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진짜 빈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면, 오냐오냐하면서 이렇게 버릇없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배인호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민설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빈이의 병세는 아마 매우 엄중한 듯했다. 이우범이 차에서 받은 전화는 빈이 병세와 관련된 내용이었을 것이다.배인호의 반응으로 보나 민설아의 말로 보나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있었다.김미애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캐물었다.“빈이 그냥 위장에 조금 문제 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하는 말 들어보면 심각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나 속일 생각하지 마.”“큰 문제 아니에요. 제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어요.”민설아가 대답했다.“난 너 못 믿어. 인호야. 솔직하게 말해. 빈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김미애는 아예 민설아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배인호에게 물었다.배인호는 민설아 품에 안긴 빈이를 보며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배인호도 민설아와 같은 대답을 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설아한테 치료 맡기기 싫어서 그래요.”배인호가 한 말은 민설아보다 설득력 있었다. 김미애는 한시름 놓더니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작은 문제면 민 선생님한테 맡길 필요가 없지. 뛰어난 신의면 치료하기 어려운 그런 병을 더 많이 봐줘야지. 빈이는 우리한테 맡겨.”그 말인즉 빈이는 배씨 가문에서 돌볼 테니 민설아더러 빈이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민설아는 이 일에서만큼은 매우 확고했고 전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안 돼요. 빈이를 돌보는 건 괜찮은데 빈이 몸 상태는 반드시 제가 관리해야 해요. 완치되면 다시 양육권에 관해 토론해요. 안 그러면 저도 절대 포기 못 해요. 배씨 가문이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세다 하지만 내가 빈이 엄마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아요. 강제로 아이를 빼앗아 가면 아이가 당신들 미워할 거라고요.”김미애와 배인호가 걱정하는 것도 이 문제였다.빈이도 클 만큼 컸기에 기억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와 할
“이 일은 이미 결정했어.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배인호가 내 말을 끊어버렸다. 말투는 민설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내 마음도 같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병원 앞에 도착하자 배인호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호텔 가서 짐 정리하고 나한테로 와.”“필요 없어요. 내가 남겠다고 한 건 아주머니 곁에서 얘기도 나누고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랬던 거예요. 며칠 뒤면 나도 다시 서울로 올라갈 거 같아요.”나는 배인호의 제안을 거절했다.“여기서 얼마를 지내든 간에 내 쪽으로 와서 지내든지 아니면 우리 엄마 아빠한테로 가든지 해. 혼자 호텔에 있지 말고.”배인호는 이 일에서만큼은 고집을 부렸다. 내가 호텔에서 지내는 걸 아주 싫어하는 눈치였다.나는 배인호가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이때 이우범이 옆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나와 배인호를 보고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우범이 나와 배인호 앞으로 오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나에게 물었다.“호텔로 같이 갈까요?”금방 나에게 거절당한 배인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고 언짢은 표정으로 나와 이우범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내가 어디서 지내든 배인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먼저 들어가요.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그래도 나는 이우범을 거절했다. 이 두 사람 중 그 누구와 있어도 이상했다.“무슨 일이 더 남았는데요?”하지만 이우범이 한마디 더 캐물었다.이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일이라면 당연히 이 두 사람을 피하는 것이었다. 순간 내 뇌세포들은 전쟁터라도 나간 듯 앞다투어 완벽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전에 몸이 좀 안 좋다고 했잖아요. 조금 있다 검사 좀 받고 가려고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먼저들 가요.”“어디가 불편한데?”“어디가 불편한데요?”배인호와 이우범은 똑같은 말을 똑같이 걱정하는 눈빛으
이우범이 나를 해치지 않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 많은 일이 은연중에 나에게 상처를 준 거나 다름없었다.아무리 마음이 강해도 이우범의 설계와 사기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특히 환생 후 이우범에 대한 내 믿음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비록 뒤에 점차 떨어졌지만 말이다.“그럼 말해봐요. 우범 씨에게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만약 인호가 빈이 수술을 고집한다면 설아가 로아와 승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막아 줄게요.”이우범의 말투가 다시 침착해졌다.“그걸 들어줄 리가 없잖아요. 만약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하면 무조건 로아와 승현이를 생각하게 될 텐데.”이 일만 꺼내면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이우범은 나를 다시 힐끔 쳐다봤고 눈빛이 묘했다. 이대 신호가 바뀌고 차는 십자로를 건너 앞으로 달렸다.“방법은 있죠. 나를 믿어요.”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대답했다.나는 더 이상 이우범을 믿을 수 없었다. 기분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 그날이 온다면 나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한 살도 안 되는 내 아이를 희생해 배인호와 다른 여자 사이의 아이를 구할만큼 위대하지 않다.나는 침묵을 지켰고 차는 그렇게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입을 꾹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온통 빈이의 병세와 관련된 일이었다.‘최악의 경우가 온다면 배인호는 어떻게 선택할까? 로아와 승현이가 자기 자식인 걸 아는데 내가 골수 기증을 거절한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밤새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뒤척거렸다. 꿈에서도 빈이가 수술하는 장면이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정신이 좋지 않았다. 약간 흐리멍덩한 기분이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딜런이었다.이 사람은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내게 전화를 해왔다. 하지만 나는 가끔 받지 않았다.하는 말은 매번 너무 일치했다. 다급하게 민설아를 찾았는지 확인했다. 차수가 늘어날수록 더 조급해 보였다. 내 눈으로 딜런이 큰 병이 없는 걸 확인하지 않았으면 진짜 무슨 죽
“빈이는 큰 문제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이때 현관문 쪽에서 배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는 아줌마 두 분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부른 도우미인 것 같았다.배인호가 돌아오자 나는 한시름 놓았다. 이런 어려운 문제는 그에게 돌리면 된다.그는 두 아줌마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고 두 아줌마는 주방으로 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다른 편 소파에 앉았다.“나 속이려 들지 마. 작은 문제인데 설아가 왜 그런 말을 해.”김미애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당연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발견했지만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사람이 없었다.“빈이가 원래 체질이 좀 약해요. 그래서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요. 엄마는 그냥 잘 쉬면서 정서만 잘 조절하면 돼요.”배인호의 담담한 말투는 아무런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김미애도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배인호가 말하기 싫으면 아무리 물어도 소용이 없다.하여 김미애도 입을 꾹 닫은 채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배인호는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너무 바빴다. 몇 분 더 앉아 있다가 위층 서재로 올라갔고 거실에는 나와 김미애만 남았다.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배건호가 나타났다.그는 나와 김미애를 보자 티 나게 멈칫하더니 이내 나를 향해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김미애는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배건호를 피해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뭐 하자는 거야?”배건호가 이를 보더니 곧장 김미애를 붙잡으며 물었다.“지금 아예 나랑 마주치기도 싫다는 거야?”“이거 놔요!”김미애가 화를 내며 배건호의 손을 뿌리쳤다.“왜 돌아왔어요? 그때 아예 그 여자와 손잡고 집안의 한계를 뚫었어야죠. 인호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당신이네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나는 말문이 막혔다. 뭔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듯한 느낌이었다.배건호가 다시 손을 내밀어 김미애를 잡으려 했지만 나를 보더니 손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을 앞에 두고 계속 티격태격하기도 그랬다
배인호는 이 화제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예의가 없다고 하기엔 전화를 받았고 예의 바르다고 하기엔 너무 대수롭지 않게 끊었다.“이 씨 그룹의 어떤 프로젝트를 빼앗았는데요?”내가 물었다.“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넌 그냥 내 충고만 기억하면 돼. 아니면 우범이 손에 어떻게 죽을지 몰라.”배인호가 덤덤하게 말했다.이우범 손에 죽는다라, 말이 너무 심했다.배인호는 얼굴을 굳히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말한 죽는다는 몸이 죽는다는 게 아니야. 너 바보야?”“내가 언제 몸이 죽는다고 했어요?”나도 약간 어이없었다. 난 그냥 이우범이 했던 일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 전생의 이우범에 대한 필터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게 아니라면 진흙 속에서 자라나는 연꽃과도 같은 인품에 대한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나도 그에게 경계심을 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종래로 그의 인성이 좋지 못하다거나 나의 생명 안전을 위협할 거라고는 의심한 적이 없다.하지만 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우범은 어떤 때 마음이 차갑다 못해 모질었다.자기 약혼 파티에서 서란을 해코지하려고 한 것도 그리고 도시아의 죽음에 대한 냉정함도 그 증표였다.배인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랍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테이블에 던져놓았다.“봐봐.”이 몇 글자를 뱉는 배인호는 분노에 차 있었지만 애써 꾹꾹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어리둥절해서 그 자료를 펼쳐보았다. 잠시 자료를 확인한 나는 놀라우면서도 곤혹스러웠고 약간은 아리송하기까지 했다. 자료는 당시 민설아가 강에 투신한 후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치료를 했지만 실패했다는 내용이 적힌 자료였다.더 아래로 내려가 보니 다른 결과도 있었다. 민설아가 상태가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그 결과에는 이우범의 사인도 있었다.이우범은 그때 아마 레지던트였을 것이다. 5년제 대학이라 그때는 레지던트일 수밖에 없다. 민설아의 응급 처치에 참여해도 정상이었다.
“전에 본 그 감정서는 가짜였어. 최근에 지훈이 몰래 다시 수집해서 의뢰 맡겼는데 내가 생물학적 부친이 아니래. 그냥 이 모든 게 오해인 거지. 누가 교묘하게 설계한 함정일 수도 있고.”배건호는 이렇게 말하며 분노했다.“지훈이 그 자식, 우리 집안이 못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보답하다니. 죽은 우 씨가 알았으면 하늘에서 편히 쉬지도 못할 거야.”하루 만에 경악할 만한 소식을 너무 많이 들어서 대뇌의 작동이 무뎌진 것만 같았다.그래서 김미애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고 배건호를 용서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게 누군가 파놓은 함정이었다니. 하지만 전에 김미애가 말한 배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며느리에게만 준다는 옥패가 어떻게 우지훈 손에 들어간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지훈이 이걸 어떻게 손에 넣은 건지 의문이었다.“결과는 어디 있어요?”배인호는 말로는 못 믿겠는지 감정 보고를 찾았다.배건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가져다주었다.“왜? 이 아비를 못 믿는 거야?”배인호는 콧방귀를 끼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보고서를 가져와 훑어보더니 말했다.“우지훈이 준 결과가 가짜라고 하는데 이 보고는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할 거예요? 엄마를 달래주려고 위조한 걸 수도 있잖아요.”이 물음에 배건호는 말문이 막혔다. 처음에는 놀라다가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결국에는 화로 번졌다.“나 네 아빠야. 이만큼의 믿음도 없어?”“믿게 하려면 철저하게 했어야죠.”배인호는 잘못을 저지른 배건호에게 얼굴을 굳히고는 모진 말을 내뱉었다. 배건호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기 전에는 늘 이런 태도로 대할 것이다.“너 정말!”배건호는 기분 좋게 돌아와서 결과를 발표했는데 아들에게 호되게 당해서 말문이 막힐 줄은 생각도 못 했다.배인호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지훈이 가져온 보고서가 가짜라면 배건호가 가져온 보고서도 진짜라고 믿기 어려웠다. 만약 그러다가 또 반전이라도 생기면 배씨 집안 전체가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된다.김미애는 이미 배건호를 허락하고 엉킨
“네, 알겠어요.”냥이가 울먹이며 말했다.“병세가 악화한 거야? 아니면… 실패한 거야?”내가 물었다.“민설아가 아빠 치료해 주겠다고 했는데 적합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다가 돌아가셨는데 많이 힘드셨겠죠?”나는 전에 민설아가 이 일로 배인호에게 자기와 결혼할 것을 협박하던 일이 떠올랐지만 냥이에겐 알려주지 않았다.나는 원래 진덕호의 추도회에 가서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전에 협력하던 관계기도 했고 냥이와도 친구라 가도 되는 자리였다.하지만 냥이가 완곡하게 거절했다.“지영언니,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근데 저희 이미 대구로 돌아왔어요. 너무 멀어요. 아이도 둘이나 봐야 하는데 피곤하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기회 되면 봐요.”냥이는 내가 아직 제주에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간단하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냥이는 할 일이 있다면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김미애는 넋을 잃은 나를 보고는 물었다.“왜? 친구 가족분 돌아가셨대?”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김미애는 적합하지 않은 문제를 더 물어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걱정거리를 안은 채 계속 묵묵히 화초들을 다뤘다.——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야 배인호와 배건호의 대화가 끝났다. 하지만 절대 유쾌한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배인호는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김미애와 화초를 다루고 있는 나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차 밖에 있어?”“네. 왜요?”내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서울로 가자. 차 좀 얻어 탈게.”배인호가 내게 말했다.너무 의외였다.’여기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빈이도 여기 있으면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김미애가 입을 열었다.“왜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는 거야? 빈이는? 돌봐줄 사람 구했어? 그러다 민설아가 데려가면 어떡하려고?”배인호는 그런 김미애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이미 서울로 보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빈이가 이미 먼저 서울로 올라갔
“내가 말했잖아요. 빈이의 병은 내가 전부 책임진다고요. 당신이 찾았다는 의료진, 나보다 훨씬 뒤처질 거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민설아는 여전히 너무 흥분해 있었다. 그녀는 배인호가 빈이의 치료와 수술에 개입하는 걸 반대했는데 그 정도가 이상하리만큼 강렬했다.아무리 빈이를 낫게 할 신심이 있다고 해도 배인호의 결정에 이렇게까지 반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치료 방법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다. 빈이 아빠로서 빈이를 해치진 않을 텐데 말이다.배인호의 실력이면 찾은 의료진도 무조건 탑급이라 시름을 놓아도 될 것이다.“만약 수술 전에 맞는 기증자를 찾지 못하거나 기타 문제가 생겨서 안 되면 네가 치료할 수 있게 빈이 넘길게.”민설아의 흥분한 태도와는 다르게 배인호는 너무 침착했다. 그 거리감이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안 돼요. 난 절대 허락 못해요. 이건 빈이를 가지고 모험하는 거라고요.”민설아가 으름장을 놓았다.“만약 꼭 그렇게 하겠다면 나도 내 방법으로 아이를 데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민설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녀가 무슨 방법을 쓸지 나와 배인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민설아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우범과 우지훈 두 사람만 도와줘도 생각해 낼 방법은 많을 것이다.배인호는 전화를 끊더니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빈이를 호송하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지시했다. 그 누구도 빈이를 데려가서는 안 되고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입원해 검사받게 하라고 했다.차가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배인호도 당연히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민설아가 무슨 방법으로 빈이를 데려갈지 모르니 말이다.——서울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저물었다. 배인호는 그 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무슨 원인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서 그를 따라 빈이의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인호가 배정한 빈이를 돌보는 사람 외에 의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