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욱이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SK의 막내딸인가 보네. 며칠 전에 재준이가 새로 고용한 비서야.”연재준이 말했다.“이미 퇴사했어.”SK의 오너 일가를 신변에 둔다는 건 굉장히 예민한 일이었다.그래서 내보낸 건데 신연아는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비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왜 유 비서는 안 보여? 전에는 항상 같이 다녔잖아? 재준이 너만 졸졸 따라다니던 사람인데 갑자기 안 보이니까 이상해서 말이야.”노현재가 당구대로 다가오며 연재준에게 물었다.서지욱이 옆에서 대신 대답했다.“유 비서 퇴사했어.”노현재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유 비서가 퇴사했어?”서지욱이 덤덤히 말했다.“고용 계약이 만료됐잖아. 재준이야 유 비서를 계속 붙잡고 싶었지. 그런데 당사자가 간다는데 무슨 소용이야? 그래서 속 좁은 저 녀석이 각 기업에 유 비서 채용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잖아.”노현재는 가장 힘들었던 때에 연재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연재준의 편이었다.“주제를 모르네.”노현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재준은 태연하게 당구대를 잡으며 덤덤히 말했다.“곧 돌아와서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 거야.”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었다.그녀를 지방에 발령냈을 때도 먼저 다가와서 본사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안기던 여자였다.그는 시간이 좀 소요될 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한편, 유월영은 아무런 기대 없이 여러 중소기업들에 이력서를 뿌렸다. 그런데 다음 날에 면접 통지가 날아왔다.첫 면접은 화상 통화로 진행되었다. 면접 담당자는 그녀를 높게 평가하며 2차 면접을 약속했다.KTX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지방에 있는 회사였다.거리가 멀어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유월영은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KTX에 올랐다.가는 도중에도 다른 회사에서 면접 통지를 받았다. 전화로 얘기가 잘 되었기에 시간을 정해 회사에서 정식 면접을 보기로 했다.그녀가 지금 면접을 보러 가는 회사와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연재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유월영은 핸드폰을 던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그리고 감정을 추스른 뒤에 KTX를 타고 신주로 돌아갔다.신주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향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백유진이었다.둘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백유진도 그녀를 발견했다.유월영이 기침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었지만 눈매와 체형을 보고 백유진은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백유진은 한 중년 여성과 함께 있었다. 외모가 많이 닮은 것으로 보아 엄마인 것 같았다.백유진은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유월영을 빤히 바라봤다.이때, 유월영의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이영화 씨 가족분 되시죠? 여기 병원이에요.”유월영은 당황하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아까 연락을 받았는데 적합한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영화 씨 바로 수술 가능하실 것 같아요.”유월영은 그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정말요? 심장 기증자가 나타난 건가요?”“네. 내일 당장 병원으로 오셔서 입원하시고 대기하시면 됩니다. 기증자는 서울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수술 준비만 되면 바로 수술 들어갈 수 있습니다.”유월영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일 엄마 모시고 병원으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그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피어났다.최근 있었던 불쾌한 일들이 이 소식 하나로 모두 잊혀진 기분이었다.심장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아주 고된 기다림이었다.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매일 수천 명이 넘는 환자가 기증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증자의 가족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지 가능한 일이라서 운이 좋게 새 삶을 얻은 환자는 사실 많지 않았다.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으니 그들은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유월영은 곧바로 집에 전화해서 이 소식을 알렸다. 소식을 전해 들은 유현석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그래. 난 네 언니랑 형부한테 알려야겠어. 내일 다 같이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식사가 끝난 뒤, 유월영은 조서희와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그녀는 내일 어머니 병원에 갈 짐을 정리하고 조서희는 편하게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월영아!”유월영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왜 그래?”조서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너 일자리 찾은 것 같아!”유월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봤다.조서희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SNS보는데 내 옛 상사가 인원 모집 공고를 냈어. 부서 담당을 모집한다는데 너랑 어울릴 것 같아서 네 이력서를 보내드렸었거든. 그쪽에서 아주 만족스럽다는 답변이 왔어.”유월영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너 전에 안성에서 일하지 않았어? 그때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잖아.”“그렇긴 하지. 해운과는 못 비기지만 사실 신주의 대부분 회사들이 다 그렇잖아? 안성 정도면 대우는 괜찮을 거야.”조서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사실 그 인간 한 명 빼고는 다 괜찮았어. 그 인간 아니었으면 회사를 안 나왔을 거야. 퇴사한 뒤에도 계속 이분과는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사람이 정말 괜찮아.”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좀 끌리긴 하네.”조서희의 옛 상사라면 유월영도 만난 적이 있었다. 전에 연재준이 클럽으로 그녀를 불러냈을 때 마침 노현재와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던 여성을 보았다. 그 여자가 바로 조서희의 옛 상사였다.나중에 둘이 헤어지고 그녀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말을 조서희를 통해 들은 적 있었다.“그분이 그러시는데 저녁이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대.”조서희가 들뜬 얼굴로 친구를 꼬드겼다.“가자. 조건이 안 맞더라도 같은 여자끼리 식사 정도는 괜찮잖아.”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유월영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사실 이 시점에 직장까지 구한다면 엄마의 수술 후 관리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그녀에게는 괜찮은 제안이었다.유월영은 감기약을 먹은 후,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했
둘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김우희가 다시 둘의 앞길을 막았다.“뭘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해?”조서희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언니, 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김우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일자리 소개해 주려고 나온 거잖아.”“일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팔아먹으려고 불러낸 것 같은데요?”성질 급한 조서희가 날이 선 말투로 반박했다.왕 대표가 술을 들고 다가오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어린 아가씨가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 당장 우희 씨한테 사과해! 사과의 의미로 이 술을 한잔씩 마시면 되겠네! 마시기 전에는 나갈 생각하지 마!”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유월영과 조서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아마 저 술을 마셔도 이 방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둘은 김우희의 어깨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김우희가 바닥에 넘어지자 뒤에 있던 왕 대표가 소리를 질렀다.“저것들 잡아!”문이 열리고 밖에서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다짜고짜 유월영과 조서희의 팔목을 잡으려 했고 그러다 보니 몸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둘은 핸드백으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고 다리를 들어 상대의 중심부를 걷어찼다.순식간에 고급 별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둘은 바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사람 살려요! 이 사람들이 저희를 납치하려고 해요!”바깥에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어쩐 일인지 힐끗 바라만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흔히 있는 일이라서 무관심한 건지, 아무도 그들을 구해주려 나서지 않았다.유월영은 경호원 한 명을 밀쳐내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조서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별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유월영은 이를 악물고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한 뒤, 별실로 달려갔다.그리고 굳게 닫힌 문을 발로 걷어찼다.느끼남 왕 대표가 조서희를 소파에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찢겨서 볼품이 없었고 울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왜 항상 이런 식일까?매번 그녀는 가장 비참한 모습을 그에게 보였다. 마치 그의 그림자를 벗어나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연재준은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을 덮었다.남자의 외투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에 유월영의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연재준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곧장 왕 대표에게로 다가갔다.왕덕호는 욕설을 퍼부으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누구야! 누가 감히 내 일을 방해하는 거야? 죽고 싶어? 악!”옆에 있던 노현재가 다리를 들어 왕덕호의 복부를 걷어차며 말했다.“건방지게 누구 안전이라고 욕설이야? 죽고 싶어?”왕덕호는 싸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노현재와 시선이 마주치자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노… 노 사장….”연재준은 담배를 입에 물고 왕덕호에게로 다가갔다.그리고 담뱃재를 왕덕호의 얼굴에 털어냈다.그를 알아본 왕덕호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연 대표님이 왜 여기에….”노현재는 발끝으로 왕덕호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내 가게에서 술을 마시면서 우리 재준이 여자를 건드려 놓고 왜 여기 있냐고 묻는 건 너무 멍청한 질문 아닌가?”왕덕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 아닙니다! 연 대표님, 제 말씀 한 번만 들어보세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김우희 그 여자한테 속아서 왔단 말입니다!”“마침 안성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만났는데 김우희가 젊은 여자랑 놀아보지 않겠냐고 해서 나온 거예요.”“유… 유 비서가 해운에서 퇴사했다고 더 이상 해운의 직원이 아니라고 그 여자가 그랬단 말입니다. 그래서 좀 데리고 놀아도 아무 문제 없다고 하길래 한 순간 정신이 나가서 그러겠다고 했어요. 유 비서가 대표님 사람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건드렸을 겁니다!”연재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김우희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지?”왕 대표는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아까까지도 여기 있었는데….”“도망갔다는 얘기네. 그럼 왕 대표 한 사람 말만 듣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어? 증거 있어?”노현재가
연재준은 유월영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일어나.”유월영은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주저앉았다.연재준은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잡아서 일으켰다. 유월영은 일어서자마자 그의 어깨를 밀치며 차갑게 말했다.“연재준,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었어!”연재준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것도 병이야.”그는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었다.“끼리끼리 모인다고 전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사람을 잘못 봤어.”“당신 정말 치졸한 거 알아?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날 취직 못하게 하고, 중소기업 시켜서 날 면접 보러 오라고 뺑뺑이 돌게 만들고, 백유진이랑 다시 만나면서도 날 놓아줄 생각이 없잖아. 당신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자리에 나올 일도 없었어!”연재준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먼저 날 배신했어.”유월영이 소리쳤다.“내가 언제 배신했어?”“하! 발뺌하는 거야?”연재준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그녀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섰다. 남자에게서 풍기는 싸늘한 기운에 유월영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3년 전에 널 살려준 사람이 누구지? 갈 곳도 없는 너를 거두어 주고 일자리까지 줬어. 내 여자가 되겠다고 한 사람도 너야. 평생 배신하지 않고 내 옆을 지키겠다고 말한 사람도 너야. 우리야 말로 진짜 가족이라고 평생 함께하자고 했잖아!”“그만!”유월영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연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날 먼저 버린 사람도 너야.”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지금도 그에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생생했다.그날 폭우가 내리던 밤에 연재준은 건달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를 구해주고 차에 태웠다. 지금도 그 따뜻한 온도를 잊을 수 없었다.연재준은 홀딱 젖은 그녀를 보고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이제 괜찮을 거야. 아무도 너 못 건드려.”그는 떨고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따뜻한 품으로 그녀
유월영은 어쩔 수 없이 임영웅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려줬다. 임영웅은 전화를 끊자마자 차를 끌고 달려왔다.조서희는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렇게 임영웅이 조서희를 데려가고 유월영도 집까지 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서덕궁 맞은편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그녀가 카운터로 가서 입주 수속을 마칠 때, 구석진 곳에서 누군가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방으로 간 유월영은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취직이 실패하고 엄마는 중병에,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다 보니 그녀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갑갑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애써 불안을 잠재웠다. 내일은 엄마가 입원하는 날이니 푹 쉬어둬야 했다.그렇게 힘들게 잠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렸다.요란한 핸드폰 벨소리에 그녀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인지 눈앞이 어지러웠다.그녀는 다급히 핸드폰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발신자는 그녀의 아버지였다.“아빠, 무슨 일이야?”유월영이 물었다.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아, 우리 병원에 도착했는데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돌아가래. 기증자의 심장을 다른 환자가 이식 받을 거라고 수술을 못한대. 월영아, 이를 어쩌면 좋니!”유월영은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는 곧 간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급한 마음에 그녀는 벽을 짚고 힘겹게 다시 몸을 일으켰다.거리로 나온 유월영은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제일 병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병원에 도착했더니 진료실 앞에서 아버지가 의사와 다투고 있었다.그는 손에 과도를 들고 간호사 한 명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어제 수술할 수 있다고 당신들이 먼저 연락했잖아! 그런데 오늘 갑자기 수술 일정이
유월영은 주먹을 꽉 쥐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아빠, 칼 내려놔요. 일단 칼부터 내려놔요.”유현석도 주변을 포위한 형사들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어서 그런 건데… 월영아, 나 진짜 사람을 죽일 마음은 없었어….”“그 칼 어디서 났어?”유월영이 울며 물었다.“복도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의사가 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네 엄마 사과 좀 먹인다고 사과를 깎고 있었어. 그런데 간호사가 오더니 수술이 취소됐다고 돌아가라는 거야. 기증자 심장은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니까 저쪽에서도 자꾸 얼버무리더라고. 그래서 순간 이성이 날아가서 그만….”유월영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아빠, 칼 내려놔. 그리고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유현석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부들부들 떨며 간호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간호사는 바로 도망가고 형사들이 달려들어 유현석을 제압했다. 유월영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형사들은 유현석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유월영이 쫓아가려고 하는데 형사 한 명이 그녀를 불러세웠다.“가해자 가족분 되시죠?”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저희랑 같이 가시죠.”유월영은 다른 형사와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하지만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참고인 조사를 한다고 형사들이 그녀를 조사실로 불렀다.그녀는 형사들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대답했다.“우리 아빠 나쁜 사람 아니에요. 일부러 난동을 부린 건 아니고 엄마 상태가 너무 걱정돼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 같아요. 학교도 안 나온 분이라 선생님이 설명해 준 복잡한 절차에 대해서 잘 몰라서 오해한 것 같아요. 그 간호사분께는 적절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여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희도 병원 관계자에게 상세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유현석 씨의 마음도 이해는 해요. 하지만 병원 의료진을 칼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