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511 - 챕터 520

693 챕터

제511화 죽고 싶어 돌아온 거야

“알겠어요.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요.”나는 대충 대답했다.딜런은 온종일 그와 민설아 사이의 비밀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민설아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먼저 알아서 찾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정아는 내게 물었다.“그 사람도 의사를 찾고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다가 민설아와 딜런 사이의 일을 정아에게 알려주었다. 전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직감은 나와 같았다. 딜런과 민설아 사이에는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었고 절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나는 대답했다.“맞아, 그래서 제대로 알아보려고. 민설아가 계속 나를 놓아주지 않고 괴롭힌다면 나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맞아!”정아도 내 생각에 동의하며 말했다.“민설아 정말 주도면밀한 것 같아. 전에 서란 보다 더 독한 여자야.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지.”밖은 또 어두워졌다. 서울에 돌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서울에 돌아오니 나는 뭔가 소속감이 들었다. 환경이든 분위기든 매우 편안했다. 나는 속으로 몰래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배인호와 이우범 두 사람과 결론을 내린 뒤 더 이상 엮이지 않으면 나는 역시 서울로 돌아와서 평생을 살고 싶었다.게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모두 서울에 있었다.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도우미가 가서 문을 열었지만 모르는 사람인지 다시 정아에게 돌아와서 말했다.도우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속도는 마치 한 마리의 개가 달리는 것만큼 빨랐다.하지만 그 정말 개가 아니라 노성민이었다.그는 면도도 하지 않아 거뭇거뭇한 수염에 빨갛게 된 눈이 사흘 밤낮을 잠도 못 잔 것 같았다. 온몸에서 원한을 품은 여자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노성민을 본 정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널려있던 장난감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누가 들어오래? 나가!”“박정아,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노성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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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왜 아이를 요구하지 않는 거야?

겁쟁이 노성민은 배인호가 온 것을 보고 바로 지원군을 본 것처럼 배인호에게 달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사람 때리지 말고. 내가 여자를 안 때린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지?”“무슨 일이에요? 밖에 문도 안 닫고?”배인호가 물었다.정아는 눈을 희번덕하게 뜨며 더 말하고 싶은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차갑게 노성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친구한테 물어봐요.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왜 쫓아 왔는지.”“너 무슨 짓 했어?”배인호는 고개를 돌려 노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노성민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깔끔하게 배인호에게 말해주었다.“이우범 씨가 나와 정아가 그날 밤 술집에 간 사진을 노성민 씨한테 보내줬대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그런 옷을 입은 채 아이들까지 팽개쳤다면서 특별히 이렇게 멀리까지 왔더라고요.”내가 이렇게 요약하자 노성민의 표정이 살짝 당황스러워졌다.배인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물었다.“사실이야?”“인호 형, 내 말도 틀린 거 아니잖아. 형이 두 사람이 어떻게 입었는지 못 봐서 그래. 나도 예전에 술집을 매일 갔었는데 거기 남자들이 다 어떤 놈들인지 모를 것 같아? 집에 아이들이 몇 명인데 아무리 베이비시터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마음대로 나가서 놀아도 되는 거야?”노성민은 비록 당황하긴 했지만 매우 그럴듯하게 말했다.“내도 봤어.”배인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노성민의 말을 끊었다.“어? 봤다고?”노성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떻게 입었는지 내가 봤다고. 그날 나도 거기 있었어.”배인호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쿠션을 주운 뒤 노성민의 품에 세게 던졌다.“너 요즘 계속 야근했다며. 며칠 밤을 새우며 일했다더니 이렇게 시간 내서 두 사람을 혼내러 올 시간은 있었어?”정아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역시 2, 3일 동안 야근을 했으니 노성민의 모습이 거의 쓰러질 것 같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나는 그렇게 매를 버는 말을 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노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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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솔직한 고백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배인호가 아이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배인호의 말은 나를 다시 안도하게 했다.“우범이 집에서 너희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겠네. 우씨 가문에서는 예전부터 너희 두 사람 반대했으니까.”“네, 난 상관없어요. 그런 이유라도.”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배인호는 더 말하지 않고 나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속속들이 그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정아가 로아를 안고 나오며 나를 불렀다.“지영아, 우리 공주님이 계속 우는데 어떻게 하지?”로아는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울고 있었다. 작은 입술을 삐쭉이며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모습이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우는 것 같았다.나는 얼른 달려가서 로아를 안았다. 하지만 요 녀석은 배인호가 온 것을 아는지 눈으로 배인호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 품에서 뒤척이며 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엄마 품이 제일 좋은 거 아닌가? 이제 6개월이 조금 넘은 녀석이 고작 앉는 것을 배울 나이에 벌써 억울한 척하는 법을 배웠다.배인호의 시선이 로아에게로 향하더니 바로 다가와서 손을 뻗어 내 품 안에서 로아를 데려갔다.정아는 눈을 크게 뜨며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장면이 또다시 발생했다. 로아는 배인호의 품에 안기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얌전해졌다.“이건... 어이가 없네.”정아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나는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혈육이 자연스럽게 끌리는지도 모른다...배인호는 로아를 안고 나가 정원을 걸어 다녔다. 나는 방으로 가서 승현이를 안고 나왔다. 이때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더니 마침 햇볕을 쬘 수 있었다.정원에 흰 의자에 배인호는 로아를 허벅지에 올려놓고 손으로 로아의 작은 팔을 바쳐주자 로아는 겨우 앉을 수 있었다.배인호의 부드러운 손길에 로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저 눈빛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보는 눈빛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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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당신 후회하게 될 거야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배인호의 어머니 김미애로부터 전화가 왔다.그녀는 매우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지영아, 민설아가 서울에 있었어. 우리 모두 민설아한테 속았어.”나는 마음이 철렁했다. ‘김미애가 어떻게 안 거지?’“아주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내가 물었다.“나 제주도로 돌아왔어. 안 그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어. 평소에 빈이가 얼마나 사람을 따르는데. 내가 잠깐 외출하기만 해도 나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고 하던 애가 이번에는 나한테 천천히 오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바로 제주도로 돌아왔더니 집에 빈이하고 빈이를 챙겨주는 도우미만 있어. 민설아는 보이지도 않아.”김미애는 점점 더 화를 냈다. 내가 말하지도 전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빈이하고 도우미가 민설아를 위해서 출근했다고 거짓말까지 했어. 내가 직접 민설아의 병원에 가보니 병원장이 긴 휴가를 냈다고 하더라니까! 몰래 서울로 가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닐 거야.”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었다. 민설아는 서울로 와서 이우범을 만났다. 배씨 집안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확실한 증거가 없었고 아마 이우범도 나에게 증거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김미애의 말을 듣고 있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는 다시 물었다.“아주머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거예요?”“어떻게 처리하긴? 바로 민설아한테 빈이만 남겨두고 배씨 집안에서 나가라고 할 거야. 아이를 자기 도구처럼 사용하는 여자야. 이러다간 아이를 완전히 망쳐버릴 거야.”김미애는 아주 확고하게 말했다.“만약 빈이가 민설아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하면요?”나는 또 물었다.김미애는 나의 물음에 한숨을 쉬었다.“어휴, 빈이가 민설아와 떨어지지 않아서 그동안 쫓아내지 못한 거야. 안 그러면 진작에 쫓아냈어.”이 문제는 나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김미애가 고민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민설아가 서울에 있다는 걸 김미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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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마침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이제 삼촌의 일이 거의 다 마무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삼촌의 회사를 이어받게 되었고 이제부터 그쪽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엄마의 뜻은 나도 로아와 승현이를 데리고 거기서 함께 지내자는 것이었다.“제주도에도 돌아가지 마. 우범이가 그쪽으로 돌아가면 너도 불편할 거야.”엄마의 목소리가 무거웠다.“이제 나와 네 아빠는 더 바라는 거 없어. 그저 네가 아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지내는 거야. 결혼이야...”엄마는 더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뜻을 이해했다. 배인호든 이우범이든 부모님은 더 이상 나와 엮이지 않길 바라셨다.“조금만 지나면 내가 거기로 갈게요.”나는 대답했다.지금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민설아와 딜런 사이의 비밀은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뭔가 내가 부모님 옆으로 가서 민설아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이다음에 꼭 다시 얽히게 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이다음에 다시 얽히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여기서 피하지 않고 해결해야만 이후에 내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뭘 더 기다리는 거야? 너도 서울에 계속 있었잖아. 배인호도 이우범도 거기 다 있는데 나와 네 아빠는 걱정돼.”엄마는 내 말을 반대했다. 지금 당장 내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길 바라셨다.“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어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가 도와줘야 할 문제가 있어요.”내가 말했다.“무슨 일인데?”엄마가 물었다.“로아하고 승현이를 먼저 엄마한테 보내려고요. 한동안 나 대신 보살펴 주세요. 이쪽 일 처리하고 나면 바로 돌아갈게요.”나는 로아와 승현이가 여기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배인호의 의심이 걱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민설아가 더 걱정이었다. 너무 독한 여자였다. 만약 로아와 승현이 때문에 자기와 빈이가 배씨 집안에서의 자리가 흔들린다고 생각한다면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부모님은 삼촌의 회사를 관리해야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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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아이를 데리고 떠나다

배인호는 우지훈과 이우범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그 두 사람을 상대하느라 이렇게 바쁜 거예요?”내가 물었다.“맞아. 그리고 회사에 다른 일들도 처리해야 해. 빈이를 민설아에게 맡길 수 없어서 널 찾아온 거야.”배인호의 민설아를 포기하려고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지킬 것이다.나라면 절대로 내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민설아는 무서운 사람이라 모든 신경을 배인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아이는 그저 도구 같은 존재였다.“문제는 내가 도와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배인호 씨.”나는 또 거절했다. 나는 지금 빈이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책임감 없는 엄마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마음 아프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빈이를 돌봐줄 수는 없었다. 그런 시간이 나에게 있다면 로아와 빈이를 옆에 두고 보살폈을 것이다.“네가 꼭 도와줘야 해.”배인호의 목소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네가 건 조건 들어줄게. 만약 이우범과 우지훈이 나를 더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따지지 않을 거야. 복수도 하지 않을 거고. 이 조건이면 만족해?”눈에 보이는 평온함은 거짓이었다. 배인호는 나를 속이는 것 같지 않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나는 지금 두 아이를 데려가야 했다. 배인호와 다른 사람이 아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어디로 가는데?”배인호가 나의 말속의 포인트를 짚으며 말했다.“얼마나 걸려?”내가 어디로 가든지 배인호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일까?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대답했다.“인호 씨하고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마 모레쯤 돌아올 거예요. 그때 가서 대답할게요. 하지만 인호 씨도 약속 지켜줘요. 우범 씨하고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나까지 힘들어질 것 같으니까. 평화로운 내 일상을 제발 방해하지 말아요.”만약 두 사람의 갈등이 나와 무관하다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든지 말든지 나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나와 관련되어 있기에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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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김미애가 자살하다

부모님의 변화에 나는 기뻤고 심리적인 부담감도 많이 사라졌다.깨어보니 이미 화창한 오후였다. 오늘 엄마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일찍 불렀는지 집에는 벌써 아주머니가 한 분 더 오셔서 전문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정아네 도우미는 오늘 나와 함께 서울시로 돌아가야 했다.“지영아, 무슨 일이 있던지 엄마하고 상의하는 거 잊지 말고.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 알겠지?”떠나기 전 엄마는 진지하게 내게 당부했다.“알겠어요. 엄마 나 대신 로아하고 승현이 잘 돌봐 주세요.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올게요.”나는 흔들의자에 안에서 놀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이것이 아이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엄마는 무거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당연하지, 걱정 하지 마.”나는 다가가서 로아를 안고 뽀뽀를 한 다음에 승현이에게 뽀뽀했다. 그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백미러로 보니 엄마는 승현이를 안고 문 앞에서 바를 지켜보고 계셨다. 엄마의 작은 몸을 보니 나는 그제야 엄마의 키가 많이 줄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었을 때는 꽤 키가 크셨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키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맞는 것 같았다. 엄마도 이젠 나이가 드셨다. 그런데도 회사 일과 나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다.나는 조금 슬픈 기분이 들어 코가 시큰거렸다.서울로 돌아오니 깊은 밤이었다.정아는 이미 자고 있었지만 내가 돌아온 소리에 깨어나서 하품했다.“지영아, 저녁은 먹었어?”“먹었어. 너 어서 자!”나는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그래, 너무 졸려서 먼저 잘게.”정아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굳이 방을 나와 내게 밥을 먹었는지 물었다. 정아가 나의 엄마도 아닌데 세심하게 나를 챙기는 모습에 나는 조금 감동했다. 사실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샤워를 마친 뒤 바로 잠에 들었다.로아와 승현이가 옆에 없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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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모두 나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인상 속에 배건호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인품은 서로 오랜 시간 지내면서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다. 배건호와 김미애는 항상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배건호에게 숨겨둔 자식이가 있다니. 그것도 배씨 집안에서 배인호와 함께 자랐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었다.“누가 너한테 알려준 거야?”내가 물었다.“있어 넌 모르는 친구야. 어떻게 해?”정아는 조금 난감해하며 말했다.“지영아, 배인호 어머니 전에 너한테 잘해주셨잖아. 너 그래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병원에 입원하셨대.”“어느 병원인지 알아?”나는 물었다. 김미애에게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당연히 내가 가 봐야 했다.정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병원을 물어보았다.2분 뒤 정아는 병원 주소를 내게 보내주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가려고 했지만 세종시가 조금 멀었기에 아이들을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베이비시터가 있긴 했지만 하루 종일 집을 비우기엔 걱정이 되었다. 결국 나 혼자 떠났다.나는 차를 몰고 세종시로 달려갔다. 마음이 무거웠다. 동시에 배인호가 떠올랐다. 지금 그의 상황은 전에 나의 상황과 너무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 배인호가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세종시로 가는 길에 전에 서란이 살던 집이 보였다. 절반 정도 지어져 있었지만 배씨 가문의 영향 때문인지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었다.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환생하기 전의 일을 생각해 보면 서란의 일부터 얘기해야 했다. 하지만 서란의 문제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처리하고 선택해야 할 더 복잡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경적이 들려왔다. 너무 거친 운전에 백미러를 보니 배인호의 차였다.그러나 그는 정아의 차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설마 그도 어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일까? 나는 먼지를 날리며 달려가는 배인호의 차를 보고 속도를 높여 따라갔다.저녁쯤 되었을 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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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그는 나만 믿었다

빈이는 계속 흐느끼며 울었다.“마미가 나한테 잘해줘요.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할머니...”아이의 순진한 말을 듣고 나와 김미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엄마였기에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빈이는 지금 무엇이 맞고 틀린 지 구분하지 못했다. 민설아가 빈이를 키웠기에 빈이는 민설아에게 가장 많이 의지했다. 빈이의 마음속에서 자기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었다.“빈이야, 이제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지금은 일단 말 들어.”김미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빈이를 다독였다.빈이는 또 배인호가 화를 낼까 봐 더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그저 한편에 앉아서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인호는 아마도 방금 자기가 너무 무섭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빈이에게 다가가서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장난감 사줄게. 뭐든지 사도 돼. 갈 거야?”유혹적인 조건에 빈이는 바로 기쁘게 일어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이지 않고 배인호의 손을 잡았다. 아빠와 아들은 그렇게 병실을 나가 장난감을 사러 갔다.마침내 나와 김미애가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있었다.“아주머니, 도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지영아, 너도 우지훈을 아니? 그 애 아버지가 전에 우리 집안 기사였어. 내가 인호 아버지와 결혼했을 때 우지훈의 부모는 이미 결혼한 뒤 우지훈을 임신한 상태였어.”김미애는 내게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자세히 말했다. 이것들을 얘기하고 나면 그녀의 마음도 한결 후련해질 것이다.나는 옆에서 듣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더 있다면 한 비취가 있었는데 그것은 배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었다. 보통 다음 세대 며느리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배건호의 세대에서 그 비취가 보이지 않았다.배건호도 화를 냈고 김미애도 별로 따지지 않았다.“그 비취가 내 손에 있었다면 너한테 넘겨줬을 거야.”김미애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나는 침묵했다. 나는 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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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아이만 요구하다

배인호는 오늘 유난히 말수가 적었다. 김미애와 나의 대화 내용은 그와 가장 큰 관련이 있는 데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분명히 그가 오늘 나한테 와서 빈이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었다.“아주머니, 전...”나는 고민했다. 배인호를 거절할 수는 있었지만 김미애의 부탁을 바로 독하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배인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강요하지 마세요.”배인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투는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이 일은 이미 제가 말했어요. 지영이가 거절도 했고요.”김미애도 그런 결과를 예상했겠지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래그래. 지영이한테 무리한 부탁이었어.”“제가 얼마나 돌보면 될까요?”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배인호의 눈빛에 놀라움이 번쩍였다. 그는 머뭇거리며 내게 물었다.“동의하는 거야?”김미애는 기뻐하며 말했다.“지영아, 우리도 서둘러 일을 처리할 거야. 민설아가 빈이의 부양권을 포기한 다면 바로 떠나게 할 거야. 그럼 모든 건 해결 될 테니.”이것이 배씨 가문의 목적이었다. 민설아가 빈이의 부양권을 포기하게 만들고 이곳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었다.빈이도 계속 민설아와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쁘게 변할 것이다.“로아와 승현이는 어디에 있어? 너 시간 돼?”배인호가 내게 물었다. 그가 두 아이를 돌보는 것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로아와 승현이는 내가 알아서 해요. 잠시 내 옆에 없을 거예요. 언제까지 제가 돌봐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빨리 일을 해결해 주세요.”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속으로는 마음이 약해진 자신을 탓했다. 나는 지난 생에 배인호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고 이렇게 갚기만 하는 것일까. 어서 빨리 그 빚을 다 갚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빈이는 우리의 대화를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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