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531 - 챕터 540

693 챕터

제531화 빈이를 데려가다

“네, 알겠어요.”냥이가 울먹이며 말했다.“병세가 악화한 거야? 아니면… 실패한 거야?”내가 물었다.“민설아가 아빠 치료해 주겠다고 했는데 적합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다가 돌아가셨는데 많이 힘드셨겠죠?”나는 전에 민설아가 이 일로 배인호에게 자기와 결혼할 것을 협박하던 일이 떠올랐지만 냥이에겐 알려주지 않았다.나는 원래 진덕호의 추도회에 가서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전에 협력하던 관계기도 했고 냥이와도 친구라 가도 되는 자리였다.하지만 냥이가 완곡하게 거절했다.“지영언니,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근데 저희 이미 대구로 돌아왔어요. 너무 멀어요. 아이도 둘이나 봐야 하는데 피곤하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기회 되면 봐요.”냥이는 내가 아직 제주에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간단하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냥이는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김미애는 넋을 잃은 나를 보고는 물었다.“왜? 친구 가족분 돌아가셨대?”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김미애는 적합하지 않은 문제를 더 물어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걱정거리를 안은 채 계속 묵묵히 화초들을 다뤘다.——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야 배인호와 배건호의 대화가 끝났다. 하지만 절대 유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배인호는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김미애와 화초를 다루고 있는 나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차 밖에 있어?”“네. 왜요?”내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서울로 가자. 차 좀 얻어 탈게.”배인호가 내게 말했다.너무 의외였다.’여기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빈이도 여기 있으면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김미애가 입을 열었다.“왜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는 거야? 빈이는? 돌봐줄 사람 구했어? 그러다 민설아가 데려가면 어떡하려고?”배인호는 그런 김미애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이미 서울로 보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빈이가 이미 먼저 서울로 올라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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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그들의 비밀

“내가 말했잖아요. 빈이의 병은 내가 전부 책임진다고요. 당신이 찾았다는 의료진, 나보다 훨씬 뒤처질 거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민설아는 여전히 너무 흥분해 있었다. 그녀는 배인호가 빈이의 치료와 수술에 개입하는 걸 반대했는데 그 정도가 이상하리만큼 강렬했다.아무리 빈이를 낫게 할 신심이 있다고 해도 배인호의 결정에 이렇게까지 반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치료 방법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다. 빈이 아빠로서 빈이를 해치진 않을 텐데 말이다.배인호의 실력이면 찾은 의료진도 무조건 탑급이라 시름을 놓아도 될 것이다.“만약 수술 전에 맞는 기증자를 찾지 못하거나 기타 문제가 생겨서 안 되면 네가 치료할 수 있게 빈이 넘길게.”민설아의 흥분한 태도와는 다르게 배인호는 너무 침착했다. 그 거리감이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안 돼요. 난 절대 허락 못해요. 이건 빈이를 가지고 모험하는 거라고요.”민설아가 으름장을 놓았다.“만약 꼭 그렇게 하겠다면 나도 내 방법으로 아이를 데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민설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녀가 무슨 방법을 쓸지 나와 배인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민설아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우범과 우지훈 두 사람만 도와줘도 생각해 낼 방법은 많을 것이다.배인호는 전화를 끊더니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빈이를 호송하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지시했다. 그 누구도 빈이를 데려가서는 안 되고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입원해 검사받게 하라고 했다.차가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배인호도 당연히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민설아가 무슨 방법으로 빈이를 데려갈지 모르니 말이다.——서울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저물었다. 배인호는 그 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서 그를 따라 빈이의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인호가 배정한 빈이를 돌보는 사람 외에 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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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생각이 정리되다

이우범은 내 질문을 듣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나는 그가 민설아 얘기를 꺼내기 매우 싫어하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지금 민설아와 손을 잡았기에 내가 민설아를 꺼낼 때마다 우리 사이의 응어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네, 원래 나도 돌아올 생각이었어요.”그는 하는 수없이 이렇게 대답했다.“민설아 씨를 도와서 빈이가 이 병원에 있다는 거 찾아준 거 아니에요?”나는 이우범과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기 싫었다.“우범 씨, 나 때문에 인호 씨랑 척진 거 맞아요? 아니면 오래전부터 이미 불만이 있었던 거예요?”“무슨 말이에요?”이우범은 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그는 아마 전에 자기가 했던 일을 잊은 듯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나도 명확하게 잘 설명하지 않았다. 나만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니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이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병원에 아직 볼일이 남은 것 같은데 나는 이만 가볼게요.”나는 몸을 돌려 내 차로 향했다. 이우범과 더 대화를 이어가기가 싫었다. 그러다 그가 파놓은 또 다른 함정에 빠져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손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배인호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죽는다”는 말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이우범은 섬세한 사람이었다. 내 반응이 전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내가 차에 타기도 전에 내가 연 차 문을 도로 닫았다.나는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이우범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인호가 또 뭐라고 구워삶은 거예요?”“구워삶은 적 없어요. 꼭 그렇게 따진다면 날 구워삶은 건 우범 씨겠죠.”내가 차갑게 대꾸했다.배인호가 내게 잘못한 건 맞았다.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황에서 매번 나를 무너트리고 상처받게 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배인호의 인성은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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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불쌍한 사람

“문제는 양육권을 가진 사람이 정아잖아요. 어떻게 담을 넘어서 아이를 볼 생각을 해요?”나는 손을 뻗어 노성민이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노성민은 그 자리에 멈추더니 썩은 표정으로 말했다.“나 막지 마요. 내가 내 아이를 보겠다는데 왜요? 정아가 안 보여주면 못 보는 건가? 오늘 집에 없는 거 알아요. 큰 애 둘은 오늘 백신을 맞아야 해서 정아도 지금 병원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특별히 우리 지현이 보러 온 거예요. 비켜요!”내 힘으로 노성민을 막기엔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그는 나를 밀치고는 아이를 보러 거실로 향했다. 지현이는 지금 베이비시터 품에 안겨 놀고 있었다. 노성민은 이를 보자 바로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가 베이비시터에게서 지현이를 받아서 안았다.노성민은 괜찮은 아버지였다. 오늘 큰 애 둘이 백신을 맞아야 하는 날인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현이를 안은 노성민의 눈빛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연신 뽀뽀를 해댔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지금 안 가면 정아와 마주칠 수도 있어요.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한참 지나서야 나는 참지 못하고 귀띔했다.“그렇게 빨리 못 돌아와요.”노성민은 지현이를 내려놓기 아쉬워서 나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원래대로라면 그렇지만, 내가 문자를 보냈거든요.”나는 동정의 눈빛으로 노성민을 바라봤다. 좋은 아빠인 건 인정하지만 중요한 건 정아의 태도였다. 정아가 더 이상 노성민과 엮이고 싶지 않아 한다면 나는 정아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다.순간 노성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신이라도 본 듯 말했다.“왜요? 왜 알려줬어요?”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미안해요. 좋은 친구로서 이런 일에 성민 씨 편을 들 수가 없어요.”“진짜 독한 사람이네요.”노성민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나를 손가락질하는 손마저 바들바들 떨렸다. 바보 같은 노성민은 아직도 정아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근데 무슨 용기로 돌싱에 애까지 딸린 여자와 썸을 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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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일종의 부드러움

정아는 내게 와인을 따라주고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정아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 생은 저번 생처럼 비참하진 않았지만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서 모든 게 변했고 나도 변한 환경에 따라 같이 변하고 있었다.그렇게 변한 지금 나는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너 요즘 세종시에서 무슨 일 있었어?”정아가 먼저 내게 물었다.“많은 일이 있었지.”나는 한숨을 쉬며 배씨 집안과 이우범의 일을 하나하나 자세히 정아에게 털어놓았다. 마음속에 묵혀둔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처음에는 정아도 담담하게 들으면서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게 질문을 해왔다.점점 뒤로 가면서 정아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와인까지 내뿜을 뻔했다.“뭐? 이우범이 민설아가 죽은 척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정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놀라움을 표시했다.“응, 생각도 못 했지?”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처음엔 나도 정아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정아처럼 오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정아는 입가에 묻은 와인 자국을 닦으며 말했다.“잘못 들은 거 아니야? 와, 진짜 이우범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아니다. 근데 왜 그랬대? 배인호와 무슨 원수라도 진 거야?”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라면 둘 사이에 절대 아무런 원한이 없었을 것이다. 모순이 있다고 해도 원인은 민설아밖에 없다.하지만 이우범은 전에 민설아를 받아준 적이 없다고 했다. 민설아도 이우범에게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자 홧김에 배인호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이것도 나를 속인 건가?’이우범도 그때 민설아에게 호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민설아가 자기를 쫓아다니게 놔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관대한 성격이 아니었다.‘설마... 민설아가 배인호와 사귀게 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점유욕과 실망감을 불러일으킨 건가?’이것 때문에 민설아가 죽은 척할 수 있게 도와줬다면 정말 너무했다.“난 이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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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더는 매달리지 않다

“민설아는요? 진짜 기회 안 줄 거예요?”내가 물었다.민설아 얘기를 꺼내자 드물게 보이던 배인호의 부드러움이 바로 사라졌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응.”나는 할 말이 없었다. 둘 사이를 놓고 내가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었다.“기분 안 좋아?”배인호가 갑자기 되물었다.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기분 좋아야 할 일이 없었다. 빈이로 인해 로아와 승현이까지 영향 줄까 봐 걱정되었다.민설아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더니 배인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허탈해 보였다.“빈이가 괜찮아지면 나와 같이 지낼 거야. 빈이가 있으면 나도 더 이상 너한테 매달리지 않겠지. 너한테 불공평하니까.”의외였다. 나한테 불공평하다니, 나한테 불공평한 게 뭔지 알고 하는 얘기인가 싶었다.“진짜예요?”나는 조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응, 너도 나 받아주지 않을 거잖아. 아니야?”배인호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민설아가 돌아오지 않았거나, 혹은 나와 민설아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면 내게도 기회가 있었겠지.”“하지만 나도 아이가 있잖아요.”나는 배인호에게 귀띔했다.“넌 내가 아이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도 난 받아들일 수 있어.”요즘 배인호가 하는 말은 그에 대한 나의 인지를 계속 업그레이드 했다.‘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나?’내가 여기서 빈이를 잘 돌봐줘야 하니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배인호는 믿을 수 없다는 내 표정을 보고 믿어달라고 더 해명하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을 확인하더니 몇 마디 당부했다.“나 이따 회사 들어가 봐야 해. 무슨 상황 있으면 바로 연락해.”“네. 도와준다고 했으니 나도 최선을 다할게요.”내가 이렇게 대답했다.나를 보는 배인호의 눈빛은 전과는 조금 달랐다. 전에는 본 적 없었던 신뢰가 느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병원을 나섰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바람을 좀 더 쐬고 나서야 병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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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안 나을 거예요

의사가 가고 빈이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배인호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빈이가 아까 보였던 반응이 자꾸만 떠올랐다.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빈아?”배인호가 빈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불렀다.“아빠, 아줌마 옷이 나 때문에 더러워졌어요.”빈이는 아직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빈이는 약간 걱정스러운 말투로 배인호에게 말했다.“아줌마가 저 때리지는 않겠죠?”전에 나를 대하는 빈이의 태도가 너무 엉망이었어도, 더 심한 짓을 했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옷 한 벌이 뭐라고 이렇게 긴장하고 두려워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갑자기 어제 들은 잠꼬대가 생각났다. 정아네 집에서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나는 그때 이미 많이 졸린 상태였다. 그래서 잠이 조금 깊게 들어 있었다. 빈이의 잠꼬대를 듣고 겨우 눈을 떠 빈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잠에 들었다.그때 빈이가 한 잠꼬대는 “엄마, 미안해”, “때리지 마요” 였다.민설아에 대한 의심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빈이의 마음에 이런 영향을 미칠 정도면 장기적인 학대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가 힘들었다.“아니야. 아줌마는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너를 돌보러 왔어.”배인호가 빈이를 다독였다.빈이는 눈물이 글썽해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만약 민설아가 진짜 빈이를 학대했다면 진짜 너무 불쌍했다.배인호가 달래주자 빈이도 천천히 잠에 들었다. 내가 먼저 배인호를 한쪽으로 데려가 말했다.“인호 씨, 빈이에 대해서 해야 할 말이 있어요.”“응, 말해 봐.”배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빈이의 이상한 행동을 그에게 알려줬다. 만약 민설아가 진짜 아이를 학대했고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빈이의 양육권을 가져오는데 더 큰 승산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이를 들은 배인호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고 눈빛에서는 분노가 느껴졌다.아이를 아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빈이가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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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친자가 아니다

“아빠.”배인호를 본 빈이가 이렇게 불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조금 느껴졌다. 배인호를 보는 빈이의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배인호는 그제야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은 이미 정상이었다.“아까 무슨 말 하고 있었어?”배인호가 침대맡에 앉으며 빈이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눈은 나를 보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빈이도 무서운가 봐요. 엄마 보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내가 대답했다.내 말에 빈이도 입을 열어 배인호에게 빌었다.“아빠, 엄마 한번 만나게 해주면 안 돼요? 며칠이나 못 봤어요. 어디 갔는지 알아요? 설마 나 버린 거 아니죠?”빈이는 이렇게 말하며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병에 걸린 다음부터 일고여덟 살 된 아이가 갑자기 성숙해진 것 같았고 전처럼 짓궂고 활발하지 않았다. 많은 시간 침대에서 자지 않으면 멍을 때리곤 했다.배인호는 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수술 끝나면 엄마 만날 수 있어.”“근데 나는 지금 보고 싶어요.”빈이가 다급하게 말했다.“빈이 착하지. 곧 만나게 될 거야.”배인호는 빈이 말을 들어주지 않고 그저 가볍게 대꾸했다.평소와 똑같이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빈이도 이걸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는 떼를 부리지 않고 입을 다문채 그냥 조용하게 잠을 청했다.빈이는 곧 잠이 들었다. 빈이는 지금 힘이 별로 없었다. 자지 않으면 치료를 받고 있었다.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라 배인호에게 물었다.“결과 나왔어요?”빈이의 친부인 배인호는 매칭 성공할 확률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빈이에게 기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 두 아이도 마지막 남은 위험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배인호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이상했다.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런 눈빛은 아닐 텐데 말이다.“나가서 얘기하자.”분명 빈이는 잠들었지만 그래도 배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빈이가 잠결에 어렴풋이 들을까 봐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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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제지하다

의사가 배인호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와 민설아를 힐끔 보고는 배인호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배인호에게 서류 하나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나는 어렴풋이 조금 들었다.“문제가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금방 나온 결과입니다.”순간 나는 이 의사가 뭐 하러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전에 말한 배인호와 빈이의 매칭 결과가 잘못되었고 빈이는 여전히 배인호의 친자라는 소식일 것이다.민설아도 무조건 조금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나는 그녀의 태연함에서 수상함을 느꼈다.처음에는 강력하게 거부하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 변한 게 너무 이상했다.빈이를 돌보는 동안 민설아는 한 번도 빈이를 보러 온 적이 없었다. 간절하게 배인호와 빈이를 뺏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빈이를 직접 치료하겠다고 하던 민설아가 말이다.배인호는 그 서류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살짝 변했다. 마치 한시름 놓은 것 같으면서도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민설아는 알면서 일부러 되물었다.“그건 뭐예요?”“별거 아니야.”배인호의 손이 자연스럽게 툭 아래로 떨어졌다.“내가 이번에 온 건 인호 씨가 빈이를 포기하는지 보려고 온 거예요. 만약 빈이를 포기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데려갈 거예요. 내가 병을 잘 치료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이에요.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앞으로 빈이는 배 씨가 아니라 민 씨에요.”민설아는 이렇게 말하더니 병실로 들어갔다. 배인호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상했다.오히려 내가 자기도 모르게 민설아를 따라 들어갔다. 빈이는 이미 잠에서 깨어났다. 민설아를 보고는 생각처럼 흥분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하고 두려운 표정이었다.“엄마, 미안해요.”“빈아, 사과는 왜 해? 엄마는 너 데리고 가려고 왔어. 앞으로 엄마와 여기를 떠나서 풍경 좋은 곳으로 가서 생활하자. 어때?”민설아가 손을 뻗어 빈이 몸에 꽂은 링거를 빼려고 했다.빈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나를 보더니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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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그녀의 협박을 무시하다

“만약 설아에게 빈이를 치료할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데려가게 해야지.”배인호는 여전히 앞서 한 결정을 견지했고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이 반응이 아니어야 하는데 의외였다.배인호의 이러한 태도는 민설아가 빈이를 데려가는데 제일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민설아의 표정은 나보다 별반 나을 바 없었다.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허지영 씨,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나를 대하는 민설아의 태도가 날카로웠다. 다시 빈이를 데려가려는데 빈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작았지만 굳건했다.“엄마, 나 아빠와 같이 치료할래요.”민설아는 마치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빈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몸을 숙여 빈이가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뭐라고? 여기 남아서 치료하겠다고?”빈이는 민설아가 쭈그리고 앉아 자기와 눈을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민설아의 눈빛에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 내서 속마음을 드러냈다.“엄마, 나 여기 남아서 치료할래요. 다 나으면 내가 찾으러 갈게요. 그러면 안 돼요?”“빈아, 엄마가 치료해 주면 돼. 너 여기 있으면 오히려 위험해. 알아?”민설아가 인내심 있게 빈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빈이는 오늘 예전과 많이 달랐다. 빈이는 내 손을 잡더니 행동으로 민설아를 거절했다.나는 빈이를 뒤에 숨기고는 말했다.“빈이가 결정했으니 다 나으면 돌려보내는 거로 하죠.”“빈아!”민설아가 잔뜩 약이 올랐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장난감이 갑자기 엇나가니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이해는 갔다.빈이는 민설아를 보기가 두려워 내 두 손을 더 힘껏 부여잡았다. 이때 배인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빈이 두고 가. 내가 책임질게. 다 나아서도 너랑 같이 가겠다면 나도 막지 않을 거야.”배인호의 차가우면서도 가벼운 태도에 민설아는 놀라면서도 잘 믿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힐끔 보더니 나에 대한 질책과 거부감을 드러냈다.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민설아는 아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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