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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Aвтор: 주 한잔
한 명은 아무 일 없는 척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못 들은 척을 하면서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약 바르기가 겨우 끝이 났다.

이육진은 이미 침상에 누워 있었다.

소우연은 촛불을 끄려 했지만, 이육진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먼저 침상에 올라오거라.”

소우연은 그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대로 침상에 올랐다.

그가 큰 손을 휘젓자, 방 안의 촛불이 순식간에 꺼졌다.

침상에 누운 소우연은 이육진을 몰래 훔쳐보았다.

어둑한 방 안에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반듯이 누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소우연은 애써 원작 속 이육진에 관한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었다.

예를 들어, 혼례를 피하려다 붙잡힌 그녀가 팔다리가 부러진 채 소씨 가문의 문 앞에 버려지고 결국 혹한 속에서 얼어 죽었다.

이육진은 유일한 반역자였는데, 왜 나중에는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던 것일까?

만약 그가 아내를 맞이했다면, 황위를 두고 다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낳기만 한다면, 황제가 그 아들을 황태손으로 책봉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육진은 태상황으로 여생을 편안히 보냈을 것이다.

그러면 이민수가 황제가 되고, 소우희가 황후가 되는 원작의 서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이육진이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의서를 많이 읽는 그녀였지만 남성의 그 방면에 대해선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직접 연구해 본 적도 없었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야…….”

그녀의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는 어딘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소리에 눈을 뜬 이육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냐?”

소우연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바라보았으나,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남성의 체면과 직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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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하…”소우연의 시선이 이육진 손에 든 쪽지에 꽂히자 이육진은 이내 이를 소우연에게 건넸다.“일단 소우희 그자를 처리하고 오겠다. 돌아와서 다시 자세하게 얘기하자.”손에 쪽지를 든 소우연은 멀어지는 이육진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한편, 쪽지 속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고 그저 옥패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이 옥패는 그때 당시 소우연이 남강에서 구해준 소년이 그녀에게 준 옥패였다.‘소우희가 이 옥패로 또 이상한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려는 건 아니겠지? 이 나쁜 계집애는 어떻게 저런 처지가 됐는데도 날 걸고 넘어지려고 수를 쓰는 거지?’“태자빈 마마,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안색이 하얗게 질린 소우연을 지켜보던 정연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소우연은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확 꾸겨 버렸다.이내 정신을 번쩍 차린 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정연에게 말했다.“진우에게 외출 준비를 하라고 전하거라. 잠깐 어디 좀 다녀와야겠다.”엄숙하고 진지한 태자빈의 표정에 정연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방을 나섰다.‘저하께서도 조금 전에 급히 저택을 떠나셨고 태자빈 마마도 이렇게 갑자기 외출 준비를 하는 걸 보면 뭔가 심상치가 않은데? 대체 소우희가 쪽지에 뭘 썼기에 두 분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거지?’이내 저택 앞에 마차가 세워졌다. 소우연이 마차에 올라타자 진우가 그녀에게 물었다.“마마,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용 대감을 찾아 뵈어야겠다.”“용, 용 대감님 말입니까?”진우와 정연은 소우연이 흠천감의 용강한을 찾아가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태자가 예전에 자신을 구해준 소녀가 바로 태자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부터 집안 모든 하인들에게 앞으로 태자빈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명했다.만약 태자와 태자빈이 동시에 명을 내린다면 태자빈의 명령에 우선적으로 따르라고 하기도 했다.용강한의 저택은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마차는 두 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소우연이 마차에서 내리고 진우가 문지기에게 말을 전하려고 할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02화

    다음날.소우연의 시중을 들려고 방에 찾아온 정연과 명심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우연은 이들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그녀가 처음 이육진과 살을 맞닿은 그때였다. 진정한 합방을 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만지고 애정을 나눴으며 이불을 적시기도 했다.그때 당시에도 정연과 명심은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두 사람이 지내는 곁방이 본채와 이토록 가까운데 그들도 당연히 다 들었을 것이다. 소우연은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남사스럽게도 했다.한편, 이육진이 소우희에 대한 체포령을 거두었기에 며칠동안 소우희에 관한 소식이 전혀 없었다.그러다가 이날, 한 거렁뱅이가 쪽지 하나를 들고 태자부 앞을 서성이다가 누군가가 이 쪽지를 직접 태자 저하께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문지기에 쪽지를 건넸다.문지기는 당연히 거렁뱅이 주제의 쪽지를 태자에게 전할 리가 없었다. 한편, 우연히 이 일을 알게 된 명심은 바로 소우연에게 말해주었다.“문지기에게 얘기하거라. 나중에 태자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바로 저하께 드리라고.”“네, 알겠습니다.”명심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태자빈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정체도 모르는 이런 쪽지를 당연히 몰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겁이 없는 어느 가문 멍청한 아씨가 태자 저하께 추파라도 보내는 거면 어쩌려고 그러시는 거지? 태자 저하께서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게 될까 봐 걱정도 안 되시는 건가?’“나한테 무엇을 주라고 한 것이냐?”소우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육진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태자 저하께 인사를 올립니다.”정연과 명심은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고 이육진이 손을 쓱 흔들자 두 사람은 곁으로 물러나 조용하게 서있었다.소우연은 이내 이육진을 보며 말했다.“문지기 말로는 거렁뱅이로 보이는 자가 저하께 쪽지를 전해달라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마침 저하께서 오셨으니 그 쪽지를 한번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거렁뱅이가 나한테 쪽지를?”이육진은 직감적으로 이 쪽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01화

    ”끄적거린 글이라… 소설이라…”소우연을 안고 있던 이육진의 손이 멈칫했다.“네, 소우희와 이민수 두 사람은 이 세계에서, 그러니까 이 소설 속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저는 소우희가 이민수에게 향해 가기 위해 만들어진 디딤돌이고요. 부군은 이민수가 황위에 오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부군은 이 소설 속 최대 악역으로 장래에 이민수가 휘두른 칼에 베여 목숨을 잃게 됩니다. 때문에 저는 작은 사고 하나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소우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부군, 제 말을 듣고 계십니까?”말을 하던 소우연은 이육진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왠지 조금 후회가 되었다. 전생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이 세상이 그저 소설 속 허상에 불과하다는 얘기까지 하다니.한편, 소우연이 걱정한 것처럼 이육진은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은은한 촛불로 밝혀진 방 안에서 이육진은 소우연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이마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듣고 있다.”마음속으로는 소우연을 믿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소우연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꾼 악몽, 그리고 조금 전에 했던 말들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얘기들이다.“그럼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믿냐고?이육진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만 뻥긋거렸다.그리고 그 망설임을 눈치챈 소우연은 이육진이 그녀의 말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육진은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소우연도 이런 일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고, 깨어났을 때 머릿속에 소설 원작 속의 내용이 대체적으로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면 그녀도 자신이 사는 세상이 그저 한 편의 소설뿐이라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또한 전생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부군, 믿든 믿지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와 부군의 공동의 적이 평서왕 관저의 이민수라는 것입니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00화

    ”아무튼 지금은 원하지 않습니다.”소우연이 작은 손으로 이육진의 팔뚝을 툭 치며 말하자 이육진이 허리를 살짝 펴며 되물었다.“정말 원하지 않는 것이냐?”“네, 아직도 많이 아픕니다.”술이 거의 다 깬 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이육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내가 약을 발라줄게.”“아니, 전…”소우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육진이 그녀에게 빠르게 입을 맞추고는 박력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거절은 사양한다. 약을 바르지 않겠다고 하면 그건 네가 아직 덜 아프다는 걸로 이해해도 되겠느냐?”어떻게 이렇게 막무가내인 남자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이육진의 품에 안긴 소우연은 감히 반항할 수도 없어서 빨개진 얼굴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그 모습에 이육진은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이 들었지만 일부러 입을 삐죽 내밀며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연아, 사실 나도 너와 똑같이 아프단다.”합방이 처음인 이육진도 아팠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한편, 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럴 리가? 남자도 이런 행위를 하면 아픈 건가?’전혀 믿지 않는 것 같은 소우연의 표정을 보며 이육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다.”‘어떻게 저렇게 진지하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정말 부끄럽거나 남사스럽지도 않은 건가?’조금 전에 침대 위에서 소우연은 자신도 모르게 이육진을 짐승이라고 나무라기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이육진은 더욱 흥분했었다.“그래, 난 짐승이 맞아. 그래서 우리 연이는 짐승 같은 내가 좋은 것이냐?”너무 흥분한 탓인지 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좋아한다고 얘기하면서 이런 모습을 더 많이 보여달라고 하기도 했다.아무튼,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이육진마저도 오늘 밤의 소우연이 평소와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조금 뒤, 목욕을 마친 이육진은 소우연의 발이 땅에 닿지 않게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천천히 침대로 향했다. 그러고는 새로 편 이부자리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직접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99화

    소우연은 이육진의 몸과 맞닿고 있으면 갈증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나뭇가지에 핀 벚꽃 마냥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한편, 밖에 서있던 간석은 방 안에서 들리는 야릇한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는 곁에 있던 정연에게 말했다.“얼른 하인들을 불러서 따듯한 목욕물을 준비하거라.”어느새 얼굴이 빨개진 정연은 명심을 데리고 바로 떠났다.태자와 태자빈은 처음에 합방을 전혀 하지 않다가 나중에 이불을 적시는 횟수가 잦아졌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대에 핏자국에 남긴 적은 없었다.하여 간석은 두 사람이 지금까지 진정한 합방을 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두 사람이 그동안 합방을 한 게 확실하다면 왜 아직도 회임 소식이 없는 걸까? 물론 부부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언젠가 예쁜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간석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방 안에서 예사롭지 않은, 평소와 다른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으며 침대가 곧 부러질 것만 같았다.태자와 태자빈의 야릇한 신음 소리에 침대가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까지 들리자 간석은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이번에는 뭔가 다르다.간석은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고 있었다.한 시간 뒤, 이육진은 간석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했다.이육진이 소우연을 안고 욕실로 향했고 정연과 명심은 이부자리를 정리하다가 빨간 핏자국을 발견하게 되었다.흠칫하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를 힐끔 쳐다보았다.설마…전에 태자와 태자빈은 이불을 적신 적이 몇 번 있지만 이렇게 처음으로 핏자국을 남긴 걸 보면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합방이란 말인가?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처음 핏자국을 남겼을 땐 태자가 자신의 손바닥을 베어 이불에 묻혀서 덕빈의 눈을 피한 것이다.그러고 나서 두 사람이 합방을 했을 때 만약 태자빈이 피를 흘리지 않았다면 태자는 꽤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하지만 태자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두 사람이 지금까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98화

    소우연은 조금 더운 게 아니었다. 그녀는 심지어 옷을 벗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으며 특히 이육진의 품에 이렇게 안겨 있으니 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청량감이 들기도 했다.이런 느낌은 말로 쉽게 형용할 수 없었다.소우연의 두 손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듯 본능적으로 이육진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고 옆구리살을 살짝 꼬집으니 왠지 흥분되기도 했다.“연아, 준비되었느냐?”이미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렌 이육진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제가 술을 마신 건, 저하께 드릴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소우연이 몽롱한 정신으로 대꾸했다.“연아, 그러지 말고 오늘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네가 술을 마셨으니 어쩌면 전처럼 그리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두 사람은 각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소우연은 이육진에게 자신의 악몽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저 작가가 쓴 이야기 속 허상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하지만 이육진은 지금 그녀와의 합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전, 전…”“더 이상 거절하지 말거라. 저번에도 날 거절하지 않았느냐?”소우연이 입을 열던 순간, 이육진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얼굴과 귓볼 그리고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소우연은 마음이 나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전…”이때, 이육진이 소우연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침대로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부군, 이번에는 조금 더 살살해주세요.”소우연은 이육진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저번의 경험이 아직 생생하기에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편, 소우연의 말에 다정하게 피식 웃던 이육진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또박또박 말했다.“너무 두려워하지 마.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아픔이다.”그의 말에 이를 꽉 깨문 소우연은 어느새 두 팔이 이육진에게 잡혀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우연히 베개 밑에 있던 그 서책이 손에 닿았다.“태자 저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97화

    ’아니, 이게 무슨 술이지?’소우연은 입안에 남은 술을 자세하게 음미했다.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부군, 술 맛이 어떠합니까?”이육진도 술맛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면 정연에게 다른 술로 바꿔오라고 할 생각이었다.이때, 이육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나쁘진 않다.”‘나쁘지 않다고? 그럼 그냥 참고 마시지 뭐.’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소우연은 머리가 점점 무겁고 어지러웠지만 그녀와 달리 이육진은 전혀 아무 반응도 없는 듯했으며 심지어 바둑판을 들고 오기도 했다.“바둑이나 한판 두는 게 어떻겠느냐?”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보며 뭔가 할 말이 있었지만 입만 뻥긋거릴 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에 마차 안에서 그녀는 이육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할 게 있다고 했는데 이육진은 왜 전혀 물어보지도 않는 걸까?그렇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연이 너부터 두거라.”이육진이 까만 바둑알을 소우연에게 건네자 소우연은 한 손으로 턱을 살짝 괸 채 대꾸했다.“전 하얀 바둑알이 좋습니다.”수정 같이 하얀 바둑알은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피식 웃던 이육진은 까만 바둑알을 한 알 꺼내 먼저 두면서 말했다.“조금 전에 간석을 시켜 소우희 그자를 수색하고 있는 호위병들을 전부 철수시켰다.”이육진의 말에 흠칫하던 소우연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왜 그러셨습니까?”“용 대감이 그자가 먼저 나를 찾아올 거라고 하였다.”“소우희가 저하를 찾아온다고요?”기다란 손가락으로 까만 바둑알을 바둑판에 살짝 내려놓던 이육진이 소우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 소우희가 날 찾아올 거라고 하여 그자를 수색하고 있는 호위병들을 철수하였지. 그래야 소우희가 나에게 올 기회가 있을 테니까.”손에 하얀 바둑알을 들고 있던 소우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어차피 소우희를 끝까지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다른 건 몰라도 소우연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96화

    용강한이 멀리 떠난 뒤, 이육진은 바둑판에 놓인 바둑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왠지 용강한은 소우연을 꽤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예전에 소우연이 소우희 대신 이육진과 혼인을 맺었을 때, 용강한이 이육진을 찾아온 적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엔 태연하고 차분했지만 속으로는 꽤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육진이 혹시라도 소우연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태자 저하, 태자빈마마께서 식사를 준비해도 되는지 저하께서 물으셨습니다.”이때, 문 밖에 서있던 간석이 물었다.이육진은 고개를 들어 조금 어두워진 하늘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준비하거라.”그는 이내 일어서서 밖으로 향했다.한편, 밖에 서있던 간석은 돌아서서 명심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전하다가 밖으로 나온 이육진을 보게 되었다.명심은 이육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린 뒤, 돌아서서 저녁 준비를 하러 떠났다.“태자 저하.”이육진이 벌써 나올 줄은 몰랐던 간석은 인사를 올린 뒤, 이육진에게 다가가 조용하게 그의 곁을 지켰다.한편, 이육진은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질 무렵의 풍경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만 아쉽게도 이 풍경은 늘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간석아, 가서 진규에게 전하거라. 성문과 성밖을 지키고 있는 자들 외에 더 이상 소우희 그자를 수색할 필요가 없다.”“네, 소인 바로 전달하겠습니다.”간석은 이내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어리둥절했다.‘소우희를 체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닌데? 성문과 성 밖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그대로 두라고 하셨는데? 그건 소우희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으시겠다는 뜻 아닌가?’한편, 본채로 돌아온 이육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우연이 한걸음에 다가와 그를 반겼다.“용 대감은요?”“돌아갔다.”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육진의 시선은 미소를 짓고 있는 소우연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저하,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십니까?”“예뻐서 그런다.”입술을 살짝 오므린 소우연은 이육진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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