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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유월영의 부모님 댁은 봉현군에 있었다.최근 재개발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봉현군은 관광명소로 유명해졌고 수많은 외부 여행객들을 받았다.유월영은 보건품을 들고 3년 만에 집을 찾아갔다.문은 열려 있었다. 이런 시골집들은 낮에는 거의 대문을 열어두는 습관이 있었다.유월영이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안에서 누군가가 나왔고 그녀는 재빨리 담벼락 뒤로 몸을 숨겼다.고개를 내밀고 그쪽을 봤더니 엄마였다.엄마는 대문 앞에서 허브를 씻고 있었다.허브차를 우려서 여름에 마시면 아주 시원할 뿐더러 더위도 예방할 수 있었다.전에는 엄마가 우려준 허브차를 종종 마셨었는데 집을 떠나면서 한 번도 마셔본 적 없었다.유월영이 옛 생각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안에서 쾅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그녀의 아버지 유현석이 밖으로 나오며 온갖 짜증을 부렸다.“그거 만들어서 어디다 써? 그럴 시간 있으면 돈 벌 방법이나 좀 생각해 봐. 당신 병 치료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유월영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엄마가 어디 아프신 걸까?그녀는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얼굴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볼 살도 다 빠지고 너덜너덜한 옷에 눈빛은 퀭했다.이영화는 무덤덤한 얼굴로 허브를 씻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치료 포기하자고 했잖아요. 살만큼 살다가 죽으면 한줌 재가 되면 되지.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유현석이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당신 말은 참 쉽게 해. 당신이야 죽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겠지만 남은 사람은 평생 죄책감에 살아가야 하는 거 몰라? 당신 사람이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그래서 둘째한테 전화해서 좀 도와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아? 이런 거나 씻고 있지 말고!”그는 허브 바구니를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가만히 참고 있던 이영화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언성을 높였다.“둘째한테 어떻게 연락해요? 그때 우리가 걔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요? 걔 아마 지금도 우리를 생각하면 치가 떨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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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유월영이 쉬지 않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한 결과, 5분 정도 지나서 이영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엎드려서 확인해 봤더니 심장박동도 느껴졌다. 유월영은 눈물을 머금고 다급히 엄마를 불렀다.“엄마, 엄마!”하지만 이영화는 의식을 차리지는 못했고 유월영은 구급차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심폐소생술을 했다.잠시 후, 마을 입구에 구급차가 도착했다.의료진이 이영화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실었다. 이영화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실려 들어갔다.유월영과 유현석 부녀는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유현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유월영은 담담한 얼굴로 다가가서 아버지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그리고 자판기로 가서 따뜻한 커피를 사다가 아버지에게 건넸다.유현석은 커피를 손에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었다.아버지의 기분이 조금 안정되자 유월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엄마 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 심장에 문제가 생겼어?”유현석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맞아. 6개월 전에 쓰러져서 병원에 왔다가 발견했어. 너무 늦어서 약물 치료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지금 엄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심장을 이식 받는 거야.”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다.유월영은 갑자기 목이 타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유현석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하지만 유월영은 지금 수술실로 들어간 엄마 걱정에 그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 수술실 문이 열리자 그녀는 재빨리 의사에게 다가갔다.“선생님, 이영화 환자 괜찮은 거죠?”의사가 말했다.“고비는 넘겼습니다만, 지난 번에 남편분께 말씀드렸듯이 이영화 환자 상황으로는 심장 이식수술이 시급합니다. 언제 또 심장이 멈출지 몰라요. 그때는 응급조치도 소용없을 겁니다.”유현석은 고통스럽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아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수술비가 문제였다.유월영은 아버지를 힐끗 보고는 굳은 목소리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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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유월영은 말없이 티슈를 꺼내 엄마의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괜찮다는 말은 건성으로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다만 전처럼 부모님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지나간 일은 이제 다 잊어.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그 동안 잘 지냈어. 수술비도 걱정하지 마. 나한테 돈이 있어. 적합한 기증자가 나타나면 바로 수술 들어가면 돼.”이영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잘 지냈다니까 안심이야.”유월영은 엄마랑 아주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을 챙겨주고 엄마가 잠든 뒤에야 병실을 나왔다.병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유현석이 그녀를 보고 다급히 일어섰다.그는 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과거의 일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유월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큰언니랑 막내는?”유현석이 다급히 말했다.“네 언니랑 형부는 청허포에서 일해. 금방 아이를 출산해서 오늘 부르지 않았어. 내일 연락해서 오라고 할게. 막내는 2년 전에 어떤 남자랑 집을 나간 뒤로 연락이 끊겼어.”유월영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계좌번호 좀 불러줘.”유현석이 미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줬다.유월영은 그의 계좌로 2천만 원을 입금했다.“엄마 잘 보살펴.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 들었지? 엄마는 현재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 그러니까 엄마한테 다시는 짜증 부리지 마.”유현석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병원에 간이침대 파는 게 있을 거야. 이따가 간호사한테 말해서 가져다 달라고 해. 오늘은 아빠가 여기 있어. 내일 간병인 보내줄게.”유월영은 메모지를 꺼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서 유현석에게 건넸다.“이건 내 연락번호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섰다.그녀가 복도 모퉁이까지 갔을 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아, 아빠가 미안해. 앞으로는 집에 자주 들를 거지?”유월영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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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윤미숙은 큰 코트를 걸치고 있었기에 배가 나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그녀를 발견한 윤미숙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월영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유월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윤미숙에게 물었다.“아줌마도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나 아니고 친구 병문안 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까지 왔네.”윤미숙이 웃으며 말했다.유월영이 말했다.“저도 건강검진 받으러 왔어요.”윤미숙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넌 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해.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나이도 어린데 일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안 챙긴 거 아니야? 재준이 그 녀석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아.”“연 대표님이랑은 상관없어요.”유월영이 말했다.병원은 오래 대화를 나누기 적절한 곳이 아니었기에 둘은 얼마 안 지나 헤어졌다.검진 결과가 나오자 유월영은 의사를 찾았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나이는 스물 다섯인데 신체 나이는 서른이 넘네요.”유월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많이 안 좋은가요?”“큰 문제는 아니지만 평소에 건강관리에 힘써야겠어요. 나중에 나이 들면 더 힘들 거예요.”유월영이 물었다.“초음파 결과는 어떤가요?”의사가 초음파 결과지를 보며 물었다.“최근에 어디 불편한 곳은 없었어요?”유월영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몇 달 전에 유산을 했는데 지금은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요?”의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좀 상태가 안 좋긴 하네요. 유산하고 혹시 제대로 쉬지도 않고 몸을 혹사시켰나요?”유산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연재준에 의해 지방으로 발령 났으니 몸 조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자궁벽이 많이 얇아요. 임신이 잘 안 되는 체질인데 유산한 뒤에 더 안 좋아졌어요. 나중에 아이를 가지려면 힘들겠네요.”의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네요.”유월영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병원을 나왔다.그때 낙태 수술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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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유월영은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야 했기에 말없이 뒤돌아섰다.“아버지랑 새어머니는 너를 참 좋아하더라. 너 때문에 아버지가 직접 회사까지 찾아오셨어.”연재준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두 분은 우리가 결혼하길 바라는 눈치던데 난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는 딱 질색이라서 말이야.”유월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뒤돌아섰다.“그러니까 제발 저 좀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나요? 제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생활이 힘들어지면 계속 연 회장님이나 사모님을 찾아가서 불쌍한 척할 수밖에 없잖아요.”“어쩌면 지금 제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진 것도 백유진이랑 대표님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럼 두 분은 더욱 더 백유진 씨를 싫어하게 되겠죠.”연재준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는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유월영, 죽고 싶어?”“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저도 인간이잖아요.”말을 마친 유월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갈 길을 갔다.뒤에서 그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나갔다.유월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떠나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백유진과 아직 연락하고 있다라….연재준이 사라진 백유진을 찾아낸 건지, 아니면 연 회장이 결국 아들의 고집을 못 이겨 둘의 사이를 인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원인이야 어찌됐건 연재준과 백유진이 다시 연락하고 지낸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었다.연재준은 일부러 유월영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마침 지나가다가 병원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다가간 것이었다.그는 최근에 서지욱과 같이 진행하는 사업 때문에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약속 장소로 나온 서지욱은 연재준이 저기압인 것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그래도 아주머니가 결국엔 걔를 부축해서 집 안으로 데려갔잖아.”연재준이 의아한 얼굴로 친구를 바라봤다.“백유진 씨가 너희 집 찾아갔다가 비 맞아서 쓰러진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 아니었어?”연재준과 유월영이 선박 출장을 떠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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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이영화는 병원에서 5일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퇴원하는 날, 유월영은 친구에게서 차를 빌려 그들을 봉현군까지 데려다 주고 집에서 식사를 함께했다.유현석이 요리를 담당하고 식사가 끝난 뒤에 유월영이 설거지를 담당했다.드디어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거실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서 나와 봤더니 큰언니와 형부가 딸을 데리고 찾아왔다.유월영은 병원에서 그들과 한번 마주친 적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서먹한 감이 있었다.하지만 조카가 귀여워서 계속 안고 있었다.저녁이 되어 큰언니와 형부가 떠날 채비를 했고 유월영도 가는 길에 그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밖으로 나오자 아버지가 나와서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이건 엄마가 너 준다고 모은 돈이야.”열어보니 안에 현금이 들어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봉투를 다시 아버지에게 건넸다.“나 돈 있어, 아빠.”“이건 네 생일 때마다 주려고 모은 돈이야. 생일 때마다 엄마가 너희들한테 용돈을 줬었잖아. 언젠가 너 돌아오면 준다고 모아뒀어. 사실 너 그렇게 가고 우리 둘 다 마음이 편치 않았어.”유월영은 착잡한 마음으로 봉투를 받았다.아버지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너도 다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마. 여자애가 돈을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어? 엄마 수술비는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 볼게. 그 동안 모은 돈도 조금 있고 큰언니도 좀 도와준다고 했어. 우리는 가족이니까 다 같이 감당해야지.”유월영은 차에 올라 봉투에 든 현금을 세어보았다. 고작 오십만 원이었지만 그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다.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형부가 그녀에게 어디서 일하냐고 물었다.유월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퇴사한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은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어요.”“처제는 똑똑하니까 좋은 직장 구할 수 있을 거야.”형부의 말에 유영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그들을 데려다주고 친구에게 차를 돌려준 뒤에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갔다.늦은 시각, 그녀는 컴퓨터를 열고 이메일에 접속했다. 예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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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서지욱이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SK의 막내딸인가 보네. 며칠 전에 재준이가 새로 고용한 비서야.”연재준이 말했다.“이미 퇴사했어.”SK의 오너 일가를 신변에 둔다는 건 굉장히 예민한 일이었다.그래서 내보낸 건데 신연아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비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유 비서는 안 보여? 전에는 항상 같이 다녔잖아? 재준이 너만 졸졸 따라다니던 사람인데 갑자기 안 보이니까 이상해서 말이야.”노현재가 당구대로 다가오며 연재준에게 물었다.서지욱이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유 비서 퇴사했어.”노현재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유 비서가 퇴사했어?”서지욱이 덤덤히 말했다.“고용 계약이 만료됐잖아. 재준이야 유 비서를 계속 붙잡고 싶었지. 그런데 당사자가 간다는데 무슨 소용이야? 그래서 속 좁은 저 녀석이 각 기업에 유 비서 채용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잖아.”노현재는 가장 힘들었던 때에 연재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연재준의 편이었다.“주제를 모르네.”노현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재준은 태연하게 당구대를 잡으며 덤덤히 말했다.“곧 돌아와서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 거야.”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었다.그녀를 지방에 발령냈을 때도 먼저 다가와서 본사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안기던 여자였다.그는 시간이 좀 소요될 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한편, 유월영은 아무런 기대 없이 여러 중소기업들에 이력서를 뿌렸다. 그런데 다음 날에 면접 통지가 날아왔다.첫 면접은 화상 통화로 진행되었다. 면접 담당자는 그녀를 높게 평가하며 2차 면접을 약속했다.KTX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였다.거리가 멀어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유월영은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KTX에 올랐다.가는 도중에도 다른 회사에서 면접 통지를 받았다. 전화로 얘기가 잘 되었기에 시간을 정해 회사에서 정식 면접을 보기로 했다.그녀가 지금 면접을 보러 가는 회사와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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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연재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유월영은 핸드폰을 던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그리고 감정을 추스른 뒤에 KTX를 타고 신주로 돌아갔다.신주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향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백유진이었다.둘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백유진도 그녀를 발견했다.유월영이 기침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었지만 눈매와 체형을 보고 백유진은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백유진은 한 중년 여성과 함께 있었다. 외모가 많이 닮은 것으로 보아 엄마인 것 같았다.백유진은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유월영을 빤히 바라봤다.이때, 유월영의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이영화 씨 가족분 되시죠? 여기 병원이에요.”유월영은 당황하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아까 연락을 받았는데 적합한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영화 씨 바로 수술 가능하실 것 같아요.”유월영은 그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정말요?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건가요?”“네. 내일 당장 병원으로 오셔서 입원하시고 대기하시면 됩니다. 기증자는 서울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수술 준비만 되면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습니다.”유월영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일 엄마 모시고 병원으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그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피어났다.최근 있었던 불쾌한 일들이 이 소식 하나로 모두 잊혀진 기분이었다.심장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아주 고된 기다림이었다.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매일 수천 명이 넘는 환자가 기증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증자의 가족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지 가능한 일이라서 운이 좋게 새 삶을 얻은 환자는 사실 많지 않았다.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으니 그들은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유월영은 곧바로 집에 전화해서 이 소식을 알렸다. 소식을 전해 들은 유현석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그래. 난 네 언니랑 형부한테 알려야겠어. 내일 다 같이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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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식사가 끝난 뒤, 유월영은 조서희와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그녀는 내일 어머니 병원에 갈 짐을 정리하고 조서희는 편하게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월영아!”유월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왜 그래?”조서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너 일자리 찾은 것 같아!”유월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봤다.조서희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SNS보는데 내 옛 상사가 인원 모집 공고를 냈어. 부서 담당을 모집한다는데 너랑 어울릴 것 같아서 네 이력서를 보내드렸었거든. 그쪽에서 아주 만족스럽다는 답변이 왔어.”유월영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너 전에 안성에서 일하지 않았어? 그때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잖아.”“그렇긴 하지. 해운과는 못 비기지만 사실 신주의 대부분 회사들이 다 그렇잖아? 안성 정도면 대우는 괜찮을 거야.”조서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사실 그 인간 한 명 빼고는 다 괜찮았어. 그 인간 아니었으면 회사를 안 나왔을 거야. 퇴사한 뒤에도 계속 이분과는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사람이 정말 괜찮아.”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좀 끌리긴 하네.”조서희의 옛 상사라면 유월영도 만난 적이 있었다. 전에 연재준이 클럽으로 그녀를 불러냈을 때 마침 노현재와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던 여성을 보았다. 그 여자가 바로 조서희의 옛 상사였다.나중에 둘이 헤어지고 그녀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말을 조서희를 통해 들은 적 있었다.“그분이 그러시는데 저녁이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대.”조서희가 들뜬 얼굴로 친구를 꼬드겼다.“가자. 조건이 안 맞더라도 같은 여자끼리 식사 정도는 괜찮잖아.”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유월영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사실 이 시점에 직장까지 구한다면 엄마의 수술 후 관리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그녀에게는 괜찮은 제안이었다.유월영은 감기약을 먹은 후,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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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둘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김우희가 다시 둘의 앞길을 막았다.“뭘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해?”조서희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언니,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김우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일자리 소개해 주려고 나온 거잖아.”“일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팔아먹으려고 불러낸 것 같은데요?”성질 급한 조서희가 날이 선 말투로 반박했다.왕 대표가 술을 들고 다가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어린 아가씨가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당장 우희 씨한테 사과해! 사과의 의미로 이 술을 한잔씩 마시면 되겠네! 마시기 전에는 나갈 생각하지 마!”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유월영과 조서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아마 저 술을 마셔도 이 방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둘은 김우희의 어깨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김우희가 바닥에 넘어지자 뒤에 있던 왕 대표가 소리를 질렀다.“저것들 잡아!”문이 열리고 밖에서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다짜고짜 유월영과 조서희의 팔목을 잡으려 했고 그러다 보니 몸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둘은 핸드백으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고 다리를 들어 상대의 중심부를 걷어찼다.순식간에 고급 별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둘은 바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사람 살려요! 이 사람들이 저희를 납치하려고 해요!”바깥에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어쩐 일인지 힐끗 바라만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흔히 있는 일이라서 무관심한 건지, 아무도 그들을 구해주려 나서지 않았다.유월영은 경호원 한 명을 밀쳐내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조서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별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유월영은 이를 악물고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한 뒤, 별실로 달려갔다.그리고 굳게 닫힌 문을 발로 걷어찼다.느끼남 왕 대표가 조서희를 소파에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서 볼품이 없었고 울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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