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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1화

“아니거든?”“그런데 왜 계속 보라고 하는 거야?”김시연은 입을 삐죽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궁금하다며? 이제 와서 무서운 거야?”“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김시연은 매우 쿨하게 말했다.그녀는 두 손으로 연도진의 셔츠를 빼내더니 자연스럽게 벨트를 풀었고 지퍼를 내리자 검은색 속옷과 함께 보일락 말락 한 복근이 드러났다.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연도진의 시선은 하얗고 부드러운 김시연의 얼굴에 닿았다.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김시연과 두 눈이 마주쳤다.그와 달리 김시연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길고 가는 속눈썹이 마치 작은 날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검은 속옷에 비해 너무 가늘고 하얀 그녀의 손은 속옷 주위를 맴돌았다.김시연은 연도진을 힐끗 보더니 망설임 없이 속옷을 아래로 잡아당겼다.하지만 벗겨지지 않았다.연도진이 혼신의 힘으로 막고 있었기에 아무리 잡아당겨도 꼼짝하지 않았다.“왜 그래?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갑자기 왜 막아?”김시연은 고개를 들어 연도진을 바라봤다.“보지 마.”김시연은 어이가 없었다.“보지 말라고? 괜히 내 입맛 다시려고 그랬던 거야?”바지까지 벗었는데 보여주지 않다니 너무 실망이었다.“놀리고 싶었어. 볼 것도 없는데 뭐...”연도진은 자연스럽게 지퍼를 올렸고 그 말은 김시연의 분노 버튼을 눌러버렸다.“야, 너 지금 장난해? 안돼, 난 무조건 볼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김시연은 막무가내로 그의 벨트를 풀었다.‘마음 준비를 얼마나 했는데 이제 와서 안 보여준다고? 절대 안 되지. 난 무조건 보고 말 거야.’연도진이 막을수록 김시연은 점점 더 보고 싶었다.“시연아, 다음에 보여줄게. 응?”연도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타일렀다.“싫어. 지금 볼래.”김시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곧바로 지퍼를 내렸다.연도진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곧바로 바지를 들고 몸을 숙이며 자리를 피했다. 재빨리 뒤로 물러섰지만 김시연은 끈질기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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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내 작품을 좋아한다며 가격을 두 개 정도 높게 불렀어. 마침 할 일도 없어서 촬영하겠다고 했지.”김시연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무리하지 마.”“알겠어. 다음 달에 정말 도진 씨랑 결혼하는 거야?”“응.”“어머님이랑 아버님이 그래도 도진 씨가 마음에 드시나 보네?”김시연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좋아해.”“나중에 두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하면 동의하실까?”“음...”김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동의 안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우린 애초에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뭔 이혼이냐? 시간 지나면 두 사람도 알아서 받아들이겠지.”“하긴... 요즘 정신없지?”“응. 오늘은 도진이랑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외출 전, 김시연은 온하랑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하랑아, 나 먼저 나갈게.”“응. 잘 다녀와.”온하랑도 시간을 보고 서둘러 스튜디오로 출발했다.오늘 가게 되는 이 스튜디오는 평소 자주 가던 촬영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온하랑이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직원이 폴더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랑 씨, 어제 계약한 손님이 작성한 계약서예요. 저랑 이미 얘기가 끝났는데 하랑 씨도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계약서를 건네받은 온하랑은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손님께서는 총 4벌을 준비하셨고 이틀 동안 나눠서 찍을 예정입니다. 사진은 30장으로 정했고 더 원할 시 한 장당 1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액자는 손님께서 원하신다면...”“마감은 언제죠?”“그건 하랑 씨랑 직접 만나서 얘기한다고 하셨습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선호하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싶다며 지금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요?”온하랑은 폴더를 다시 건네줬다.“그럼 지금 바로 가볼게요.”온하랑은 곧바로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조심스럽게 노크 두 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눈앞이 어두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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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커플 사진은 찍는 건 온하랑도 처음이었다.비록 김시연과 연도진이 가짜 결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시연의 말을 귀담아듣고 귀를 기울였다.온하랑은 어젯밤 벼락치기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경험 글을 읽었다. 결국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포즈가 한정적이기에 옆에서 참견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돕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쌓아온 경험이 있었던 김시연은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잘 나올지 알고 있었다.“인터넷으로 웨딩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들을 엄청 많이 봤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자세가 너무 어색하거나 표정이 부자연스러운 거야. 난 이런 게 싫어.”김시연은 온하랑에게 사진을 보여줬다.대부분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감싸거나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있는 다정한 포즈들이었다.“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참 좋아하겠다. 일단 엄마랑 아빠한테 보여줄 사진 몇 장 대충 찍고 그다음은 마음대로 하자.”“그래.”“난 자연스러운 게 좋아. 서로 눈도 마주치고 얘기도 하고, 예를 들면 이런거...”김시연은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온하랑에게 더 보여줬다.사진 속의 남녀는 석양 아래서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밝은 미소와 따뜻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더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두 사람이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연도진은 이미 분장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어스트턴트 두 명이 여분의 옷과 로케이션 용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연도진의 헤어스타일만 봐도 얼마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준비했는지 티가 났다.그는 몸에 꼭 맞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훤칠한 몸매와 우아한 자태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연도진은 김시연을 바라보다가 다시 온하랑을 향해 꼬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김시연은 연도진을 쳐다보더니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고 그의 머리카락 끝을 만졌다.“딱딱하네.”“응.”연도진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헤어스프레이 뿌렸어.”그의 의상은 맞춤 제작한 것처럼 보였다.김시연은 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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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가벼운 스타일로 옷을 갈아입은 김시연은 연도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재켓 벗어.”연도진은 순순히 정장 재켓을 벗어 어시스턴드에게 건네줬다.“넥타이도 벗어. 단추도 몇 개 풀고 셔츠를 이렇게 걷어 올려.”연도진은 김시연이 시키는 대로 했다.김시연은 연도진을 가리키며 한발 물러나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선 빙그레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이를 놓칠 리가 없었던 온하랑은 재빨리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연도진의 표정도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애정이 가득한 눈빛에서 그들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사실 두 사람은 평범한 커플이나 다름없었다.“이제 끝.”온하랑이 말했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야외 촬영을 나갔다.그렇게 저녁에 되어서야 촬영이 끝났다. 세 사람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연도진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돌아온 온하랑은 낮에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에 옮기면서 김시연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하나하나 살펴봤다.김시연은 사진을 보면서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미쳤네. 하랑아, 너 사진 왜 이렇게 잘 찍냐? 다 너무 예쁜데 어떻게 30장만 골라. 난 진짜 못 정하겠어.”“네가 봐도 너무 예쁘게 잘 나왔지?”“응.”김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랑 도진 씨의 웨딩 사진이야.”김시연은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봤다.“응?”“시연아, 왜 웨딩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지 잊었어? 부모님께 너랑 도진 씨가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인 걸 증명하고 싶어서 찍은 거잖아.”김시연은 곰곰이 생각했다.“맞아...”김시연은 웨딩 사진을 찍으려던 의도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연도진과 찍은 사진에 심취해 버렸다.제3자가 봤을때도 김시연은 너무 깊이 빠져있었다.아직 결혼식도 안 올린 상황에서 이미 이렇게 몰입했으니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연도진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닐 게 뻔하다.연도진은 너무 똑똑하여 항상 자신도 모르게 김시연을 도랑으로 끌어들이곤 했다.물론 김시연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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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임가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다시 풀었다.“알겠어. 일단 호텔로 돌아가자.”호텔에서 내리기 전 임가희는 비서에게 지시했다.“이엘리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조사해 봐.”다음 날 아침, 비서는 그가 조사한 정보를 사실대로 임가희에게 보고했다.이엘리아의 어머니인 서희수는 서정훈의 친여동생이다. 유학 시절 남편 윌슨을 만나 필라시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아들이 한 살 남짓 되었을 때 서희수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장례를 치르러 황급히 강남에 돌아왔고 그때 아들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10년 만에 찾은 아들이 바로 연도진이었고 위에 언급되었던 딸이 이엘리아다.이엘리아는 강남에 드나드는 일이 전혀 없었기에 이번에 들어온 건 부승민과의 딸인 부시아를 되찾는 것 외에도...이를 들은 임가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서의 말을 잘랐다.“잠깐만, 이엘리아랑 부 대표? 부시아가 두 사람의 딸이란 말이야?”사실 임가희는 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한 적이 없었기에 오직 심증만으로 부시아가 온하랑과 부승민의 딸일 거라고 추측했다.“그렇습니다. 얼마 전 부 대표님이 부시아와 함께 서씨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부시아는 하랑 씨와 부 대표님이 입양하려던 아이였어요. 모든 진실이 밝혀진 다음날 하랑 씨는 부 대표님의 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임가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부씨 가문과 서씨 가문에 얽힌 일인 만큼 조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모든 게 부 대표님의 고모인 부선월 씨와 연관되어 있습니다.”임가희는 생각에 잠겼다.“계속 얘기해 봐. 그럼 이엘리아는 지금 원하는 게 뭐야?”“사실 이엘리아 씨는 부 대표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다는 이유로 매달리며 부 대표님과 한 단계 더 발전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임가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를 생각했다.“일단 알겠어. 내려가 봐.”“알겠습니다.”비서가 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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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설마 삼촌이 직접 나 데리러 온 건가?’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날 때 이엘리아의 눈앞에 나타난 건 낯선 여자였다. 실망한 만큼 기분이 착잡했던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짜증 내며 고개를 돌렸다.김시연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이엘리아는 그 어떤 여자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임가희는 이엘리아의 얼굴을 빤히 살펴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늦추었고 문득 옛일이 떠올라 지금 이 순간이 꿈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임가희의 표정을 본 이엘리아는 역겨운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임가희는 마음이 심란했지만 애써 차분함을 되찾고 이엘리아의 맞은편 의자를 꺼내 앉았다.“아가씨가 이엘리아 윌슨 씨군요.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그쪽이 누구든 관심 없거든요? 그리고 저랑 무슨 상관이죠?”이엘리아는 콧방귀를 뀌더니 밖에 있는 경찰한테 소리쳤다.“이봐요, 누가 이 여자 들여보내라고 했어요?”“이엘리아 씨, 일단 진정하세요.”임가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꺼져요.”결코 물러설 이엘리아가 아니다.“역겨워 죽을 것 같으니까 착한 척 그만해요.”“이엘리아 씨...”“사람말 못 알아들어요? 당장 꺼지라고요.”임가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하랑이랑 다툼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워낙 고집불통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라 예전에도 제가 컨트롤할 수 없었어요. 이엘리아 씨가 절 반기지 않는 걸 알고 있으니 다시는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예요. 단지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말을 마친 임가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모습을 본 이엘리아는 비꼬며 말했다.“위선자. 온하랑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그쪽이 아니라 온하랑을 이곳에 보내왔어야죠.”‘온하랑 엄마였어? 난 또 김시연 엄마인 줄 알았네. 누구 엄마든 상관없어. 어차피 다 똑같이 역겨우니까.’“어릴 때 제 곁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제 말을 듣지 않더군요.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매일 싸우면서 지내다가 결국에는 사촌 언니를 죽음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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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임가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는 순간 이엘리아가 불러세웠다.“잠깐만요.”“왜 그러시죠?”임가희는 고개를 돌려 이엘리아를 바라봤다.이엘리아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끗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약속한 일 잊지 마세요.”사실 이엘리아는 온하랑의 임신 소식을 알려 아이를 없애는 방법으로 온하랑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직 정보가 전혀 없는 눈앞의 이 여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온하랑의 엄마이기에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충분히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이엘리아는 두 사람이 알아서 싸우길 바라며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경찰서에서 나온 임가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곧이어 비서에게 말했다.“가자.”비서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특히 회장님한테. 알아들었지?”임가희는 비서를 흘겨보더니 싸늘한 말투로 무언의 협박을 했다.“알겠습니다.”비서는 재빨리 답했다.“사모님, 저희는 지금 경주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니면...”계획대로라면 임연지의 일을 처리하고 경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땐 계획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임가희의 말은 어긋나지 않았다.“오늘은 일단 호텔로 가자. 언제 돌아갈지는 내가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리고 온하랑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조사해 봐.”온하랑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시달리는 걸까?“알겠습니다.”비서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임가희의 핸드폰이 울렸다.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낸 임가희는 발시자 표시를 보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연지야?”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임연지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고모, 신청은 다 하셨어요?”“이미 끝냈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필요한 거 있어?”임가희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웠다.임신 사실을 알고 구치소에서 나온 임연지는 우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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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지만 그 어떤 이상함도 발견하지 못했다.충격을 받은 듯 정신 못 차리는 임가희의 표정을 보자 임연지는 한껏 비꼬며 말했다.“고모부가 그 두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잊은 건 아니죠?”임가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진지하게 생각했다. 놀라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점차 임연지의 말을 믿게 되었다.심지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의혹들도 마침내 답을 얻었다.최국환은 부승민을 만나고 나서부터 갑자기 임연지를 포기하겠다 주장하며 경주에 돌아가자고 설득했다.생각해 보니 어쩌면 부씨 가문과의 다툼을 꺼렸던게 아니라 부승민의 아들이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온하랑을 기어코 최씨 가문에 들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었네. 며느리 될 사람이라서 그랬던 거네?’임연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하랑의 훌륭함을 부정하며 자기 멋대로 생각했다.부승민은 자신을 둘러싼 비밀에 대해 모르거나, 이미 알고 있으면서 최씨 가문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거절했거나 둘 중 하나다. 뭐가 됐든 부승민과의 관계를 좁히려면 온하랑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임가희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임연지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모, 설마 이 일 때문에 절 버리실 건가요?”임연지는 초조하게 바라보며 내심 아니라는 답이 들려오기를 기대했다.최동림은 건강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최동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났다. 다른 세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절대 최동철을 이길 수가 없다.온하랑은 최동림의 누나다.만약 임가희가 최씨 가문에 대해 다른 계획이 있다면 얼마든지 온하랑을 받아들여도 된다. 심지어 최국환과 부승민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자연스레 부승민과 친해질 수 있다. 나중에 부승민과 손을 잡고 최동철을 맞선다면 본인과 최동림에게 더 많은 이익이 생기니 결코 불가능한 일인 건 아니다.그러나 알다시피 온하랑과 임연지는 절대 한배를 같이 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임연지도 걱정이 앞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임가희는 아련하게 임연지를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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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화

김시연의 웨딩 촬영을 마친 온하랑은 곧바로 다른 촬영장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부지런히 저녁까지 일하다가 간신히 시간을 빼내 부시아를 만나러 병원으로 향했다.온하랑은 침대 반대편에 앉아 간호사가 부시아의 상처를 살펴보는 걸 지켜봤다.“회복이 아주 잘됐어요. 내일 바로 실밥 제거해도 될 것 같아요.”간호사의 말에 부시아는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실밥만 풀면 퇴원할 수 있는 거죠?”“맞아요.”“아싸!”부시아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듯 신나게 춤을 추며 온하랑을 바라봤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온하랑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산책했다.“어휴...”어디선가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온하랑은 고개를 숙였고 마침 애어른처럼 수심에 가득 찬 채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부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온하랑은 그 모습이 귀여운 듯 웃음을 참지 못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왜 한숨을 쉬는 거야?”부시아는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봤다.“숙모, 실은 오전에 아저씨가 절 보러 오셨어요.”온하랑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저씨라는 사람이 이엘리아의 오빠를 가리킨다는 걸 알았다.윌슨 가문에서 강남을 방문했다는 건 이엘리아를 빼내기 위해 서정훈의 도움을 청하러 온 게 분명하다.“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길래 이렇게 한숨을 쉬는 거야?”온하랑이 물었다.“돈을 엄청 많이 주면서 앞으로 누구랑 살고 싶은지 물어봤어요. 전 고민도 없이 삼촌이랑 살고 싶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상한 아줌마가 경찰서에서 나오면 다시는 제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쫓아낸대요.”온하랑은 의아했다.“그럼 잘된 일 아니야?”이엘리아의 최측근마저도 그녀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모양이다.부시아는 초조하게 손톱을 뜯으며 말을 이었다.“그쵸... 사실 처음에는 그 아줌마를 대신해서 부탁하러 온 줄 알고 엄청 쌀쌀맞게 대했거든요.”온하랑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다 이해해 주실 거야. 시아가 퇴원할 때 그분이 아직도 강남에 계신다면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게 어때?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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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0화

딸이 아이를 돌보며 힘들게 사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평생 배우자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 들었다.말을 이렇게 해도 슬퍼할 딸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미어졌다.의식을 되찾은 서수현은 그 소식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쩌면 하느님조차도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이제 서수현에게 남은 건 건강을 되찾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꽤 오랜 시간을 기대하고 있어서 그런지 후련한 느낌보다는 뭔가를 잃은 듯한 허탈함과 불편함이 밀려왔다.서석철은 옆에서 끊임없이 질문했으나 서수현은 입만 벙끗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답답함이 밀려왔던 서석철은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아빠한테 얘기해 봐. 도대체 애 아빠가 누구니?”서석철은 딸이 이렇게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아무 걱정 없이 두 발 뻗고 잘 남자를 생각하기만 해도 울화가 치밀었다.서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몰라요.”“이런 상황에서도 그 남자를 감싸는 거야?”“정말 몰라요.”서수현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정말 누구의 아이인지 알지 못했다.설령 안다고 한들 자업자득인 셈이다. 돈을 위해서 경찰에 신고할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온하랑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서수현이 남들에게 말 못 할 병을 앓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걱정이 되었지만 서수현이 직접 별일 아니라고 했기에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다.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산책하다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고 안문희가 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부시아는 실밥을 제거한 후 부랴부랴 화장실로 달려갔다.말없이 뒤따라간 온하랑은 부시아가 세면대 앞의 의자를 밟고 올라서 거울을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거울에 온하랑이 비치자 부시아는 자신의 이마를 만지며 걱정스레 물었다.“숙모, 이런 건 흉터가 남겠죠?”“아니야.”온하랑은 부시아에게 다가가 상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자국이 얕아서 몇 년만 지나면 없어질 거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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