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호는 오늘 유난히 말수가 적었다. 김미애와 나의 대화 내용은 그와 가장 큰 관련이 있는 데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분명히 그가 오늘 나한테 와서 빈이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었다.“아주머니, 전...”나는 고민했다. 배인호를 거절할 수는 있었지만 김미애의 부탁을 바로 독하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배인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강요하지 마세요.”배인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투는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이 일은 이미 제가 말했어요. 지영이가 거절도 했고요.”김미애도 그런 결과를 예상했겠지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래그래. 지영이한테 무리한 부탁이었어.”“제가 얼마나 돌보면 될까요?”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배인호의 눈빛에 놀라움이 번쩍였다. 그는 머뭇거리며 내게 물었다.“동의하는 거야?”김미애는 기뻐하며 말했다.“지영아, 우리도 서둘러 일을 처리할 거야. 민설아가 빈이의 부양권을 포기한 다면 바로 떠나게 할 거야. 그럼 모든 건 해결 될 테니.”이것이 배씨 가문의 목적이었다. 민설아가 빈이의 부양권을 포기하게 만들고 이곳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었다.빈이도 계속 민설아와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세심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쁘게 변할 것이다.“로아와 승현이는 어디에 있어? 너 시간 돼?”배인호가 내게 물었다. 그가 두 아이를 돌보는 것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로아와 승현이는 내가 알아서 해요. 잠시 내 옆에 없을 거예요. 언제까지 제가 돌봐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빨리 일을 해결해 주세요.”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속으로는 마음이 약해진 자신을 탓했다. 나는 지난 생에 배인호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래서 이번 생에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고 이렇게 갚기만 하는 것일까. 어서 빨리 그 빚을 다 갚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빈이는 우리의 대화를 듣
민설아는 로아와 승현이의 진짜 아빠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분명 내가 왜 배인호와 함께 그녀의 아이를 뺏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빈이를 보내면 나의 두 아이가 배씨 가문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아이를 뺏는 걸 도와준 적 없어요. 민설아 씨, 당신이 빈이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요?”내가 물었다.“지영 씨도 엄마잖아요. 그런데 엄마의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해요? 난 지금까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느라 애썼어요. 이 세상에서 빈이를 가장 사랑하는 건 나뿐이라고요. 빈이도 날 제일 사랑하고요. 난 배인호는 포기해도 내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요.”민설아는 단호한 말투로 망설임 없이 말했다.배인호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내가 말했지. 아이는 못 준다고. 원하는 돈이나 얘기해. 얼마면 돼?”그는 돈으로 민설아와 빈이의 모자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민설아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입술을 움찔거렸다. 그때 우지훈이 입을 열었다.“배인호 너 너무 냉혈한인 거 아니야? 한 엄마와 아들의 감정을 돈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넌 아이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우지훈은 마치 자기가 성모마리아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그 자신도 배씨 가문에 들어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을 것이다. 이로 인해 배씨 가문의 평화가 깨졌다. 그의 성모 마리아 같은 생각이라면 꾹 참고 배씨 가문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맞았다.“얼마야, 얘기해.”배인호는 우지훈의 말을 무시했다. 현재 그와 우지훈의 관계는 이미 최악이었다. 거의 원수에 가까웠다.“난 돈 필요 없어요. 빈이만 있으면 돼요.”민설아는 다시 한번 말했다.“배인호 씨, 난 당신을 떠나고도 어렵게 살지 않았어요. 나도 벌 만큼 벌어요. 만약 돈을 위해서라면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나도 당신 부모님이 날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내가 왜 돈 때문에 이런 수모를 당하겠어요? 난 단지 아이의 아버지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아이에게 완전한 가
빈이는 손을 올려 자기 코를 만지더니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왜 그래?”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을 때 민설아는 바로 빈이를 데리고 내렸다. 티슈를 꺼내 지혈하려고 했다. 그런 다음 책임을 나와 배인호에게 물었다.“두 사람 빈이한테 무슨 짓 했어요?”“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병원에 있는데 바로 빈이 검사부터 시켜요.”나는 누명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빈이는 다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코피를 흘렸다. 확실히 이상했다. 자세히 검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필요 없어요. 내가 의사예요.”민설아는 차갑게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만약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다른 사람도 해결하기 힘들어요. 인호 씨 어서 병실을 잡아줘요.”그녀는 돌아서서 배인호에게 명령했다.배인호는 이때 민설아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빈이의 건강이 걱정되어 잠시 개인감정은 접어두고 빈이를 챙겼다.“알겠어.”배인호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바로 병실을 잡았다.민설아가 필요로 한 의료 장비와 약품은 모두 병원에서 제공했다.오늘 나는 병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지금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저 병원에서 기다렸다. 이우범은 나의 옆에 와서 앉았다.나와 이우범은 얼굴을 보지 못한 며칠 사이에 왠지 모를 서먹함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밀어냈다. 그는 이미 몇 번이고 나를 함정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나를 다치지 않기 위해 그랬다는 핑계를 댔지만 거부감이 들었다.“먼저 돌아가 봐.”배인호는 병실에서 나오더니 내게 말했다.“주소는 너도 알지?”“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호텔 잡을 거예요.”나는 고개를 저었다. 배인호 부모님 집으로 갔다가 배건호라도 만나게 된다면 더 어색할 것 같았다.“바로 내가 지내던 곳으로 가. 주소와 비밀번호는 보내줄게.”배인호는 호텔에 가서 자겠다는 나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을 보니 부모님 집이 아니었다. 아마도 세종시에 있는 그의 부동산인 듯했다. 주소와 비밀번호를 모두
“지영아, 인호 어머니는 좀 어떠니? 어떻게 갑자기... 설마 그 일들이 다 사실이야?”엄마는 갑자기 내게 그 일에 대해 물었다.엄마도 아빠에게서 들었지만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것 같았다.나는 이쪽에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제야 엄마는 내가 세종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엄마가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별말씀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하셨다.“전에 얼마나 너한테 잘해주셨니. 우리 사이도 좋았었고. 다 배인호 그 나쁜 놈이 잘 못한 거지. 네가 김미애를 만나러 가는 거는 옳은 일이야. 안 그러면 너무 정 없어 보여요.”“엄마 나 안 혼내요?”나는 의심하며 물었다.“이게 뭐 혼낼 일이니? 배인호와 어쩔 수 없이 다시 부딪히겠지만 거리를 지켜. 다시 얽히는 건 안 돼. 엄마하고 아빠가 바라는 건 그거 딱 하나야.”엄마는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태도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대화를 나누다가 로아와 승현이가 잠에 들자 엄마는 통화를 끊었다.밤에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엄습했다. 새벽 4시쯤, 안 그래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핸드폰 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배인호의 전화였다.설마 이 새벽에 잠을 안 자는 것일까? 나는 겨우 잠에서 깬 다음 갈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너 어디야?”배인호는 바로 물었다.“호텔이에요.”내가 대답했다.“왜 내가 보낸 주소로 가지 않았어?”배인호는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너 이우범하고 같이 있어?”나는 당연히 이우범과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호텔에 묵었다.나는 아직 잠이 덜 깨 정신이 없어서 천천히 대답했다.“아니요.”“왜 5초 동안이나 고민하다가 대답하는 거야? 허지영!”배인호는 갑자기 거칠하게 화를 내며 말했다.“너 어디 있어? 찾아갈게.”내가 어떻게 배인호가 지금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바로 거절했다.“안 돼요. 지금이 몇 신데, 인호 씨는
“알겠어.”이우범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나는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지금 그와 민설아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 섣불리 말하지 않을 것이다.병원에 도착한 뒤 나와 이우범은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는 빈이를 만나러 갔고 나는 바로 김미애의 병실로 향했다.김미애는 빈이의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오늘 기분이 그래도 평온해 보였다. 내가 온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지영아, 왔니?”“아주머니, 점심은 드셨어요?”마침 점심시간이라 물었다.“먹었어. 너는? 점심도 안 먹고 온 건 아니지?”김미애는 따뜻하게 내게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침 뭔가를 먹고 싶었는데 누군가 음식을 가져왔다.배인호는 아주 넉넉하게 음식을 보냈다.김미애가 물었다.“인호는요? 왜 같이 안 왔어요?”“사모님, 대표님은 오후에 회의가 있으십니다.”비서는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다.“그래요, 알겠어요.”김미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식을 가져다준 비서가 떠난 뒤 김미애는 내게 말했다.“지영아, 어제 민설아가 병원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는데 그게 사실이니? 인호가 지금 민설아하고 같이 있는 거야?”김미애는 속으로 배인호가 민설아를 포기하고 아이만 지키겠다고 한 이유가 자기의 반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배인호가 다시 민설아와 엮일까 봐 걱정했다.”예전의 서란처럼 말이다.이 일은 절대로 김미래를 속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병원 의사나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네, 맞아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인호 씨 생각 바꾸지 않을 거예요.”“인호는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야. 아이 때문에라도 설마...”김미애의 얼굴에 의심이 깊어졌다. 빈이가 돌아온 뒤 그들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와 동시에 또 많은 골칫거리도 있었다.나는 김미애에게 빈이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마음의 병이기에 때로는
“만약 진짜 빈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오냐오냐하면서 이렇게 버릇없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배인호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민설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빈이의 병세는 아마 매우 엄중한 듯했다. 이우범이 차에서 받은 전화는 빈이 병세와 관련된 내용이었을 것이다.배인호의 반응으로 보나 민설아의 말로 보나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김미애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캐물었다.“빈이 그냥 위장에 조금 문제 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하는 말 들어보면 심각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나 속일 생각하지 마.”“큰 문제 아니에요. 제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어요.”민설아가 대답했다.“난 너 못 믿어. 인호야. 솔직하게 말해. 빈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김미애는 아예 민설아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배인호에게 물었다.배인호는 민설아 품에 안긴 빈이를 보며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배인호도 민설아와 같은 대답을 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설아한테 치료 맡기기 싫어서 그래요.”배인호가 한 말은 민설아보다 설득력 있었다. 김미애는 한시름 놓더니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작은 문제면 민 선생님한테 맡길 필요가 없지. 뛰어난 신의면 치료하기 어려운 그런 병을 더 많이 봐줘야지. 빈이는 우리한테 맡겨.”그 말인즉 빈이는 배씨 가문에서 돌볼 테니 민설아더러 빈이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민설아는 이 일에서만큼은 매우 확고했고 전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안 돼요. 빈이를 돌보는 건 괜찮은데 빈이 몸 상태는 반드시 제가 관리해야 해요. 완치되면 다시 양육권에 관해 토론해요. 안 그러면 저도 절대 포기 못 해요. 배씨 가문이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세다 하지만 내가 빈이 엄마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아요. 강제로 아이를 빼앗아 가면 아이가 당신들 미워할 거라고요.”김미애와 배인호가 걱정하는 것도 이 문제였다.빈이도 클 만큼 컸기에 기억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와 할
“이 일은 이미 결정했어.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배인호가 내 말을 끊어버렸다. 말투는 민설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내 마음도 같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병원 앞에 도착하자 배인호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호텔 가서 짐 정리하고 나한테로 와.”“필요 없어요. 내가 남겠다고 한 건 아주머니 곁에서 얘기도 나누고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랬던 거예요. 며칠 뒤면 나도 다시 서울로 올라갈 거 같아요.”나는 배인호의 제안을 거절했다.“여기서 얼마를 지내든 간에 내 쪽으로 와서 지내든지 아니면 우리 엄마 아빠한테로 가든지 해. 혼자 호텔에 있지 말고.”배인호는 이 일에서만큼은 고집을 부렸다. 내가 호텔에서 지내는 걸 아주 싫어하는 눈치였다.나는 배인호가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이때 이우범이 옆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나와 배인호를 보고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우범이 나와 배인호 앞으로 오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나에게 물었다.“호텔로 같이 갈까요?”금방 나에게 거절당한 배인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고 언짢은 표정으로 나와 이우범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어디서 지내든 배인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먼저 들어가요.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그래도 나는 이우범을 거절했다. 이 두 사람 중 그 누구와 있어도 이상했다.“무슨 일이 더 남았는데요?”하지만 이우범이 한마디 더 캐물었다.이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일이라면 당연히 이 두 사람을 피하는 것이었다. 순간 내 뇌세포들은 전쟁터라도 나간 듯 앞다투어 완벽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전에 몸이 좀 안 좋다고 했잖아요. 조금 있다 검사 좀 받고 가려고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먼저들 가요.”“어디가 불편한데?”“어디가 불편한데요?”배인호와 이우범은 똑같은 말을 똑같이 걱정하는 눈빛으
이우범이 나를 해치지 않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 많은 일이 은연중에 나에게 상처를 준 거나 다름없었다.아무리 마음이 강해도 이우범의 설계와 사기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특히 환생 후 이우범에 대한 내 믿음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비록 뒤에 점차 떨어졌지만 말이다.“그럼 말해봐요. 우범 씨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만약 인호가 빈이 수술을 고집한다면 설아가 로아와 승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막아 줄게요.”이우범의 말투가 다시 침착해졌다.“그걸 들어줄 리가 없잖아요. 만약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하면 무조건 로아와 승현이를 생각하게 될 텐데.”이 일만 꺼내면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이우범은 나를 다시 힐끔 쳐다봤고 눈빛이 묘했다. 이대 신호가 바뀌고 차는 십자로를 건너 앞으로 달렸다.“방법은 있죠. 나를 믿어요.”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대답했다.나는 더 이상 이우범을 믿을 수 없었다. 기분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 그날이 온다면 나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한 살도 안 되는 내 아이를 희생해 배인호와 다른 여자 사이의 아이를 구할만큼 위대하지 않다.나는 침묵을 지켰고 차는 그렇게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입을 꾹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온통 빈이의 병세와 관련된 일이었다.‘최악의 경우가 온다면 배인호는 어떻게 선택할까? 로아와 승현이가 자기 자식인 걸 아는데 내가 골수 기증을 거절한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밤새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뒤척거렸다. 꿈에서도 빈이가 수술하는 장면이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정신이 좋지 않았다. 약간 흐리멍덩한 기분이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딜런이었다.이 사람은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내게 전화를 해왔다. 하지만 나는 가끔 받지 않았다.하는 말은 매번 너무 일치했다. 다급하게 민설아를 찾았는지 확인했다. 차수가 늘어날수록 더 조급해 보였다. 내 눈으로 딜런이 큰 병이 없는 걸 확인하지 않았으면 진짜 무슨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