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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석진은 깜짝 놀랐다. 다른 요구라도 얘기할 줄 알았는데 단지 맛있는 밥 한 끼뿐이었다.

그의 뇌리에 범죄자가 득실거리던 그 길거리가 또다시 떠올랐다. 더럽고 협소한 지하실, 그리고 광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집시들... 이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 나석진은 고개를 들어 기대 가득한 소녀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알았어.”

서지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잠도 푹 잤겠다, 이따가 맛있는 음식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천국인 건가?

잠시 후 누군가 밥을 가져왔다. 전부 이 호텔의 최고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었는데 일하는 이틀 동안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

서지현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먹으려다가 갑자기 다시 멈추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침대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음식을 탁자 위로 옮겼다.

나석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침대 옆까지 가져다줬으면 침대에서 먹으면 되지, 왜 내려와?”

“먹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이렇게나 좋은 침대를 더럽힐 수는 없죠.”

서지현은 연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감탄했다.

“너무 맛있어요! 너무!”

나석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서지현이 이깟 침대를 왜 이렇게나 아끼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러워지면 청소부에게 맡겨 깨끗이 빨라고 하면 되는데.

서지현도 나석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무슨 물건이든 그에게는 별거 아니었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

나석진은 옆에 서서 물과 휴지를 챙겨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춧가루를 뿌리는 것조차 도우미가 옆에서 뿌려줬었는데 이젠 그가 어린 소녀를 챙겨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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