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Chapter 681 - Chapter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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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1화

손목의 피가 욕조를 빨갛게 물들였다. 그야말로 섬뜩한 광경이었다.“소월아,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알아? 인질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신을 가둔 범죄자와 사랑에 빠진대...”16살의 전연우는 살기 위해 장해진의 밑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었다. 그는 한 무리의 남자가 열몇 살의 소녀를 폭력적으로 범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 소녀는 돈을 갚지 못해 팔려온 아이였다.마음과 육체에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붕괴한 뒤 여자아이는 폭력범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그 후 2주 동안 전연우는 줄곧 로즈 가든에 머물렀다. 출근할 때면 늘 장소월더러 옷을 입혀주고, 넥타이를 매주고, 아침을 만들게 했다.아내가 남편을 위해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냉담하고 기계적이었다. 그저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억지로 할 뿐이었다.그녀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연우가 문 앞에 센서 장치를 설치해 두었기에 그녀가 나서기만 하면 그의 핸드폰에 경보음이 울린다.경호원도 곧바로 달려와 그녀를 돌려보낼 것이다.장소월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아파트 단지 내뿐이었고 경호원이 줄곧 먼 곳에서 그녀에게 눈을 떼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아래로 내려와 벤치에 앉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가슴을 꽉 메우는 답답함과 불안함이 하루종일 가시지 않았다. 장시간 집에 머무른 탓인 줄 알았으나 이곳에서 한 시간 남짓 앉아있었음에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이런 느낌이 들 때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장소월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 그 사람이?장소월에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사실... 그녀는 강영수가 줄곧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3년 전.허 교수님과 함께 풍경화를 그리러 파리를 떠나기 일주일 전, 그녀는 생활용품을 사러 마트로 향하고 있었다.늘 지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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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아마 허 교수님도 눈치채지 못하셨을 것이다.장소월은 제운 고등학교로 돌아와 인공 호수 주위를 거닐었다. 호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조각상의 팔은 본래 떨어졌었는데 지금 보니 예쁘게 원상복구 돼 있었다.그녀는 또 예전 강영수가 새겨두었다던 비밀이 생각나 조각상 뒤를 살펴보았다.그 비밀은 바로 그녀의 이름, 장소월이었다.당시 두 사람이 이곳에서 만났을 때, 실은 조각상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장소월을 즐겁게 해주려고 지어낸 강영수의 거짓말이었다.제운 고등학교를 나선 뒤, 장소월은 강영수와 김남주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길옆 LED 전광판엔 두 사람의 결혼 발표 기자회견이 방영되고 있었다.그녀는 이어 서울 대학교로 향했다.허이준, 소현아, 단모연은 모두 함께 서울대에 입학했다.소현아는 서울대 입학 자격을 부당한 방법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얻었다. 장소월이 떠나기 전 자신의 모든 필기를 그녀에게 넘겨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소현아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 덜렁거리다가 교실에 교과서를 두고 나왔다는 사실이 건물 아래에 도착해서야 생각나 부랴부랴 다급히 달려 올라가는 것이었다.친구들은 짜증이 잔뜩 섞인 얼굴로 그녀를 재촉했다. 한눈에 봐도 기다리기 싫은 눈치였다.장소월은 낯선 소현아의 친구에게 다가가 말했다.“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내려올 거예요.”친구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소현아가 내려왔을 때 장소월은 이미 자리를 떠났다.운동장에 가보니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열정적인 농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허이준과 단모연은 가장 훌륭한 파트너였다.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아안고 있었다.이후... 장소월은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이용해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친 뒤 곧바로 비행기 표를 끊고 러시아로 떠났다.그녀가 돌아온 건 다만 한 번이라도 그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떠나고 나면 또 언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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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예전 강씨 집안은 깨끗했던 거 같아?”“자고로 이긴 사람은 왕이 되고 진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이야.”“사모님, 정말 바보가 됐는지, 바보인 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이깟 집과 손자의 목숨 중 뭐가 더 중요한지 말이에요.”“제가 듣기로 강씨 집안은 근래 계속 적자라고 하던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네?”“내일이 마지막 날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전 이만.”코를 더럽히는 악취에 전연우는 이마를 확 찌푸리고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자리를 떴다.붉은 노을 아래, 길고 곧게 뻗은 그림자가 별장 문밖을 나섰다.고고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던 박순옥은 현재 영락없는 치매 노인으로 전락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실수하기가 일쑤였고 하인의 도움이 없이는 간단한 식사도 문제가 되는 상태였다.도우미가 급히 박순옥에게 깨끗한 옷을 갈아입혔다. 희미한 등불이 비추고 있는 방 안, 드디어 정신을 회복한 박순옥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가서 강씨 저택 집문서를 갖고 와!”박순옥은 눈을 감고 힘겹게 그 한마디를 꺼냈다. 큰 결단을 내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도우미가 아연실색하며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에 남은 유일한 재산입니다. 저택마저 없으면 어떻게...”“강씨 집안의 영혼 같은 이곳이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손자가 죽어가는 건 도저히 볼 수가 없어. 죽더라도 내가 먼저 죽는 게 맞아. 내 말대로 해. 당장.”인씨 집안도 그 전씨 놈과 한통속이 되어 강씨 집안 대부분의 재산을 몰수했다.그녀는 혼자의 몸으로 쓸쓸히 커다란 저택을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평생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이 집마저 그의 손에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도우미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이어 인경아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박순옥이 천천히 눈을 뜨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여긴 왜 왔어?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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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어요. 심유와 함께 있어 줘야 한다는 이유로요. 웃기지 않아요? 친아들 목숨이 위태롭다는 데도 관심조차 없었어요. 심지어 제가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진짜.”“이 별장 집문서도 그 잡종 놈한테 남겨주려고 지키는 거죠? 제가 모를 것 같아요?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만약 제 아들이 죽는다면 절대 그놈을 살아있게 놔두지 않아요. 영수의 저승 길동무로 던져주고 당신 강씨 집안의 대를 깨끗이 끊어놓을 거예요.”“너너너... 이 짐승보다도 못한 년. 기어이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이래?”인경아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엔 당신이 절 벼랑 끝으로 내몰았었죠. 세상사 다 돌고 도는 것 아니겠어요? 영수 소유의 물건은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올 거예요. 예전 절 이혼시키기 위해 사사건건 인하 그룹을 압박한 것도 모자라 절 정신병 환자로까지 만들지 않았다면 저도 영수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의 그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영수는 지금까지도 절 원망하고 있어요. 집안이 이 지경까지 몰락한 건 다 자업자득이에요.”“들어오세요!”인경아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도우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색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아... 아가씨... 원하시던 물건입니다.”“너... 너희들...”박순옥은 도우미의 손에서 물건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인경아가 한발 앞서 재빨리 물건을 낚아챘다.박순옥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저 울부짖으며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쥘 뿐이었다.“이건 우리 강씨 집안의 물건이야...”인경아가 고개를 숙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어머님, 이건 제 아들 영수가 마땅히 가져야 할 물건이에요. 영수는 강씨 집안의 장자이자 후계자이니까요.”“전 그저 영수를 대신해 영수의 물건을 잠시 맡아두는 것뿐이에요.”“전연우가 영수의 목숨으로 협박해도 어머님은 미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그 잡종 놈이 돌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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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장소월은 전연우의 손길을 피해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 앞에 자리 잡았다.이어 그녀는 그릇에 밥을 담은 뒤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요즘 연속 며칠 동안 장소월은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아내의 모습이었다.“오늘 반찬이 너무 짜. 다음번엔 소금 조금만 줄여.”“응.”장소월은 밥을 먹으며 무심히 대답했다.실은 그녀는 이 음식들을 직접 요리하지 않았다. 전연우의 퇴근 시간에 맞춰 도우미가 만든 것이다.장소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전연우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나 내일 휴식이야. 같이 등산할래? 듣기론... 청연사가 불경 드리기에 좋다던데.”불경이라고? 이런 말이 전연우의 입에서 나오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장소월이 물었다.“넌 그런 거 안 믿잖아?”전연우는 가시를 바른 뒤 생선 살을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었다.“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랑 있어 주지 못했잖아. 그래서 널 데리고 바람이나 좀 쐬려고.”장소월은 생선에 손도 대지 않고 대답했다.“응.”그녀가 동의한 건 그저 그와 하루종일 이 밀폐된 집안에서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 그 이유 단 하나였다. 전연우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자명한 일이었으니 말이다.몇 마디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에게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때, 돌연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을 깨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고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떴다.전연우는 눈길도 주지 않고 수신 거부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30초 뒤 또다시 걸려 오자 전연우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이번엔 장소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는데 안 바빠?”“내가... 너랑 같이 있어 주니까 좋지 않아?”장소월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전연우 역시 분명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텐데...“넌 언젠가는 인시윤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을 거잖아. 차라리 일찌감치 인시윤에게 돌아가 함께 있는 게 낫지 않아? 난 2주 동안 이곳에서 머물다가 두 사람이 결혼하면 곧바로 허 선생님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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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이 세상 모든 게 네 마음대로 되진 않아. 네가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말이야.”“두 집 살림을 차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 나보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이 너랑 놀아줄 테니까.”“더는 날 심심풀이 노리개로 생각하지 마. 난 네 장난감 되는 거 싫어.”“인시윤과의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자식 많이 낳고 오손도손 잘 살아.”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문을 쾅 닫고는 안에서 잠가 버렸다.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에 더는 참지 못하고 침대 서랍에서 약 몇 알을 꺼내 다급히 삼켰다.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어느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이 통증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거실 밖 베란다.인시윤으로부터 전화가 십여 통이나 걸려 오고 나서야 전연우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에요. 말해요.”인시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야외 웨딩촬영 일정을 잡아놓으셨어요. 제가 이미 몇 곳을 골라놨는데 혹시 내일 시간 돼요?”그녀는 전연우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내일 시간 없어요.”“하지만 기성은 씨에게 물어보니까 별다른 일정 없다던데요.”인시윤이 말을 이어갔다.“연우 씨, 엄마가 촬영 감독님과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다 모셔두었어요. 거절하지 말아요. 네?”전연우는 곧 꺼질 담배꽁초를 휙 버리며 말했다.“나와 결혼한다는 게 뭘 감내해야 하는 건지 알아요?”“독수공방. 극심한 외로움을 참아내야 해요.”인시윤은 가슴이 저렸다.“난 허울뿐인 이름은 싫어요. 연우 씨의 진정한 아내가 될 거예요. 장소월이 연우 씨 옆에 있는 건 상관없어요. 난 그냥 연우 씨가 시간이 있을 때 몇 번씩 나와 함께 있어 주기만 하면 돼요.”예전 인시윤은 콧대 높고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당시 인시윤은 늘 오만한 태도로 전연우를 휘둘렀었다. 반면 지금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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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그건 전연우가 처음으로 지킨 약속이었다.그날 밤, 전연우는 확실히 그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줄곧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렸다.다음 날 새벽, 장소월은 여전히 깊은 잠이 들어있었다. 돌연 하반신에서 통증이 전해졌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장소월은 입술을 꽉 깨물고 그가 욕정 분출을 어서 끝내기를 기다렸다.장소월은 이제 온몸에 힘이 빠져 녹초가 되어버렸다. 전연우는 그녀를 안고 욕실에 들어가 씻긴 뒤 다시 침대에 눕혔다. 장소월은 그대로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땐, 침대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전연우가 그녀에게 무슨 약을 발라주었는지 한숨 자고 나니 근육통 외엔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옷을 입고 힘없이 문밖으로 걸어 나가보니 식탁 위에 전연우가 만든 요리가 놓여있었다.대충 몇 술 뜨고 나니 어느덧 점심 12시가 되었다. 청소하러 온 도우미가 그녀에게 말했다.“대표님께서 급한 일이 있어 나가야 하니 아가씬 편히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라고 하셨어요. 이건 대표님께서 남겨주신 현금입니다.”도우미가 돈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족히 몇백만 원은 되어 보였다.장소월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같이 자고 난 뒤 돈을 주다니, 그녀를 술집 아가씨라고 생각하는 건가?순간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청연사.그녀는 예전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 러시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간 곳이 바로 청연사였다.그녀가 문을 나서니 경호원이 뒤를 따랐다.차를 타고 청연사를 품고 있는 산자락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니 고풍스러운 대문과 그 위 검은색으로 새겨져 있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이 지난 지라 당시 봤을 때보다 많이 낡아 있었다.경호원이 말했다.“아가씨, 위로 올라가실 생각이라면 케이블카를 타시죠.”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직접 발로 올라야 부처님도 절 살펴주실 거예요. 걷기 싫으면 절 따라올 필요 없어요.”“아가씨, 대표님께서 조금도 아가씨의 곁에서 떨어져 있지 말라고 분부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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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그녀의 말대로 걷는다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문드러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장소월은 장장 3시간을 올라 산꼭대기에 도착했다.그곳엔 꽤 많은 사람들이 불경을 드리러 오가고 있었고 주지 스님은 거대한 금색 불상 앞에 서 있었다.장소월은 부처님 앞에 꿇어앉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아니,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가족의 평안?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인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친구...그들은 이미 꿈을 이루고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애인...장소월은 이미 죽을 때까지 다시는 결혼이라는 것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렇다!지금 그녀는 혈혈단신이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 무슨 소원이 있겠는가?건강?그녀가 언제까지 이렇게 호흡하며 살아가겠는가?“아미타불, 장 시주.”주지 스님이 돌연 입을 열었다.장소월은 깜짝 놀랐다.“절 기억하세요?”“4년 전 이곳에 오셨잖아요. 이번에도 바라는 바가 있어서 오셨나요? 아니면 예참을 하시려는 건가요?”경호원은 그녀에게서 향을 건네받은 뒤 향로에 꽂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망연한 얼굴로 말했다.“그때 전 제 주변 사람들이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빌었어요. 지금 그들은 아주 잘살고 있어요. 하지만 단 한 사람,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요.”“이번엔 온 건 저 자신을 위해 치성을 드리기 위함이었어요. 하지만... 올라오고 보니 전 아무것도 원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요.”“아미타불, 장 시주께선 소승이 오래전 알던 사람과 정말 비슷하네요. 당시 그 사람은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아이의 평안을 위해 빌고 또 빌었어요.”“그때 소승이 물었었죠. 왜 자신을 위해선 치성을 드리지 않냐고.”“그 여 시주의 대답도 장 시주와 마찬가지였어요. 두 사람 모두 착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에요.”장소월이 호기심에 물었다.“그 이후, 그분은 다시 오셨나요?”주지 스님이 고개를 저었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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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청연산 높은 산봉우리에 서 있으니 아름다운 석양이 한눈에 들어왔다.은은한 노을빛이 장소월의 몸을 비추던 그때, 전연우와의 통화를 마친 경호원이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아가씨, 대표님께서 하실 말씀 있으시답니다.”장소월이 핸드폰을 받아 귓가에 가져갔다.“무슨 일이야?”“일찍 집에 가. 나 걱정하게 하지 말고. 하산하는 길은 위험하니까 케이블카 타고 내려가. 응? 알겠지?”그 뒤를 이어 인시윤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연우 씨, 저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 의상으로만 촬영하면 끝나요.”장소월이 전화를 끄고 핸드폰을 경호원에게 돌려주었다.“이제 돌아가죠.”“아가씨, 케이블카 위치는 이쪽입니다.”하지만 장소월의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이미 날은 어둑해지고 있다. 불과 발끝 아래 길조차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똑똑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경호원들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전부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장소월의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아가씨, 조금만 쉬시죠. 대표님께서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계속 이렇게 내려가다간 다치실 수도 있습니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손전등을 환히 비추며 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얼마 후, 전연우가 어두운 얼굴로 장소월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고 있던 정장을 그녀에게 입혀주었다.“다음에도 또 이러면 집 밖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할 거야.”장소월은 그가 정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이 시간엔 인시윤과 함께 있을 거라 짐작했으니 말이다.전연우가 그녀의 몸에 손을 대보니 얼음장같이 차가워져 있었다.전연우는 곧바로 그녀를 안고 걸어갔다. 본래 두 시간 정도 걸려야 할 여정이었지만 한 시간이 지나니 산자락에 도착했다.차 문을 열어보니 인시윤이 앉아있었다.장소월을 본 인시윤은 곧바로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부어주었다.“이거 마시고 몸을 좀 녹여. 이렇게 추운 날씨에 산길은 위험해. 나랑 연우 씨가 걱정 많이 했어.”장소월은 차에 올라타 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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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오빤 이제 괜찮아.”전연우와 한 공간에 있었던 탓에 그의 눈치를 보느라 뜻대로 말하지 못했다.사실 인시윤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소월이 강영수에 대해 물었다는 건 아직 그를 마음에 담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강영수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의식도 차리지 못하고 겨우 숨만 쉬면서도 오매불망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다행히 괜찮아졌구나.’장소월은 그제야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전연우는 먼저 인시윤을 집에 데려다주었다.인시윤은 처음엔 전연우와 장소월더러 자신의 집에 머무르라고 할 생각이었으나 역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소월아,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와.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차 문이 닫히는 순간, 전연우는 독기 오른 맹수처럼 장소월의 아래턱을 움켜쥐었다.“아직도 그 자식을 못 잊어서 안달인 모양새라니. 소월아, 오빠가 요즘 널 너무 오냐오냐해줬지? 감히 내 앞에서 그놈의 이름을 입밖에 내뱉고 말이야.”전연우의 불같은 분노를 마주했음에도, 장소월은 오히려 더없이 평온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또 차 안에서 날 모욕하려고? 아니면 또 영수를 해치려고? 네 행동은 늘 그렇게 더럽고 비겁했잖아.”“내가 정말 널 어떻게 하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게 누가 준 것인지 잊지 마.”장소월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그걸 중요하게 여길 거로 생각해?”“다시 한번 강영수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면 마지막 남은 숨통까지 끊어놓을 거야. 소월아, 넌 앞으로 나한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어.”로즈 가든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또다시 집에 갇혀 버렸다. 전연우는 이번엔 그녀를 집 밖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둬버렸다.심지어... 그의 시선 속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회사에 출근할 때에도 늘 그녀를 옆에 두었다.전연우와 인시윤의 웨딩 촬영 소식이 알려지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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