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아의 눈동자에서 흥분감이 일렁였다. 대체 뭘 증명하기 위해 이토록 연이어 질문한단 말인가?그녀가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걸 비웃기 위해?두 번의 삶을 사는 동안 그녀는 똑같이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쉽게 얻을 수 있다.하지만 이번 생에선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평탄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강영수의 아이를 어떻게든 찾아내 키우며 그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생각이었다.그녀가 아니었다면 강영수에겐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전생에서 송시아가 했던 말처럼 그녀는 재앙이다. 그녀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위험을 맞닥뜨려 한 명씩 그녀를 떠나고 말았다.송시아가 장소월에게 전생의 기억 때문에 이토록 흥분하는지 알아보려 시험적인 질문을 했지만, 그녀는 차분히 맞받아쳤다.“전생이요? 송시아 씨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젯밤엔 오빠를 집에 바래다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아이는 가짜예요. 오빠가 보육원 문 앞에서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가엾은 마음에 데려와 키운 것뿐이에요. 매체에서 흘러나온 기사들은 다 루머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장소월의 그 말에 송시아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장소월도 자신의 입에서 송시아와 전연우 사이를 응원한다는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송시아가 표정을 가다듬고 장소월을 향해 피식 웃고는 느긋하게 식탁 위에 놓인 반지를 들었다.“당연히 오해는 안 하죠. 연우 씨와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어떤 사람이 연우 씨 와이프 자리에 제일 잘 어울리는지 알고도 남죠.”보아하니 장소월은 전생의 기억을 찾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찾았다면, 지금 그녀의 행동은 장소월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며 미쳐 날뛰게 하기에 충분할 테니 말이다.“그 입 다물어!”먼저 미쳐버린 사람은 장소월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전연우는 옆에 있던 의자를 잡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도우미가 재빨리 몸을 피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크게 다칠 뻔했다.장소월은 전연우를 등지고 있었
은경애는 실망감이 역력한 얼굴로 보는 눈 없는 이 남자를 쳐다보았다.‘저런 간단한 이간계도 보아내지 못한다고? 저 여자 딱 봐도 악의를 갖고 도발한 거잖아?’은경애가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아가씨는 안 그래도 대표님에게 원망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죠. 그렇게 심한 말을 하셨으니 아가씨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건 아마 힘들 겁니다. 아가씨는 확실히 이 아이와의 접촉을 꺼립니다. 계속 시간을 보내다 정이 들면 이후 떠나기 힘들 테니까요. 이제 보니... 아가씨의 마음속에는 대표님에 대한 실망감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래서 더더욱 미련 없이 떠난 거고요.”부부가 다투면 결국 상처받는 건 아이뿐이다.아가씨는 겉으론 아이를 아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종래로 자신의 아이라 인정한 적이 없다.별이가 아무리 말을 잘 듣고, 엄마라고 부른다고 해도 절대 이 이상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떠날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다.은경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아이를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럴 수 없다. 받은 돈이 있으니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이제 거실엔 송시아와 전연우 두 사람만 남았다.“연우 씨, 설마 정말 장소월에게 마음을 주기라도 한 거예요?”송시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모든 것을 손에 넣고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이상을 잃다니.“정말이에요? 하... 연우 씨, 난 그냥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줄 알았어요!”“연우 씨와 장소월은 혈연관계 남매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전연우가 분노로 새빨개진 눈으로 노려보며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는 몇 미터 뒤에 있는 벽에 밀쳐버렸다.그 순간 전연우는 마치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 갇혀있다가 뛰쳐나온 공포스러운 맹수와도 같았다...“죽고 싶으면 계속 말해!”...장소월은 곧바로 터미널로 향했다.매표소 직원이 말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표를 사려면 주민등록증이
장소월이 작업실에 나타나다니, 박원근에게도 참으로 의외인 일이었다.작업실 직원들은 모두 넋을 잃고 갑자기 등장한 여자의 미모를 감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듯 천성적으로 고급스러움을 타고난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게 만들곤 한다.박원근과 주시윤이 회의실에서 걸어 나올 때, 프런트 직원이 장소월을 막으려 일어섰다. 박원근이 얼른 그를 막아 세웠다.“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이야.”장소월이 안으로 들어가자 주시윤이 물 한 컵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난 네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박원근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장소월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저 스승님의 제자잖아요. 선배님들도 있는데 제가 왜 못 오겠어요. 스승님은요?”박원근이 안경을 슥 올리며 말했다.“허 교수님께선 여전히 예전처럼 학교에서 수업하고 계셔. 오랫동안 오지 않았으니 넌 지금 이 작업실을 맡은 새로운 책임자가 누구인지 모를 테고 예상도 하지 못할 거야.”장소월은 유리창 밖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시선을 포착한 주시윤은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으로 커튼을 닫았다.“작업실에서 2, 3년 정도 일한 후배들이야. 어떤 후배들은 졸업한 지 1년밖에 안 됐어.”장소월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지날 줄 몰랐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4년이 지나다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어린 후배가 저였는데... 사무실이 많이 성장했나 봐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선배님들의 부담도 줄어들겠어요.”박원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저 애들이 하는 일은 별로 없어. 대부분 너한테 의지하는 거지 뭐. 네가 줄곧 도와주지 않았다면 골치 아픈 의뢰인들의 요구를 만족해주지 못해 속 꽤나 태웠을 거야.”주시윤도 말을 보탰다.“맞아! 처음엔 3, 4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팀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스튜디오가 됐네. 솔직히 좀... 감동이긴 해!”장소월이 물었다
장소월이 고개를 돌려보니 박원근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어 주시윤도 맥주 한 병을 들고 들어왔다.“후배님이 왔는데 내가 빠져서야 되겠어?”장소월이 물었다.“야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술 마셔도 돼요?”주시윤이 박원근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요즘 나랑 원근이는 사무실에서 지내고 있어. 의뢰인 쪽에서 연말에 게임을 출시해야 한다고 해서 힘들더라도 매일 야근하고 있어. 그럼 편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잖아. 지금 집값도 말도 안 되게 치솟아서 돈 없으면 장가도 못 가.”장소월은 종래로 경제적인 고민은 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재산에 남들은 평생 벌어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서울시 중심 지대 집들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장소월의 우월한 가정환경이 부러웠다.하지만 그저 그녀의 화려한 껍데기만 봤을 뿐, 속이 얼마나 아프게 곪아 터져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장소월은 그들과 함께 있으니 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최소한... 그들에겐 자신만의 목표가 있으니까.장소월은 줄곧 흐릿한 정신으로 정처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예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했던 꿈은 이루었다. 요즘은 그 어떤 것에도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 허무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장소월은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 술을 마시지 않았다. 박원근과 주시윤은 술에 취해 해롱해롱한 상태로 사무실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였다.요즘은 밤이 참 긴 계절이다. 돌연 사무실에 남겨두었던 머플러가 생각나 목에 두르고 아래로 내려갔다.작업실 아래는 크나큰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장소월은 베이지색 실 원피스를 입고 코트를 걸친 채 조명 아래 벤치에 앉았다.그녀가 손을 뻗어 밤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를 받았다. 눈송이는 손바닥에서 빠르게 녹아내렸다.“강영수, 눈이 오고 있어...”그는 전연우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다.두 번의 인생에서 전연우로 인해 수많은 아픔을 겪은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도 아가씨는 여전히 강영수를 놓지 못하고 있다!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마음에 남는 법이니.장소월도 만만치 않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성은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어젯밤 송시아가 대표님과 함께 남원 별장에 들어갔으니 난리가 났겠지... 다만 쫓겨난 사람이 장소월일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전연우는 빨간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 보석 날카로운 부분이 전연우의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 닿아 붕대로 또다시 피가 스며들었다.기성은이 말했다.“대표님,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올까요?”그 순간 장소월의 다리에 담요를 덮어주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박원근이 장소월의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난 네가 집에 돌아간 줄 알았어.”술에 취했던 박원근은 실은 그녀가 밖에 나가자마자 깨어나 3층에서 한동안 그녀를 지켜보았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했다.장소월은 차가워진 손을 말아쥐고 고개를 들어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저 이제 집 없어요. 유일한 가족이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셔서 저 혼자 남았거든요.”박원근은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미안해. 일부러 마음 아픈 일을 끄집어내려 했던 건 아니야. 정말 미안해.”장소월이 의연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미안해할 것 없어요. 사람은 언젠간 다 떠나가게 돼 있잖아요. 저 혼자서도... 나쁠 것 없어요.”사실 장소월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든 말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기분이 그들에게도 전해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리에 덮여있는 담요를 들고 몸에 걸쳤다.“돌아가서 일해요. 처음으로 선배님들과 야근하는 건데 열심히 해야죠.”박원근은 고개를 끄덕이고 난 뒤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때 강렬한 차 상향등이 박원근의 몸에
“송시아는 아직 쓸모가 있어서 옆에 두는 거야. 다시는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할게.”장소월은 고개를 쳐들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응시했다.“...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야! 그 여자를 해외로 보내든 집에 들이든 난 관심 없어.”“오늘 일은 이미 다 잊어버렸어. 이제 와 다시 거론하는 건 의미 없어.”“그 별장은 애초부터 네 소유고 난 그저 얹혀살았던 거뿐이잖아.”“내일 경애 아주머니한테 별장에 있는 내 물건 가져다 달라고 할게.”기성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고하듯 그녀를 노려보았다.“아가씨, 대표님에겐 거부하기 힘든 자리라는 게 있습니다. 송시아 씨는 성세 그룹의 부대표이기 때문에 두 분이 함께 나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대표님의 위장병은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재발하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그랬고요. 아가씨께서 뛰쳐나가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으셨습니다...”“됐어요!”장소월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바람에 귀를 찢을 듯한 마찰음이 작업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눈을 내리뜨리고 서늘하게 그를 쳐다보았다.“네가 이룬 건 다 네 능력 덕분이고, 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그냥 재수 없는 운명 탓이라고 생각하겠지! 여자들이 집에 드나드는 거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개가 똥을 못 끊는 법이잖아. 넌 종래로 너한테 오는 여자 막지 않으니까.”“너한테서 쫓겨난다고 해도 괜찮아. 내가 떠난 이유는 너같이 역겨운 사람과 단 한순간도 함께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거든.”“오늘 또 강제로 날 데려가려고 왔다는 거 알아. 날 협박하는 것 외에 네가 할 줄 아는 게 도대체 뭐야?”“전연우, 네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든 영원히 그 사람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해.”“네가 외부에 온갖 위선을 다 떨어서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네가 얼마나 더러운 쓰레기인지 절대 잊지 못해!”전연우가 말했다.“욕 다 했어?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다른 방법 써도 돼. 화 다 풀리면 나랑 집에 가자.”장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낼 수 있겠는가?“전연우, 네가 뱉은 말 후회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장소월은 순간 손에 쥐고 있던 과도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성은이 깜짝 놀라며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지만 이미 한발 늦어버린 뒤였다. 그녀는 이미 날카로운 과도를 전연우의 목에 찔러넣은 상태였다.살을 찢는 고통이 밀려왔다. 목에서 뜨거운 액체가 느껴져 손으로 만져보니 손톱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깟 아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더욱 아픈 건 바로 마음이었다.그녀는 정말 그를 죽이려 했다!“대표님!”기성은이 곧바로 장소월의 손에서 과도를 빼앗아 던져버렸다.전연우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뜻을 표했다.작지도, 그리 깊지도 않은 상처였다.전연우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장소월보다 훨씬 더 솟아오른 몸집에서 차가운 위압감이 풍겨 나왔다.장소월의 손은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음산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던 그가 돌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장소월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여기로 도망 오면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 난 너한테 그토록 많은 기회를 줬는데 넌 번번이 내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리고 있어. 이제는... 날 죽이려고까지 해?”“장소월... 너 정말 미쳤구나!”장소월이 곧바로 그의 말에 맞받아쳤다.“이 모든 것은 다 네가 날 궁지로 내몰았기 때문이야. 남원 별장에서 꺼지라고 네가 직접 말했잖아. 왜 또 날 찾아온 건데? 전연우, 우린 원수지간이야. 넌 강영수를 죽였고, 강씨 노부인을 죽였어. 그러면서 왜 난 널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야? 넌 그저 극악무도한 살인자일 뿐이잖아!”“너만 죽으면 아무도 날 강제로 네 그 역겨운 얼굴 보게 하지 않을 거야!”“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병에 걸려 죽는 게 나을 뻔했어. 다시 한번 죽는 거 별로 두렵지도 않아!”그녀가 마지막 글자를 내뱉은 순간, 전
“강지훈 손에 들어간 사람은 단 한 명도 북경 감옥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어. 생각 잘 해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해. 강지훈으로부터 소현아를 구해낼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어.”장소월 또한 북경 감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형수들만 갇혀 있는 그곳에선 죽어 시체가 되는 것 외에 나올 방법이 없다.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발을 들이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곤 한다.전연우는 이미 자리에 앉았고, 도우미들은 두 세트의 그릇과 수저를 식탁에 올려놓았다.장소월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짓누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결국 그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장소월은 고작 몇 입만 깨작거렸다. 전연우가 집어준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서 말이다.어느덧 시간은 새벽 열두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전연우가 식사를 마쳤을 때, 식탁 위 반찬도 거의 식어버렸다.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 순간 장소월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약속한 대로 현아 무사히 집에 보내줘. 그러면 앞으로... 나도 어디에도 가지 않고 얌전히 남원 별장에만 있을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은 강제로 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어.”“난 성세 그룹 안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너랑 결혼은 더더욱 싫고.”“마지막으로... 네가 누구와 결혼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짧은 자유를 끝으로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 그녀는 또다시 영혼 없는 인형이 되어버렸다.3층 복도, 별이는 아직 울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시체마냥 뚜벅뚜벅 걷고 있는 장소월의 귀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침실로 돌아온 뒤 다시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반지를 발견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빠르게 잠이 들었다.깊은 밤 고요한 서재 안, 전연우는 서랍 안에서 담배 한 대를 들고 돈뭉치를 꺼내놓았다.“아주머니가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에요.”은경애는 돈을 보고서도 바로 받지 않고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