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Chapter 281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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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윤혜인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준혁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직원에게 당당히 내밀었다."네, 지금 처리해 주세요."이준혁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어이 빨간 인장이 서류 위로 찍혔다. 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이혼 증명 서류를 가방 안에 넣었다. 하지만 이준혁은 도장도 찍고 사인이 끝났음에도, 도무지 서류 받을 용기가 서지 않아 한참 자리에 서 있었다. 빨간 인장이 이토록 미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가 미적거리고 있자, 참다못한 윤혜인이 서류를 챙겨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얼른 안 가고 뭐 해요? 여기 퇴근 시간 다 됐어요."고작 종이 한 장인데, 이준혁은 그 무계가 감당되지 않았다. 그 사이, 윤혜인은 진작에 법원을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택시에 올라타기 직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준혁이 뒤따라와 그녀를 막아 세웠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오른손을 붙잡은 탓에 뿌리치지도 못했다. "이거 놔요!"윤혜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준혁은 꿋꿋이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요!"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택시는 벌써 다른 손님을 발견하고 떠나버렸다. 윤혜인은 분노했지만, 이준혁은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녀가 심하게 반항하지 않자, 자신이 잡은 손이 오른손이라는 것도 잊고 오히려 희망을 품었다. "나랑 같이 갈래, 아니면 내가 안고 탈까?"윤혜인은 결국 그에게 질질 끌려 강제로 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준혁은 아주 물 흐르듯 그녀에게 안전벨트까지 채워주며 문을 잠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윤혜인이 분노하며 말했다."문 열어.""데려다줄게.""문 열어달라고 했잖아!"하지만 그가 들은 체도 하지 않자, 윤혜인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려 들었다. "윤혜인!"그 모습을 본 이준혁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도 윤혜인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게 한참, 겨우 윤혜인이 조금 진정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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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윤혜인은 뒤돌아본 적이 없었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그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윤혜인이 아닌, 주훈이 그를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긴 것이었다. 며칠간 스트레스와 불면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그런데 의식을 차린 이준혁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윤혜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병문안 왔었어?"앞뒤가 잘린 물음이었지만, 주훈은 단번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아니요."이준혁이 단념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내가 병원에 있다는 거 얘기했는데도?""전화드렸어요."주훈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뭐라고 했어?"주훈이 윤혜인과 했던 통화를 떠올리며 말했다."이미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느냐고, 의사가 아니니 와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혼했으니, 앞으로 대표님 일로 연락하지 말라고도 하셨어요."그는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이준혁에게 알렸다. 다 듣고 난 이준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나가!"주훈은 망설임 없이 병실을 나섰다.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안에서 물건들이 날아다니며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준혁이 분풀이로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주훈은 그 모습을 보며 결혼에 대한 모든 환상이 깨졌다. 한편, 윤혜인은 사흘 내내 집에 있으면서 생각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본격적으로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윤혜인은 우선 임수향에게 앞으로 작업실을 못 나가게 될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임향수는 무척 아쉬워하며 붙잡았지만, 지금 상태론 도저히 작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거절했다. 그다음 그녀가 한 것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는 것이었다. 그녀는 총 두 곳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하나는 번역일이었고 또 하나는 교육 기관이었다. 모두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소원하고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모든 정리가 끝나 함께 축하하러 외식하기로 했다.둘은 자연스레 단골 바로 향했다. 소원은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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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이준혁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표정을 본 윤혜인은 당황했다. 그가 거짓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혼을 위해 그런 연기까지 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준혁은 아마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혜인은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편이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소원이 나타나 윤혜인을 보호하며 이준혁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어이없네. 먼저 잘못한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피해자 코스프레이야? 그쪽이 잘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혜인이니까 이 정도로 끝냈지, 나였으면 그쪽은 진작에 무덤에 들어갔어."소원은 친구인 윤혜인을 보호하려 했다. 이준혁은 이런 취급을 당해도 쌌기 때문이다.일주일 만에 마주친 이준혁은 그림자가 조금 가신 듯했지만, 여전히 창백했다. 윤혜인은 얼마 전에 주훈으로부터 그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쇠약한 이준혁의 모습을 보며, 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무정하게 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연민은 많지만, 쉽게 매정해지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윤혜인은 이번에도 그가 말을 걸어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준혁은 한참 그녀를 바라볼 뿐, 곧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다시는 보지 말자던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일지도 몰랐다. 원하던 바였으나, 윤혜인은 그의 냉정함에 마음 한쪽이 쓰라렸다.시간이 흘러도 사람의 마음속 깊이 박힌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윤혜인은 이렇게 서로를 완전히 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육경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소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좀 이따가, 나 좀 보자. 우리 아직 못다 한 얘기가 있잖아, 그렇지?"술집에서 나온 후, 둘 다 술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소원은 대리운전을 불렀다. 그녀는 윤혜인을 먼저 데려다준 뒤, 육경한의 아파트로 향했다. 두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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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소원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힘없이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육경한의 아파트는 8층, 순찰 도는 보안요원이나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들면 쉽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었다.소원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육경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남은 샴페인을 긴 유리잔에 채운 뒤, 소원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마시라는 듯 눈짓했다."흘리지 말고 다 마셔."소원은 피부가 알코올에 젖어 따끔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육경한, 너 정말 제 정신 아니야!"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소원은 육경한에게 잡혀 강제로 술을 들이켜야만 했다."커, 쿨럭...."소원은 사레에 걸려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삼키지 못한 샴페인이 입가를 타고 흐르며 턱을 적셨다. 온몸에서 샴페인 냄새가 진동했다. 곧 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소원의 팔뚝에 생채기가 생겼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소원의 턱을 거칠게 잡아 비틀었다."그래, 나 미쳤어."소원은 기침하느라 제대로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그럼 넌 뭐야?"육경한이 소원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비웃었다. 그녀는 샴페인이 눈에 들어가 쓰라린 와중에도 그의 모욕적인 언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소원은 자신의 기분을 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뱉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그러자 육경한도 화난 표정으로 그녀의 턱을 더 억세게 잡아 올렸다. "다시 말해봐."소원이 차갑게 그를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넌 여자 괴롭힐 줄만 알지? 이 더러운 놈!"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육경한이 그녀를 유리창에 밀치며 목을 졸랐다."이 정도로는 교훈이 안 됐나 보네."그렇게 그의 분풀이가 시작되었다. 소원은 반항했지만, 남자의 힘에 밀려 결국 그에게 유린당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육경한이 멀끔히 씻은 모습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침대에 기댄 채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희뿌연 연기 사이로 소원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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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육경한이 비웃으며 그녀의 손을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풀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다음 순간, 육경한은 자기도 모르게 경계심이 풀려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뒤로 넘어졌다. 위치가 바뀌자, 육경한은 당황했으나, 반격할 틈도 없이 소원이 키스를 밀어붙였다. 평범한 연인이었다면 사이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스킨십이었겠지만, 둘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관계는 여러 번 했으나, 키스 나눈 적은 여태까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생소함이 오히려 그의 욕망을 자극했다. 육경한은 그녀의 혀를 받아들이며 능숙하게 반응했다.반대로 소원은 그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이 키스는 그를 원해서가 아닌, 다른 의도가 있어 시작한 것이었다. 밖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로 보였을지 몰라도, 육경한은 그녀에게 있어서 파괴자였다. 그는 소원의 일상을 파괴하고 가족을 괴롭혔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이든 해야만 했다. 어느새 육경한도 상황에 익숙해져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느낀 소원이 재빨리 그를 붙잡으며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말했다."어때? 나쁘진 않지?”그 말을 들은 육경한은 욕망이 더 활활 타올랐다.그 모습을 본 소원은 속으로 비웃으며 겉으론 요염하게 그의 귓불을 쓰다듬었다. "정말 내가 왜 그 사람들을 찾아갔는지 몰라? 다 그쪽 때문이잖아. 그쪽이 우리 회사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었잖아. 내가 발품 팔아 회사 주가 좀 높여보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이야? 이대로 가다가는 한이그룹, 진짜 망해."그 말을 들은 육경한이 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그게 왜 내 탓이야? 그리고 너희 회사가 망하던 말던, 내 알바야?"소원의 가문이 몰락하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단번에 무너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들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계획이 실행될 날이 오면 그들은 죽음보다 더한 비참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 되면 소원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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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소원이 여유롭게 웃으며 육경한의 신경을 긁었다. "이 사진, 진아연한테 보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울려나?"육경한이 살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네가 감히!"그러나 그녀는 겁먹기는커녕 더 그를 조롱했다."댁도 무서운 게 있었네? 그러면 처음부터 다른 여자랑 자지 말았어야지. 지난번 옷장에서 들어보니까, 진아연의 소리 꽤 요란하던데? 그쪽이 진아연을 만족시키지 못한 거야, 아니면 네가 만족하지 못한 거야?"잠시 뜸을 들이던 소원이 말을 이었다."설마 내가 그쪽 취향이었어?"선을 넘는 말이었다. 이건 육경한뿐만 아니라 진아연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그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닥쳐! 넌 아연이와 비교할 자격도 없어!"어차피 맨날 듣던 소리였다. 소원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참 대단해. 하루에 그렇게 많이 할 수 있다니, 오래 살겠어."둘이 함께 있던 모습을 떠올린 소원은 역겨움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둘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도 역겨웠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이 바로 이 남자였다.그동안 소원은 육경한한테서 벗어나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다. 오늘은 그 결실을 볼 때였다. 소원이 그를 일으켜 앉히며 물었다."그런데 정말 진아연을 사랑하긴 해?"자연스레 육경한은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무릎을 꿇게 되었다. 이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자세였다. 전에 해외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협박에 못 이겨 무릎을 꿇었던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상을 입으면서 척추를 다쳤는데, 지금도 안에 철심이 박혀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치욕스러웠다. "너 죽고 싶어?""내 질문에 대답해."소원이 물러서지 않고 대답을 요구했다. "당연한 거 묻지 마."육경한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답했다. 그러자 소원이 비웃듯 웃음을 터트렸다."그런데도 나랑 잔 가야? 당신한텐 사랑이 별거 아닌가 봐?"육경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텐 넌 업소 여자랑 별 다를 거 없으니까."표정은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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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창문 너머 주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윤혜인에게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사모님, 어디로 가세요?'그 호칭을 들은 윤혜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며칠 전 술집에서 이준혁이 지었던 냉담한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 비서님, 저 이제 그 집 사람 아니에요. 호칭 그냥 이름으로 해주세요."이준혁이 들었다면, 분명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어디로 가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까요?"핸드폰을 보니, 여전히 차는 잡히지 않았다. 기차역까지 가면 장거리 운행을 하는 택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윤혜인은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럼....""넌 왜 이렇게 오지랖이야?"이때, 갑자기 차 안쪽에서 불쾌감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어둡게 선팅되어 있어 윤혜인은 이준혁도 안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이 말을 이었다."그렇게 한가하면, 서울 신축 현장으로 보내줄까?""...."윤혜인을 발견하고 먼저 세우라고 했던 건 이준혁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혼을 내다니, 주훈은 억울했지만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사는 상사였으니까. 짜증이 가득한 말투에 윤혜인은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괜히 자기 때문에 주훈이 혼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윤혜인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주훈에게 거짓말했다."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 있어요. 어서 가세요."그 말에 주훈은 얼른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이준혁의 얼굴이 까맣게 죽은 것이 보였다. 그의 시선을 느낀 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명령 내렸다. "얼른 안 가고 뭐 해?""네."주훈은 가볍게 윤혜인에게 목례한 뒤 창문을 올렸다. 순식간에 검은색 벤틀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혜인은 괜히 눈가가 시큰거렸다. 서로 모르던 때로 돌아가는 건 바라던 바였지만, 그래도 10년 된 사랑이었다. 윤혜인은 하루아침에 칼처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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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윤혜인은 왠지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고마워요, 선배.""지난번에 말했듯이, 선배라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줘."한구운은 의사가 확실했지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윤혜인이 호칭을 정정해 다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오빠, 고마워요."한구운이 차를 출발시키려던 찰나, 코너에 익숙한 검은색 벤틀리가 주차된 것이 보였다. 윤혜인이 지금 고개를 돌린다면 바로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는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일부러 윤혜인을 불렀다."혜인아."윤혜인의 시선이 다시 한구운에게 고정되었다. "왜요?"그 사이, 벤틀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제야 한구운은 긴장을 풀고 본격적으로 운전하기 시작했다."이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어."“네….”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회피했다. 그녀가 이 주제를 꺼린다는 것을 눈치챈 한구운은 더 캐묻지 않았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좀 돌아갈 순 있어도, 결국엔 다 잘될 거야."윤혜인은 그의 말에 공감했다. 이준혁을 쫓아다니느라 많이 방황하고 상처도 입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왔으니, 좋아질 일만 남았다.반면, 검은색 벤틀리 안은 분위기가 살얼음판이었다. 주훈은 백미러를 통해 이준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주훈은 눈치 없는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괜히 쓸데없이 사모님이라고 말을 꺼내, 이준혁에게 이혼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게 했다. 물론 윤혜인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였겠지만, 이준혁이 그걸 달가워할 리 없었다. 윤혜인과 달리 이준혁은 억지로 한 이혼이었으니까. 주훈은 좀 전에 난감해하던 윤혜인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녀가 이준혁의 태도 때문에 일부러 거짓말했음을 눈치챘다. 주훈은 잠시 도로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아무도 안 오면 이준혁에게 다시 윤혜인을 데리러 가자고 말을 꺼내려 했다. 이준혁은 체면 때문에 절대로 말을 못 꺼낼 테니, 이럴 때는 그가 눈치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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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더 거절하기 미안했던 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수락했다. 한구운이 떠난 뒤, 윤혜인은 근처에서 택시를 불러 곧장 묘지로 향했다. 큰 도시와 달리 시골 묘지는 바닥이 고르지 않았다. 할머니의 비석도 꽤 힘겹게 사람을 불러 세운 것이었다. 그런 외할머니의 비석이 붉은 페인트로 뒤덮인 모습을 보자, 윤혜인은 화가 치밀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곧장 묘지 근처에 있는 집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빨간 페인트를 묘비에 뿌린 사람은 동네 건달이었는데, 외할머니가 진 빚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이라 했다. 윤혜인은 처음 듣는 얘기에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비석 청소가 우선이었다. 그녀는 간단한 청소도구를 빌린 뒤, 비석을 정성스레 원상복구시켰다. 청소하는 내내 몇 번이고 눈물이 터질 뻔했으나, 속으로 복수를 다짐하며 꿋꿋이 감정을 내리눌렀다. '외할머니, 제가 꼭 복수해 드릴게요.'정리를 마친 뒤, 윤혜인은 좀 전에 자초지종을 알려줬던 사람한테 50만 원을 주며 비석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연락처도 남겨놨다.그들은 흔쾌히 윤혜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인하 마을 자체가 그리 부유한 마을도 아니었고, 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다음, 그녀는 곧바로 사람을 수소문해 건달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 그런데 찾아가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부수려 한다며, 하인숙이 다급히 연락해 온 것이었다. 심지어 집주인까지 나타나, 그들과 함께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윤혜인은 놀라 헐레벌떡 그 집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사람들은 물론 경찰까지 출동했는지, 사건 현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을 본 집주인이 안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내가 너의 집을 강제로 빼앗았니? 너희 외삼촌이 먼저 팔겠다고 한 거잖아. 그리고 세 들어 살고 싶다고 해서, 세도 줬는데 너의 외삼촌이랑 같이 이런 사기를 쳐? 나는 이제 이 집 세 못 준다. 얼른 짐 빼고, 사람들한테 이 집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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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차용증을 모두 종합해 보니, 총 4억, 20가구 정도 되었다. 윤혜인은 어렸을 적부터 도시로 나갔기 때문에, 이들의 얼굴을 다 알진 못했다. 하지만 대부분 소박한 옷차림을 한 걸 봐서, 모두 성실히 일하면서 노후 자금을 모았을 게 예상됐다. "이번에 주산응이 사기 친 돈은 제가 갚도록 할게요. 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 있으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경찰관이 옆에서 말했다. "이미 마을에 소문이 파다하니, 같은 피해는 없을 것 같아요."그제야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아이고, 다행이네. 처자, 그럼 얼른 우리 돈 내주게나."윤혜인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당장은 못 드려요. 저도 서울에 있는 집을 팔아야 현금 나와요."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집도 대출이 걸려 있었다. 그걸 다 갚고 팔면 약 3억 5천 정도 남을 게 예상됐다. 윤혜인은 우선 이걸로 급한 불부터 끄고, 남은 5천은 돈 버는 대로 갚겠다고 사람들에게 알렸다.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터졌다."그게 무슨 말이야! 돈 갚겠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집 팔아 주겠다고? 또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이때, 아까 그 건달이 다시 입을 열었다."다 같은 집 핏줄인데, 이 여자도 사기꾼 아니라는 법 있어?"그러자 사람들이 흥분하며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찰도 막을 수 없었다. 정리할 필요를 느낀 윤혜인이 주변에 있던 한 판자 위로 올라서며 외쳤다."자, 싸우지 마세요."그러자 웅성거리던 것이 조금 잠잠해졌다."싸운다고 돈이 나오나요?"윤혜인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제가 주산응을 대신해 돈 갚겠다고 약속했으면, 무조건 지켜요."딱 봐도 시골 사람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가 발언하자,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이때, 한 주민이 외쳤다."그러면 정확히 언제 얼마를 갚을지 알려주세요."윤혜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정확한 시간은 말씀 못 드려요. 어쨌든 최대한 빨리 갚도록 할게요."집이라는 것이 내놨다고 해서 당장 팔릴 거라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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