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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창문 너머 주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윤혜인에게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사모님, 어디로 가세요?'

그 호칭을 들은 윤혜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며칠 전 술집에서 이준혁이 지었던 냉담한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 비서님, 저 이제 그 집 사람 아니에요. 호칭 그냥 이름으로 해주세요."

이준혁이 들었다면, 분명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어디로 가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까요?"

핸드폰을 보니, 여전히 차는 잡히지 않았다. 기차역까지 가면 장거리 운행을 하는 택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윤혜인은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럼...."

"넌 왜 이렇게 오지랖이야?"

이때, 갑자기 차 안쪽에서 불쾌감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어둡게 선팅되어 있어 윤혜인은 이준혁도 안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가하면, 서울 신축 현장으로 보내줄까?"

"...."

윤혜인을 발견하고 먼저 세우라고 했던 건 이준혁이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혼을 내다니, 주훈은 억울했지만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사는 상사였으니까.

짜증이 가득한 말투에 윤혜인은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괜히 자기 때문에 주훈이 혼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윤혜인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주훈에게 거짓말했다.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 있어요. 어서 가세요."

그 말에 주훈은 얼른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이준혁의 얼굴이 까맣게 죽은 것이 보였다. 그의 시선을 느낀 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명령 내렸다.

"얼른 안 가고 뭐 해?"

"네."

주훈은 가볍게 윤혜인에게 목례한 뒤 창문을 올렸다. 순식간에 검은색 벤틀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혜인은 괜히 눈가가 시큰거렸다.

서로 모르던 때로 돌아가는 건 바라던 바였지만, 그래도 10년 된 사랑이었다. 윤혜인은 하루아침에 칼처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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