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그러고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미안해요. 잘못 보냈어요.]핸드폰도 배터리가 없어 전원이 꺼졌다.그녀는 충전기를 찾았으나 망가졌는지 핸드폰에 전원을 꽂아도 반응이 없었다.그때 서랍에서 진동이 울렸고 장소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랍을 열었다.전연우가 준 핑크색 핸드폰이었다.장소월은 바로 전원을 꺼버리고 자신의 낡은 핸드폰을 들고 방에서 걸어 나가고는 도우미에게 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저녁 6시.전연우는 마지막 회의를 끝마치고 회의실에서 걸어 나왔다. 핸드폰을 본 순간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 같았다. 핸드폰엔 스팸 메시지와 쓸데없는 부재중 전화 말고는 아무것도 와있지 않았다.“하루 종일 별장에서 뭐 했대?”전연우의 뒤에 서 있던 기성은의 귀에 못마땅한 듯한 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연우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회의 서류를 책상에 던져버렸다.기성은이 보고했다.“아가씨는 계속 남원 별장에 계셨습니다. 새 핸드폰은 줄곧 꺼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도우미가 말하기를 아가씨께서 원래 쓰던 핸드폰을 수리 보냈다고 합니다.”그가 선물한 액세서리도 하지 않았고, 5년을 입어온 낡은 옷만 걸치고 있는 그녀다.그 돈...전연우는 그녀가 자신과 조금의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전연우는 그녀가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고집할지 궁금하기까지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수리 가게에서 장소월에게 연락했다. 그녀의 핸드폰은 이미 시장에서 도태되어 부품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그 대답을 들었어도 장소월은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다시 돌려달라고 말했다.그녀는 별로 외출하지 않기에 핸드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여섯 시 반, 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차렸다.장소월이 시계를 확인해보았다. 늘 같은 시간에 남원 별장에 돌아오던 사람이 오늘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장소월이 말했다.“기다릴 필요 없어요. 밥 먹어요.”은경애가 말했다
이번 생에서도 전연우는 송시아와 함께 있다.그녀에게 있어선 의외도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장면이다.송시아의 등장은 그녀로 하여금 또다시 선명히 되새기게 만들었다. 말끝마다 자신과 결혼하겠다던 남자는 두 번의 생이 지나도록 변한 것 하나 없다.송시아는 그가 살려내고 성장시킨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장소월은 여전히 잘 아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송시아의 그 도발 섞인 오만한 눈동자와 득의양양한 얼굴은 그녀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장소월, 넌 퇴물이야. 전연우는 두 번의 인생에서 모두 나를 선택했어!’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장소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당장 전연우가 송시아와 결혼한다고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아니, 곧바로 별장을 떠나 그녀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그녀는 장해진의 딸이 아니다. 때문에 남원 별장도, 남천 그룹도 모두 그녀의 소유가 아니다.이곳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남는 건 엄마의 사진뿐이었다.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장소월은 옆쪽 아기방에 들어가 조명을 켰다. 별이는 언제 일어났는지 눈을 뜨고 깜빡이고 있었다. 여태껏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무던히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전혀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아기 같지가 않았다.그녀는 줄곧 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별이는 신기하게도 벌써 철이 든 것 같았다.장소월은 아이를 품 안에 안았다. 별이는 나른히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대고 비비적거렸다.그녀는 살며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한참 후 아이가 잠이 들자 다시 침대에 내려놓았다.서재 안, 전연우는 이제 술이 어느 정도 깨어 있었다.정계 인사들과의 술자리라 거부할 수 없어 조금 술을 마셨는데 또다시 위병이 도졌다.송시아는 다급히 그에게 물을 따라준 뒤, 익숙한 손길로 방 안에 있는 약상자를 찾아오고는 안에서 위장약을 꺼냈다.전연우의 깊은 눈동자가
“연우 씨... 권력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안 그래요?”“잊지 말아요. 당신이 자선가로서 기부했던 그 거금들을 누가 다시 벌어왔는지요.”여자는 사람을 홀리는 요괴처럼 그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목석처럼 덤덤하기만 했다. 전연우가 장소월에 대해 밝히기 전, 모든 사람들은 송시아가 전연우의 부인이 될 거라 생각했다.만약 파파라치가 백화점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장소월을 찍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먼저 오른 건 단연 송시아였을 것이다.한참을 침묵하던 전연우가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 단언한다고?”“당연하죠. 전생의 당신이든, 현생의 당신이든 야망을 갖고 있다는 건 똑같잖아요. 당신은 이익을 위해 장소월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번 생도 마찬가지예요. 그저 제가 조금 더 길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죠. 하지만 괜찮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당신이 장소월과 결혼하든 말든 나한테 큰 영향은 없어요.”쓸모없는 인간의 결말은 단연코 버려지는 것, 단 하나밖에 없다.두 번의 삶을 살았어도 장소월은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아침 여섯 시 반 날이 채 밝지 않은 시간, 안방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조용해지고 나서야 그녀는 흐릿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다. 15분 뒤, 문고리가 움직이더니 미세한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가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고 몇 번 돌려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장소월이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품 안 아이는 시끄러움에 잠이 깨어 한참 끙끙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다른 열쇠가 열쇠 구멍을 막고 있었기에 전연우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장소월은 문밖에서 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다시 깊게 잠들었다.그렇게 잠든 그녀는 점심 12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은경애가 들어왔을 때, 장소월은 잠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아이고, 아가씨, 어디 불편하세요?
장소월은 지금 이 순간 한없이 어두운 얼굴로 문밖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아래층에 앉아있는 사람은 어쩌면 앞으로 남원 별장의 안주인이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우린 그냥 직원과 고용주의 관계일 뿐이에요. 앞으로 아주머니는 일하고 돈만 받으시면 돼요. 오지랖 부리면서 제 일에 관심 두지 마세요!”가끔 은경애는 확실히 선을 넘는다.장소월은 이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 분명히 느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오 아주머니!전연우도 그랬다!모두 그녀에게 크나큰 교훈을 안겨주었다.설사 이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만 남겨진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다.“아침부터 왜 이렇게 난리야!”돌연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은경애는 화들짝 놀랐다. 반면 장소월은 증오가 가득 담긴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남자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송시아가 전연우의 등 뒤에서 입을 열었다.“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요.”전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장소월의 눈에 의기양양하게 조소하고 있는 송시아의 얼굴이 들어왔다. 송시아의 옷이 어젯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뒤 전연우를 보는 장소월의 눈동자에 담긴 증오가 더더욱 짙어졌다.장소월이 차갑게 시선을 거두었다.“아주머니, 별이 데리고 화실에 가 계세요.”“네네. 알겠습니다.”은경애는 재빨리 별이에게 옷을 입힌 뒤 안고 방에서 나갔다.장소월의 얼굴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 흥분한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전연우는 그녀가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전연우는 평소 입던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이마에 손을 올리자 그녀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전연우의 손이 허공에서 덩그러니 멈춰 섰다. 그는 머쓱하게 주먹을 말아쥐고 내려놓았다.“송시아가 별장에 온 데에 별다른 의미는 없어. 어젯밤 거부할 수 없는
장소월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앙되었다. 그를 보면 볼수록 화가 치솟아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방에서 나가고는 화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에 아이를 안고 있던 은경애는 화들짝 놀랐다.장소월은 숨이 쉬어지지 않아 심장 쪽을 꽉 움켜쥐었다.은경애가 다급히 아이를 내려놓고 달려왔다.“아이고! 아가씨, 왜 그러세요? 심장이 불편하세요? 제가 바로 의사 선생님 모셔올게요.”장소월이 은경애의 옷을 잡았다.“조금 쉬면 괜찮을 거예요.”사실 장소월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전연우가 강제로 그녀와 타협하려 한다는 걸, 또 강제로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는 걸.아래층에선 송시아가 식탁에 앉아 도우미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식탁에 놓은 반찬은 모두 장소월이 좋아하는 담백한 것들이었다.“여기 음식 솜씨 진짜 훌륭하네요.”송시아가 상석에 앉은 남자를 보며 방긋 웃어 보였다.“걱정하지 말아요. 소월 씨도 깊이 고민해봐야 해요. 계속 이렇게 오냐오냐해주면 더 엇나갈 거예요.”“연우 씨!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전연우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도우미가 그릇과 수저를 전연우 앞에 놓아주었다.3초 뒤, 전연우가 돌연 폭발하며 그 그릇과 수저를 바닥에 엎어버렸다. 순식간에 유리그릇이 산산이 조각나버리고 말았다.주방에서 일하던 도우미들은 이미 일찌감치 대표님의 불편한 안색을 눈치챘다. 하여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하던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송시아도 화들짝 놀랐다. 이어 전연우가 벌떡 일어나 위층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역시 장소월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송시아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불렀다.“연우 씨! 지금 올라가면 소월 씨는 더 막 나갈 거예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형으로 만들려면 내 충고대로 해야 한다고요.”전연우가 걸음을 멈추었다.하지만 그때, 은경애가 쪽파 하나를 들고 나왔다.“아가씨, 그 말은 틀렸어요. 요즘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에 있어요. 남편이
송시아의 눈동자에서 흥분감이 일렁였다. 대체 뭘 증명하기 위해 이토록 연이어 질문한단 말인가?그녀가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걸 비웃기 위해?두 번의 삶을 사는 동안 그녀는 똑같이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쉽게 얻을 수 있다.하지만 이번 생에선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평탄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강영수의 아이를 어떻게든 찾아내 키우며 그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생각이었다.그녀가 아니었다면 강영수에겐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전생에서 송시아가 했던 말처럼 그녀는 재앙이다. 그녀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위험을 맞닥뜨려 한 명씩 그녀를 떠나고 말았다.송시아가 장소월에게 전생의 기억 때문에 이토록 흥분하는지 알아보려 시험적인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차분히 맞받아쳤다.“전생이요? 송시아 씨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젯밤엔 오빠를 집에 바래다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아이는 가짜예요. 오빠가 보육원 문 앞에서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가엾은 마음에 데려와 키운 것뿐이에요. 매체에서 흘러나온 기사들은 다 루머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장소월의 그 말에 송시아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장소월도 자신의 입에서 송시아와 전연우 사이를 응원한다는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송시아가 표정을 가다듬고 장소월을 향해 피식 웃고는 느긋하게 식탁 위에 놓인 반지를 들었다.“당연히 오해는 안 하죠. 연우 씨와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어떤 사람이 연우 씨 와이프 자리에 제일 잘 어울리는지 알고도 남죠.”보아하니 장소월은 전생의 기억을 찾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찾았다면, 지금 그녀의 행동은 장소월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며 미쳐 날뛰게 하기에 충분할 테니 말이다.“그 입 다물어!”먼저 미쳐버린 사람은 장소월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전연우는 옆에 있던 의자를 잡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도우미가 재빨리 몸을 피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크게 다칠 뻔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등지고 있었
은경애는 실망감이 역력한 얼굴로 보는 눈 없는 이 남자를 쳐다보았다.‘저런 간단한 이간계도 보아내지 못한다고? 저 여자 딱 봐도 악의를 갖고 도발한 거잖아?’은경애가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아가씨는 안 그래도 대표님에게 원망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죠. 그렇게 심한 말을 하셨으니 아가씨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아마 힘들 겁니다. 아가씨는 확실히 이 아이와의 접촉을 꺼립니다. 계속 시간을 보내다 정이 들면 이후 떠나기 힘들 테니까요. 이제 보니... 아가씨의 마음속에는 대표님에 대한 실망감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래서 더더욱 미련 없이 떠난 거고요.”부부가 다투면 결국 상처받는 건 아이뿐이다.아가씨는 겉으론 아이를 아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종래로 자신의 아이라 인정한 적이 없다.별이가 아무리 말을 잘 듣고, 엄마라고 부른다고 해도 절대 이 이상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떠날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다.은경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아이를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럴 수 없다. 받은 돈이 있으니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이제 거실엔 송시아와 전연우 두 사람만 남았다.“연우 씨, 설마 정말 장소월에게 마음을 주기라도 한 거예요?”송시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모든 것을 손에 넣고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이상을 잃다니.“정말이에요? 하... 연우 씨, 난 그냥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줄 알았어요!”“연우 씨와 장소월은 혈연관계 남매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전연우가 분노로 새빨개진 눈으로 노려보며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는 몇 미터 뒤에 있는 벽에 밀쳐버렸다.그 순간 전연우는 마치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 갇혀있다가 뛰쳐나온 공포스러운 맹수와도 같았다...“죽고 싶으면 계속 말해!”...장소월은 곧바로 터미널로 향했다.매표소 직원이 말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표를 사려면 주민등록증이
장소월이 작업실에 나타나다니, 박원근에게도 참으로 의외인 일이었다.작업실 직원들은 모두 넋을 잃고 갑자기 등장한 여자의 미모를 감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듯 천성적으로 고급스러움을 타고난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게 만들곤 한다.박원근과 주시윤이 회의실에서 걸어 나올 때, 프런트 직원이 장소월을 막으려 일어섰다. 박원근이 얼른 그를 막아 세웠다.“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이야.”장소월이 안으로 들어가자 주시윤이 물 한 컵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난 네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박원근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장소월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저 스승님의 제자잖아요. 선배님들도 있는데 제가 왜 못 오겠어요. 스승님은요?”박원근이 안경을 슥 올리며 말했다.“허 교수님께선 여전히 예전처럼 학교에서 수업하고 계셔. 오랫동안 오지 않았으니 넌 지금 이 작업실을 맡은 새로운 책임자가 누구인지 모를 테고 예상도 하지 못할 거야.”장소월은 유리창 밖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을 포착한 주시윤은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으로 커튼을 닫았다.“작업실에서 2, 3년 정도 일한 후배들이야. 어떤 후배들은 졸업한 지 1년밖에 안 됐어.”장소월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지날 줄 몰랐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4년이 지나다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어린 후배가 저였는데... 사무실이 많이 성장했나 봐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선배님들의 부담도 줄어들겠어요.”박원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저 애들이 하는 일은 별로 없어. 대부분 너한테 의지하는 거지 뭐. 네가 줄곧 도와주지 않았다면 골치 아픈 의뢰인들의 요구를 만족해주지 못해 속 꽤나 태웠을 거야.”주시윤도 말을 보탰다.“맞아! 처음엔 3, 4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팀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스튜디오가 됐네. 솔직히 좀... 감동이긴 해!”장소월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