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641 - 챕터 650

693 챕터

제641화 별장에 불이 나다

“엄마.”나는 엄마가 이우범 얘기를 꺼내자 머리가 지끈거렸고 기분이 잡치기 시작했다.엄마는 내 표정이 이상해지자 나와 이우범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난 그냥 네가 인호랑 엮이는 게 싫어서 그래. 인호는 너한테만 상처 준 게 아니야. 나랑 너희 아빠도 상처받았어. 알잖아.”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혼자 위층으로 올라갔다.나만 덩그러니 식탁에 남게 되었다. 그러니 식욕도 사라졌다.——그날이 지나고 배인호도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내게 할말이 있으면 카톡으로 먼저 내게 연락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나는 민설아를 예의주시했다. 노민준은 이미 그녀가 배후라고 털어놓았고 모든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 이젠 그를 외국에서 인도해 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빨리 외국으로 도망가는 데 성공했는데 지금 같은 속도로 그녀를 인도해 오려니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하지만 결과는 이미 확실해졌다. 무조건 국내로 돌아와 받아야 할 벌을 다 받게 될 것이다.약 한주쯤 지나 아빠가 외국에서 돌아왔다. 원래는 더 빨리 돌아오려고 했지만 이우범이 수술 후 문제가 조금 생겨 며칠 더 지체했다고 했다.아빠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이우범의 상황을 자세히 내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들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지영아...”아빠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할말이 많아 보였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아빠, 하실 말씀 있으면 그냥 해요. 근데 우범 씨와 다시 시작해 보라는 거면 힘 뺄 필요 없어요.”내 말은 얼마 남지 않은 아빠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과 같았다.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랑 너희 엄마 앞으로 이런 얘기 안 할 거야. 우범이도 나한테 얘기했어. 수술 끝나면 빈곤 국가로 가서 의료 지원하면서 지내겠다고. 아마 몇 년은 안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았어. 메스를 다시 잡을 순 없지만 그래도 경험으로 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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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2화 죽을 거면 같이 죽자

전에 한번 화재를 겪은 적이 있어서 경험이 어느 정도 생겼다.나는 문을 열어 집안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검은 연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2층은 아직 불이 번지기 전이었지만 1층의 불길이 천천히 위로 번지고 있었다. 연기가 제일 치명적이었다.도우미들은 이미 다 탈출한 뒤였다. 1층에서 지내고 있기에 도망가기도 쉬웠다. 올라와서 내게 소식을 알려준 것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했다.아까 베란다로 이미 탈출한 도우미를 보고 사실 한시름 놓았다.나는 정아와 애들에게 전화하고는 119가 오기를 기다렸다.그러고는 문틈과 창문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아이를 돌봤다. 이때 치지직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전선을 타고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불꽃이 튀어 오르는 걸 보니 마음이 조여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로아와 승현이도 위험한 기운을 느꼈는지 잠에서 깼다. 내가 옆에서 지키고 있는 걸 보고는 울지 않고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갑자기 별장 다락방에 출구가 있는 게 생각났다.나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방문을 열었다. 아직 연기로 가득 차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한 손에 아이를 하나씩 안았다. 모성애가 내 잠재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내가 이렇게 힘이 이렇게 센지 몰랐다. 나는 2층에서 다락방까지 단숨에 달려 올라갔다. 4층 정도 되는 높이라 불길이 번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나는 다락방 출구를 찾아 발코니와 비슷한 곳으로 나갔다. 거기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직 타지 않은 곳이 보였다. 만약 누가 거기에 에어백을 준비해 주거나 시트를 펴서 아이를 받아주기만 해도 탈출할 가망이 있다.119가 오기 전까지 에어백은 없을 것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잠옷만 입었지만 춥지는 않았다.나는 다시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 때 제일 큰 시트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오는 길이었다. 내 상황을 듣고는 마음이 급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그래. 알겠어. 기다려. 나 거의 도착하니까.”“그래.”나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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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살리려 하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정아도 큰 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빨리 뛰어.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불길이 너무 세서 너 화상 입을 수도 있어!”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조금 화상을 입은 상태라 등이 째질 듯이 아파왔다.“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뛰어! 무서울 게 뭐야!”정아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로아와 승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뛰어내렸다가 죽을까 봐, 더우기는 죽지 않고 반병신이 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면 죽기보다 못한 상황이 된다.나도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몰랐다. 재촉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전해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난간에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배인호와 애들이 힘껏 당긴 임시 구명 시트에 몸을 던졌다.사실 이 높이도 있고 나 자체의 몸무게도 있으니 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여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는 몸을 던지자마자 눈을 감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펑!내가 뛰어내리자마자 3층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무엇이 폭발했는지는 모르지만 베란다가 순식간에 불길에 사로잡혔다.불행인 건 내게 판단 오류가 생겼다. 이 거리에서 아이를 버리는 건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었지만 자기가 뛰어내릴 땐 판단이 흐려졌다. 그 바람에 나는 이불에 떨어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바닥으로 향했다.이제 끝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배인호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손을 벌리더니 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나는 사정없이 그의 몸 위로 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배인호의 몸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인호야! 지영 씨!”노성민이 이를 보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피러 왔다. 나는 괜찮았다. 온몸이 불편했지만 큰일은 없었다. 하지만 배인호가 뭔가 이상했다. 얼굴이 너무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매우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나는 자기 상황을 챙길 새 없이 바로 배인호를 체크했다.그는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소방차가 도착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동시에 구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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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나와 선을 긋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건네주었고 나는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아주머니, 인호 씨 지금 어때요? 어느 병원에 있어요?”김미애는 울먹이며 말했다.“지영아, 먼저 몸조리부터 해. 인호는... 우리가 돌보면 되니까. 아마 외국 나가서 치료해야 할 수도 있어.”외국 병원까지 가야 되는 거면 엄마가 말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거다. 나는 마음이 조여왔다.“지금 어디에요? 아직 깨어나기 전인가요?”내가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지영아, 걱정하지 마. 일단 상처부터 잘 치료해. 우리 몫까지 로아와 승현이 잘 챙기고.”김미애는 이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나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더는 받지 않았다.엄마는 내가 계속 배인호 쪽에 연락하려 하자 핸드폰을 뺏어가며 마음 아프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지영아, 일단 급해하지 말고 인호 상황 좀 기다려보자, 응?”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다.하지만 내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직감이 자꾸만 내게 배인호가 이번엔 큰일났다고 말해주고 있었다.나는 마음이 자꾸만 복잡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고 했다. 등에서 난 상처가 너무 아팠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반응에 엄마, 아빠는 너무 놀라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왔다.진정제를 한방 놓아서야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꿈을 꿨다. 장례식을 참가하러 갔다. 주변 사람들의 착장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흐릿한 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조급해지려는데 눈앞의 광경이 휙 변하더니 나는 묘지에 서 있었다. 앞에 세워진 묘비에 사진 한 장이 박혀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진 속의 사람은 나였다.나는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두 걸음 정도 물러서자 묘비에 박혀있던 사진이 나에서 배인호로 변했다.“아!”나는 그 무서운 악몽에 놀라 잠에서 깼다.진정제의 약 효과가 이미 지난 듯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나는 천정을 올려다보다가 피곤한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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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이우범이 돌아왔다

“아주머니,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저도 인호 씨가 저를 구했다 해서 재결합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걱정돼서 그래요. 저를 살려줬잖아요.”약간 난감했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대답했다.“생명에는 지장 없어. 걱정하지 마. 지영아, 전에는 우리가 너무 너랑 인호가 재결합하기를 바라서 억지 부렸는데 마음에 담아두지 마.”김미애는 이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그날부터 배인호는 증발이라도 한 듯 찾을 수 없었다. 배건호와 김미애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를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노성민도 나를 속였다. 내가 어떻게 묻든 배인호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지영아, 배인호가 마음먹은 거면 우리도 찾지 말자. 전에 인호 씨랑 정리하고 싶다 그랬잖아.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정아가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위로는 들을수록 어딘가 이상했다. 하여 그녀도 아예 입을 꾹 닫고는 그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 민설아를 국내로 인도하는 데 성공했고 노민준의 증언과 내가 제공한 CCTV가 확실한 증거가 되어 민설아는 더는 발버둥 칠 수 없었다. 우리 집 별장에 불이 난 원인도 경찰이 밝혀냈다. 우지훈이 몰래 지른 것이었다. 지금은 이미 체포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 모든 걸 배건호 탓으로 돌렸다. 세희와 이모건은 아이를 낳았다. 예쁜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무슨 원인인지 둘은 결혼 등기를 하지 않았다. 아직 모든 장애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 같았다.이우범은 수술했지만 후유증이 남아 더는 난도가 높은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다른 나라를 돌며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이는 노성민이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이우범과 연락한 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이우범은 나와 배인호의 상황을 알고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노성민을 통해 내 소식을 조금 알려 했을 뿐이었다.모든 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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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6화 잘못 알아보다

나는 전생에 일어난 일을 중점만 뽑아서 말해줬다. 이우범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내 말이 끝나도 이우범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나는 이 일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우범이 내 말을 믿어줄 거라 믿었다.“나는 무신론자예요.”한참이 지나서야 이우범이 입을 열었다. 나를 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 무슨 뜻인지 나는 읽어낼 수 없었다.“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요?”의외였다. 배인호는 늘 나를 믿어줬기 때문이다.이우범은 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진짜 환생했다면 왜 지금 배인호를 찾으려는 거예요? 이게 지영 씨가 원하는 결과 아닌가요?”나도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배인호에게 일이 터지기 전까지 나는 이 결과를 원했던 건 맞다. 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자 나는 마음이 변했다.나는 더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내 마음의 변화를 인정했다.“우범 씨, 전에는 인호 씨를 미워하고 불만스러워하다가 지금은 미안해하면서 그리워하는 것도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 거예요. 환생은 내 인생을 바꿨지만 내 마음속 깊이 잠재된 감정은 바꿀 수는 없더라고요. 나약하다고 욕해도 좋아요. 근데 난 더 이상 나를 세뇌하고 싶지 않아요.”이우범은 눈을 감더니 살며시 시트에 몸을 기댔다. 옆모습은 여전히 잘생겼지만 내뿜는 아우라는 서글펐다.한참 후 그는 다시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인호는 이미 내려놨는데 지영 씨는 계속 끌고 갈 생각인가요?”이우범도 배인호가 내려놓은 걸 안다는 건 노성민이 알려줬다는 거다.하지만 지금 내가 부딪힌 제일 큰 문제는 아예 배인호의 종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씨 그룹에도 가봤지만 배씨 그룹은 배건호가 관리하고 있고 배인호 본인은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다.나는 배인호가 나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나는 뜬금없이 이우범에게 물었다.“혹시 인호 씨 연락온 적 있어요?”그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씁쓸하게 웃었다.“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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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7화 나를 제주도로 초대하다

“엄마, 나도 알고 있어요.”나는 엄마와 싸우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배인호의 소식을 얻을 수 있길 바랐다. 사진이라도 좋으니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다. 엄마, 아빠와 싸우지 않는 건 그들이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나는 오늘 일이 그냥 하나의 해프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며칠 동안 로아와 승현이는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며 내게 아빠가 돌아왔다고 말했다.그때마다 나는 흥분하며 밖으로 달려 나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대문에 달린 CCTV에도 배인호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결국 난 2층 게임방에 달린 창문에도 CCTV를 달기로 했다. 로아와 승현이가 다시 “아빠”라는 사람을 봤다고 하면 카메라에 찍힐 것이다.왠지 모르게 CCTV를 단 그날부터 로아와 승현이는 더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CCTV에도 내가 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매번 실망만 남으니 나는 슬슬 포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배인호의 종적을 아예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점점 불안해졌다.전에는 노성민이 배인호의 상황을 알려주곤 했지만 종래로 자세히 말해 준 적은 없었다. 나는 배인호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거라고 걱정했다.핸드폰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 사색이 끊겼다. 조금 멍한 느낌이 들었다. 낯선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나는 지금 낯선 전화번호만 보면 심장이 빨리 뛰었다. 배인호가 번호를 바꿔서 내게 연락한 것이길 바랐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이우범의 목소리였다. 국내로 들어온 처음 내게 전화했다.“이우범 씨?”약간 의외였다. 그리고 무슨 일로 전화했는지도 궁금했다.이우범은 한참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시간 되면 밥이나 같이 먹을래요?”“네, 언제 볼까요?”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후로 그냥 떳떳하게 친구로 남기로 했으면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이우범은 내게 주소를 하나 보내줬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바로 오늘 밤이었다.밤이 되어 나는 시간을 맞춰 약속 장소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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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8화 같이 돌아가다

“내일 출발해요. 로아와 승현이도 같이 가요.”이우범이 덧붙였다.“아이는 집에 두고 가죠. 차 타는 것도 힘든데.”나는 아이들이 차를 오래 타면 힘들까 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하지만 그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아니에요. 나도 못 본 지 꽤 오래돼서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태어났는데 데리고 가서 며칠 놀다 와도 좋죠.”이우범의 굳건한 표정을 보며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대답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로아와 승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이우범은 명의상 아이들의 아빠였고 아이들에게도 굉장히 잘해줬다.내가 수락하자 이우범도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그래요, 이제 가요.”우리 사이에 다른 화제는 없었다. 밥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그가 우리 집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주소를 보내주고는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엄마, 아빠는 이 일정에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늘 이우범에게 미안해했다. 지금도 그랬다.“그쪽 집은 이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영아, 건너간 김에 그냥 처분해.”아빠가 이 일을 떠올리고 내게 말했다.“그래요.”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그곳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펼치려고 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결국 이곳만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오늘 밤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제주도 일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그쪽으로 가보고 싶은 것보다는 그냥 이우범에 대한 죄책감과 협조였다.이튿날 아침 일찍 이우범은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짐이 적었고 캐리어 하나였다. 오히려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느라 짐이 많았다.로아와 승현이는 이우범을 다시 만나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훑어봤다. 이우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로아야, 안아보자.”로아는 잘생긴 아저씨를 보며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아무 망설임 없이 이우범의 품에 꼭 안겼다. 순간 이우범은 온몸으로 부드러운 기운을 뿜어냈다. 얼굴에 미소도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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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

밥을 먹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도우미에게 아이를 재워달라 하고는 먼저 씻으러 갔다.새벽녘에 나는 밖에서 울리는 경적을 들었다. 소리가 우리와 매우 가까웠다.나는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리고는 잠을 청했다.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았기에 침묵 속에서 화면이 켜졌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이튿날 잠에서 깨서야 이우범이 온 문자를 확인했다.「자요?」나는 일찍 잠에 들었는데 이우범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난 자고 있었어요.」이우범은 답장이 꽤 빨랐다.「네, 그냥 같이 바닷바람 쐬러 가고 싶어서 연락했어요.」너무 뜬금없었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 바닷바람이라니 이상했다.수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을 찾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물로 올리고 팔 준비했다. 이 집이 팔리면 나는 서울로 올라가 있을 예정이다.엄마, 아빠는 그때 이 집을 매입할 때 거액을 썼고 인테리어에도 많이 투자했다. 매매가가 꽤 높은지라 당장은 문의하는 사람이 없었다.중개인은 내게 값을 조금 내릴 것을 건의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급전이 필요해서 매물로 올린 것도 아니기에 급할 건 없었다. 그냥 휴가를 왔다고 생각하려 했다. 감동인 건 내가 제주도로 건너온 걸 알고 정아가 아이 셋을 집에 버려둔 채 바로 이쪽으로 날아왔다. 물론 옆에는 노성민도 있었다.이 두 사람이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나자 나는 환각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정아는 손에 든 가방을 흔들며 말했다.“왜?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반갑지! 근데 아이들은 어떡하고?”나는 얼른 그들을 안으로 맞이했고 걱정스레 물었다.“성민이 부모님이 봐주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근데 너는 왜 갑자기 여기로 내려온 거야? 그것도 조금 머물다 올라간다면서?”정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노성민은 정아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마치 도둑질하러 들어온 도둑처럼 말이다.나는 눈은 노성민의 반응을 살피며 입은 정아의 물음에 대답했다.“이 집 처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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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0화 나를 만나려 하지 않다

밥을 먹고 나는 정아와 노성민에게 차를 만들어주었다. 잡담을 나누긴 했지만 내 정신은 다른데 팔려 있었다. 계속 현관문을 확인했다. 대문도 미리 열어둔 상태였다. 중개인이 매입자를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렸다.오후 3시쯤 되어 차가 시동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정원으로 향했다.집 앞에는 빨간색 차가 세워져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먼저 내려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하더니 뒷좌석을 열었고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남자가 익숙한 모습이길 바랐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낯설었고 배인호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닮은 곳이라면 성별뿐이었다.정아와 노성민도 따라 나왔고 차에서 내린 남자를 보더니 다들 실망한 표정이었다.“허지영 씨, 이분이 바로 이 집을 매입하겠다고 한 진도하 씨입니다.”중개인이 내게 소개해 줬다.나는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진도하 씨, 안녕하세요.”“허지영 씨, 안녕하세요. 오늘 특별히 집을 구경하러 왔습니다.”진도하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손에 땀이 많이 나서 그런지 손이 축축했다.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중개인에게 바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면 된다고 눈치를 주었다.나는 진도하의 걸음걸이와 옷 디테일, 그리고 때때로 땀을 닦는 동작까지 세세히 관찰했다. 중간중간 중개인에게 여러 문제를 물어보면 내가 중개인을 대신해 바로 대답했다.2층에 도착해 진도하는 놀고 있는 로아와 승현이를 보고 걸음을 멈추더니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허지영 씨, 자제분들인가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맞아요. 왜 그러세요?”“너무 귀여워서 그러는데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제가 원래 아이를 좋아하거든요, 특히 이렇게 귀여운 아이는 더더욱 좋아해요.”진도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정말 어딘가 수상했다.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핸드폰으로 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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