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711 - 챕터 720

1660 챕터

제711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석진은 깜짝 놀랐다. 다른 요구라도 얘기할 줄 알았는데 단지 맛있는 밥 한 끼뿐이었다.그의 뇌리에 범죄자가 득실거리던 그 길거리가 또다시 떠올랐다. 더럽고 협소한 지하실, 그리고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집시들... 이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미안한 마음이 밀려온 나석진은 고개를 들어 기대 가득한 소녀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겹게 대답했다.“알았어.”서지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잠도 푹 잤겠다, 이따가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천국인 건가?잠시 후 누군가 밥을 가져왔다. 전부 이 호텔의 최고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었는데 일하는 이틀 동안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서지현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먹으려다가 갑자기 다시 멈추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음식을 탁자 위로 옮겼다.나석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침대 옆까지 가져다줬으면 침대에서 먹으면 되지, 왜 내려와?”“먹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이렇게나 좋은 침대를 더럽힐 수는 없죠.”서지현은 연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감탄했다.“너무 맛있어요! 너무!”나석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지현이 이깟 침대를 왜 이렇게나 아끼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러워지면 청소부에게 맡겨 깨끗이 빨라고 하면 되는데.서지현도 나석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슨 물건이든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나석진은 옆에 서서 물과 휴지를 챙겨주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춧가루를 뿌리는 것조차 도우미가 옆에서 뿌려줬었는데 이젠 그가 어린 소녀를 챙겨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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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최연준은 나석진에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석진은 처음에는 사양하는 척하다가 이내 캐리어를 들고 그의 별장으로 들어왔다.두 남자는 카펫 위에 앉아서 한잔했고 강서연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태교 음악을 들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이었는데 선율이 웅장하면서도 고상하고 역동적이었다.하지만 나석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온통 그 광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집시들은 제대로 된 악기가 없어 교향곡 같은 걸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단지 탬버린 하나와 건반 하나로 커다란 광장을 파티 현장으로 만들었고 주변에 놀라움을 선사했다.‘그 계집애가 롱 원피스를 입고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은 어떨까? 목소리가 밤꾀꼬리 같아 노래를 부르면 아주 듣기 좋겠지? 그러면 주변에 보는 남자들도 많을 텐데...’그 생각에 마음이 움찔한 나석진은 저도 모르게 술잔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였다.“뭐 해요?”최연준이 귀띔했다.“형님 차례예요.”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석진은 최연준이 조롱 섞인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카드를 내지 않아도 이미 진 상황이었다.“그만 놀아요.”그는 카드를 휙 던지며 툴툴거렸다. 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나석진이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렇게 걱정되면 가서 보면 되잖아요.”강서연이 피식 웃었다.“손발이 멀쩡하고 잡는 사람도 없는데 왜 안 가요?”“서연이 너 지금 날 내쫓는 거야?”나석진은 그녀를 째려보고는 최연준에게 시선을 옮겼다.“와이프 좀 단속해요.”하지만 최연준은 아예 강서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와이프 말이 맞아요.”“당신...”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외로운 건 솔로뿐이다. 나석진은 약이 바싹 올랐다.“매제는 정말 도움이 안 돼요.”최연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석진은 술잔을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아내 바보가 따로 없다니까요.”“네...”최연준은 진지한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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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최연준은 순간 흠칫하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가?남의 음모 때문에 항공기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남이 해칠까 늘 경계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옆에 똑똑한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그녀가 매번 이런 목숨이 달린 문제를 낼 때마다 최연준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얼른 대답해요.”강서연은 작은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고 눈을 깜빡이며 웃을 듯 말 듯 했다.“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없어요?”잠깐 생각하던 최연준은 적절히 대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서연의 손을 덥석 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말했다.“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바로 사라졌어.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게 된 속도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거든. 그때 내 머릿속에 군대가 들어있었는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군대들이 바로 진압해 버렸어.”최연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다가 나중에 그 군대가 왜 그리 강했는지 알게 되었어. 군대의 이름이 바로 ‘사랑해’ 였거든.”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고 쑥스러워하며 그에게 기댔다. 전에는 한 손으로도 강서연을 안을 수 있었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이젠 두 손으로 안아야 했다.최연준이 그녀를 끌어안자 아이가 갑자기 움직였다. 너무나도 신기한 태동에 최연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여보, 아들이 방금 나에게 인사한 거야?”“네.”갑자기 마음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한 강서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아들이 그러는데 나중에 태어난 후에도 당신의 군대를 영원히 머릿속에 남겨둬야 한대요.”“당연하지.”최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임신한 후로 살이 많이 올라서 볼도 통통해졌다.“여보, 아들이 태어나면 세 식구가 돼.”최연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다.“나중에 아이가 더 생기면 네 식구, 다섯 식구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가 몇 명이든 당신과의 세상을 따로 남겨둘 거야. 그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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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강서연이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알 리가 없었던 서지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서지현이 멋쩍게 웃으며 떠보듯 물었다.“언니, 왜 그래요?”강서연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곧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일제히 그녀를 둘러쌌다.“저 짧은 치마를 가져와요.”강서연은 서지현을 자세히 살펴보며 지휘했다.“음... 키가 좀 작네요. 하이힐을 신어도 모델보다 작아요. 그럼 런웨이에 서지 말고 꽃마차에 앉아서 현장을 한 바퀴 돌게 하죠.”“좋은 생각이에요, 사모님.”“그리고 메이크업은 너무 진하게 하지 말아요.”서지현의 미모 자체가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얼굴이라 메이크업이 진하면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덮어버릴 수 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강서연의 분부대로 바로 움직였다. 스타일리스트도 옷을 가져와 서지현의 몸에 대고 어림잡아 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현의 키가 크진 않았지만 몸매는 좋았다. 글래머한 가슴에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다리가 길어서 비율이 아주 완벽했다. 심지어 전문 모델보다도 더 나은 것 같았다.디자이너의 눈에 그녀는 걸어 다니는 옷걸이와도 같았다. 다만 사이즈가 좀 작을 뿐.“사모님, 이분이 일어서지만 않는다면 런칭쇼는 계속할 수 있어요. 이 짧은 드레스를 원래는 다른 모델에게 입히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모델이 입으면 너무 노출이 심해서 런칭쇼 주제와 어울리지 않을까 봐 망설였었는데 지금 그 문제가 해결됐네요.”강서연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번 런칭쇼의 주제는 낭만과 감미로움이기에 노출이 너무 심해선 안 된다. 서지현이 꽃마차에 앉아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가 현장을 한 바퀴 돌면 완벽하게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강서연과 달리 서지현이 긴장해 하기 시작했다.“언... 언니, 대체 뭘 어쩌려는 거예요? 저...”“뭘 어쩌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강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앉히고는 거울 속의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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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다른 모델을 찾을 수 없다면 아쉽지만 마지막 코너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강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스태프가 필요 없는 도구가 담긴 박스 하나를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 강서연의 눈에 마침 펀칭 가면 하나가 들어왔다.“그건 뭐예요?”강서연이 다가가 가면을 꺼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이었는데 펀칭 무늬가 복고적이면서도 우아했고 쓰면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릴 수 있었다.“극단에서 빌려온 도구들이에요.”이효연이 설명했다.“배우들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할 때 쓰던 거래요. 그리고 이 가면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에요.”이효연은 상자에서 다른 가면을 꺼냈다.“사모님, 이 두 개가 한 쌍인데 남녀 주인공이 쓰는 거예요. 엄청 예쁘죠? 위에 보석도 박혀있어요.”두 가면을 손에 쥔 강서연은 심장이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렸다.아주 생동감이 넘치는 가면이었고 박힌 보석들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거기에 사파이어까지 더해지니 한껏 더 우아해 보였다.강서연이 서지현에게 가면을 씌워주자 주변의 디자이너들이 일제히 감탄을 쏟아냈다.그때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석진은 가면은 쓴 서지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왜 그래요?”강서연이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웃었다.“왜 넋이 나간 표정이에요?”나석진은 정신을 가다듬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예쁘지 않아요?”강서연이 서지현의 옆으로 다가갔다.“내 눈에는 너무 예뻐요. 가면으로 살짝 가리면 남들이 지현 씨가 누군지 모르니까 신비함이 배가 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지현 씨가 가면을 쓰고 꽃이 가득한 꽃마차에 앉아있으면 낭만과 감미로움이라는 런칭쇼의 주제와도 어울리고요.”서지현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면을 쓴다면 강서연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표정이...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강서연도 어이없어하며 나석진을 꽉 꼬집었다.“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곧 무대에 올라가는데!”“쟤를 그냥 이렇게... 내보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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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나석진은 입술만 적실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서지현은 곧 무대에 오를 생각에 떨리면서도 설렜다. 가면을 쓰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곤 했다.런칭쇼 시작까지 10분 남짓 남았다.강서연은 서지현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가볍게 웃었다.“무서워하지 말아요. 맨 마지막 등장이고 꽃마차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돼요.”“네.”“나도 꽃마차에 탈래.”나석진이 불쑥 한마디 했다. 그러고는 놀란 강서연을 뒤로 한 채 도구 상자에서 서지현이 쓴 가면과 커플인 다른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장난 그만 해요.”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꽃마차 코너에 남자 모델을 앉힐 계획이 없었다고요...”“지금이라도 더 추가하면 되지.”“오빠...”나석진은 꽃마차에 타고 싶은 게 아니라 꽃마차를 타야 하는 그 사람이 걱정돼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걸 막으려는 속셈인 게 분명했다.나석진이 다짜고짜 서지현을 끌고 가자 강서연은 손에 식은땀을 쥐었다.꽃마차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곱슬머리의 소녀가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꽃마차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로 훤칠한 키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절대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가 얼굴에 선명했다.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중세기 유럽의 공주와 충성심이 넘치는 기사 같았다. 게다가 가면과 치마의 자수가 한데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했다.이 코너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이루었다.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저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런칭쇼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강서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최연준에게 전화하여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여보, 런칭쇼를 성공적으로 마쳤어요.”휴대 전화 너머로 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여보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당신 쪽은 어떻게 됐어요? 다 조사했어요?”“당연하지. 난 슈퍼맨이잖아. 슈퍼맨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그럼 난 잠깐 쉬어도 되겠죠?”강서연이 익살스럽게 웃었다.“나머지 일은 우리 슈퍼맨에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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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이 데이터들은 이번 패션 위크 오더 통계표와 런칭쇼의 현황을 기록한 것들입니다.”최연준이 진중하게 말했다.“같은 업계 경쟁 상대와 비교하면 우리 회사 방직품과 패션 영역의 이윤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이 브랜드들은 연예인들에게 드레스를 협찬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 황실의 맞춤 제작도 맡고 있어요.”이사들이 저마다 환하게 웃으며 최연준을 칭찬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김씨 가문 영감에게 아부하기 위해서였다.김자옥이 잊지 않고 두어 마디 했다.“이게 연준이의 공로만은 아니에요. 우리 연준이가 팔자가 좋아서 내조 잘하는 아내를 만나서 그래요. 하하... 이번 패션 프로젝트는 서연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나서서 진행한 거예요.”“맞아요, 맞아요.”눈치 빠른 한 이사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저희도 사모님을 만났었는데 다정하면서도 대범했고 일도 분별 있게 잘 처리하시더라고요. 김 대표님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어요.”“맞아요. 김 대표님이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며느리가 아니라 친딸인 줄 알았을걸요?”“하하...”김자옥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최연준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어머니를 쳐다보았다.‘나 지금 중요한 일을 얘기하고 있잖아요. 아직 손미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왜 방해나 하고 그래요?’“콜록콜록!”최연준이 기침하며 눈치를 주자 김자옥은 바로 웃음을 거두어들이고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데이터는 다들 보셨죠?”최연준은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사실 패션 프로젝트가 오늘 같은 성과를 이루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저희 아내가 임신 6개월이 넘은 몸을 이끌고 직접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디테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 썼어요. 누군가 중간에서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겁니다.”최연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손미현을 힐끔거렸다.“외숙모.”최연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제 말이 맞죠?”“뭐?”손미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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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손미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김유정이 런칭쇼를 망치겠다고 할 때 손미현은 동의하지 않았다. 김씨 가문에 시집온 지 오래되었기에 최연준의 성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요행을 바란 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손에 김성주라는 카드가 있으니까. 하여 김유정이 무엇을 하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그런데 김유정의 계획이 성공하기는커녕 되레 강서연이 기선을 제압하게 했다. 기상천외한 런칭쇼를 통하여 김중 그룹은 패션계에서 입지를 굳혔고 모든 공로가 강서연에게로 돌아갔다.손미현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눈알을 굴리더니 웃는 낯으로 최연준에게 말했다.“연준아,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허... 외숙모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젊은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면. 그 뭐야, 네 삼촌이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 우린...”손미현이 김성주를 잡아끌고 일어나려던 그때 최연준이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자 회의실 주변에 있던 흑인 경호원들이 손미현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경호원은 두툼하고 커다란 손으로 손미현의 어깨를 꾹 눌렀다. 겁에 질린 그녀는 꼼짝달싹도 못 했다.“연준아, 이게 지금...”“더 까발려야 인정하겠어요?”최연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테이블 위의 서류를 흘겨보았다.“이 증거로도 부족하다면 증인도 있어요.”회의실 대문이 열리자 우람한 체격의 경호원들 뒤로 두 남자가 벌벌 떨며 들어왔다.이사회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두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CCTV 속 가위로 드레스를 자르던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 유명 브랜드의 전속 모델이었다가 런칭쇼 당일에 갑자기 계약을 해지한 사람이었다.손미현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핏기라곤 없었고 옆에 있는 김성주를 미친 듯이 잡아당겼다.최연준이 씩 웃자 비서는 그의 뜻을 바로 알아채고 손을 흔들었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실을 곧이곧대로 실토했다.김씨 가문 영감의 낯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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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왜... 모든 게 다 바뀐 걸까?“연준아.”김성주가 안절부절못했다.“미현이에게 이러지 마. 미현이는... 네 외숙모야. 좋게 좋게 말로 하면 안 돼? 네 외숙모도 저 두 사람에게 모함당했을 거야.”최연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고 두 눈에 그늘이 스쳤다.김자옥은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외할아버지가 마음이 약해지지 않더라고 어머니가 어릴 적의 사고 때문에 김성주에게 죄책감이 들어 망설일 것이다.손미현은 김성주에게 기댄 채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난 몰라. 아무튼... 아무튼 우리 와이프 괴롭히지 마!”김성주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최연준, 네 외숙모의 화를 계속 돋우었다간 절대 가만 안 둬.”최연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은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삼촌, 정말 죄송해요.”최연준이 김성주를 보며 말했다.“삼촌은 저 여자 때문에 우리 엄마와 여러 번이나 싸웠어요. 그리고 매번 싸울 때마다 엄마는 항상 삼촌에게 져줬죠. 하지만 이번 일은 엄마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삼촌이 아내를 감싸고 도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예요.”최연준의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감히 우리 와이프를 건드렸다간 그 누가 됐든 평생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만들 겁니다.”“너...”“가만히 서서 뭐 해?”최연준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흑인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이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당장 내쫓아. 그리고 다시는 이 건물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해!”...“아가야, 이 노래 듣기 좋아? 이건 집시들의 노래야. 하하, 내가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얼마 없지만 이 노래는 그래도 가장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어. 왜 움직이지 않아? 음... 내가 춤추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 문제없어. 지금 바로 춤춰줄게.”서지현은 망설임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이 없어도 마치 꽃밭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는 나비처럼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강서연은 정원에 앉아 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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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서지현은 순간 멍해졌다.“왜요? 아저씨가 그 호칭이 싫대요?”“그건 아닌데.”강서연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 사촌 오빠이고 오성에서도 엄청난 팬덤이 있는 배우거든. 그런데 왜 너에게는 아저씨야?”시선을 늘어뜨린 서지현의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두 손으로 컵을 꽉 잡고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왜 그녀에겐 아저씨일까?왜냐하면 서지현의 뇌리에 박힌 나석진의 첫인상은 성숙하고 점잖으면서도 도도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마치... 추리소설에 나오는 매정하고 냉혈한 킬러 같았다.그때까지만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아저씨라고 한번 부르기 시작하니까 특별한 호칭이 되고 말았다. 서지현은 다른 사람에게는 오빠나 언니라고 불렀지만 나석진은 달랐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두 사람의 거리를 멀게 해주어 남의 의심을 사지 않게 한다.이런 느낌은 참으로 미묘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보고 싶고 정작 만나면 또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하여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조심스럽게 지켰다...서지현이 몰래 웃음을 터트리자 강서연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사실 강서연은 진작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아 참.”강서연이 화제를 돌렸다.“석진 오빠의 이름을 쓸 줄 알아?”서지현이 멋쩍게 웃었다.“난 한국말을 말할 줄만 알고 쓸 줄은 몰라요.”강서연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그럼 나석진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줄 테니까 잘 기억해.”“서연 언니...”“이것 봐.”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쓰니까 잘 기억해 둬.”서지현은 쑥스러운지 얼굴이 발그스름해졌고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그때 초인종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도우미가 문을 열러 나갔지만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긴 우리 사촌 오빠 집이야. 난 새언니를 보러 왔다고.”“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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