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자리에서 일어난 소우연은 이육진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었으나, 이육진은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갑자기 눈을 지그시 감았다.“국물을 마시고 싶소.”소우연은 이육진의 요구대로 국물을 떠서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한 모금 삼키던 이육진은 갑자기 사레에 걸린 듯 기침을 하더니, 결국 국물을 사방으로 뿜어버렸다.화들짝 놀란 소우연이 얼른 말했다.“왕야,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사레에 걸려서 국물이 폐에 흘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소우연의 말에 흠칫하던 이육진은 남강에서 있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소녀가 이육진에게 탕약을 먹일 때 앞을 볼 수 없었던 이육진은 급하게 마시다가 사레에 걸렸었다.그때 소녀가 해준 말이 있었다.“도련님,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너무 급하게 마시면 사레에 걸려 국물이 폐에 흘러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생각에 잠겨 있던 이육진이 소우연을 보며 말했다.“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소.”“괜찮습니다. 제가 조금 더 천천히 드리겠습니다.”남강에 있을 때, 소녀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괜찮습니다. 천천히 마셔도 됩니다.”목소리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같은 말투에 같은 약초 향이었다.눈을 천천히 뜬 이육진은 한층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았고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의 시선이 왠지 낯설었다.“왕야?”이육진이 그릇을 손에 들며 말했다.“이젠 나 스스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소.”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육진은 책을 보고 있었고 소우연은 그 곁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의서를 공부하고 있었다.이때, 진규가 방으로 들어와 이육진에게 아뢰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이육진은 별채 곁에 있는 곁방을 가리키더니, 문득 소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부인이 이 별채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럼 옆에 있는 곁방을 나와 함께 쓰는 서재로 만드는 게 좋겠소.”“네?”이육진은 이미 따로 서재가 있지 않나? “부인은 날 치료해줄 약을 만들어야 해서 약방에
몇 대가 큰 복을 받는다…도대체 어떤 신분을 소유하면 몇 대나 큰 복을 받을 수 있을까?그건 바로 만인지상에 있는 황후이다.때문에 소씨 가문 모든 사람들은 소우희에게 심혈을 기울였다. 만약 이육진이 지금 이 꼴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현재 황태자의 신분일 것이고 소씨 가문 사람들은 소우희를 회남왕 관저에 시집 보내려고 갖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몸과 얼굴이 망가진 이육진은 절대 황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소씨 가문에서는 소우희를 회남왕에게 시집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소우희 대신 소우연을 보낸 것이다.그리고 소우희는 자연스럽게 소우연을 대신하여 평서왕 세자와 혼인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훗날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 소씨 가문의 부귀영화를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정신 나간 사람들! 그자들은 소우희가 황후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확신한 건가?”이육진은 결코 소씨 가문이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가게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빨래방 시녀는 전에 왕비님 곁을 지키던 시녀라고 합니다. 마침 그 시녀가 소씨 저택 하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걸 목격해서 소인이 물어봤습니다.”턱을 괸 채로 한참동안 침묵하던 이육진이 입을 열었다.“왕비는 이 저택에 시집올 때 시녀 한 명도 데리고 오지 못했어. 소씨 가문에서는 내가 왕비를 죽일 거라고 확신한 건가?”진규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이육진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이육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차별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그게 얼마나 슬프고 외로운 일일지 알 것만 같았다.이육진은 지금 그런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황위를 황족 다른 자제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으며 더 이상 이육진을 고려하지 않았다.몸과 얼굴이 망가졌다는 이유로 황족들에게 있어서 이육진은 괴물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난폭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괴물이었다.“왕야, 지금까지 이 저택에 시집온 여인들이 전부 살해됐으니 소씨 가문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진규의 말에
“십중팔구이옵니다.”“소우희는 참으로 대담하도다. 의술 같은 것조차 감히 남을 사칭하다니!”진규가 말하자 이육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대담함 때문이 아니오.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자를 지나치게 애지중지하는 반면에 우연이에게 소홀히 대하니, 그자의 기세가 점점 커져 우연을 그리도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오.”진규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연이라니? 왕야께서 왕비를 부르는 호칭이 어찌 이리 크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이육진은 진규의 놀란 표정을 전혀 보지 못한 듯하였다. 진규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은 듯했다.다행히 왕야의 신변을 지키는 호위로서, 목숨은 안전할 것 같았다! 진규는 이 순간의 왕야가 예전보다 한층 더 인간적이라 좋았다.왕비도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시다!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니, 무빈이 다가왔다.“폐하, 왕비께서 사람을 보내어 왕야께서 이락원으로 돌아가시는지 여쭈셨습니다.”그러자 이육진이 답했다.“이후로는 쭉 그리할 것이니라.”쭉 그리할 것이라고?무빈은 깜짝 놀라 진규를 바라보았지만 진규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왕부에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 같았다.천지개벽?어떤?이락원으로 돌아가니, 샤워를 마친 소우연이 한창 의학 서적을 보고 있었다.하인들이 예를 올리는 소리에 그녀는 책을 덮고 곧바로 나와 맞이하였다. “오늘 밤 제가 첫 번째 치료 과정의 연고를 시험해 보겠나이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좋다.” 곧이어 무빈과 정연이 하인들과 함께 들어와 큰 목침대 근처의 욕조를 가득 채웠다.그리고 이육진은 스스로 상의를 벗고 몸을 풀었다. 이락원은 본채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그저 욕실 한편에 병풍으로 구획을 나눈 정도였다. 욕조는 침대 가까이에 놓여있었고, 위에는 하나의 가로 막대가 있어 이육진이 갈아입을 옷이 걸려 있었다. 소우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다가갔다.“제가 모시겠나이다.”이육진은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맞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라…….이건 연인들 사이에서나 하는 서약이 아니던가?이육진의 심장은 거세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씨앗이 그의 가슴속에 뿌리내려,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나도 그대에게 약조하노니, 내가 살아있는 한 평생을 다해 그대를 지켜주겠노라.”“왕야…….”소우연의 두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이 욕조의 따뜻한 김 때문인지, 아니면 감동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소우연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있었다. “저에게 그리 말씀해 주신 이가 처음이라 실례를 범하였나이다.”이육진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 가까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대가 내 모습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 그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그럴 리 없사옵니다.” 소우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민수는 훌륭한 미모를 지녔다. 그런데 그와 소우희는 왜 그녀를 기만한 건일까? 분명 이미 눈이 맞고 남았을 텐데 이민수는 가족과 함께 이를 그녀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렇다면...”그 순간 이육진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물속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소우연의 손에는 여전히 목욕 천이 들려 있었다. 소우연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랬다. 부부라면, 평생 함께할 뜻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다만 이육진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더니 그녀의 심장도 빠르게 뛰기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소우연은 그저 빨리 끝내려다 한 순간의 부주의로… 순간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마치 잘 삶아진 새우 같았다. “제, 제가… 왕야의 의복을 가져오겠나이다!”놀란 그녀는 말이 꼬이기 시작했고 그가 답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육진: “…….”그의 얼굴 또한 그리 나을 바 없었으니, 조금 전 그녀가 그
이육진이 말하길, “그대는…… 평서왕 세자를 정말로 내려놓았는가?”소우연은 그가 갑자기 이민수를 언급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육진의 능력으로 보아, 그녀가 무엇을 숨기려 해도 결코 숨길 수 없을 것이다.결국, 이육진과 혼인하기 전까지 그녀의 마음은 이민수에게 온전히 쏠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소우연이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왕야의 사람이 되었사옵나니, 살아서는 제 왕부의 사람이고 죽어서는 왕부의 혼이 될 것이옵니다.” 그녀는 한편으로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혹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그러자 이육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아주 편안하구나.”그녀는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을 하였다. 다만 지난번에는 “살아서는 왕야의 사람이고 죽어서는 왕야의 혼”이라 말했을 뿐이었다. “제가 미덥지 않으십니까?”소우연이 문득 되묻자, 이육진이 대답했다. “믿는다.”그녀의 결심은 믿었다.하지만 이민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는 것은 믿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대화 중에서 아직까지도 이민수를 사랑하고 있냐는 말을 부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육진은 마음 한켠이 여전히 불쾌했다.소우연은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 더 이상 이 주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육진이 아직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그녀도 그의 표정에서 이미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이민수가 남아 있는지, 아닌지는 행동으로, 그리고 시간으로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그날 밤, 소우연이 먼저 침상에 올랐다. 이육진도 그 뒤를 따라 침상에 올랐지만, 촛대들이 아직 꺼지지 않은 것을 보고 소우연이 “앗!” 하고 소리를 냈다. 그녀가 촛대를 끄러 내려가려 하자, 이육진이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촛대들이 모두 꺼지고 방안은 삽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세상에...방금전 그의 행동은 너무 멋졌다.두 사람이 나란히 누웠다. 이육진이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며 그녀를
“미안하오. 내가 깊이 헤아리지 못했소. 왕비가 준비가 되었을 때, 주공지례를 행하도록 하지.”오랜 침묵 끝에 이육진은 약간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그리워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억지로 그녀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깊은 밤, 이육진은 소우연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소리 없이 스며드는 빗물처럼 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그의 마음이 편치 않은 반면에 또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다.그녀가 분명 평생 자신과 함께하겠노라 맹세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이름 모를 억울함과 거부감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와 함께할 생각에 모든 준비를 마쳤건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 없게 되자, 삽시에 밀려오는 공허함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왕비는 먼저 쉬게. 나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 가봐야겠다.”이 말만 남기고 그는 옷을 챙겨 입고 휠체어를 밀어 방을 나섰다. 소우연이 일어나 배웅하려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왜 이리되었는가? 그가 먼저 합방을 언급했건만, 어째서 갑자기 피하는 것인가? 소우연은 문득 소우희의 말이 떠올랐다. “몸에선 약초 냄새가 진동하는 너를 누가 좋아하겠어?”정말 그런 것일까?그녀는 내려온 머리카락의 냄새를 살짝 맡아보았다. 오늘은 머리를 감지 않았던 탓에, 정말로 약초 냄새가 배어 있었다.“왕비마마, 괜찮으신지요?”정연이 방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야가 밤중에 방을 나서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소우연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듯했다. 그녀는 촛불을 밝히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괜찮다. 어서 쉬도록 하거라.” “예.”정연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물러갔다.이락원을 나선 이육진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몸에 남아 있던 열기를 식혔다. 무빈은 물을 준비하라는 지시인 줄 알고 달려왔지만, 이육진이 이락원을 떠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뒤를 따랐다
미치도록 매혹적이라 떨쳐버릴 수 없었다.다음 날. 소우연은 정연과 호위무사, 마부와 함께 문을 나섰다. 그들이 떠난 뒤, 명심이 서둘러 서재로 가 이를 보고하였다. “이후로 왕비의 외출은 보고할 필요 없다.”명심은 약간 의아했으나, 왕야의 말에는 분명 깊은 뜻이 담겨 있는 듯했다. 왕야께서 왕비를 믿으시는 것이라 생각하니, 명심도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왕부에 주모가 자리하였으니, 자신과 정연같이 어릴 적부터 통방으로 길러진 여종들이라면 이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명심은 무의식적으로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왕야는 풍채가 빼어나고 절세의 풍류를 자랑했으나, 그 용모가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주인은 주인이니, 그녀와 정연은 왕야의 사람이었다.“알겠사옵니다, 왕야. 소인 명심하겠나이다.”물러나려는 명심에 이육진이 덧붙였다.“왕비가 돌아오면 나에게 알리도록 하거라.”“예.”한편, 소우연은 거리에 나가 약재를 몇 가지 사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언니…….”소우희였다! 소우연이 고개를 돌리자, 하얀 옷차림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소우희가 보였다. 소우희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쉬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야?”여기서 그녀를 마주치다니, 소우연은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졌다. 소우희는 가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어찌 나를 이리 대할 수 있어? 우리 자매는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 않았아? 자매는 영광도 슬픔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걸 언니는 모르는 거야?”소우연은 기가 차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혼 준비는 하지 않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데?”“언니가 준 진정향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할머니께서 이미 다 쓰신 모양이야.”소우희는 왕부 밖에서 며칠 동안 소우연이 외출하기만은 기다렸던 것이다.소우연은 그녀가 진정향 때문에 이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소우희는 마음이 급했다.“언니, 우리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잠깐 이
“당신은 이미 회남왕부에 시집갔거늘, 어찌하여 우희를 이리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오?”이민수는 소우희를 부축하며,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소우연을 노려보았다. 마치 그녀가 천인공노할 짓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이다.허, 간부가 나타난 거였군!소우연은 깊이 숨을 들이쉰 후 천천히 소매를 걷고 손목을 풀었다. 그리고 이민수와 소우희가 반응할 틈도 없이 소우희의 뺨을 후려쳤다. 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다시 한번 소우희의 얼굴을 때렸다. 주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소우희는 정신을 잃은 듯 멍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부풀어 올라 마치 원숭이 엉덩이 같았다. 소우희는 이민수에게 기댄 채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언니,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이민수는 소우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대가 이리도 사납고 포악하다니! 참으로 실망스럽구려.”그저 냉소로 화답하는 소우연은 잔잔한 물결처럼 평온했다. 심지어 그녀의 입가에는 약간의 조소가 어려있었다.“방금 저자가 직접 원망도, 미움도, 매도 모두 감내할 것이라고 한 것을 벌써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아님 그저 한번 지껄여본 것인가?”그녀는 소우희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그건…….”소우희는 화가 나면서도 몹시 초조했다. “이건…… 고의잖아!” 소우희는 이민수와 함께 있었으니,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싸는 것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반격이라도 한다면, 수년간 쌓아온 온화하고도 이해심 많은 이미지를 한순간에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천하기만 하던 소우연이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두 번째로 그녀를 때린 것이었다.“정말로 혐오스럽기 그지없소!”그의 말은 마치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삼킬 듯했다.이민수는 다시 독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그저 우희의 착함을 이용해 괴롭히기만 하는군. 난 그대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설령…….”그
자신은 다르다?아이를 낳아줄 수 있다고?소우연은 속으로 코웃음쳤다.이 남자의 역겨운 말에 속이 뒤틀렸지만, 그녀는 얼굴에 내색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이런 기막힌 말들을 소화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다시 경성으로 돌아갈 방법도 생각해야 했다.“내 진심을 믿지 못하겠느냐?”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이민수는 불안해졌다.그는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급히 말을 이었다.“예전에 소 씨 사람들이 너를 대신 시집보낸다 했을 때, 나는 그저 말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너를 보낼 줄은 몰랐다. 내 잘못은 그것을 끝까지 막지 못한 것이다. 우연아, 우리 과거는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없겠느냐?”끝까지 막지 못했다고?과거는 잊고 다시 시작하자고?소우연은 생각했다.이민수의 입은 정말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다.예전에는 그녀를 속이고, 나중에는 소우희까지 속였다.“생각할 시간을 주세요.”소우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당장은 도망칠 방법을 알 수 없었다.어느덧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낮에는 대나무 숲과 개울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르지만, 밤이 되자 사방에 모기가 극성이었다. 잠시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얼굴이며 팔이며 목 뒤까지 모두 모기에 물리고 말았다.이민수는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말했다.“혹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설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폐인 이육진이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을 거라 믿는 건가?겨우 일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자신에게 매달렸던 소녀가 이육진에게 빠져버렸단 말인가?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마음이 답답해진 이민수는 더욱 그녀를 빨리 차지하고 싶어졌다.어차피 침상 위에서 이육진 그놈은 남자구실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는가.남녀의 정은 원래 서로의 마음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법이다.일단 자신과 한 번 정을 나누면, 그녀는 자신과 이육진 중 누가 진짜 남자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소우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
중요하다고?그저 자기의 것을 빼앗겼다는 욕심 때문일 뿐이었다.원작에서도 소우희가 비록 여주인공이었지만 이민수 곁에는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 황제로서 자손이 가장 중요하다는 명목으로 여러 명의 여인을 두고 자식을 많이 낳았다.소우연은 이민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저하께 정말로 많이 상처받았습니다.”이민수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재빨리 피했다.소우연이 차분히 물었다.“이미 저흰 엇갈렸어요. 오늘 날 납치한 목적이 대체 무엇이죠? 정말 저하를 위해서라면 저를 빨리 경성으로 돌려보내 주세요.”“태자 전하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저하께서 더 잘 아시잖아요.”“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냐?”이민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직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소우연은 살짝 웃었다.“모르겠어요.”사실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이 남자를 당해낼 자신도 없었고, 그가 갑자기 돌변해 자신의 명예를 해칠까 봐 두려웠다.“모르겠다고…”이민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부하가 소우연이 시녀와 함께 걸어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순간 그녀를 납치해 숨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녀를 숨겨놓고, 가끔씩 보러 오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바로 그때 농부처럼 생긴 여인이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여인은 이민수를 보고 공손히 말했다.“공자님, 오늘 저녁식사입니다.”저녁…그렇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이제 한 시진 정도만 지나면 어둠이 찾아올 터였다.소우연의 마음이 급격히 조급해졌다.겉보기에 이 마당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녀는 이민수의 사병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도망갈 길은 없었다.그 여인은 소우연을 힐끗 보더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물러갔다.“왜 그러느냐, 먹고 싶지 않은 것이냐?”이민수는 소우연이 젓가
이민수가 자신이 도망치려 한다고 오해하지 않도록 소우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마당을 둘러싼 대나무 숲 안에서만 움직이며 멀리 나가지 않았다.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산세가 깊고 계곡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이민수가 말을 달려 꼬박 한 시진이나 걸린 이곳은 이미 경성 근교를 훨씬 벗어난 곳일 터였다.“여기가 어디죠?”소우연은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먼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대나무 오두막.”그런 건 뻔히 보이지 않는가?대나무 오두막이라고?맞다. 이곳은 소설에 등장했던 장소였다. 이민수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조용히 찾아오곤 했던 장소. 그녀가 이곳을 기억하는 이유는 소우희가 대나무 숲을 좋아하고, 계곡을 좋아하고, 작은 다리와 물이 흐르는 풍경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의 눈에 작은 다리가 보였다.이민수는 왜 그녀를 굳이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일까? 이곳은 그의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만약 이번 생에도 그녀가 도망쳤다면, 그녀는 결국 불행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이민수와 소우희의 정만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소우연의 마음이 복잡해졌다.어떻게 하면 이민수를 설득해서 자신을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아까 자신을 품에 안던 그의 눈빛을 떠올리면 지금도 두려움이 밀려왔다.만약 그녀가 너무 냉정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그를 자극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었다.이번 생에 그녀는 반드시 이육진 곁에 남아, 이민수와 소우희의 비참한 최후를 봐야만 했다.결심을 굳힌 소우연은 마음속의 증오를 숨기고 침착히 대응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육진이 분명 곧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다.연노랑 치마를 입은 소녀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며시 들어 올리자 마치 날아오를 듯 가녀린 나비와 같았다.갑자기 그녀가 몸을 돌렸다. 맑고 깨끗한 눈빛으로 웃으며 다가왔다.이민수는 숨이 턱 막혔다.이 얼굴은 예전과 달랐다. 전에는 그녀를 가끔 볼 때면 장군부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욱 거칠게 말을 몰아 성문까지 질주했다.소우연은 구조를 요청할 기회를 노렸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남자가 성문 수비병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자, 병사들은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놓아줘! 당신 대체 누구야, 원하는 게 뭐냐고!”소우연은 끊임없이 물었지만 남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산과 물이 어우러진 한적한 곳에서 남자가 말을 세웠다.그는 말에서 내려 그녀를 어깨 위에 거칠게 메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소우연은 작은 주먹으로 그의 등을 사정없이 두들겼고, 참다못해 남자의 어깨를 힘껏 깨물기까지 했다.하지만 남자는 작게 신음 소릴 낼 뿐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이렇게 어깨 위에 매달린 채 흔들리다 보니 아침에 먹은 음식마저 전부 쏟아질 것 같았다.한참 뒤, 시냇가의 대나무 숲을 지나자 작은 목조 오두막 한 채가 나타났다.남자는 큰 발로 문을 차 열고 안으로 들어가 소우연을 조심스럽게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소우연은 온몸에 힘이 풀려 일어나려 했지만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바로 그때 남자가 얼굴을 가렸던 천을 내리고 그녀를 뜨겁게 바라보며 말했다.“우연아, 겁내지 마라. 나다.”“이민수!”소우연은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신을 납치한 이가 이민수였음을 깨달았다.주변을 다시 둘러보니, 전혀 모르는 낯선 장소였다.대체 이 남자… 뭘 하려는 거지?소우연은 온 힘을 짜내 겨우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오두막 안을 살폈다.“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우연아, 흥분하지 말거라. 나는 단지 네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말을 마치자마자 이민수가 그녀를 안으려 다가왔다.소우연은 급히 그를 밀어냈지만 여자의 힘으로 남자를 어찌 막겠는가?머릿속이 하얘졌다.만약 이민수가 강제로 뭔가 하려 한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안 돼.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소우희가 죽는 모습을 봐야 하고, 이민수가 황위를
정연은 할 말을 잃었다.한 사람당 하나씩 찹쌀떡을 먹는다니?물론 혼자 장을 보러 나왔을 때 종종 길거리 간식을 사 먹기는 했지만, 태자빈과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이 길거리에서 이런 군것질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상인이 거스름돈을 내주자 주종 두 사람은 손에 찹쌀떡을 하나씩 들었다.정연은 소우연이 정말로 찹쌀떡을 입에 대는 것을 보고서야 따라서 한 입 베어 물었다.그녀는 말없이 소우연의 뒤를 따르면서 오늘 태자빈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아마 친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사람이란 늘 갖가지 이유로 타인을 상처 주는 일을 한다.시어머니가 미우면 시어머니와 싸울 일이지, 왜 그 날카로운 칼을 자기 자식에게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정연은 문득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자신 또한 어린 시절부터 거간꾼에게 팔려 철저히 훈련받고 여섯일곱 살부터 궁에 들어가 규율을 익혔다.이후에는 이육진의 침소를 돌보는 시녀로 내정되어 이육진에게 하사되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육진은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명심만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긴 장안거리를 걸어 다리가 점점 아파질 때쯤, 소우연이 돌아보며 물었다.“정연아, 아직 걸을 수 있겠느냐?”정연이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마마께서는… 힘드시지 않으세요?”조금 전에는 왜 막지 못했을까. 이미 길을 반쯤 걸어왔으니 돌아갈 수도 없었고, 진우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내실에서만 지내는 여인들이 어찌 이렇게 긴 거리를 걸을 수 있겠는가?태자빈 소우연도 분명 힘들 텐데.하지만 소우연은 말했다.“나는 괜찮다.”장군부에 살 때 그녀는 매일같이 약초를 손질했다.때로는 바빠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조금만 느리게 움직여도 아버지와 오라버니들, 그들의 병사들이 상처 치료를 못 받아 고생할 수 있었기에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그렇게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쳤다.좋
정연과 진규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소우연은 바닥에 깨진 찻잔을 한 번 흘깃 보고 말했다.“나중에 임곽수에게 새 찻잔을 보내주거라.”“예.” 정연이 가볍게 고개 숙여 대답했다.진규가 다시 물었다.“태자빈 마마, 전하께서 여쭤보셨습니다. 소우희 아씨를 어떻게 처리하실지요?”소우연은 관자놀이를 살짝 문지르며 천천히 말했다.“사람을 보내 그 아이의 독이 풀렸는지 확인하거라. 아직 풀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천천히 고통받게 내버려두고, 만약 풀렸다면…”그녀의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번쩍였다.진규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독이 풀렸다면 내가 직접 만나러 갈 것이다.”직접 지옥으로 보내주마!평소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너무 달라, 진규조차 순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사실 이육진이 진규를 통해 물어본 건 마지막으로 태자빈의 결심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그녀가 정말 소우희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지 그는 확실히 알고 싶었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진규가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예, 알겠습니다. 속히 돌아가 전하께 아뢰겠습니다.”“그래.”진규가 나가자 소우연도 정연과 함께 내실에서 나왔다.밖에서는 임곽수와 그의 두 명, 아니 세 명의 제자가 일을 보고 있었다.셋째 제자는 예전에 소부인에게 아버지의 다리를 고친 사람이 태자빈이라고 알려준 그 소년이었다.그 소년이 소우연을 보자 공손히 다시 절을 올렸다.소우연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임곽수가 널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네가 재능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지, 내 덕이 아니다.”“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마마께서 아버지의 다리를 고쳐주신 덕에 소인도 만안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겐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소우연이 미소를 지었다.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나쁘지 않았다.임곽수는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제자와 소우연 쪽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그 역시 소우연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그녀가 아니었다면 벌써 만안당을 떠
진우는 호위무사였다.온몸에 무예를 지닌 사내였으니 소부인이 버티자마자 가볍게 병아리를 잡듯 그녀를 끌고 나가버렸다.정연은 가슴이 살짝 떨렸다.옆에 서 있던 진규와 눈을 마주치고는 서로의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태자빈 마마도 성질이 있으셨구나, 그저 참고 계셨을 뿐.’태자 이육진도 그리도 강한 사람이거늘, 이육진 곁의 소우연이 어찌 온순한 사람일 리 있겠는가?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나인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소우연은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물었다.“소부인이 말을 안 했으니 네가 말해보거라. 넌 소부인의 곁을 오랫동안 모셨으니 알 것 아니냐?”나인은 망설이며 입술을 떨었다.정연이 재빨리 말했다.“마마께서 말씀하셨는데 감히 숨기겠습니까? 어디 제가 지금 당장 칼이라도 가져와 볼까요?”칼은 또 왜?나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급히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마마, 감히 숨기지 않겠습니다.”“그래, 말해보거라.”소우연은 사실 분노보다 호기심이 컸다.소부인이 자신을 미워한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정말 궁금했다.나인은 몇 번 침을 꿀꺽 삼킨 뒤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그녀의 입을 통해 소우연은 드디어 이유를 알게 되었다.소부인은 자신의 시어머니를 몹시 싫어했었다. 어릴 적 소우연의 모습이 자신의 시어머니와 너무 닮아 그녀까지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허허…고작 그 이유 때문이라니.정말 기가 찼다!나인은 소우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태자빈은 의외로 평온한 표정이었다.진실을 알게 되면 심장이 멎을 것처럼 아플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지금의 태자빈은 어릴 적의 성격과 완전히 달랐다.단단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이 소부인의 막내 여동생과 매우 비슷했다.하지만 그 여동생은 어릴 적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또 다른 숨기는 일이 있느냐?”소우연은 나인의 눈에 언뜻 스친 빛을 정확히 잡아냈다.나인은 황급히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마마, 정말 없습니다.”“없다고? 방
“왜죠?”소우연은 소부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집착은 아니라 해도, 이 이유만큼은 분명히 알아야겠다 싶었다.대체 왜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가?“정말 전 소 씨 가문의 사람이 맞나요? 정말 절 낳은 게 맞나요?”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소부인은 조금 겁을 먹은 듯 말했다.“너, 너는 내 자식이다. 우희와 너는 내 배에서 나온 쌍둥이야.”옆에 있던 나인이 재빨리 덧붙였다.“마마, 당연히 마마께서는 부인의 친자식이 맞습니다. 노비가 직접 보았으니 증언할 수 있습니다.”소우연은 나인을 차갑게 쳐다보고 다시 소부인을 향해 말했다.“그럼 왜 나와 소우희는 전혀 닮지 않은걸까요? 왜죠?”그녀는 손을 뻗어 소부인의 턱을 들어 올리며 똑바로 눈을 바라보았다.“정말 제 친모가 맞으십니까?”“맞고말고. 당연히 넌 내 딸이야.”소부인은 입술을 떨었다.차갑고 싸늘한 표정으로 화를 내는 소우연의 모습이 여동생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동생, 자신은 늘 냉대 받았다.그래서 그때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왜 소우연에게 잘해주지 않았느냐고?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의 동생과 너무나도 똑같았다.자신이 직접 낳지 않았다면 아이가 뒤바뀌었나 의심했을 정도였다.쌍둥이인데도 이렇게 다른 외모를 가진다는 것이 정말 기이했다.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동생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저주받은 재앙이라고 생각했다.소부인 마음 깊은 곳에서 소우연은 빚을 받으러 온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도 소우연을 미워했던 것이었다.“그래서요?”소우연이 조용히 되물었다.“똑같이 낳은 자식이라면서 왜 저에게만 그렇게 못됐게 구셨죠? 제가 말을 듣지 않았나요? 철이 없었나요? 왜 절 좋아하지 않았죠?”담담한 질문에 소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절대로 소우연에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소우연은 한숨을 내쉬고 진우를 돌아보며 말했다.“진우야, 소부인을
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 태자 전하께서 마마께서 내기에서 이기셨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소우연은 마음이 통한 듯 미소 지었다.마치 소부인이 눈앞에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하지만 소부인은 사랑하는 딸과 셋째 아들이 걱정되어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억지로 참고 다시 낯 두껍게 말을 꺼냈다.“우연아, 제발 나에게 우희의 행방과 상황을 좀 알려줄 수 없겠느냐?”소 부인의 얼굴이 온통 초조함으로 가득했다.전에는 그토록 품격 있고 우아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창백한 얼굴로 초췌하기 그지없었다.소 씨 가문에 닥친 일들이 그녀를 정말 피곤하게 만든 듯했다.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소우연은 그런 소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무릎 꿇기를 좋아하면 얼마든지 꿇게 두면 그만이었다.소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늘 소우희에게 편애하고 자신에게 냉정하게 군 것을 후회한 적도 없었다.저 여자가 스스로 떳떳하다는데, 자신이 뭐 하러 모녀라는 이름 때문에 마음을 불편히 해야 한단 말인가?소우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부인을 바라보며 무력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저 제 어머니라는 관계 하나를 믿고 이렇게 끝도 없이 저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군요.”소부인은 입술을 떨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지금 소우연에게 매달리는 것 말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집안의 남자들에게 자기 딸이나 여동생에게 가서 무릎 꿇고 사정하라 시킬 수 있겠는가?상상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소부인은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했고 옆의 나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그녀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진규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소부인, 태자빈 마마께 매달려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차라리 돌아가셔서 소 장군과 상의하는 게 빠를 듯싶습니다.”소부인은 숨이 턱 막혔다.감히 일개 호위무사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원래대로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소우연 앞에서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