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51 - Chapter 60

70 Chapters

제51화

그는 왕야가 아닌가? 무슨 일로 그녀의 의견을 물으시는 것인가?“며칠 후면 그들이 혼약을 맺을 예정인데 왕비는 그들의 혼인을 바라느냐?” 그의 말투는 마치 일상적인 대화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들이 누구인지 소우연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민수와 소우희, 그 두 사람의 혼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두 사람을 생각만 하기도 역겨웠다.만약 그들이 혼인한다면, 원작의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소우연은 고개를 들어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왕야, 저는 그들이 혼인하기를 바라지 않사옵니다.”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왕야께서 그들의 혼인을 막으실 수 있사옵니까?”탁탁탁……이육진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바둑알들이 바둑판을 어지럽히고 말았다.“왕야…….”소우연은 깜짝 놀랐다. 혹시 자신이 실언을 한 것인가? 아니면 이육진이 그녀가 아직도 이민수를 흠모하여 그들의 혼인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녀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려 했다. “왕비는 예를 갖출 필요 없소.”그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그녀의 손목을 잡은 그의 손에는 약간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소우연은 전해져 오는 고통에 가볍게 신음했다. 이를 느낀 이육진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왕비의 뜻을 따르도록 하겠다.” 무엇 때문인지, 소우연은 이육진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반쯤 굽혔던 무릎을 다시 펴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왕야께 감사드리옵니다.” “난 이미 예를 갖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그가 그렇게 말할수록, 그녀의 태도는 더더욱 공손하게 느껴졌다. 이육진은 씁쓸했다.그렇게도 이민수를 흠모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는 충성하는 태도를 보이는가? 그녀의 진심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소우연은 바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야와 다시 한 판 두겠나이다.”좋았던 국면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이육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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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음.”남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에 무언가 걸린 듯, 몇 마디 더 한다면 금방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들킬 것 같았다. 한참 후, 부드러운 손이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자, 이육진은 강인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왜 그러십니까?”소우연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뼈마디가 또렷하고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손이었지만 그 위로 도드라진 푸른 힘줄은 오리혀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몸의 흉터는 됐다.”“하지만 전에도 약을 바르지 않으셨습니까? 치료하는 김에 함께 치료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러자 이육진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왕비는 그 흉터들이 싫은 것이냐?” 질문을 하고 나니 스스로도 참 어이없었다. 어느 누가 흉측한 흉터를 좋아하겠는가? 그는 그녀의 답은 기다리지 않고 손을 놓으며 말했다. “왕비의 뜻을 따르도록 하지.” “혹시 제가 불쾌하게 했사옵니까?” 소우연은 이육진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의 표정은 묘하게 뒤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괜한 생각은 하지 말거라.” “예.” 소우연이 계속해서 그의 옷을 벗기려 했으나, 이육진은 이불을 단단히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처음엔 그녀도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지만, 머릿속에 문득 지난번 목욕 시중을 들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가 욕조에 빠졌을 때 손에 잡힌 물건이…… 설마, 반응한 것인가? 그녀는 남녀가 혼례 후 주공지례를 행한다는 것에 대해 정확한 개념이 없었다. 그저 남녀가 함께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정도였다.몸에 걸친 것들을 모두 벗겨지고,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기며, 그 순간부터 진정한 여인이 된다고들 했다...그러나 주공지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왜 얼굴을 붉히는 것이냐?” 그녀의 동작이 더뎌지고 옷을 한참이나 벗기고도 아직 벗기지 못한 것을 보고 이육진이 물었다. 여자는 얼굴은 더욱 붉게 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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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한 명은 아무 일 없는 척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못 들은 척을 하면서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약 바르기가 겨우 끝이 났다. 이육진은 이미 침상에 누워 있었다. 소우연은 촛불을 끄려 했지만, 이육진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먼저 침상에 올라오거라.”소우연은 그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대로 침상에 올랐다. 그가 큰 손을 휘젓자, 방 안의 촛불이 순식간에 꺼졌다. 침상에 누운 소우연은 이육진을 몰래 훔쳐보았다. 어둑한 방 안에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반듯이 누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소우연은 애써 원작 속 이육진에 관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었다.예를 들어, 혼례를 피하려다 붙잡힌 그녀가 팔다리가 부러진 채 소씨 가문의 문 앞에 버려지고 결국 혹한 속에서 얼어 죽었다.이육진은 유일한 반역자였는데, 왜 나중에는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던 것일까? 만약 그가 아내를 맞이했다면, 황위를 두고 다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낳기만 한다면, 황제가 그 아들을 황태손으로 책봉했을 테니 말이다.그렇게 된다면 이육진은 태상황으로 여생을 편안히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 이민수가 황제가 되고, 소우희가 황후가 되는 원작의 서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이육진이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의서를 많이 읽는 그녀였지만 남성의 그 방면에 대해선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직접 연구해 본 적도 없었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야…….”그녀의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는 어딘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이육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냐?”소우연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바라보았으나,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남성의 체면과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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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왕비…….” 이육진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난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니라.” 약속한 일?그녀가 그의 상처를 낫게 하면 그녀를 향해 웃어주겠다는 그 약속 말인가? 소우연은 이육진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왕야께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육진은 거듭 침만 삼킬 뿐이었다.“그러지 않아도 된대도.” 너무 뜨겁게 달아오른 몸 상태에 그는 자꾸만 이불 귀퉁이를 들어 올리며 열을 식혔다.“왕비, 어서 쉬도록 하거라.” 그는 더 이상 그녀의 행동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이러다간 정말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소우연이 물었다. “왕야께서는 제가 싫으시옵니까?” 그러자 이육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소녀라는 것을 안 뒤에는 그녀 말곤 다른 여인을 맞이할 생각조차 없을 정도였다.“왕야?”그가 왜 쓴웃음을 짓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혹 정말로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그를 남성적 매력이 가득했던 장군으로 그렸던 작가를 꾸짖었다. 한때 전장에서 무적의 장군으로 통하던 존귀한 황태자를 어찌 이토록 망가뜨린단 말인가?그렇게 비뚤어지고 뒤틀린 존재로 만들면서까지 남녀 주인공의 순결함을 돋보이게 하려던 걸까?그때 갑자기 남자의 억센 손이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왕비는 진심으로 내가 좋으냐?” “전…… 그건....” 소우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진짜 이육진이 좋은 걸까?환생한 이후로 그녀에게는 더 이상 사랑이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육진이 곁에 있었다.눈을 떠보니 그녀는 이 남자의 사람이 되어있었다.그와 자신만이 반역자였다. 이 세상은 여자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녀는 힘이 없는 존재였고 의지할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오직 이육진,그만이 유일하게 그들과 맞설 힘을 가지게 해주는 사람이었다!이육진은 그녀를 놓아주고 몸을 돌려 그녀를 등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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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진우도 귀를 바짝 세우며 마차 밖의 동태를 살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은 상대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한 웬만한 대화는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장안 거리의 번잡한 길목을 몇 바퀴나 돌며 생각했다. 왕비마마께서는 도대체 어디를 가시려는 걸까?소우연은 다시 태어난 이후 이토록 마음이 어지러웠던 적은 없었다.만약 이육진이 정말로 자손을 볼 수 없다면, 황제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원작의 서사로 회귀하지 않겠는가! 원작에서 이육진은 최후에 ‘척골지형’을 당한다. 그 잔인한 형벌을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마차를 멈추거라.”소우연은 마차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장안 거리의 인파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복잡했다. 아니다. 그들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반드시 바꿀 것이다.그때, 멀리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이 무엇을 하는 자이기에 감히 이리도 함부로 구는 것이냐?” 소우연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소우희와 혜주가 약재를 든 채 약국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그녀가 직접 진정향을 제조하려는 것인가? 그녀의 시선은 곧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얼굴에 수북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거대한 몸집은 소우희와 혜주를 압도하고도 남았으며 나이는 사십 대쯤 되어 보였다. “너는 대체 누구냐? 본왕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그때 정연이 낮은 소리로 소우연에게 속삭였다. “평춘왕이옵니다.” 평춘왕 이종대? 소우연은 원작 속 이 인물을 떠올렸다. 그는 황실의 방계로, 방탕하고 음탕하기로 유명했다. 왕부에는 수많은 후궁과 첩들이 있었고 세 명의 왕비를 연이어 보낸 뒤로는 새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다.그러던 중, 우연히 소우희를 만났고 순간 그녀의 미모에 사로잡혀, 이후 끈질기게 소우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그러나 신중했던 이민수는 이를 당장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먼저 평춘왕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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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이민수는 냉랭한 눈빛으로 평춘왕을 노려보았다. “참으로 재미없는 농담이군요.”평춘왕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굳어지더니, 그의 시선이 소우희에게로 옮겨졌다. 그녀는 그저 연약한 여인으로 보였다. 방금 그는 그녀의 허리를 슬쩍 만져보았는데, 그 작고 부드러운 허리는 한 손으로 완전히 감쌀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배욕과 파괴 충동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곧 부하들을 거느리고 자리를 떠났다. “세자 오라버니…….”잔뜩 겁먹은 소우희는 곧장 이민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방금 그녀는 실수로 평춘왕과 부딪쳤고, 그는 그 틈을 타 그녀를 희롱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절대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민수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자신을 신부로 맞이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 경성에서 불구에다 변태 같은 회남왕을 제외하면 평춘왕이라는 자야말로 제멋대로 날뛰며 여인을 짓밟는 악질이었다.그 손에 죽은 왕비들만 해도 여러 명이었고 왕부에서 이유 없이 죽어 나간 첩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으니 그런 놈의 손길에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질 만큼 역겨웠다.“내가 집까지 바래다줄 것이니 두려워 말거라.”이민수는 그녀를 달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혜주 손에 들린 약재 꾸러미를 보게 되었다.이민수의 시선을 느낀 소우희가 황급히 말했다. “할머니께서 두통으로 고생하시기에, 약재를 구하려고 나왔사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대가 누구보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느니라.” 그의 수행원들이 칼을 뽑아 번뜩이자, 주변의 인파는 순식간에 흩어졌다. 소우희는 약간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약재는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고생하실 걸 생각하면 제 마음이 또 아파오네요.”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언니에게 제가 만들어 놓은 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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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혹시 심각한 병은 아니겠지?’ 어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점점 초조해졌고, 급기야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돌린 소우연은 어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어의의 이마는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그녀가 묻자, 어의는 황급히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회, 회 왕비마마, 소인은 괜찮사옵니다.” 소우연: “....” 그녀는 옆에 있던 정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평민이기에 예기치 못한 황족과의 만남에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다.소우연은 낮은 목소리로 의원을 다독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게. 그저 평소처럼 진찰해 주시면 되네. 특히 왕야의…… 남성 건강에 관해서 말이야.”어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예 마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긴장을 하고 있는 그를 정연은 다시 한번 안심시켰다. “왕야께서 서재에 계시느냐?” 무빈은 문 앞에서 졸고 있다가 소우연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그는 급히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왕비마마께 문안드리옵니다. 왕야께서는 서재에 계시옵니다.”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재 안에서 이육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를 안으로 모시거라.” “예, 왕야.” 무빈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소우연은 의원을 힐끗 본 뒤,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이육진은 책을 한 손에 들고,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고 있던 바둑판은 전에 본 것과는 다른 평범한 옥석 바둑판이었다. 사실, 전에 봤던 바둑판은 이락원에서는 딱히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바둑판은 많았으니, 하나쯤은 둔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왕야께 문안드립니다.”그녀는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소인 왕야께 문안 올립니다.”어의는 무릎을 꿇고 정중히 큰 예를 올렸다.그제야 그는 소우연이 민간 어의와 함께 왔음을 깨달았다.그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우연, 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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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회남왕부 이당.소우연은 정연을 문밖에 대기시키고, 임곽수와 함께 이당으로 불러 차를 마셨다. 그녀는 어의에게 차를 대접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왕야께서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느냐?”임곽수는 방금 전 서재에서의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한 듯, 아직도 몸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맥을 짚어본 결과, 다리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여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문제없사옵니다.” “정말 아무 이상이 없단 말이냐?” 소우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데 왜 왕야께서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냐?” 임곽수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왕야께서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으신다고요?”그는 문득 한때 경성에서 떠돌던 소문을 떠올랐다.하지만 왕비마마의 간절한 시선을 마주하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말들이 왕야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임곽수가 묵묵부답이자, 소우연은 은전 한 자루를 꺼내 그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내가 왕부의 주인이니, 넌 그저 알고 있는 대로 말하면 된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임곽수는 은전과 소우연을 번갈아 보았다. 만약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녀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인은 단지 짐작일 뿐이옵니다. 아마도 왕야께서 마음에 두고 계신 여인이 없으시기 때문에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신 것일 수 있사옵니다. 혹은…….” “혹은?” 소우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촉했다. “혹은 왕야의 취향이…… 여인이 아닐 수도 있사옵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소우연도 자연스레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인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는 그저 추측일 뿐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옵소서!” “그렇다면…… 그 방면으로는 가능한 것이냐?” “그…… 어쩌면 가능할지도…….” “어쩌면?” 소우연은 어의의 모호한 대답에 당혹스러워하며 다시 물었다. “자네는 비뇨기과 명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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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정연은 의아한 눈빛으로 소우연을 바라보았다. ‘왕비마마께서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해 보이시는 걸까?’‘갑자기 어의는 왜 부른 것일까?’한편, 이육진은 진규를 서재로 불렀다. “왕비가 오늘 갑자기 어의를 불러 진료를 받게 한 이유를 알아보거라.” 진규는 두 손을 모으며 명을 받들었다.진규는 일 처리가 빨랐다. 임곽수가 아직 의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규는 그의 마차로 불쑥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위협했다. “오늘 왕비께서 왜 너를 부른 것이냐?” 목에 닿은 차가운 칼날에 임곽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대, 대감, 부디 흥분하지 마시오. 제가 말하겠습니다!”그리하여 임곽수는 소우연과의 대화를 진규에게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듣고 있던 진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우리 왕야의 몸에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이냐?” “소인은 문제가 없다고 보았사옵니다. 그러나 왕비마마께서는 왕야께서 여색을 기피하신다 말씀하셨사옵니다…….” 진규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는 돌아가 왕야에게 무어라 보고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대감, 그럼 왕비께서 청하신 약은…… 보내드려야 합니까?” 아직 목에 닿아있는 칼날에 임곽수는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러자 진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내거라.”이육진의 지시로 임곽수를 찾아간 것이니, 당연히 왕야께서는 왕비가 이 사실을 알게 두지 않을 터였다. 그는 단단히 입단속을 시킨 뒤, 곧장 돌아가 보고했다.진규의 보고를 받은 이육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그녀와 혼인한 뒤로 자신이 얼마나 참고 버텨왔는데!그런데도 그녀는 남자로서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의심하고 그 어의는 아예 취향 문제라는 암시까지 했단 말인가?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정말 기가 막히는군!그녀가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는 낮에 그녀가 이민수를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을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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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어떤 여인을 좋아하냐고? 그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소우연의 청아한 미모와 미소,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약초 향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소우연은 그가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왕야께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차라리 왕야의 취향에 맞는 여인을 첩으로 들이시는 건 어떠하옵니까?” “첩을 들이라고?” “예, 왕야의 취향에 꼭 맞는 여인이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육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곁을 지키지만, 그 모든 것은 동정과 책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사랑은 아니었다. 불구에다 흉측한 얼굴을 한 그에게 사랑을 느끼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민수뿐이었다. 진심을 가장한 친절과 헌신이 오히려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아리따운 여인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상대가 저절로 그 덫에 빠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그리고 그 순간, 이육진은 그녀가 자신에게 발라주고 그 연고들이 제발 효과를 발휘하길, 그저 조금이라도 흉터가 옅어지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소망이 생겼다.“나는 여인에 관심이 없다.”그는 눈을 감으며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여자에 관심조차 없다니……!소우연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긴장한 탓에 점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첫날밤, 스스로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정조의 상징을 만들어낸 이유.그녀에게는 그저 낯 뜨거운 신음만 내도록 요구했던 이유.바로 그래서였다.이래서야 어찌 이민수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소우연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왕야, 태의에게 진찰을 받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녀의 질문에 이육진은 몸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그는 진규로부터 들은 보고에 이미 충분히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그런데 이제는 아예 대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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