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만나요의 모든 챕터: 챕터 461 - 챕터 470

967 챕터

제461화

가면을 쓴 남자가 말했다. “배현수, 좋은 말 할 때 폭탄 조정 장치를 내놔!”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안 주면 어쩔 건데?”가면을 쓴 남자가 총으로 배현수의 오른팔을 겨누었다. “흥, 내가 총을 못 쏠 것 같아?”“그럼 어디 한 번 쏴봐. 내 폭탄 버튼이 빠른지 총이 빠른지 한번 겨뤄보자고.”가면을 쓴 남자는 총을 여러 번 겨누었지만 끝내 총을 쏘지 못했다.배현수 같은 미치광이는 폭탄 버튼을 정말 누를 수 있었다!“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저 여자를 보내는 건 의미 없잖아! 아니면 나랑 거래할래?”남자는 경멸에 찬 말투로 말했다. “너처럼 비열한 녀석과는 거래 안 해!”“거참 뻔뻔스럽게 구는군!”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망했어! 군함에 포위됐어!”“뭐라고? 군함?”“719국의 군함 같아!”“쿵!”“쿵!”“쿵!”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크루즈에 있던 검은색 옷차림의 남자가 총소리와 함께 넘어졌다!엉망이 되었다!가면을 쓴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폭탄 던져!!”배현수가 민첩하게 돌아서더니 총 하나를 들고 검은색 옷차림의 남자들을 명중하였다!가면을 쓴 남자가 배현수의 왼쪽 어깨를 향해 갑자기 총을 쏘았다!“배, 현, 수! 719국의 사람이었군!”배현수는 이를 꽉 깨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지금 알아도 늦은 건 아니야!”가면을 쓴 남자도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배현수가 틈을 타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자 가면을 쓴 남자가 배현수의 종아리를 잡고 다시 배 위로 데려갔다!크루즈 갑판에 ‘쾅’ 하고 넘어진 두 사람은 맨주먹으로 싸우기 시작했다!그 누구도 이길 수 없었다.이내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다.크루즈는 군함의 적수가 못 되었다. 그러나 크루즈에 배현수가 있었기 때문에 크루즈를 함부로 폭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한참 싸우더니 가면을 쓴 남자가 한 바퀴 돌아서 갑판에 떨어진 폭탄 조정 장치를 주웠다.“군함을 철수해! 그러지 않으면 이 버튼을 누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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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해면 위 거대한 불빛에 조유진의 눈물은 반짝반짝 빛났다.큰불이 점점 더 크게 타올랐고 해면 위는 등황색으로 물들었다.“현수 씨...!”왜 그렇게 바보처럼 구는지.왜 당신의 목숨으로 내 목숨을 바꾼 건지!배현수가 분명 크루즈에서 조유진과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함께 도망가자고 했는데.분명 약속했는데... 살든 죽든 함께하자고.배현수는 거짓말과 신용을 지키지 않는 것을 가장 혐오하였다. 그러나 조유진과 함께 죽고 살자고 하던 약속을 결국 어기고 말았다.“현수 씨를 구해야만 해요!”서정호가 조유진을 말렸다. 조유진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몸부림쳤다.“배 대표님이 살아계시면 719국 사람들이 분명 대표님을 찾아내고 말 거예요! 하지만 배 대표님은 몸에 폭탄을 달았고 지금 불길이 저렇게 타올라서 폭탄이 또 터질 위험이 있어요! 유진 씨, 절대 저기 가면 안 돼요!”서정호는 반드시 조유진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배현수와 약속하였다.“서 비서님, 부탁이에요… 절 저기 데려다주세요. 현수 씨가 죽으면 난 어떻게 살아가나요? 현수 씨는 나를 구하기 위해 공해에 온 거예요! 내가 아니었다면 현수 씨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조유진의 두 눈은 피가 흐를 것처럼 빨개졌다.정서 기복이 크고 더군다나 밤에 이어지는 흉보에 조유진은 진즉 버틸 힘이 없었다.서정호는 손을 들어 조유진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유진 씨, 죄송해요.”조유진이 요트에 쓰러졌다.서정호는 담요를 가져와 조유진을 덮어주었다. “푹 쉬세요.”심한 타격을 받은 조유진은 오랫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다.악몽을 꾸면서 식은땀까지 흘렸다.그러다 조유진이 갑자기 일어났다. “현수 씨!”침대 옆에 있던 조선유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어린 조선유는 부드럽고 뜨거운 작은 손으로 조유진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엄마, 악몽 꾸었어요?”조선유의 목소리를 듣자 조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선유구나...”“저예요! 엄마, 왜 땀을 이렇게 많이 흘렸어요?”어린 선유는 휴지를 가져다가 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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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그렇게 말하는 선유는 전화 치러 가려고 했다.그런 조선유를 조유진은 꼭 안고 눈을 꼭 감았다.“전화하지 마. 아빠는 돌아올 거니까 하지 마...”“똑똑똑”침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유진 씨, 저 서정호예요.”조유진이 눈물을 닦으며 선유에게 말했다.“선유야, 정호 아저씨랑 할 얘기 있으니까 너 혼자 놀아.”“알았어요! 엄마 계속 울면 안 돼요! 눈이 붓겠어요! 눈이 부으면 예쁘지 않아요!”조선유가 조유진의 얼굴을 만졌다.조유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조선유가 떠나자마자 조유진이 이내 물었다.“소식 있어요?”서정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아직 없어요.”“그 사람들이 대충 찾은 거 아니에요? 아니면 현수 씨는 진즉 구출되었거나. 서 비서님, 다른 사람들을 보낼 수 있나요?”조유진은 포기하지 않았다.하지만 서정호는 이성적으로 분석했다.“바다에 뛰어들기만 한 거라면 배 대표님께서는 살아계셨을 거예요. 그러나 몸에 폭탄을 달았고 크루즈가 폭발한 걸 보면 배 대표님께서 폭발을 일으킨 게 분명해요. 유진 씨, 저도 배 대표님이 살아계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배 대표님께서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십중팔구 살지 못했을 거예요...”이불을 꼭 붙들고 있던 조유진의 두 손끝은 창백했다.“못 믿겠어요… 분명 나와 생사를 함께하겠다고 했던 사람인데. 현수 씨는 신용 있는 사람이에요. 서 비서님은 현수 씨를 잘 몰라요.”서정호가 가볍게 웃었다.“제가 배 대표님을 모르면 조유진 씨는 잘 아나요?”서정호는 어차피 배현수가 죽었으니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질문했다.“그게 무슨 말이죠?”“배 대표님은 유진 씨가 대표님한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유진 씨를 포기했어요. 심지어 성남으로 쫓아내기까지 했었죠. 그렇게 끝났으면 차라리 좋았을 거예요. 미련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죠. 배 대표님은 유진 씨가 걱정되어 혼자 성남까지 따라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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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송지연은 배현수의 상담 의사였다.그 순간 조유진은 그녀가 서정호의 말대로 배현수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배현수한테 조울증이 있는 것도 몰랐고 송지연이 상담 의사인 것도 몰랐다.서정훈이 잠깐 멈추더니 계속 말했다.“배 대표님의 손가락에 화상이 있어요. 예전에 유진 씨가 배 대표님을 배신했을 때 유진 씨를 미워할 수 없어서 자학하는 걸로 유진 씨에게 더 빠지지 말도록 경고했었어요. 정말 유진 씨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배 대표님의 병이 진즉 나았겠죠. 유진 씨를 정말 미워했으면 2천억 원으로 유승태의 손에서 유진 씨를 데려오지 않았겠죠. 유진 씨를 정말 미워했으면 유진 씨가 바다에 뛰어들 때 함께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이 시원했겠죠!”“유진 씨는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는 게 두 분한테 화해라고 생각하겠지만. 맞아요, 두 분이 사이좋게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긴 해요. 하지만 이 것이 배 대표님께 어떤 의미인지 아세요?”“배 대표님은 유진 씨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 걸 의미해요. 배 대표님은 아무리 집착이 심해도, 유진 씨를 제일 미워할 때도 유진 씨를 도와줬어요. 그런데 유진 씨는요? 배 대표님보고 놓아달라고 협박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까지 겪어서 배 대표님은 방법 없이 유진 씨를 보내주었어요. 유진 씨는 다 해탈되었겠죠. 성남에 돌아간 한 달 동안 유진 씨의 외상 후 스트레스도 거의 다 나았겠죠? 하지만 배 대표님의 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어요. 유진 씨를 잃은 배 대표님은 산 송장과도 같았거든요.”“그러니까 두 분 중 한 명만 살 수 있다면 배 대표님은 분명 유진 씨를 살릴 거예요. 배 대표님은 진즉 죽고 싶어 했어요. 생사를 함께한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에요. 유진 씨만 그 말을 믿겠죠. 유진 씨만 배 대표님을 괴롭히거든요.”서정호의 말은 가시처럼 조유진의 마음속에 박혔다.그 가시는 아주 날카로웠다.심지어 피 한 방울 없이 조유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조유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순간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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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조유진은 배현수를 잡고, 안고 싶었지만 배현수의 몸은 허상일 뿐이었다.배현수를 잡지도, 안지도 못한 채 목놓아 외쳐도 배현수는 끝내 큰불 속에 들어가 점차 잿더미가 되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을 포기했다.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난 조유진은 식은땀을 흘렸다.몸을 돌려 왼쪽을 보며 텅 빈 침대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러자 공해에 납치당한 그날 밤이 또 떠올랐다.배현수가 술에 취한 그날, 그는 꿈인 줄 알고 이 침대에서 조유진을 꼭 끌어안고 그녀의 귀에 키스하며 자꾸만 질문했다.“엄창민이 나보다 좋아?”그때 조유진은 배현수가 질투하는 줄 알았다.그런데 서정호는 배현수가 강아지처럼 조유진의 뒤를 따라다니며 조유진이 엄창민과 함께 마트에서 쇼핑하고 음악회에 가는 걸 바라보았다고 했다.비록 엄창민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만 따라다니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배현수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조유진은 그가 사용하던 베개를 손으로 매만졌다. 현재로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그녀는 서재로 갔다.서재는 배현수가 평소 가장 오랫동안 있던 곳이었다.그녀는 배현수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테이블 위에 놓인 컴퓨터 옆에 있는 뿔테 안경을 보았다.안경을 껴보니 도수가 높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어지럽지 않았다.아마 200도 좌우일 것이다.예전의 배현수는 근시가 아니었고 조유진은 배현수가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두 사람은 연락을 끊은 지 7년 되었다. 그 순간 조유진은 처음으로 배현수를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배현수는 테이블 오른쪽 서랍에 전자 도어락을 설치했다.조유진은 곧장 자기 생일을 입력했다.역시나 도어락이 열렸다.서랍을 열어보니 중요한 물건은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 없었다.서랍 속에는 둘이 함께 꼈던 은반지와 조유진이 가졌다가 다시 되돌려준 핑크색 보석 액세서리, 그리고 둘이 연애할 때 함께 샀던 커플 핸드폰, 또... 투명 테이프로 붙여놓은 작은 화집도 들어있었다.조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그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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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SY는 현수가 7년 전에 만든 회사명인데, 너한테 주려고 했던 생일선물이었어. 네가 그때 법정에서 그를 지목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야. S는 배현수, Y는 조유진이라는 뜻이지. 현수가 너와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는 동안, 너는 그의 뒤통수를 쳤어. 그 미래에서 너는 안주인이었는데, 이래도 여전히 아무런 동요가 되지 않아?”육지율은 흥분하여 윽박질렀다.남초윤은 그런 그를 노려보면서 바로 맞받아쳤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현수 씨가 그렇게 되고 유진이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요. Y가 유진이라고 해도 무슨 소용 있어요. 회사대표도 아니고 주주도 아닌데 어떻게 회사를 관리하겠어요. 왜 유진이한테 뭐라고 그래요!”육지율은 할말이 없어졌다. 조유진은 확실히 회사를 관리할 명분이 없었다. 그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서재에서 하룻밤을 꼴딱 샌 조유진의 멍한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SY의 의미를 듣고서는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남초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말했다. “유진아, 지금 힘들면 나중에 다시 생각해도 돼. 현수 씨가 그렇게 되었지만, 너에겐 선유가 있잖아. 지금 회사보다 더 중요한 건 너랑 선유가 아무 일 없는 거야. 힘들겠지만 잘 생각해 봐. 다른 마음먹으면 안 돼.”조유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남초윤은 이런 그녀의 모습을 전에 딱 한 번 본적이 있었다. 1년 전, 그녀의 어머니 안정희 장례식에서.그때 조유진은 남초윤의 바로 눈앞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남초윤은 그녀의 우울증이 재발해 다시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겁이 났다. 조유진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와 현수 씨는 아직 법적 부부가 아니라서, 육 변호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그이의 지분을 상속받을 자격이나 명분이 없어요. 만약 선유가 상속받게 된다면 정말로 현수 씨가 사망했다고 선고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러면 회사에 더 안 좋은 것 아닌가요?”게다가, 배현수의 사고 소식을 그녀는 아직 딸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도 못했다.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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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듣고 있던 육지율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에게 아주 먼 이야기였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부부 사이가 너무 좋으면, 한쪽이 세상을 뜨면 다른 한쪽은 그리움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조유진과 배현수는 법적으로 부부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얽히고설켜 모진 풍파를 겪었으니 이젠 떼 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배현수가 정말로 없어진다면 조유진도 점차 말라 죽어갈 뿐이었다.조유진이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도 배현수가 따라 죽으려고 했었던 것처럼.정말 죽음까지 생각한 거라면 회사가 어떻게 되어도 그녀에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조유진은 육지율과 남초윤을 마당까지 바래다줬다.“회사의 일은 육 변호사님께서 부탁드립니다. 일주일 뒤에도 현수 씨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때 다시 주주총회를 열고 지분 문제를 논의하죠. 저도 선유를 데리고 참석할 겁니다.”육지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현수가 사망하면 그의 지분은 자연스레 딸한테 상속될 것이다. 그 지분을 팔든 보유하고 있든 이들은 앞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남초윤은 조유진을 안아주면서 말했다.“유진아, 딴생각하지 말고 요 며칠 푹 쉬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잖니.”‘그래,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다.’배현수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니, 조유진은 앞날이 까마득했다.예전에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돌고 돌아 만나게 되어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도 욕심을 부린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함께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멀리서 그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녀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마치 계속 그녀를 놀리는듯했고 이제는 두 사람을 서로 다른 세상에 갈라놓았다. 별장을 떠난 후 차 안에서 육지율과 남초윤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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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남초윤은 순간 이해가 안 되는 듯 되물었다.“내가 뭐요?”“남자들은 모두 사랑꾼인 척 연기하고, 여자는 일편단심이지만 티를 내지 않을 뿐이라며. 그러면 당신도 그런 여자예요?”육지율은 문득 그녀가 김성혁에게 어느 정도의 감정인지 궁금해졌다.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나는 유진이랑 달라요. 나도 당신들처럼 입에 발린 말을 잘하죠.”다 남자들한테서 배운 것이다.육지율은 건조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남자들이 좋아하겠군.”남초윤은 순간 그가 비웃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헷갈렸다. “지금 같은 세상에 유진 같은 여자도 흔치 않아요. 만약 현수 씨가 안 돌아온다면, 정말로 그를 따라가고도 남을 여자예요. 요 며칠 내가 매일 전화해 줘야겠어요. 아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정말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아마 첫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김성혁도 남초윤의 첫사랑이었다. 만약 김성혁이 죽으면 자기도 따라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봤지만 아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좀 정이 없는 편인가?’남초윤은 대학교 때부터 조유진하고 배현수 두 사람이 유별나다고 생각했었다. 배현수는 조유진하고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 했으며 어쩌다 그녀가 조유진과 같이 영화 보러 가려고 해도 그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녀가 한창 회상에 젖어 있는데 육지율이 문득 입을 열었다.“그래서, 만약에 좋아하는 사람이 죽으면 당신도 따라 같이 죽을 거예요?”“내가 미쳤어요? 이 세상에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내가 죽으면 그 명품 백들은 어떡해요. 아까워서 못 죽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끝까지 행복하게 살 거예요.”남자가 죽으면 또 찾지 뭐. 세상에 널린 게 남자인데 뭐가 아쉬워서.그런 그녀를 보면서 육지율은 큰 소리로 웃고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임무 중에 죽기라도 한다면 이 여자는 아마 그날로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날 것이다. 육지율은 이해 안 되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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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그도 혹시 슬픔을 못 견디고 유진이처럼 그러지는 않을까?남초윤은 육지율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좋은 남자는 아직 많으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이후에도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예요.”“...”‘젠장,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육지율은 얼굴이 잿빛이 된 채로 앞만 노려봤다. 차가 길가에 급정거하더니 그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내려요.”“왜요? 가는 길에 나 잡지사에 데려준다고 하지 않았어요?”“지금은 아니에요.”“나 오늘 하이힐 신었다 말이에요.”육지율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남초윤은 그를 노려보다 할 수 없이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차는 쌩하고 출발해 버렸다. 남초윤은 한쪽 하이힐을 벗어 질주하는 차를 향해 던지며 소리쳤다.“개자식! 하여튼 부부 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만약 그가 죽으면 이튿날 바로 남자 꼬시러 갈 거라고 그녀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절친이 죽었다고 같이 슬퍼해 주고 위로해 줬더니. 양심은 진짜 개나 줘버려!”그녀는 깡충거리며 다시 하이힐을 주워 왔다. ‘근데 절친이 행방불명됐는데 왜 저렇게 담담하지. 평소랑 별반 다르지 않잖아. 역시 남자들의 의리란. 쯧.”배현수가 사고를 당한 후 회사 일은 육지율이 그를 대신해 임시로 처리하고 있었고 서정호는 비서로서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배현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피를 말리는 일주일이 지나가고 조유진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딸은 계속 그녀에게 아빠가 어디 갔냐고 보챘다.조유진은 더는 숨길 수가 없어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얘기했다.“선유야, 아빠 아마 돌아오지 않을 거야.”조선유는 이해가 안 되는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왜? 아빠가 다른 이모랑 같이 떠난 거야? 아빠가 밖에 다른 이모랑 아기와 같이 살고 있는 거야?”딸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면서 조유진의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엄마, 울지마. 아빠 지금 어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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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우리 방마다 불 다 켜놓고 있자. 그러면 아빠가 불빛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진짜야?”“응.”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사실 그녀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길을 잃은 배현수가 불빛을 따라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조유진은 딸과 같이 소파에 가만히 기대어 앉아있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와 그녀의 머리를 간지럽혔다. 조선유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엄마, 나 조금 무서워, 아빠가 귀신으로 변하면 어떡해?”조유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딸을 달랬다.“걱정하지 마. 아빠가 귀신이 되어도 우리 선유는 해치지 않을 거야.”아직 어린 딸은 죽음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뭔지 몰랐다. 어른처럼 심장이 찢기는 아픔을 아직 몰라서 다행이었다.조선유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아빠 오늘 밤에 집에 올 수 있어? 나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지난번에 내가 받아쓰기 시험에서 꼴찌를 했는데 100점 맞았다고 거짓말했어. 이따 아빠를 만나면 사실대로 말할 거야. 아빠 하늘나라 가서 걱정하지 않게.”조유진은 귀여운 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눈물이 눈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딸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선유야, 졸리면 자도 돼. 아빠가 오면 엄마가 꼭 깨워줄게.” 조선유는 그렇게 그녀의 품에서 잠들었다. 조유진은 창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세상에 귀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현수가 귀신의 모습을 해서라도 그녀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조유진은 소파에 앉아서 날밤을 새웠다.조유진은 조용히 딸을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육지율은 아침 일찍 그녀에게 전화했다. “오전 열 시에 주주총회가 있어. 준비됐어?”“네. 사실 준비할 것도 없네요.”조유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주주들과 임원들, 말이 거칠어질 수도 있어. 마음의 준비는 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네.”전화를 끊고 조유진은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하얀색 정장으로 갈아입은 후,연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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