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나석진에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석진은 처음에는 사양하는 척하다가 이내 캐리어를 들고 그의 별장으로 들어왔다.두 남자는 카펫 위에 앉아서 한잔했고 강서연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태교 음악을 들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이었는데 선율이 웅장하면서도 고상하고 역동적이었다.하지만 나석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온통 그 광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집시들은 제대로 된 악기가 없어 교향곡 같은 걸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단지 탬버린 하나와 건반 하나로 커다란 광장을 파티 현장으로 만들었고 주변에 놀라움을 선사했다.‘그 계집애가 롱 원피스를 입고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은 어떨까? 목소리가 밤꾀꼬리 같아 노래를 부르면 아주 듣기 좋겠지? 그러면 주변에 보는 남자들도 많을 텐데...’그 생각에 마음이 움찔한 나석진은 저도 모르게 술잔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였다.“뭐 해요?”최연준이 귀띔했다.“형님 차례예요.”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석진은 최연준이 조롱 섞인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카드를 내지 않아도 이미 진 상황이었다.“그만 놀아요.”그는 카드를 휙 던지며 툴툴거렸다. 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나석진이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렇게 걱정되면 가서 보면 되잖아요.”강서연이 피식 웃었다.“손발이 멀쩡하고 잡는 사람도 없는데 왜 안 가요?”“서연이 너 지금 날 내쫓는 거야?”나석진은 그녀를 째려보고는 최연준에게 시선을 옮겼다.“와이프 좀 단속해요.”하지만 최연준은 아예 강서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와이프 말이 맞아요.”“당신...”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외로운 건 솔로뿐이다. 나석진은 약이 바싹 올랐다.“매제는 정말 도움이 안 돼요.”최연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석진은 술잔을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아내 바보가 따로 없다니까요.”“네...”최연준은 진지한 척했다
최연준은 순간 흠칫하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가?남의 음모 때문에 항공기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남이 해칠까 늘 경계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옆에 똑똑한 아내가 있다는 것이다...그녀가 매번 이런 목숨이 달린 문제를 낼 때마다 최연준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얼른 대답해요.”강서연은 작은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고 눈을 깜빡이며 웃을 듯 말 듯 했다.“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없어요?”잠깐 생각하던 최연준은 적절히 대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서연의 손을 덥석 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말했다.“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바로 사라졌어.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게 된 속도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거든. 그때 내 머릿속에 군대가 들어있었는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군대들이 바로 진압해 버렸어.”최연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다가 나중에 그 군대가 왜 그리 강했는지 알게 되었어. 군대의 이름이 바로 ‘사랑해’ 였거든.”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고 쑥스러워하며 그에게 기댔다. 전에는 한 손으로도 강서연을 안을 수 있었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이젠 두 손으로 안아야 했다.최연준이 그녀를 끌어안자 아이가 갑자기 움직였다. 너무나도 신기한 태동에 최연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여보, 아들이 방금 나에게 인사한 거야?”“네.”갑자기 마음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한 강서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아들이 그러는데 나중에 태어난 후에도 당신의 군대를 영원히 머릿속에 남겨둬야 한대요.”“당연하지.”최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임신한 후로 살이 많이 올라서 볼도 통통해졌다.“여보, 아들이 태어나면 세 식구가 돼.”최연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다.“나중에 아이가 더 생기면 네 식구, 다섯 식구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아이가 몇 명이든 당신과의 세상을 따로 남겨둘 거야. 그 세상에는
강서연이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알 리가 없었던 서지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서지현이 멋쩍게 웃으며 떠보듯 물었다.“언니, 왜 그래요?”강서연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곧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일제히 그녀를 둘러쌌다.“저 짧은 치마를 가져와요.”강서연은 서지현을 자세히 살펴보며 지휘했다.“음... 키가 좀 작네요. 하이힐을 신어도 모델보다 작아요. 그럼 런웨이에 서지 말고 꽃마차에 앉아서 현장을 한 바퀴 돌게 하죠.”“좋은 생각이에요, 사모님.”“그리고 메이크업은 너무 진하게 하지 말아요.”서지현의 미모 자체가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얼굴이라 메이크업이 진하면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덮어버릴 수 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강서연의 분부대로 바로 움직였다. 스타일리스트도 옷을 가져와 서지현의 몸에 대고 어림잡아 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현의 키가 크진 않았지만 몸매는 좋았다. 글래머한 가슴에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다리가 길어서 비율이 아주 완벽했다. 심지어 전문 모델보다도 더 나은 것 같았다.디자이너의 눈에 그녀는 걸어 다니는 옷걸이와도 같았다. 다만 사이즈가 좀 작을 뿐.“사모님, 이분이 일어서지만 않는다면 런칭쇼는 계속할 수 있어요. 이 짧은 드레스를 원래는 다른 모델에게 입히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모델이 입으면 너무 노출이 심해서 런칭쇼 주제와 어울리지 않을까 봐 망설였었는데 지금 그 문제가 해결됐네요.”강서연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번 런칭쇼의 주제는 낭만과 감미로움이기에 노출이 너무 심해선 안 된다. 서지현이 꽃마차에 앉아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가 현장을 한 바퀴 돌면 완벽하게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강서연과 달리 서지현이 긴장해 하기 시작했다.“언... 언니, 대체 뭘 어쩌려는 거예요? 저...”“뭘 어쩌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강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앉히고는 거울 속의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른 모델을 찾을 수 없다면 아쉽지만 마지막 코너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강서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스태프가 필요 없는 도구가 담긴 박스 하나를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 강서연의 눈에 마침 펀칭 가면 하나가 들어왔다.“그건 뭐예요?”강서연이 다가가 가면을 꺼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면이었는데 펀칭 무늬가 복고적이면서도 우아했고 쓰면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릴 수 있었다.“극단에서 빌려온 도구들이에요.”이효연이 설명했다.“배우들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할 때 쓰던 거래요. 그리고 이 가면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에요.”이효연은 상자에서 다른 가면을 꺼냈다.“사모님, 이 두 개가 한 쌍인데 남녀 주인공이 쓰는 거예요. 엄청 예쁘죠? 위에 보석도 박혀있어요.”두 가면을 손에 쥔 강서연은 심장이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렸다.아주 생동감이 넘치는 가면이었고 박힌 보석들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거기에 사파이어까지 더해지니 한껏 더 우아해 보였다.강서연이 서지현에게 가면을 씌워주자 주변의 디자이너들이 일제히 감탄을 쏟아냈다.그때 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나석진은 가면은 쓴 서지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왜 그래요?”강서연이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웃었다.“왜 넋이 나간 표정이에요?”나석진은 정신을 가다듬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예쁘지 않아요?”강서연이 서지현의 옆으로 다가갔다.“내 눈에는 너무 예뻐요. 가면으로 살짝 가리면 남들이 지현 씨가 누군지 모르니까 신비함이 배가 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지현 씨가 가면을 쓰고 꽃이 가득한 꽃마차에 앉아있으면 낭만과 감미로움이라는 런칭쇼의 주제와도 어울리고요.”서지현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면을 쓴다면 강서연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표정이...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강서연도 어이없어하며 나석진을 꽉 꼬집었다.“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곧 무대에 올라가는데!”“쟤를 그냥 이렇게... 내보내려고?”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나석진은 입술만 적실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서지현은 곧 무대에 오를 생각에 떨리면서도 설렜다. 가면을 쓰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곤 했다.런칭쇼 시작까지 10분 남짓 남았다.강서연은 서지현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가볍게 웃었다.“무서워하지 말아요. 맨 마지막 등장이고 꽃마차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돼요.”“네.”“나도 꽃마차에 탈래.”나석진이 불쑥 한마디 했다. 그러고는 놀란 강서연을 뒤로 한 채 도구 상자에서 서지현이 쓴 가면과 커플인 다른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장난 그만 해요.”강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꽃마차 코너에 남자 모델을 앉힐 계획이 없었다고요...”“지금이라도 더 추가하면 되지.”“오빠...”나석진은 꽃마차에 타고 싶은 게 아니라 꽃마차를 타야 하는 그 사람이 걱정돼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걸 막으려는 속셈인 게 분명했다.나석진이 다짜고짜 서지현을 끌고 가자 강서연은 손에 식은땀을 쥐었다.꽃마차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곱슬머리의 소녀가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꽃마차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로 훤칠한 키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절대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가 얼굴에 선명했다.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중세기 유럽의 공주와 충성심이 넘치는 기사 같았다. 게다가 가면과 치마의 자수가 한데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했다.이 코너는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이루었다.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저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런칭쇼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강서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최연준에게 전화하여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여보, 런칭쇼를 성공적으로 마쳤어요.”휴대 전화 너머로 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여보가 해낼 줄 알았다니까.”“당신 쪽은 어떻게 됐어요? 다 조사했어요?”“당연하지. 난 슈퍼맨이잖아. 슈퍼맨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그럼 난 잠깐 쉬어도 되겠죠?”강서연이 익살스럽게 웃었다.“나머지 일은 우리 슈퍼맨에게 전부
“이 데이터들은 이번 패션 위크 오더 통계표와 런칭쇼의 현황을 기록한 것들입니다.”최연준이 진중하게 말했다.“같은 업계 경쟁 상대와 비교하면 우리 회사 방직품과 패션 영역의 이윤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이 브랜드들은 연예인들에게 드레스를 협찬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 황실의 맞춤 제작도 맡고 있어요.”이사들이 저마다 환하게 웃으며 최연준을 칭찬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김씨 가문 영감에게 아부하기 위해서였다.김자옥이 잊지 않고 두어 마디 했다.“이게 연준이의 공로만은 아니에요. 우리 연준이가 팔자가 좋아서 내조 잘하는 아내를 만나서 그래요. 하하... 이번 패션 프로젝트는 서연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나서서 진행한 거예요.”“맞아요, 맞아요.”눈치 빠른 한 이사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저희도 사모님을 만났었는데 다정하면서도 대범했고 일도 분별 있게 잘 처리하시더라고요. 김 대표님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어요.”“맞아요. 김 대표님이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며느리가 아니라 친딸인 줄 알았을걸요?”“하하...”김자옥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최연준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어머니를 쳐다보았다.‘나 지금 중요한 일을 얘기하고 있잖아요. 아직 손미현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왜 방해나 하고 그래요?’“콜록콜록!”최연준이 기침하며 눈치를 주자 김자옥은 바로 웃음을 거두어들이고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데이터는 다들 보셨죠?”최연준은 위엄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사실 패션 프로젝트가 오늘 같은 성과를 이루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저희 아내가 임신 6개월이 넘은 몸을 이끌고 직접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디테일 하나하나 꼼꼼하게 신경 썼어요. 누군가 중간에서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겁니다.”최연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손미현을 힐끔거렸다.“외숙모.”최연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제 말이 맞죠?”“뭐?”손미현의
손미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김유정이 런칭쇼를 망치겠다고 할 때 손미현은 동의하지 않았다. 김씨 가문에 시집온 지 오래되었기에 최연준의 성격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요행을 바란 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손에 김성주라는 카드가 있으니까. 하여 김유정이 무엇을 하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그런데 김유정의 계획이 성공하기는커녕 되레 강서연이 기선을 제압하게 했다. 기상천외한 런칭쇼를 통하여 김중 그룹은 패션계에서 입지를 굳혔고 모든 공로가 강서연에게로 돌아갔다.손미현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눈알을 굴리더니 웃는 낯으로 최연준에게 말했다.“연준아,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허... 외숙모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젊은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면. 그 뭐야, 네 삼촌이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 우린...”손미현이 김성주를 잡아끌고 일어나려던 그때 최연준이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자 회의실 주변에 있던 흑인 경호원들이 손미현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경호원은 두툼하고 커다란 손으로 손미현의 어깨를 꾹 눌렀다. 겁에 질린 그녀는 꼼짝달싹도 못 했다.“연준아, 이게 지금...”“더 까발려야 인정하겠어요?”최연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테이블 위의 서류를 흘겨보았다.“이 증거로도 부족하다면 증인도 있어요.”회의실 대문이 열리자 우람한 체격의 경호원들 뒤로 두 남자가 벌벌 떨며 들어왔다.이사회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두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CCTV 속 가위로 드레스를 자르던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 유명 브랜드의 전속 모델이었다가 런칭쇼 당일에 갑자기 계약을 해지한 사람이었다.손미현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핏기라곤 없었고 옆에 있는 김성주를 미친 듯이 잡아당겼다.최연준이 씩 웃자 비서는 그의 뜻을 바로 알아채고 손을 흔들었다. 겁에 질린 두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실을 곧이곧대로 실토했다.김씨 가문 영감의 낯빛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왜... 모든 게 다 바뀐 걸까?“연준아.”김성주가 안절부절못했다.“미현이에게 이러지 마. 미현이는... 네 외숙모야. 좋게 좋게 말로 하면 안 돼? 네 외숙모도 저 두 사람에게 모함당했을 거야.”최연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고 두 눈에 그늘이 스쳤다.김자옥은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외할아버지가 마음이 약해지지 않더라고 어머니가 어릴 적의 사고 때문에 김성주에게 죄책감이 들어 망설일 것이다.손미현은 김성주에게 기댄 채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난 몰라. 아무튼... 아무튼 우리 와이프 괴롭히지 마!”김성주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최연준, 네 외숙모의 화를 계속 돋우었다간 절대 가만 안 둬.”최연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은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삼촌, 정말 죄송해요.”최연준이 김성주를 보며 말했다.“삼촌은 저 여자 때문에 우리 엄마와 여러 번이나 싸웠어요. 그리고 매번 싸울 때마다 엄마는 항상 삼촌에게 져줬죠. 하지만 이번 일은 엄마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삼촌이 아내를 감싸고 도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예요.”최연준의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감히 우리 와이프를 건드렸다간 그 누가 됐든 평생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만들 겁니다.”“너...”“가만히 서서 뭐 해?”최연준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흑인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이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당장 내쫓아. 그리고 다시는 이 건물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해!”...“아가야, 이 노래 듣기 좋아? 이건 집시들의 노래야. 하하, 내가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얼마 없지만 이 노래는 그래도 가장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어. 왜 움직이지 않아? 음... 내가 춤추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 문제없어. 지금 바로 춤춰줄게.”서지현은 망설임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이 없어도 마치 꽃밭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는 나비처럼 너무도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강서연은 정원에 앉아 까르
강소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아정을 살폈다.“숙모, 괜찮으세요?”“괜찮아.”표아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창백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표아정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숄을 단정히 여몄다.“그런데 아까 그 아이는...”표아정의 눈빛이 번쩍였다. 표아정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돌려 정승우를 바라보았다. 정승우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때 권온유가 안에서 급히 뛰쳐나오더니, 정승우의 피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와아 소리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정승우를 꼭 끌어안았다.“안 아파, 정말 안 아파!”정승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건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품 안에 보들보들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공주님이 있으니 괜히 어색하고 쑥스러워졌다하지만 속으로는 누나 걱정이 떠나지 않았고 머리가 지끈거려 불편하기도 했다. 아까 맞은 충격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 같았다.“우선 정승우를 병원으로 데려갑시다!”조순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내 차로 가요!”“최씨 연합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최군형이 덧붙였다.“제가 이미 의사에게 연락했으니, 도착하면 상처를 치료하고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저도 갈래요!”권온유는 얼굴이 엉망이 되어 울면서 정승우를 붙잡고 흔들었다.“오빠, 오빠! 제가 병원까지 같이 갈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정승우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온유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중간에서 망설이며 멈췄다.지금은 그때의 낡은 공장도 교외의 길가도 아니었다. 온유는 다시 공주님으로 돌아왔고 자기 손은 늘 더럽고 거칠었다. 그런 손으로 온유의 머리를 만질 순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우는 연합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시장님의 차로 병원에 도착한 데다 최군형이 미리 부탁해 둔 덕분에 간단한 상처지만 최고의 의사가 직접 치료에 나섰다.붕대를 감은 뒤, 정승우는 병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VIP 병실은 정승우에게 마치
정승우는 몸을 피하지 못했고 머리에 무거운 충격이 가해졌다.정대명이 다시 손을 올리려는 순간, 경찰이 제때 그를 제압하며 상황은 순식간에 진정되었다.그러나 정승우의 이마에는 수갑이 남긴 상처가 선명히 드러났고 그 틈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내렸다. 정승우는 손으로 상처를 감쌌지만, 붉은 피는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흘러내렸다.“정승우!”백인서는 놀란 목소리로 외치며 황급히 달려가 정승우의 상처를 살폈다.“이 나쁜 자식! 네가 아버지를 감히 저주해?”정대명은 경찰에 의해 제압당해 몸부림칠 수 없자 대신 고래고래 소리쳤다.“백인서! 이 빌어먹을 년... 네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놨어!”“감히 아버지를 저주하다니! 지옥 가서 천벌 받을 거야?”“이 나쁜 놈아! 네 몸엔 내 피가 흐르고 있어! 결국 넌 나처럼 될 거다, 쓰레기 같은 놈아!”“정대명 씨! 헛소리 그만하세요!”정호가 엄격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아니요! 아니요!”정대명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발로 차고 몸부림쳤다.“경찰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내 아들을 훈계하는 걸 막을 순 없지! 내가 아들만 훈계하겠냐? 저 계집애도 훈계해야지!”백인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정대명을 응시했다.정대명의 잔혹한 언행은 백인서를 순식간에 어두운 과거로 끌어당겼다.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 밤, 백인서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깊은 공포가 되살아나는 듯했다.온몸이 떨리며 심장은 쿵쿵거렸고 귓가에는 정대명의 독설이 메아리쳤다.“젠장, 이 빌어먹을 년이. 집에 있을 때도 착하게 굴지 않았어... 그때도 내가 올라타면 얼마나 반항했는지!”그 한마디는 깊은 바닷속에서 폭발한 수류탄처럼 연회장의 공기를 산산이 갈라놓았다. 그 소리는 연회장의 모든 혼란을 멈추게 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인서는 최씨 가문의 미래 며느리라는 사실을.그런데 정대명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최지용은 순간 멍하니 굳어졌다. 최지용은 본능적으로 백인서를 바라보았다. 백인서의 청초한 얼굴은 깊은 먹구름
“여기는 시장님의 연회 자리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죠.”정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곳에 인신매매범이 있다면, 반드시 체포해야겠지요!”“아니에요, 저는 인신매매범이 아니에요!”영미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외쳤다.“아이를 납치한 건 제가 아니에요! 그건 정대명이 했어요, 모든 게 그의 짓이라고요! 제발 믿어주세요!”하지만 영미의 몸부림은 허공에 흩어졌고 그녀의 비명은 점점 희미해지다 이내 호텔 밖으로 사라졌다.정대명은 이 광경을 보며 무릎이 풀리고 말았다.지금 정대명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곧 자신도 영미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정대명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며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정말 몰랐어요, 그 여자가 이런 사람이었는지! 저는 그냥 돈 받고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런 일인지 몰랐다고요!”“그 말은 경찰서에 가서 하시죠.”정호가 손짓하자, 사람들이 정대명을 데리고 가려 했다.그 순간, 정대명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있던 정승우를 향했다.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승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 눈빛에는 끝없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고 아버지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다.그러나 정승우는 정대명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다.정대명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승우의 그 적대적인 눈빛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을 찔러버렸다. 정대명은 자신이 정승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분통이 터졌다.몇 대 때리긴 했지만, 아버지한테 감히 원한을 품다니?정대명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자격지심이 뒤엉키며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 잡았다. 죽더라도 누군가를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친아들이었다.정대명은 눈빛을 돌리며 표정을 바꾸더니 큰 소리로 울며 말했다.“좋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호텔 후문에서 촬영된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선명히 비쳤다. 화면 속에는 영미와 정대명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뚜렷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음향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왔다.“제가 이미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매수했어요. 당신은 그저 그 아이를 훔쳐내기만 하면 됩니다.”“영미 아가씨, 여자애를 훔쳐서 뭘 하려는 건데? 여자애는 값도 안 나가잖아!”“제가 하라는 대로 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영미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온몸의 기운이 빠진 영미는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아니, 저 여자가 최씨 가문의 딸을 훔치려고 했다고?”“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매년 이상한 일이 생긴다지만, 올해는 더하네. 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보배 같은 아이를 훔쳐려했다고?”“말도 안 돼...”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급히 변명했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최 도련님, 제 말을 들어봐 주세요!”“음성이 이렇게 뚜렷한데, 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강소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영미를 꿰뚫어 보며 입을 열었다.“설마 저 영상 속의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영미 씨, 정말 어리석군요.”최군형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웠고 그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우리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그렇게 쉽게 매수될 거라고 믿었습니까?”“뭐라고요?”영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문밖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영미가 매수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 경호원들이었다.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영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에 영미는 몸이 떨렸다.“당신들... 날 배신한 거예요?”영미는 멍한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영미야,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강소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분들은 최씨 가문의 경호원이야. 이분들이 한 행동은 단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뿐이야
그 순간, 조순철의 묵직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온유가 돌아왔다는 이유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이유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드디어 백인서 씨의 결백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뭐라고요?”영미의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났다.“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온유의 실종이 백인서 씨와 연관되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죠.”조순철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하게 공간을 메웠다.“심지어 경쟁자들이 저를 음해하기 위해 이런 추문을 이용하려 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조순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시선을 돌려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렇죠, 영미 아가씨?”영미는 얼어붙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그 시선은 바늘처럼 날카로워 영미의 온몸을 꿰뚫는 듯했다. 영미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조... 조 시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영미 아가씨, 제 말을 정말 이해 못 하시겠습니까?”조순철의 미소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권욱의 시선은 더욱 살기를 띠고 있었다.부모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강소아와 최군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하들이 정대명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영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영미는 본능적으로 정대명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정대명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찾은 듯 온몸을 흔들며 다급히 외쳤다.“아니, 영... 영미 씨! 영미 아가씨! 제발 나 좀 도와줘!”“뭐 하는 짓이에요?”영미는 분노에 차 외쳤다.“제가 왜 당신을 도와줍니까?”“영미 아가씨가 나한테...”“그래요,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줬죠.”영
연회는 여전히 그 4성급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손님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시장님이 정말 청렴하셔서 연회도 대단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간소하게 한다는 대화였다.“무슨 소리야? 새로 취임했으니 당연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거겠지!”“하지만 권씨 가문이나 조씨 가문 정도라면 연회를 더 화려하게 할 수도 있잖아? 아무리 시장이라고 해도, 사위는 사업가 아닌가?”“맞아. 게다가 사대 가문과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좀 더 사치스럽게 해도 문제 될 건 없지.”“혹시... 이 호텔을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영미는 한쪽에서 조용히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특별한 이유라... 글쎄, 그런 건 없을 것 같았다. 영미는 그저 자신만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조순철은 무대 위에 서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순철에게 집중됐다.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조순철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다.“먼저, 오늘 연회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의 지지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성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성을 더 밝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청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하며 잔을 들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또한, 여러분께서 제 외손녀 권온유를 많이 걱정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순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권온유가 무대로 달려 나와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조순철은 권온유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무대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권온유가 납치당한 일을 알고 있었고 권온유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이 모든 행운이 가능했던 건 정승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그 순간, 정승우는 한쪽 구석에서 권온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부
“정 선생님, 아직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영미가 대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기에, 백인서를 모함하는 데 가담한 거죠?”정대명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당신이 인서의 양아버지라는 말은 사실입니까?”“그...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야!”“그렇다면 딸을 키운 정도 있을 텐데 왜 모함하려 하신 거죠?”정대명의 몸이 떨렸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정 선생님, 이제 영미조차도 당신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신다면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 될 겁니다!”그때, 바깥에서 소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소아는 정대명을 매섭게 노려본 뒤, 사람을 시켜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소연화는 최군형과 최지용을 데리고 들어왔다.“여보!”최군형은 강소아를 보자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온유와 정승우, 두 아이 모두 찾았어!”“정말인가요?”“그래.”최지용도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인서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어.”“인서는 원래부터 결백했어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아이들을 찾았나요?”“아이들이 어찌나 영리하던지, 스스로 빠져나왔더군.”최군형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날 밤, 우리가 정대명을 찾았을 때, 정대명의 머리가 다쳐 있었던 거 기억하지? 그 틈을 타 도망쳤대. 길에서 착한 운전사분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전사가 집까지 데려다줬어. 차 안에서 정승우가 휴대전화를 빌렸는데 다행히도 권온유가 자기 엄마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서 덕분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어. 아마 20분 후면, 두 아이 모두 안전하게 권씨 집안에 도착할 거야.”“정말 놀랍군요...”강소아는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답했다.“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니. 역시 아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어요! 저도 이제부터 가원이에게 제 전화번호를 외우게 해야겠어요!”“그런 말 하지 마!”최군형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미의 마음속엔 불안이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시장 선거의 마지막 대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스쳤다.지금이라도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쏠릴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그 뉴스가 백인서와 관련된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영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기자와의 약속을 잡았다.“조순철 씨의 외손녀가 실종된 사건, 알고 계십니까?”카페의 한구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영미는 얼굴을 거의 가릴 만큼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맞은편에는 기자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으며 영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이건 단순한 어린이 실종 사건이 아닙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입니다.”“영미 씨.”기자가 녹음기를 켜며 말했다.“아시는 내용을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자료는 제가 정리해 영미 씨 말씀대로 보도하겠습니다.”“좋아요.”영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알고 있기로, 권씨 가문의 어린 딸을 데려간 사람은 바로 그 공익학교 프로젝트에 있던 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백인서의 지시를 받았죠!”녹음기를 쥔 기자의 손이 떨렸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강소아는 방문 앞을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그 방에는 정대명이 갇혀있었는데 강소아가 아무리 질문해도 정대명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육경섭은 딸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희철을 시켜 예전 식으로 정대명을 다루려 했지만, 강소아가 막아섰다.현재 육씨 가문은 이미 정식 사업가로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과거의 폭력적인 방식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강소아는 육경섭을 설득해 물러서게 한 뒤,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소연화가 급히 뛰어왔다.“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소연화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화면에는 뉴스가 떠 있었고 제목은 눈에 띌 정도로 충격적이었다.[조씨 공익학교에서 터진 충격적인 추문, 관리직
가끔 차가 지나갔지만, 정승우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도 아무도 멈춰 서지 않았다.어둠이 내려앉았고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며칠 동안 육체와 마음이 지친 권온유는 이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정승우는 어쩔 수 없이 온유를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길을 걸었다.“오빠...”권온유는 울먹이며 말했다.“해가 졌어요. 저... 무서워요.”“괜찮아.”정승우는 뒤돌아 미소를 지었다.“오빠가 집에 데려다줄게.”“오빠, 우리 그냥 돌아가요...”“뭐라고?”권온유의 시선이 정승우의 피로 물든 발에 닿았다.“발이 많이 아프죠?”권온유의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오빠, 저 내려주세요. 그냥 돌아가요...”“온유야?”권온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 집이 낡고 춥긴 해도... 오빠 발에서 피가 나진 않잖아요!”정승우는 멍하니 잠시 굳어 있다가 그 어눌한 말 속에 담긴 다정함을 깨달았다.이 작은 아이는 납치당했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라도 정승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정승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집으로 향해 줄지어 날고 있었다.정승우는 온유를 데리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다짐했다.“바보야.”정승우는 온유를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난 하나도 안 아파.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그 사람이... 우리를 때릴까요?”“그럴 거야.”정승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린 시절, 정대명에게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할 때 그의 뒤통수를 내려친 한 방은 그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셈이었다.“그런데 오빠, 그 사람은 오빠 아빠잖아요?”권온유는 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하지만 오빠가 아프다고 제가 말했을 때 오빠 아빠가 들어왔었잖아요.”정승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정대명이 들어온 것은 아마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으면 함께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없어질까 봐서였었다.정대명은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