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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Author: 이한나
상처 주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이준혁은 자신이 억지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지금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윤혜인의 눈가가 빨개지며 울음을 참는 듯 일그러지자, 이준혁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해명하려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생각하면 할수록 분했다. 윤혜인의 눈가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하고 떨어졌다. 느닷없이 차에 데려오더니, 또 허락도 없이 강제로 키스를 밀어붙였다. 그것도 부족한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잠자리까지 요구하다니, 윤혜인은 서러운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짓밟아보라고!"

이준혁의 안색이 까맣게 죽었다.

윤혜인이 차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외쳤다.

"할 테면 해보라고! 당신이 무슨 짓 하든, 난 굴복하지 않을 테니까!"

그 모습을 본 이준혁이 다급히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으려 했지만, 거센 저항에 윤혜인을 놓치고 말았다.

"당신 정도면, 널린 게 여자일 텐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싫다는 여자한테 도대체 왜 이러냐고!"

그 말을 들은 이준혁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아무 여자나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윤혜인뿐이었다.

"정 여자가 없으면 차라리 그쪽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임세희나 찾아가. 그 여자라면 아주 두 팔 벌리고 당신을 환영할 테니까!"

이 말을 이준혁은 물론 윤혜인 자신에게도 상처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분노가 이성을 마비된 상태,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상대의 마음을 난도질하기 위해 스스로 상처 입는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윤혜인은 기어이 문을 열어젖혔다. 밖엔 마침 처리 완료된 차용증 무더기를 들고 있는 주훈이 서 있었다.

윤혜인이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주 비서님, 혹시 펜 가지고 계세요?"

주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가방에서 펜 한 자루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윤혜인은 주훈의 손에서 펜과 종이를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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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숙은 엘리베이터 문을 막는 커다란 손을 보고 악개인 소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손목에 찬 몇억짜리 시계가 눈에 들어오자 이내 누군지 알아채고 기분이 좋아졌다.사실 영숙은 육경한이 소원의 매력을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의도치 않은 키스였지만 싸늘하게 식었던 남자의 마음에 불씨를 심어주기엔 충분했다.영숙은 육경한을 보며 헤벌쭉 웃었다.“대표님, 내려가시려고요?”육경한이 대꾸하지 않아도 영숙은 딱히 난처해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 이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거지 내려가는 게 아니에요. 2층이니까 잠깐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육경한이 차가운 표정으로 영숙의 품에 안긴 소원을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올라간다고?”영숙은 어두워진 유경한의 얼굴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순진한 척 웃었다.“네. 위층이 남자 도우미 대기실이라서요. 그쪽으로 가려고요.”남자 도우미 대기실이라는 말에 육경한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영숙은 소원을 꼭 끌어안은 채 자꾸만 엉겨 붙는 소원에게 보란 듯이 이렇게 말했다.“체리야. 이러지 마. 조금만 참았다가 이따가 가서 골라... 착하지? 좋은 놈으로 골라줄게.”이렇게 말하며 영숙이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소종이 발로 엘리베이터 문을 막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감히 우리 대표님을 기다리게 해요? 무슨 자격으로?”그러면서 콧방귀를 세게 뀌었다.“얼른 나와요. 우리가 먼저 갈라니까.”밝기만 하던 영숙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클럽에서 오래 일해 수많은 부를 끌어모으긴 했지만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클럽 덕분에 많은 귀인을 만나게 되었고 대부분 영숙을 보면 체면을 봐주며 숙 매니저라고 부르거나 영숙 씨라고 불러주기 일쑤였다.하지만 영숙과 신분이 별반 다를 바 없는 소종이 말끝마다 영숙을 무시하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서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참았을 텐데 소종이 모욕하는 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복수에 때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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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덕분에 방민기는 술을 조금 깰 수 있었다. 클럽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집에서 소장했던 술을 조금 마시고 나온 터라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는데 육경한에게 맞아 속까지 뒤틀린 방민기는 어제 먹었던 것까지 다 토해냈다. 더 중요한 건 얼굴이 피투성이였지만 그 피가 자기 피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 피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역시 방민아 그 X은 믿는 게 아니었는데.’방민기는 정말 너무 후회되었다. 방민아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이긴 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육경한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것 같으니 일단은 몸을 사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민기에게 육경한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바닥에 누운 방민기는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지 못했기에 분위기가 어느새 청소년 관람 불가가 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소종이 육경한을 부축하고 영숙이 소원을 부축한 덕에 드디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 소종은 기괴한 눈빛으로 소원을 힐끔 째려봤다. 눈빛이 흐리멍덩한 걸 봐서는 연기는 아닌 것 같았다.‘뭐야, 왜 저래...’아까 벌어진 상황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종은 소원을 밀어내지 않고 소원이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놔둔 육경한이 더 이상했다.영숙이 겨우 소원을 안고 고개를 돌려 육경한에게 사과했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체리가 아마 방민기 대표님에게 당해서 실례를 범한 것 같네요. 제가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뒤에 정신 차리면 직접 찾아뵙고 사과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번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세요. 게다가 지금은 뭘 하려고 해도 의식이 없으니...”육경한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섹시한 입술은 어느새 껍질이 까진 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는데 어딘가 사악하면서도 음침해 보였다.소종이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얼른 가요. 사과는 무슨. 대표님 눈 버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데리고 내려가요.”영숙이 떨떠름하게 웃으며 말했다.“네. 지금 바로 데리고 물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8화

    방민아는 종래로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던 육경한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그게...”잠깐 뜸을 들이던 방민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연주랑 클럽에 갔었어요.”방민아는 더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육경한이라면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더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육경한은 이 말을 듣고 더 캐묻지 않았지만 방민아가 오히려 되물었다.“경한 씨, 이건 왜 묻는 거예요?”“별거 아니에요.”육경한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일찍 쉬어요.”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다. 방민아도 더는 매달리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요. 경한 씨도 일찍 쉬어요.”통화가 끝나자 소종이 육경한에게 물었다.“대표님, 방민기 대표는... 어떻게 할까요?”사이가 좋든 나쁘든 방민기는 결국 육경한의 미래의 형님이었기에 그가 팬티만 입고 이곳에 발라당 누워있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육경한은 처참한 꼬락서니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방민기를 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차에 던져넣고 방씨 저택으로 보내.”“네, 알겠습니다.”소종도 그렇게 생각했다. 방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한 상태라 방민아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손 놓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일이 밖으로 새 나가는 날엔 방민아만 난처해질 것이다.소종이 방민기를 밖으로 끌어내려는데 술에 취한 방민기는 축 늘어져 있었고 아까 깜짝 놀라서 그런지 돼지보다 더 무거웠다. 일단 문 앞까지 끌어내고 영숙에게 사람을 찾아와 처리하라고 하려는데 영숙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소원을 살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숙은 소원을 챙겨야 했다. 매니저로서 아가씨를 관리하고 있는 영숙은 소원을 챙기는 게 당연했고 이를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영숙이 소원을 부축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볼이 발그레한 소원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지만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육경한 옆을 지나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육경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7화

    방민기는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며 연신 신음했다. 옷을 입지 않아서 그런지 그 모습이 너무 얍삽해 보였고 누가 봐도 여자가 특수한 서비스를 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들어온 사람이 육경한이라는 걸 발견한 방민기가 입을 열었다.“매부, 드디어 왔네. 이 여자...”미친 여자라고 말하기도 전에 화가 치밀어오른 육경한이 아무 이유도 없이 방민기에게 발차기를 날렸다.“아악.”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방민기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서 한 바퀴 빙 굴렀다. 찢어질 듯이 아픈 건 둘째 치고 너무 억울했다.저 미친 여자를 더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말하려는데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얻어맞은 것이다. 나오기 전에 운수라도 보고 나왔으면 이런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육경한이 여자 앞으로 다가가서는 쪼그리고 앉아 축 늘어진 여자의 턱을 들어 올리며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비꼬기 시작했다.“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왜 또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야?”소원은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너무 흐리멍덩했고 몸이 불타올라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았다.육경한은 무슨 생각하는지 한참 동안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보고 있는 영숙을 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에 소종이 얼른 물었다.“대표님, 여긴 어떻게 할까요?”육경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여기 내 사람은 없는데.”그 뜻인즉 안에 있는 소원과 방민기는 그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니 어떻게 처리할지는 클럽에서 알아서 정하라는 말이었다.마음이 다급해진 영숙이 입을 열려는데 육경한의 질문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숙 매니저, 여기 내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디 있지?”육경한이 말한 내 사람은 당연히 육연주와 방민아였다. 영숙이 전화했을 때 분명 육연주와 방민아가 취했다고 했는데 정작 두 사람은 여기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영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6화

    영숙은 잰걸음으로 달려가 얼른 차 문을 열어줬다.“대표님, 빨리 오셨네요...”반짝거리는 구두로 땅을 밟은 남자는 긴 다리로 신속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영숙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대답을 듣지 못한 영숙은 난처한 기색 없이 매우 덤덤했다.‘왔으면 된 거지...’오히려 육경한을 뒤따라온 소종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영숙을 바라보며 말했다.“숙 매니저님, 직원을 이렇게 관심하는지 몰랐네요. 혹시 체리라는 직원과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건가요?”가시가 돋친 말에 영숙이 바짝 긴장했지만 이내 태연하게 말했다.“소 비서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육씨 가문을 걱정한 것뿐이에요. 두 분 다 있는 집 아가씨라 특수한 존재인데 스캔들에 휘말려서야 되겠어요?”영숙이 소종에게로 다가가더니 온갖 신비로운 척은 다 하며 이렇게 속삭였다.“위에서 요즘 불시 검문하는 거 아시면서. 다른 손님이었으면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데 대표님 손님은 저 따위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표님 뜻을 먼저 여쭤봐야죠.”영숙의 해명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소종은 믿지 않았다. 오랫동안 재계와 유흥가를 오간 소종은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유흥가에서 아가씨를 거닐고 다니는 마담이라면 눈에 뵈는 게 돈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마담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부품과도 같아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아가씨를 위해 손님에게 밉보이는 건 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영숙이 몸담고 있는 이곳은 돈 많은 사람들의 천국이었다.소원이 이런 곳에서 몸을 사릴 수 있었던 건 소원이 운 좋아서가 아니라 영숙이 미리 손님을 선별해서 줬기 때문이었다. 업무를 성사하기 위해 오는 사장님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손님들은 이곳의 아가씨들을 건드리는 법이 거의 없었고 그저 업무 수요 때문에 형식적으로 아가씨를 불러 분위기를 띄울 뿐이었다.소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둘러대는 영숙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숙 매니저님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나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5화

    동영상을 찍으려면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는데 영숙이 룸으로 들어오는 순간 일을 그르치게 될 것 같아 일단 영숙에게 이렇게 귀띔했다.“내가 술병을 깨면 그때 전화해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절대 들어오면 안 돼요.”영숙이 말했다.“알았어. 네가 말한 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소원이 들어간 뒤로 영숙은 너무 불안했고 안에서 들려오는 매질 소리에 가슴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때마다 소원이 했던 말이 떠올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영숙은 소원이 총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소진용의 딸이니 무조건 믿고 협조해 줘야겠다고 속으로 되뇌는데 안에서 드디어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영숙은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여러 번 울리자 영숙은 혹시나 육경한이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영숙의 능력으로 육경한의 개인 번호 하나 얻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에 영숙은 바로 육경한의 개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개인 번호라 해도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거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육경한이 영숙의 번호를 기억할 리는 없었다.연결음이 일고여덟 번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자 다급해진 영숙은 정말 당장이라도 차를 운전해 육경한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고 싶었다. 마지막 연결음이 끝나려던 찰나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참으로 매혹적이었다. 적어도 소종의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붕 떠 있던 영숙의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천만다행으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육경한이었다.“대표님, 저는 KB 클럽의 유영숙이라고 합니다.”샤워를 마친 육경한은 진한 갈색의 비단 잠옷을 입고 침대에 기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갑자기 전화드려 죄송하지만 일단 제 말씀 좀 들어주세요...”영숙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저녁에 육연주 씨와 방민아 씨가 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4화

    한 시간 전.영숙이 몸을 돌리려는데 소원이 불러세웠다.“언니...”소원이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왜 그래?”영숙이 다시 몸을 돌리더니 소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음... 이따가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소원의 말에 영숙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뭔데?”영숙은 고민에 잠겼다. 이 바닥에서 오래 있었으니 소원이 지금 출근하러 나온 게 이상하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리 손님이 중요하다지만 밥벌이가 급하지도 않은 소원이 몸조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희생정신을 보이는 게 수상했기 때문이다.순간 모든 걸 알아챈 영숙이 얼른 이렇게 물었다.“혹시 룸에 무슨 일 있어?”소원이 침묵으로 대답하자 영숙이 소원의 손을 꼭 잡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면 가지 마. 아직 몸도 채 낫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쉬어. 걱정하지 마.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내가 다 커버할 수 있어.”소원이 영숙의 손을 도로 잡으며 말했다.“한번은 피할 수 있어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어요. 언니, 유진이도 그렇고 유진이를 돌보는 아줌마도 그렇고 다 내가 필요해요. 내가 일어서서 싸우지 않으면 곧 후회할지도 몰라요.”소원이 영숙을 보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내겐 언니가 필요해요. 언니만이 나를 도울 수 있어요.”소원은 이상하게 영숙이 믿음직스러웠다. 선의는 숨기려 해도 잘 숨겨지지 않는 법이라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선의가 어디서 온 건지 모르지만 소원은 지금 그 선의가 너무 필요했다.“그래. 말해 봐.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소원이 답했다.“지금 저 방에 들어가면 얘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어요. 만약 내가 술병을 깨트린다면 대신 전화 좀 해줘요...”소원이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육경한에게 전화 좀 해줘요.”깜짝 놀란 영숙이 되물었다.“육경한 대표에게 전화하라고?”“네.”소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육경한에게 전화 좀 해줘요.”영숙은 두 사람 사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03화

    날카로운 손톱으로 마음을 할퀴는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웠다. 겪어보고 나니 왜 다들 물뽕을 그렇게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만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게 누군가에게 엉겨 붙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더는 참기 힘들었던 소원은 시야마저 흐릿해지자 얼른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고 이에 방민기가 소원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서더니 손사래를 쳤다.“소원아, 우리 배운 사람답게 행동하자. 말로 하면 되는 걸 왜 힘을 쓰려 그래? 너도 알잖아. 네가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거. 술병을 들어도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겠어? 지금 온몸이 모기에게 물린 것처럼 간지럽고 힘들지? 그런 몸으로 나를 다치게 하겠다고? 힘 빼지 마.”쨍그랑.부서지는 소리에 방민기가 깜짝 놀라더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너... 너 정말...”소원은 들었던 술병을 그대로 자기 머리에 내리치더니 깨지면서 생긴 날카로운 부분을 손에 꽉 움켜쥐었다. 검붉은 피가 소원의 머리에서 쏟아져 나와 눈과 속눈썹, 그리고 코가 뒤덮었고 따듯한 불빛 아래 너무 기괴해 보였다. 소원은 피로 물든 예쁜 입술로 이렇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진 몰라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정 그렇게 나와 놀고 싶다면 내 시신을 갖고 노는 건 어때요?”방민기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연신 뒷걸음질 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X발. 이런 미친X을 봤나. 그 미친 X끼랑 다를 게 뭐야.”아무리 여자에 미쳤다 해도 시신을 가지고 노는 건 너무 섬뜩하고 미친 짓이었다.소원이 깨지고 남은 술병을 목에 찔러넣자 핏줄기가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너무 위험해 보였다.“놀고 싶다면서요?”소원의 빨간 입술이 움직였다.“그렇게 담이 작아서야 되겠어요? 방민기 씨... 무서운 게 없는 줄 알았는데.”“나도 안 무서워하는데 먼저 발 빼면 되겠어요?”소원의 목소리는 마치 뱀처럼 방민기의 귓가에 빙빙 맴돌았다. 방민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계속 뒤로 물러나다가 구석으로 몰리고 말았다. 소원이 유리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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