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출발해요. 로아와 승현이도 같이 가요.”이우범이 덧붙였다.“아이는 집에 두고 가죠. 차 타는 것도 힘든데.”나는 아이들이 차를 오래 타면 힘들까 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하지만 그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아니에요. 나도 못 본 지 꽤 오래돼서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주도에서 태어났는데 데리고 가서 며칠 놀다 와도 좋죠.”이우범의 굳건한 표정을 보며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대답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로아와 승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이우범은 명의상 아이들의 아빠였고 아이들에게도 굉장히 잘해줬다.내가 수락하자 이우범도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그래요, 이제 가요.”우리 사이에 다른 화제는 없었다. 밥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그가 우리 집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주소를 보내주고는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엄마, 아빠는 이 일정에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늘 이우범에게 미안해했다. 지금도 그랬다.“그쪽 집은 이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영아, 건너간 김에 그냥 처분해.”아빠가 이 일을 떠올리고 내게 말했다.“그래요.”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그곳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펼치려고 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결국 이곳만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오늘 밤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제주도 일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그쪽으로 가보고 싶은 것보다는 그냥 이우범에 대한 죄책감과 협조였다.이튿날 아침 일찍 이우범은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짐이 적었고 캐리어 하나였다. 오히려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느라 짐이 많았다.로아와 승현이는 이우범을 다시 만나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훑어봤다. 이우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로아야, 안아보자.”로아는 잘생긴 아저씨를 보며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아무 망설임 없이 이우범의 품에 꼭 안겼다. 순간 이우범은 온몸으로 부드러운 기운을 뿜어냈다. 얼굴에 미소도 점
밥을 먹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도우미에게 아이를 재워달라 하고는 먼저 씻으러 갔다.새벽녘에 나는 밖에서 울리는 경적을 들었다. 소리가 우리와 매우 가까웠다.나는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리고는 잠을 청했다.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았기에 침묵 속에서 화면이 켜졌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이튿날 잠에서 깨서야 이우범이 온 문자를 확인했다.「자요?」나는 일찍 잠에 들었는데 이우범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난 자고 있었어요.」이우범은 답장이 꽤 빨랐다.「네, 그냥 같이 바닷바람 쐬러 가고 싶어서 연락했어요.」너무 뜬금없었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 바닷바람이라니 이상했다.수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을 찾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물로 올리고 팔 준비했다. 이 집이 팔리면 나는 서울로 올라가 있을 예정이다.엄마, 아빠는 그때 이 집을 매입할 때 거액을 썼고 인테리어에도 많이 투자했다. 매매가가 꽤 높은지라 당장은 문의하는 사람이 없었다.중개인은 내게 값을 조금 내릴 것을 건의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급전이 필요해서 매물로 올린 것도 아니기에 급할 건 없었다. 그냥 휴가를 왔다고 생각하려 했다. 감동인 건 내가 제주도로 건너온 걸 알고 정아가 아이 셋을 집에 버려둔 채 바로 이쪽으로 날아왔다. 물론 옆에는 노성민도 있었다.이 두 사람이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나자 나는 환각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정아는 손에 든 가방을 흔들며 말했다.“왜?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반갑지! 근데 아이들은 어떡하고?”나는 얼른 그들을 안으로 맞이했고 걱정스레 물었다.“성민이 부모님이 봐주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근데 너는 왜 갑자기 여기로 내려온 거야? 그것도 조금 머물다 올라간다면서?”정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노성민은 정아의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마치 도둑질하러 들어온 도둑처럼 말이다.나는 눈은 노성민의 반응을 살피며 입은 정아의 물음에 대답했다.“이 집 처분하
밥을 먹고 나는 정아와 노성민에게 차를 만들어주었다. 잡담을 나누긴 했지만 내 정신은 다른데 팔려 있었다. 계속 현관문을 확인했다. 대문도 미리 열어둔 상태였다. 중개인이 매입자를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렸다.오후 3시쯤 되어 차가 시동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정원으로 향했다.집 앞에는 빨간색 차가 세워져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먼저 내려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하더니 뒷좌석을 열었고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남자가 익숙한 모습이길 바랐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낯설었고 배인호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닮은 곳이라면 성별뿐이었다.정아와 노성민도 따라 나왔고 차에서 내린 남자를 보더니 다들 실망한 표정이었다.“허지영 씨, 이분이 바로 이 집을 매입하겠다고 한 진도하 씨입니다.”중개인이 내게 소개해 줬다.나는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진도하 씨, 안녕하세요.”“허지영 씨, 안녕하세요. 오늘 특별히 집을 구경하러 왔습니다.”진도하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손에 땀이 많이 나서 그런지 손이 축축했다.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중개인에게 바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면 된다고 눈치를 주었다.나는 진도하의 걸음걸이와 옷 디테일, 그리고 때때로 땀을 닦는 동작까지 세세히 관찰했다. 중간중간 중개인에게 여러 문제를 물어보면 내가 중개인을 대신해 바로 대답했다.2층에 도착해 진도하는 놀고 있는 로아와 승현이를 보고 걸음을 멈추더니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허지영 씨, 자제분들인가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맞아요. 왜 그러세요?”“너무 귀여워서 그러는데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제가 원래 아이를 좋아하거든요, 특히 이렇게 귀여운 아이는 더더욱 좋아해요.”진도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정말 어딘가 수상했다.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핸드폰으로 놀고 있는
“괜찮아, 그러기도 쉽지 않을 거야. 여기 집 팔고 나 서울로 돌아가려고.”나는 이 말은 일부러 노성민도 들리게 이야기했다.노성민과 배인호는 여전히 연락하고 있을 것이고, 그걸 나한테 말해주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 뜻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게 맞을 것 같다.노성민은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역시나 핸드폰을 하기 시작했고, 손가락은 빠르게 핸드폰 모니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문자 발송 후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강아지도 데려가려고요?”“네, 여기에 계속 남겨두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전에 인호 씨가 나한테 준 선물인데, 2년 동안은 아이들 과민반응 때문에 곁에 둘 수 없었어요. 지금은 아이들도 조금은 커서 면역력도 올라갔으니 많이 괜찮을 거예요.”내가 답했다.그러자 노성민은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질문은 누가 봐도 배인호가 물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기에 나는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나는 가장 빠른 속도로 여기의 집을 처리 후 이우범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내가 서울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그는 때마침 정원에서 화초를 다듬고 있었다. 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그의 몸에 비쳐 그 화면은 엄청 정적이고 아름다워 보였다.“이우범 씨, 나 내일 정아네랑 같이 서울로 돌아가요. 우범 씨는 앞으로 여기 있기로 한 거예요?”내가 그에게 묻자 이우범은 손에 있는 도구를 내려놓으며 차분하게 나를 바라봤다.“네, 만약 저도 돌아간다면 지영 씨에게 알려줄게요.”이러는 것도 사실은 괜찮은 방법 같긴 하다. 여기에 남아있는 게 서울보다 더 자유롭고 편할 것이며, 서울 쪽에서는 이우범의 일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거니와 뒤에서 그를 논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나는 앞으로 걸어가 그 화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런 취미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예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우리 둘은 간단한 대화를 끝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사실 배인호가 후유증이 남아서 나를 보려 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속으로 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남자라, 내 앞에서 저런 나약한 모습을 절대 보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결과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 휠체어에 앉아있을 줄이야, 지금은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나는 내가 봤던 장면이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 마음속으로 참고 참았던 무거운 기분 탓에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흘러내렸다.이때 그 여성이 배인호의 휠체어를 밀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들리지는 않지만, 한쪽으로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내가 원래 여기 온 목적은 차에서 내려 그를 보려 했지만, 지금은 차마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차 옆을 지날 때, 나는 심지어 허리를 숙인 채 숨었고, 그들이 차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기를 바랬다.기사 아저씨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고, 그들이 멀리 떠난 후에야 나에게 말을 건넸다.“아가씨, 저 사람들 갔어요.”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내 얼굴에는 이미 눈물범벅이었다.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나는 마음속으로 엄청 속상했고, 차에 앉아 한동안 멍해 있었다.——나는 차에서 내린 뒤 기사 아저씨더러 먼저 가보라고 하고, 나는 그 부근에 남기로 했다. 배인호가 돌아올 때쯤 다시 한번 그를 보고 싶으니 말이다.이때 정원 문이 다시 열리더니 이번에는 누군가가 나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온 사람은 내가 예상치도 못한 인물, 바로 빈이였다.빈이는 손에 공을 하나 들고 기웃거리더니 다시 문을 닫고 외출을 하는 것이었다.나는 빈이의 근황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에 배인호와 김미애가 나에게 그 근황에 관해 말해준 적은 있다. 나는 배인호와 연락이 끊긴 후로부터 빈이에 대한 소식은 듣지를 못했다. 나는 빈이가 지금까지 해외 복지기관에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계속 배인호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나는 혼자 해외로
그 두 개 카메라를 제거하면 그 뒤에 배인호의 상황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여 나는 다급해 났다.만약 내가 지금 바로 가서 벨을 누른다면, 배인호는 나를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일까?나는 그 욕망이 점점 강렬해졌다. 하지만 배인호가 나를 피한다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도 금세 식었다.만약 진짜 그렇게 한다면 배인호의 자존심을 아예 무너뜨린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현재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인데, 만약 내가 굳이 그 앞에 나타난다면...나는 결국에는 그 생각은 접은 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내가 한창 멍을 때리고 있을 때, 나는 조용한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되었고, 누군가가 내 뒤에 와서 서 있는 느낌이었다.“왔어요?”나는 깜짝 놀라 바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우범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손에 음식 재료를 들고 있었으며, 아마 저녁 준비를 할 재료들인 듯 보였다.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후 이런 상황에서 이우범과 마주칠 거라고는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이우범 씨, 인호 씨가 옆집에 사는 거 알고 있어요?”“네, 알아요.”이우범은 명쾌하게 인정하더니 멀지 않은 곳의 집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집으로 가서 밥 먹어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죠.”“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우범이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알고 있는지 엄청 궁금했다.나는 이우범의 발걸음을 따라 우리 집 문 앞을 지날 때쯤, 갑자기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 시각 배인호는 바로 정원에 있었고, 나 또한 그와 아주 가깝게 있었다. 내가 지금 초인종만 울린다면...물론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이우범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이우범네 집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정원의 화초 또한 여전히 잘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왠지 귀에 익은 “야옹”이라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데리고 왔는지 비비가 옆에서 놀고 있었다. 비비는 나를 보면서 모르는 척하더니, 내가 몸을 숙여 몇
배인호의 간병인 집사 임원희는 겁도 없이 배인호가 오늘 이우범네 집에서 잔다고 하니 나를 배인호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했다.“허지영 씨,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쉬고 가요. 때마침 배인호 씨 검사보고서도 보여드릴 것 있고요.”그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배인호가 집에 없다고 한들 빈이는 집에 있지 않겠는가? 나는 빈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배인호에게 참지 못하고 알려줄까 봐 겁이 났다.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쳐 보면, 내가 온 목적이 바로 배인호를 보려고 온 거 아닌가? 이건 언젠가는 있어야 할 일인 거고, 지금은 합당한 타이밍을 찾고 있을 뿐이다.이윽고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네.”나는 그러고는 그녀 따라갔다. 여기는 내가 예전에 살았던 집이라 한눈에 뭐가 변한 게 있는지 없는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 그 집은 예전과 변한 게 하나도 없을뿐더러, 그녀는 나를 거실로 데려가며 알려주었다. 배인호가 일부러 원래대로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래야만 예전에 나와 아이들이 여기에서 생활한 걸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서 말이다.“허지영 씨, 일단 앉아요. 물 한 잔 가져다드릴게요.”임원희는 그러면서 주방으로 향해서 갔고, 나는 갑자기 뭐가 떠올라 얼른 이우범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 현재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곧 이우범에게서 답장이 왔다.「네, 인호 지금 여기 있어요. 만약 인호가 집에 돌아가려 한다면 바로 알려줄게요.」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임원희도 물 한 컵을 가져다주더니, 위층으로 배인호의 검사 치료 자료를 가지러 다시 올라갔다. 나는 거실에서 앉아 마음이 다소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배인호가 집에 돌아와서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었으면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자존심은 일단 지켜주고, 적절한 시기에 만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공존했다.이때, 임원희가 위층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빈이는 위층에서 달려내려 오며 말했다.“아저씨, 나 숙제 다 했어요.
나는 그 사진첩을 보며 정신이 멍해졌다. 머릿속에는 예전에 내가 배인호를 쫓아다녔던 장면뿐이었고, 심지어 전생에 죽어서까지도 배인호를 놓아주지 못했었다.근데 지금까지도 이걸 남겨두고 있을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매 한 장의 사진도 엄청 깨끗했고, 아마 정성껏 보관한 듯하다.“배인호 씨가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그 사진첩을 보면서 멍때리곤 했어요. 제가 봤을 땐 속으로 허지영 씨를 엄청 그리워하는 것 같은데, 지금 이런 상황이니 허지영 씨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것 같아요.”임원희가 문 앞에 서서 나에게 말했다.“인간이란 물체는 진짜 이상한 것 같아요. 전에 내가 인호 씨를 사랑할 때는 보는 체도 안 해서 그 뒤에 내가 놓아줬는데, 그 뒤에는 인호 씨가 다시 날 따라졌어요. 그러다 지금은 또 내가 다시 인호 씨를 따라다니게 된 상황이고요. 너무 웃기죠?”나는 사진첩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러자 임원희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인간이란 원래 복잡한 거예요. 특히 감정적인 문제에서요. 그러니 너무 많은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으니까요.”그녀의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환생까지 하고 나니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알 것 같았다. 한 포인트에서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 각자 다른 시기에 자신의 그 심리상태와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기 선택을 비웃지 않는 것, 이게 삶의 의미가 아닐까?“이젠 씻고 허지영 씨도 휴식해요. 내일 배인호 씨가 오기 전 제가 말씀드릴게요.”그녀는 내 행동을 이해하는 듯 말했다.임원희가 나간 뒤 나는 샤워를 하고 머리까지 말린 뒤 익숙한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이튿날 아침 8시 좌우에 나는 잠에서 깨었고, 임원희가 나를 깨울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다.아래층에 내려가니 죽을 끓이는 향이 났고, 임원희는 나더러 아침을 먹으라더니 이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