 없어 보였다.그 아름다운 작은 얼굴은 길을 오는 동안 거센 눈바람을 맞았는지,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보였다.어쩐지, 아들이 그녀를 맘에 들어한다더니.단귀비는 자리를 내리도록 명하였고, 곧이어 기 나인에게 작은 주방에서 만든 다과를 가져오게 하였다.“안 그래도 네 아바마마께서 며칠 전부터 네가 언제 처를 데리고 궁에 들어오는지 계속 물으셨어. 마침 잘 왔구나.”덕빈의 말에 소우연이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옵니다.”이육진은 요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일찍 찾아뵙지 못했다고 설명했고 소우연이 다친 일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어차피 회남왕 관저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마마마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다과와 차를 올린 기 나인은 시녀에게 조정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상이 논의를 마치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했다.그렇게 단향궁에 있는 세 사람은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수려한 외모에 차분한 성정을 지닌 소우연은 심지어 이육진을 각별히 신경 쓰는 듯 보였다.‘저 아이는 분명 평서왕의 아들과 혼약이 있었던 거 아닌가? 이렇게 빨리 그자를 버리고 내 아들에게 빠졌다고?’만약 이육진이 예전처럼 건강하고 외모도 수려했으면, 덕빈도 조금은 믿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이육진 얼굴에 저렇게 보기 흉할 정도로 상처가 크게 남았는데 소우연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 저러다가 이육진도 결국 공세에 넘어가지 않을까?덕빈은 소우연을 보며 이미 돌아가신 황후 언니가 떠올랐다. 경성 제일 미녀였던 황후 언니는 황제를 평생 제대로 홀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황제는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이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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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방으로 들어온 황제는 이육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도 너무 아팠다.그러다가 시선을 돌려 소우연을 쳐다보았고 수려한 외모에 기품도 넘쳐 보이는 모습에 살짝 놀란 듯했다.황제는 진원 장군 가문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큰딸이 외모가 부족하거나 성격이 괴팍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그리고 아들 이육진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황제는 이 두 사람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들 그렇게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네. 오늘은 그저 간단한 가족 모임일 뿐일세.”덕빈이 제일 먼저 고개를 들었고 곁에 서있던 기 나인에게 눈치를 주자 기 나인은 바로 궁녀와 내시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한편, 소우연은 여전히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감히 황제의 용안을 올려다보지 못하였다.조금 뒤, 기 나인과 단향궁 내시가 황제 앞에 진수성찬을 차렸고 소우연은 그 음식들을 힐끗 쳐다보았다.나중에 주상께서 회남왕의 신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소우연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걸까?생각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한편, 소우연의 긴장한 모습을 눈치챈 이육진은 그녀에게 귤을 건네며 말했다.“왕비, 식사전에 귤 하나 먼저 먹지 않겠소?”“감사하옵니다.”고개를 살짝 든 소우연이 휠체어에 앉아있던 이육진과 눈이 마주쳤고 손을 뻗어 귤을 받던 순간, 이육진이 소우연의 손을 살짝 잡은 채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전했다.“겁먹지 마.”‘이 남자가 나한테 겁먹지 말라고 했어…’소우연은 진심 어린 이육진의 눈빛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고 이내 입술을 오므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그 뒤로 이육진은 기미상궁을 시켜 소우연에게 이런저런 반찬을 잔뜩 덜어주었고 소우연은 덕분에 긴장은 많이 풀렸지만 황제와 덕빈의 뜨거운 시선에 점점 난감했다.겨우 식사 자리가 끝나고 황제와 덕빈에게 인사를 올린 소우연은 이육진과 함께 단향궁을 나섰다.한편, 단향궁에서.입가심을 하고 있던 황제가 덕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넷째가 이번 왕비를 꽤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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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회남왕 관저의 마차가 번화한 거리에 나서자 거리를 오가던 마차와 백성들은 너도나도 양옆으로 물러섰다.한편, 마차 안에 앉아있던 이육진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소우연은 창문을 가린 천막을 살짝 열고는 밖을 쳐다보았다.거리에는 손님들로 가득 찬 주막과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장사꾼들로 북적거렸다.처녀였을 때, 소우연은 거의 외출한 적이 없었으며 어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소우희만 데리고 나갔다.씁쓸하게 웃던 소우연은 이내 천막을 내렸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육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얼굴이 빨개진 소우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왕야,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겁니까?”“아니.”아닌데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까?소우연이 볼을 만지며 고개를 살짝 숙인 그때, 이육진이 말했다.“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한테 한번 얘기나 해보지 그래?”소우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쳐다보자 이육진이 다시 물었다.“없는 건가?”“신경 써주셔서 감사드리지만 전 아직 두서가 없습니다.”‘두서가 없다… 대체 어떤 두서가 필요한 걸까? 더럽고 염치없는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하지만 이건 결국 소우연의 개인 사정이기에 소우연이 아직 소씨 가문과 완전한 결렬을 결정하지 못했다면 이육진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회남왕 저택으로 돌아온 뒤, 이육진은 서재로 가기 전 소우연에게 외출할 땐 반드시 호위무사를 대동하라고 당부했다.“알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소우연은 깍듯이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한 뒤, 이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혹시 왕야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이육진은 소우연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소우연은 떠나는 이육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소우연을 곁에서 지켜보던 정연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착잡해졌다.예전에 회남왕은 경성에서 외모가 가장 출중한 사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허나, 왕비의 눈빛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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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진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육진이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왕비는 내 앞에서 항상 조심스럽고 온순한 모습이었거든. 그렇게 큰소리로 날뛸 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왕비님께서 화내실 때 꽤 무섭습니다. 당당하기도 하시고요.”진규가 대답했다.전에 진규는 소우연이 소씨 가문에 찾아갔을 때 회남왕 왕비의 신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소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했다고 했다.이육진은 왕비 신분을 꽤 유용하게 쓰는 소우연이 대견하기도 했다.한편, 소우연이 회남왕 관저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꽤 어두웠고 하인들은 서둘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명심이 소우연에게 찾아가 물었다.“왕비님, 식사 준비가 다 됐는데 이제 왕야를 모셔올까요?”소우연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왕야께서 아직도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이냐?”“아직 안 하셨습니다. 태감께서 얘기하시길 왕야께서는 오늘 왕비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시기로 약속했다고 하셨습니다.”“아니, 난…”제민 약방에 소우연이 원하는 약재가 없었기에 경성에 있는 다른 약방을 전부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그럼 얼른 왕야를 모시거라.”“네.”명심은 실실 웃으며 서재로 향했다. 왕비가 왕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앞으로 왕비의 시녀들도 그 덕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이와 반대로 소우연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늦게 돌아와서 왕야의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졌는데 혹시 왕야가 화내지 않을까?‘화를 내면 최선을 다해 어르고 달래야지. 따로 방법이 없잖아.”본채 문 앞에 선 소우연은 이육진을 기다리면서 정연에게 물었다.“혹시 이 저택에 비어 있는 방이 있느냐?”“혹 뭘 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약을 제조해야 하는데 따로 방 한 칸이 필요하다.”소우연이 사온 약재들은 아직 마차 안에서 내리지 않았다.“곁채는 많습니다. 하지만 약초 향이 왕비님과 왕야의 수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정연의 말에 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초 향이 꽤 진하기에 이육진이 싫어할 수도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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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다음번에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뚜렷한 윤곽, 만약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절세미남이었을 것이다.소우연은 이육진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시면 왕야께서는 먼저 식사를 하십시오. 안 그러면 제 죄가 너무 커지지 않겠습니까?”찻잔을 들고 있던 이육진의 손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소우연을 힐끔 쳐다보았다.“내가 부인의 죄를 물을까 봐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아, 아닙니다.”두렵지 않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황실에서는 어떻게 이혼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설령 그녀가 도망칠 마음이 있다 해도, 그곳엔 아직 단귀비가 있다. 그녀는 아직도 전생에 도망친 혼인의 결과가 생생히 기억난다!이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이 혼인을 잘 유지하여 마음 편하게 사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한편, 이육진은 소우연의 대답에 속으로 피식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온순한 척, 순진한 척하는 게 힘들지도 않은 건가?“왕야, 저를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시면 제가 심장이 많이 떨립니다.”소우연이 손바닥으로 발그레한 볼을 만지며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육진이 대꾸했다.“심장이 떨린다는 건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뜻이지.”가볍게 미소를 짓던 소우연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왕야께서 모르시는 게 있는데 심장이 떨린다는 건 설렌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소우연이 이육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자 이육진이 도발하듯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왕비는 누구한테 설레는 것이오?”소우연은 입술을 살짝 오므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고 젓가락을 들어 이육진에게 반찬을 덜어주었다.“이것 좀 드셔 보십시오.”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소우연의 표정과 행동은 의미심장했고 그 모습에 이육진은 물론 곁에 서있던 정연과 명심도 왕비가 참 대담하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이육진은 소우연이 덜어준 음식을 입에 넣었다.“괜찮네.”“그럼 이것도 드셔 보세요.”소우연의 행동에 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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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만약 소우연이 평서왕의 아들 이민수와 혼약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이육진은 소우연이 그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자신을 좋아한다……이런 생각을 하던 이육진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명성이 이렇게까지 더럽혀지고 흉한데 어떤 여인이 그를 좋아할 수 있을까?이육진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다음달 16일, 소우회와 평서왕 세자가 정식으로 혼약을 맺는다고 들었는데 부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소우연은 두 사람이 혼약을 맺는 날짜를 알고 있었고, 소설 원작에 적힌 중요한 날짜들도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네, 알고 있습니다.”고개를 끄덕인 소우연은 이육진이 갑자기 이 일에 대해 언급할 줄은 몰랐다.“부인은 후회한 적 없는가?”“뭘 후회하단 말씀이십니까?”“부인이야말로 평서왕 세자의 세자빈이 될 사람이지 않았는가?”소우연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전 지금 회남왕의 왕비이고 품계로 따지면 소우희보다 신분이 훨씬 높지 않습니까?”회남왕비의 신분에 대해 꽤 많이 적응한 소우연을 보며 이육진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그 뒤로 며칠동안 소우연은 매일 배나무 별채 안에만 있었으며 심지어 삼시 세끼도 별채에서 해결했다.별채 안에 심은 납매에 꽃이 피기 시작하자 소우연은 가지 몇 개를 꺾어 꽃병에 꽂고는 정연에게 건넸다.“이 꽃병을 왕야가 계신 서재에 가져가거라. 그리고 본채에도 놓아두거라.”정연이 가볍게 미소를 짓다가 물었다.“왕비님께서는 배나무 별채에서 며칠이나 지내셨는데 오늘도 본채로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하지만 왕야께서…”소우연은 이육진이 매일 서재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왕야도 바쁘신 것 같은데 내가 괜히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지. 나도 얼른 약을 만들어야 하고.”“왕비님께서 정말 왕야 얼굴의 흉터를 낫게 할 약을 만들어낼 수 있으신 겁니까?”정연의 물음에 소우연은 그저 피식 웃었다. 정연조차 믿지 못하는데 이육진이 그녀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이육진이 치료를 받겠다고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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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죽을 죄? 갑자기 무슨 죽을 죄?이육진은 그저 왕비가 그에게 어떤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정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한숨을 푹 내쉬던 이육진이 손을 내저으며 정연에게 일어나라고 했다.“넌 왕비가 어떻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지 그것만 얘기하면 된다.”이육진이 직설적으로 묻자 정연이 바닥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왕비님은 왕야와 혼사를 치르고 나서부터 매일 왕야에 대해 물으셨고 요 며칠 동안은 매일 배나무 별채에만 묵으시면서 직접 약을 달이고 약을 자신의 몸에 발라 보시면서 가끔 왕야가 어디에 계신 지 뭘 하고 계신 지 물으셨습니다. 별채에 심은 납매가 꽃이 피자마자 왕비님께서는 바로 꽃을 꺾어서 소인에게 서재에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왕비님께서 왕야께 열과 성을 다하고 계시다고 말한 겁니다.”이육진은 탁자에 놓인 꽃병을 다시 한번 힐끗 쳐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왕비는 오늘도 배나무 별채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냐?”“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도 그러실 것 같습니다.”왕비가 하인을 시켜 배나무 별채 방 안에 이불까지 깔았고 며칠동안 그곳에서 밤을 보냈기에 오늘밤도 십중팔구 별채에서 잘 것이다.이육진은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었다. 그를 그렇게 걱정하고 신경 쓴다는 사람이 며칠동안 본채로 돌아오지도 않는단 말인가?“이만 나가보거라.”이육진이 손을 내둘렀다.조금 뒤, 정연이 배나무 별채로 돌아와보니 소우연이 명심과 시녀 두 명, 그리고 내시 두 명을 데리고 마당에서 약을 빻고 있었다.정연이 다가가자 소우연이 바로 물었다.“왕야께서는 서재에 계시더냐?”“서재에 계십니다.”“그럼 내가 보낸 납매는 마음에 들어 하셨느냐?”소우연의 물음에 정연이 애매하게 대답했다.“아마도… 마음에 드신 것 같습니다.”확실하지 않은 정연의 대답에 소우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다시 물었다.“왕야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느냐?”“왕야께서 왕비님이 오늘밤에도 별채에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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