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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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열 때문에 환각이 보이나?

가늘고 쨍쨍한 목소리가 권하윤의 정신을 현실로 끌어냈고 이불이 빼앗긴 탓에 식은땀이 공기에 닿아 몸이 떨렸다.하지만 권하윤은 맥없는 팔을 들어 이불을 끄집어 당기며 여전히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더 크게 소리 지르지 그러세요? 그 정도로 질러서 다른 사람이 듣겠어요?”“너!”강수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체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 붉게 달아오른 권하윤의 얼굴을 싸늘하게 쏘아보더니 몸을 홱 돌리며 떠나갔다.권하윤은 그제야 이불을 다시 목 끝까지 끄집어 덮으며 긴장을 늦췄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이 다시 당겨졌다.하지만 이번에는 강수연이 아닌 집안 상용인들이었다.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권하윤도 아는 얼굴이었다. 바로 강수연을 가장 오래 모신 조씨 아주머니. 조씨 아주머니는 강수연의 말이라면 뭐든 듣는 사람이기에 예전부터 권하윤을 못마땅하게 여긴 데다가 강수연의 명령을 받은지라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저희가 청소해야 해서 협조해 주세요!”사용인들은 권하윤이 덮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빼앗아 갔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남겨두지 않고 말이다.만약 평소 같았으면 아무렴 괜찮았겠지만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지금, 근육이 시큰거리고 뼈마디가 아픈 데다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것 같아 권하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때문에 아래 층으로 내려가 이불을 찾는 것과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는 선택지 중에서 권하윤은 후자를 선택했다.강수연이 일부러 자기를 골탕 먹이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금 내려가 덮을 것을 찾는다 할지라도 찾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잠깐 고민하는 사이 머리가 더 무거워져 권하윤은 침대 시트를 몸에 둘렀다.점심때는 그나마 버틸만했지만 날이 어두워지자 서늘한 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와 권하윤은 끝내 잠에서 깨어났다.그러고 보니 점심때 사용인들이 통풍한다는 이유로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던 게 생각났다.‘역시 부잣집 며느리는 할 게 아니라니까. 시어머니면 모를까.’잠깐 생각해 보니 강수연 위에 민상철이 있던 게 생각나 권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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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침대 시트를 씻는 게 취미인가?

‘설마 도준 씨?’‘에이, 아닐 거야. 도준 씨면 베개로 내 입과 코를 막아 숨통을 끊어놔도 모자랄 판인데 뭐 하러 약까지 먹여주겠어.’권하윤은 스멀스멀 피어나는 희망을 스스로 짓밟아 버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민도준 외에 다른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눈꺼풀을 들어 상대를 보려 했지만 너무나 무거운 눈꺼풀은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겨우 가늘게 틈을 만들어 냈지만 천장의 등불 때문에 앞이 어지러워 눈물이 고였다.더욱이 언제 다시 돌아온지 모를 이불 덕에 다시 따뜻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그 때문에 침대 머리맡에 앉은 남자도, 복도에서 젖은 이불을 쓰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조씨 아주머니와 다른 사용인들도 보지 못했다.-다음날.권하윤이 깨어났을 때 여전히 머리가 무겁고 발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어젯밤의 기억들이 흐릿한 조각으로 머릿속에 파고들었다.그러던 그때.“깨어났어요?”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쯤 뜨고 있던 눈이 휘둥그레졌다.“도…… 지훈 씨?”민지훈은 죽 한 그릇을 들고 싱긋 웃었다.“네, 맞아요 저예요.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 아니죠?”머쓱한 나머지 권하윤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러다가 아무 일 없는 듯 주위를 살피며 슬쩍 물었다.“혼자 왔어요? 어젯밤 그 사람도 지훈 씨예요?”민지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싱긋 웃었다.“네.”“왜 그랬어요?”“돈을 받았으니 일을 하는 거죠.”“혹시 또 도준 씨 돈 받았어요?”“에이, 저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 아니에요.”민지훈은 권하윤이 죽을 먹으려 하지 않자 잠시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하윤 씨를 도와주기로 하고 돈을 받은 게 있잖아요. 그러니 끝까지 책임져야죠.”장난기 섞인 말투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A/S가 좋아야 단골손님이 생길 거 아니에요. 뭐 서비스 기한 늘리는 건 다른 얘기지만.”민지훈의 말에 권하윤의 마음은 순간 차갑게 식어 억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저 샤워 좀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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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가시 같은 지난날의 일

요 며칠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 덕에 권하윤은 USB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하지만 다시 조용해진 지금, 눈앞에 노트북까지 있으니 USB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또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조심스럽게 가방 안에서 USB를 꺼내든 권하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이 순간 마치 열어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어보는 듯 긴장감이 배로 되었다.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보지 말아야 하는 게 맞았다.공태준 같은 알 수 없는 사람의 말에 또 놀아나 민도준과 모순이 격화된 것도 모자라 관계가 완전히 깨져버린 전적이 있으니.공태준은 늘 이랬다. 아무런 준비도하고 있지 않을 때 간단한 행동 혹은 말 몇 마디로 권하윤을 마구 흔들어 당황하게 만들고 했다.성은우를 내세워 권하윤이 민도준에게 버림받게 했으니 이번에는 이 USB 안의 내용으로 권하윤이 민도준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려는 게 뻔했다.이성을 유지한다면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 게 맞다.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언제나 이성을 유지한다면 세상에 걱정거리도 없을 거다.더욱이 민도준이 권하윤의 대타까지 받아들였다는 걸 돌이켜보면 이제 권하윤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린 게 틀림없다.‘뭐, 확인하든 안 하든 크게 변할 것도 없지 않나?’순간 욱하는 마음에 권하윤은 USB를 노트북에 끼워 넣고 내용을 확인했다.클릭해 보니 안에 총 3개의 폴더가 들어 있었다.[사진], [동영상], [생일]사진과 동영상은 뭔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생일이라니 조금 의아했다.생일이라는 폴더를 클릭해 보니 안에 또 5개 폴더가 나뉘어져 있었다. 심지어 모두 날자 별로 분류되어 있었다.가장 최근의 날짜를 클릭해 보니 안에는 영상 하나가 들어있었다.영상 초반에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이더니 카메라 앵글이 휙 돌더니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빨리 감기를 누르자 공은채가 케이크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장면이 보였고 공은채가 앉은 의자 등받이 위에 올려진 뼈마디가 선명한 손을 따라 위로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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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배짱이 없어 못 하겠어요

액정을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하지만 권하윤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생각은 해 봤나?”‘민용재잖아.’이미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말투에 권하윤은 민용재가 여자를 불러 민도준의 시중을 들게 한 목적을 단번에 파악했다.권하윤을 자극하고 싶었던 거겠지.민용재와 같은 사람들 눈에는 진정한 사랑 같은 건 없을 테니까 권하윤이 민승현을 버리고 민도준에게 매달린 건 그저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거다.그러니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거라고 확신했을 테고.권하윤도 민용재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기 위해 대충 얼버무렸다.“생각했어요.”“그래야지.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거 잊지 마.”권하윤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민용재는 곧바로 남쪽 별채와 매원 사이의 정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전화를 끊은 권하윤은 문 앞에 있는 은찬을 불러왔다.“나 잠깐 나갔다 올게.”“네?”은찬은 낯빛이 여전히 창백한 권하윤이 걱정되는 듯 훑어보았다.그 눈빛에 권하윤은 한참을 설득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변명을 생각했다. 하지만 은찬은 그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밖으로 쌩 달려 나갔다.그리고 잠시 뒤, 은찬은 휠체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위에는 담요와 목도리가 놓여 있었다.그걸 보니 권하윤은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작 감기 걸린 거로 이럴 필요는 없지 않나?”은찬은 씩 웃으며 휠체어를 권하윤의 앞으로 밀었다.“그래도 안 돼요. 저 이미 하윤 누나 제대로 보살피라는 계약서에 지장도 찍었는걸요. 만약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말하면서 은찬은 손날로 목을 베는 동작을 하며 눈을 까뒤집었다.그 순간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피식”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그 덕분인지 불편하던 마음도 어느새 편해졌다.권하윤은 민지훈이 자기를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이런 일로 은찬에게 벌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게 그저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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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파혼을 도와줄 수 있어

“그저 민도준 손에 둘째네 부부가 개발했던 칩이 있는지 그것만 확인하면 돼.”민용재의 말에 권하윤은 갑자기 자기가 해외에서 찾아온 부적이 생각났다. ‘그때 도준 씨가 그 부적을 손에 넣은 뒤 안에서 뭔가를 꺼냈었는데, 그게 설마…… 어쩐지, 그때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인다 했더니 그게 도준 씨 부모님이 남긴 유물이었네.’권하윤의 마음에는 잔잔한 물결이 흘렀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무슨 칩인데요? 어디에 사용하는 거예요?”“그건 알 거 없고 그게 민도준 손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내가 권하윤 씨가 파혼할 수있도록 도와주지. 그 다음에 민도준과 결혼할 수 있을지는…….”민용재는 끝 음을 길게 늘어트리며 권하윤을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권하윤 씨한테 달렸겠지만.”전에 민상철이 과학기술 단지를 민도준에게 맡긴 뒤, 민도준이 “죽으면서” 민용재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진 거나 다름없다.그런데 지금 민도준이 다시 살아나는 바람에 민용재는 곧바로 새로운 칩 기술을 발표하여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하지만 민도준이 이 기회에 뭔가 움직임이 있을까 봐 걱정돼 권하윤을 찾은 게 틀림없다.뿐만 아니라 민도준과 권하윤이 얽히면 얽힐수록 민상철이 민도준에게 민씨 가문 사업을 맡길 가능성은 더 낮아질 테고.어찌 됐든 오명을 쓴 사람을 후계자로 둘 수는 없을 테니까.민용재를 한참 동안 훑어보다 보니 예전에 추측했던 일도 어느 정도 확신이 드는 것 같았다.민도준의 부모님의 죽음이 민용준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약 이 기회에 민용준한테서 그때 벌어졌던 일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면 민도준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권하윤은 설득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렇다면 한번 해볼게요.”민용재는 권하윤의 대답에 진작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모습을 했다. 심지어 하등한 인간을 경멸하는 듯한 신의 자태를 하로서 말이다.하지만 권하윤은 민용재의 그런 눈빛을 무시해 버렸다.“그러면 내일 혼인신고 하는 일은 어떻게 되죠?”“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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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어제 그 사람 도준 씨예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던 민도준의 말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다.물론 어제 밤새도록 같이 침대에서 뒹굴었다지만 그때는 대타의 신분으로 그런 것이기에 정식으로 만났다고 할 수도 없었고 이 순간 다시 원래의 신분으로 그것도 옷을 입고 대면하는 것이니 긴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낮에 본 영상이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권하윤은 이내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지금 이런 생각 할 때 아니야.’자기에게 경고를 날리듯 중얼거리며 심호흡을 한 권하윤은 손을 들어 노크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뭐야? 이젠 나 만나기도 싫다는 건가?’‘에이 설마. 노크 소리만 듣고 내가 온 줄 알았다고?’권하윤은 순간 드는 안 좋은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만약 낮에 USB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벌써 몸을 돌려 떠나갔을 테지만 민도준이 공은채를 바라보던 시선을 떠올리자 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더 큰 소리로 쾅쾅 문을 두드려 댔다.심지어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도준 씨…….”하지만 욱하는 마음은 민도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흩어져 버렸다.“왜 옷도 안 입고 있어요?”민도준은 허리에 타월을 두른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권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건 하윤 씨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한테 옷 입을 시간은 줬어? 왜? 이젠 내 방문까지 부수려고?”한마디 뱉어낼 때마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민도준의 몸에는 아직 욕실의 열기와 습기가 묻어 있었다. 더욱이 원체 높은 체온과 어우러져 압박해 오는 바람에 권하윤은 뒷걸음질 쳐대느라 민도준이 뭐라 말하는지 듣지도 못했다.민도준이 자기를 무시하거나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토록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져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끝내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앞만 바라보던 권하윤의 시선은 자연스레 민도준의 가슴에 떨어졌다.잘빠진 근육에 물기가 촉촉이 남아 있는 걸 보자 순간 눈앞이 어질했다. 이윽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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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저를 버렸잖아요

권하윤은 숨이 턱 막혀 저도 모르게 민용재가 그렇게 할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현재 민승현은 민도준을 처리하지 못해 안달 나 있으니 그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뛰쳐나와 증언할 거고 일이 그렇게 커지면 민상철은 아마 원하지 않는대도 가문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 거다.그렇다면 평소면 몰라도 권력 다툼을 하는 이 시점에 민도준은 아예 후계자 선상에서 제외되는 건 물론 외부에까지 영향이 미칠 거다.생각하다 보니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그때 아무 말 안 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놀랐어?”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제 존재가 도준 씨한테 폐를 끼칠까 봐요.”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피식 웃더니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재밌네. 이제 하윤 씨 목숨은 걱정 안 되나 봐?”솔직히 그런 건 맞다.권하윤은 왠지 자기가 민도준이라는 남자한테 완전히 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순간까지 머릿속에 온통 민도준 생각뿐일 리 없을 테니.하지만 민도준은?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두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앞으로 또 침대에 몇 명이나 끌어들일지 모르는 일이었다.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저 걱정하는 사람도 없는데 죽든 말든 이제 상관없어요.”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민도준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 권하윤을 향해 손을 저었다.“이리 와.”권하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얼굴이 위로 들렸다.“이제 나한테까지 눈치 줘?”“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권하윤의 표정은 여전히 뚱해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저으며 민도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다.그 때문에 순간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민도준은 권하윤의 턱을 홱 들어 올렸다.“조금 잘해줄까 하면 기어오르네.”그다지 사나운 말투는 아니었지만 권하윤의 눈시울은 이내 붉어졌다.순간 공은채한테는 이렇게 말하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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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아픈 사람 괴롭히지 않아

“왜요?”권하윤의 눈빛에 민도준은 미간을 찌푸렸고 눈에서 포악한 빛을 내뿜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필요 없어.”권하윤의 얼굴은 일순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만약 민도준 부모님의 복수를 대신 해줄 수 있다면 그나마 보상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거절하다니.눈을 내리까는 순간 가슴도 가라앉았다.“알겠어요.”하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에게 피할 기회도 주지 않으려는 듯 턱을 꽉 잡은 채 들어 올렸다.“민용재가 뭘 물어보든 사실대로 말해. 알았어?”“어떻게 그래요? 만약 그거로 도준 씨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민도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그래도, 어떤 걸 말해도 되고 어떤 걸 말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권하윤은 자기의 말로 민도준이 또 위험에 빠질까 두려웠고 더욱이 민도준의 계획이 틀어질까 봐 두려웠다.자기의 존재가 민도준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걸 생각하니 권하윤은 죄책감이 들어 또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그 표정에 민도준은 할 수 없이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내 말 들어. 민용재 보통 사람 아니야. 하윤 씨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그러니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해야 민용재가 하윤 씨한테 손대지 않을 거야. 알겠어?”지금 민씨 저택 내부는 겉보기에는 평온한 것 같지만 곧 폭풍우가 몰아칠 위기다.더욱이 마지막 후계자 싸움에서 피를 보는 건 당연하고 그 누구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도 당연하다.그런데 그런 풍랑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권하윤 같은 사람은 눈치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민도준의 말에서 이제 곧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게 된 권하윤은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도준 씨, 혹시 위험한 거 아니에요?”“뭐 그럴지도 모르지.”민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하더니 권하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왜? 내가 죽으면 뭐, 같이 죽기라도 하려고?”진지하지 않은 말투였지만 권하윤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다.심지어 민도준의 옛사랑이든 새로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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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쪽팔려

민도준은 뒤로 넘어질 것처럼 젖힌 권하윤의 작은 머리를 받쳐 들고는 무심한 듯 대답하더니 잇따라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하윤 씨가 그렇게 불쌍한 척하는데 체면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어?”“아니,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목욕하다가 감기에 걸린 것뿐이라고요…….”권하윤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하필 이 타이밍에 아팠다는 것도 솔직히 의심스럽긴 하겠지.하지만 민도준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권하윤의 고개를 꾹꾹 밀더니 장난기 섞인 말투로 속삭였다.“내가 씻겨 주지 않았다고 지금 탓하는 거야?”권하윤은 그 말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저 조심하지 않아…….”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민도준이 갑자기 권하윤을 밀어버리며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입고 나오더니 권하윤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밖으로 걸아 나가기 시작했다.권하윤은 떨어질까 봐 무의식적으로 다리로 민도준의 허리를 감싸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어디 가요?”“데려다주려고. 내가 보살펴 주지 않았다고 또 며칠 병나면 안 되잖아.”‘진짜 왔었나 보네.’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권하윤은 온몸이 찌릿해 났다.그런데 아직 밤도 아닌데 이런 자세로 민도준의 품에 안긴 채 나간다면 사람들이 그야말로 대 충격에 휩싸일 걸 생각하자 권하윤은 정신을 차린 듯 버둥대기 시작했다.“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내려 줘요.”하지만 버둥대기 바쁘게 민도준의 손바닥이 엉덩이를 내리쳤다.“계속 움직이면 사람들 앞에서 다른 거 할 수 있어.”권하윤이 순간 얼어붙자 민도준은 손으로 권하윤의 엉덩이를 가볍게 문질러댔다.“착하지.”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찬은 두 사람이 나오는 걸 보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길을 내주며 문까지 열어주었다.그 순간 권하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민도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어떡해, 쪽팔려서 이제 다른 사람들 얼굴 어떻게 봐.”몸을 한껏 움츠린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선심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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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잠재우다

강수연은 민도준의 포악한 눈빛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시각, 권하윤 역시 민도준 눈에 드리운 살기와 목덜미에 툭 튀어나온 핏줄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민도준의 가슴을 살살 긁었다.지금 같은 다사다난한 시기 강수연에게 뭔 짓을 했다간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도 골치아플게 뻔하기에 권하윤은 민도준이 말썽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았다.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작은 손이 마침 눈에 들어온 순간 민도준은 눈을 살짝 들어 권하윤을 바라봤다. 이윽고 걱정 가득한 권하윤의 눈빛을 마주하자 그제야 들끓던 화가 조금이나마 사라졌다.품속의 여인을 살짝 주무르다가 눈꺼풀을 든 순간 다시 건들건들하는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이만합시다. 저도 우리 제수씨 재워야 해서요. 만약 보고 싶다면 내일 아침 일찍 방에 들어오시던가요.”민도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수연한테서 빠득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심지어 민도준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때 너무 빠르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하지만 민도준은 앞에 넘어진 사람을 무시한 채 가로 지나며 긴 다리로 문을 닫아버렸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수연의 몸도 부르르 떨렸다.분노와 공포 그리고 울분의 감정이 뒤섞인 채 강수연은 주먹으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그 시각, 복도 끝에서 지팡이를 짚고 있던 민승현이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난장판이 된 밖과는 달리 방안은 조용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작은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갈 거예요?”베개 위에 누운 자세로 애타게 바라보는 권하윤의 눈빛에 민도준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권하윤을 자기의 팔 사이에 가두었다.“그러면 뭘 더 원하는데?”광선이 민도준의 넓은 어깨에 가려져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안전감이 들었다.이윽고 손을 뻗어 민도준의 팔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저 재워준다면서요?”민도준은 손목시계를 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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