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말고 너한테 또 무슨 얘기를 했어?”장소월은 거울 속에 비친 전연우를 보며 그의 표정을 통해 마음에 찔려하는지 보려고 했지만, 그는 포커페이스에 능숙하여 아주 침착해 보였다.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송시아가 장소월을 찾았을 때 이미 자신도 환생했다고 고백했다.송시아의 성격 상 전연우에게 모든 것을 말했을 게 뻔했다. 그에게 전생에 그가 어떻게 장소월을 포기하고, 어떻게 비밀리에 일을 꾸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송시아와 함께 했는지 말이다.그들 사이에는 아이가 있었다. 전연우는 전생처럼 이 이유만으로도 그녀와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내가 뭘 알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장소월은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백윤서와 송시아만이 오빠 마음속에서 중요한 존재야. 오빠는 그 두 사람만 신경 쓰면 돼. 나한테 이러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야. 난 사흘 뒤에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이미 예약했어. 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 오빠가 날 지켜보는 것도 소용없어. 내 집이 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 혼자여도 괜찮아. 지금의 난 스스로도 모든 걸 할 수 있어. 누구한테 의지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전연우, 당신은 자신의 능력으로 장씨 가문을 벗어났으니까 더 이상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지 마. 우리 관계는 여기서 끝이야.”“여기서 끝인지 아닌지는 네가 정할 게 아니야. 받아들이기 싫어도 그냥 견뎌야 해. 네가 떠나고 싶어도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전연우는 장소월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돌아세웠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목걸이를 그녀에게 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협박했다.“제운으로 돌아가서 다시 강영수랑 만날 망상은 하지 마. 지금의 강씨 가문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난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잖아? 소월이 착하지? 오빠 말 잘 들어.”장소월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전연우, 영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꼬집고 악마 같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
그들 사이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예정된 것 같았다. 그의 곁에 있는 장소월의 신분도 마찬가지였다.그 후 보름 동안 장소월은 송시아를 보지 못했고 그녀는... 이미 프랑스를 떠난 것 같았다.장소월은 결국 어머니의 기일도 놓쳤다.이 기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장소월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겼다. 어젯밤 전연우는 또 밤새도록 그녀를 원했고 깨어났을 때 창 밖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다.전연우가 그녀를 돌보기 위해 고용한 하인도 그녀를 안타까워했다.장소월은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여기에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마리아는 가디건을 가져다가 장소월에게 걸쳐 주며 말했다.“오늘 호텔에서 분수쇼가 있으니 꼭 보러 가세요. 방에 계속 틀어박혀 있으면 병에 걸릴 거예요.”장소월은 기운 없이 어두운 밤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팠어요. 마리아, 돌아가셔도 돼요. 나를 지킬 필요가 없어요.”“하지만 전 대표님은 제가 당신을 돌봐주길 원해요.”“괜찮아요. 당신을 탓하지 않을 테니 그냥 날 좀 내버려둬요.”“알았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해요. 언제든지 연락 주면 올게요.”마리아가 떠난 후 장소월은 불이 켜지지 않은 발코니 소파에 앉아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어둠 속에서 장소월은 환각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은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는데... 엄마, 나중에 죽으면 나도 별이 될까요?”“소월아, 사람이 죽으면 바람도 될 수 있고 햇빛도 될 수 있는 거란다... 마음으로 원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지금처럼 소월이가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할 때면 엄마는 네 곁에 나타날 거야.”“만약 언젠가... 내가 못 버티면 엄마는 날 원망할 거예요?”“너에겐 자유가 있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전연우는 파티에서 돌아와 술냄새가 몸에 배어 있었고, 기성은은 옆에서 그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발코니쪽으로 걸어가자 밖에 홀로 앉아 허공을 바라보
전연우가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을 입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가까이 걸어왔다. 장소월은 멍하니 자리에 서 있다가 저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 바람에 어깨에 둘렀던 카디건이 바닥에 흘러 떨어졌다.“너... 다 들었어?”“전연우, 난 미치지 않았어. 나 정말 엄마를 봤단 말이야.”전연우는 허리를 굽혀 카디건을 줍고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소파에 걸쳐놓았다. 이어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는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품에 껴안았다.“집에 돌아가고 싶으면 가자. 기성은에게 이미 내일 서울로 돌아갈 항공권을 끊으라고 했어.”장소월은 그의 품에 기대었다. 그의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가 왜 갑자기 결정을 바꾸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그의 몸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향수 향을 맡았다. 역겨움이 꿈틀거렸지만 그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장소월은 전연우가 그저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침 8시, 전연우가 잠들어있는 그녀를 안고 전용 비행기에 타 있었으니 말이다.장소월은 아직 꿈나라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전연우의 다리에 누워있었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기성은이 말했다.“최고 실력의 심리상담사를 모셨습니다. 오늘 안에 서울에 도착할 겁니다.”“알았어.”무거운 전연우의 대답이 들려왔다.귀가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함에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왜 비행기 안에 있단 말인가.창밖을 바라보니 군데군데 떠 있는 구름 송이도 볼 수 있었다.전연우는 그녀의 앞에 아침 식사를 놓아주었다.“출발한 지 얼마 안 됐고 저녁 6시 전엔 도착할 거야. 일단 아침밥 먹어.”장소월은 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담요를 다리에 덮었다.“고마워. 하지만 나 지금은 배 안 고파.”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말을 안 들으면 지금 당장 비행기를 착륙시킬 거야.”“알았어.”장소월은 정말이지 입맛이 없었지만 어쩔
엄마의 존재는 그녀에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준 것 같았다.분명 환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비록 허황하고 거짓스러운 환경일지라도 장소월은 엄마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엄마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그리고 그 우유...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장소월의 눈시울이 붉어진 눈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 담겨있었다.“하지만 우유 때문에 받은 트라우마가 너무 잔인해. 마주할 수도 없고 마주해본 적도 없어. 그저 말없이 결과를 견뎌내고 있을 뿐이거든. 예전 일어났던 모든 일들, 나 다 기억해.”“전연우, 난 널 죽여버리고 싶어! 매번 널 볼 때마다 죽이고 싶어서 미치겠어.”장소월이 가감 없이 마음속의 말을 내뱉었지만 전연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는 눈곱만큼도 위협이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전연우가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잘 자.”그는 장소월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성은이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숨이 막힐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기성은이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가 보고했다.“인시윤 씨가 대표님의 귀국 소식을 아시고는 소월 아가씨를 위해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가구와 인테리어 모두 예전 그대로 맞췄다고 합니다.”“그 집으로 보내지 않을 거야. 내가 알아서 해. 나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서울에 도착하니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오랜만에 돌아오다 보니 공항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녀가 떠났던 4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그들은 VIP 통로로 공항을 나갔다.서울에도 가을이 찾아와 밤이 되나 꽤나 쌀쌀했다. 차엔 에어컨을 틀고 있어 춥지 않았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본래의 아담했던 건축물은 모두 하늘 높이 솟은 고층 건물이 되어 있었다. 차에 타고 달린 지 어느덧 30분이 지나고 있었다.이 길... 남원 별장으로 가는 건가?
전연우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회사를 매입했고, 그 필요한 자금은 인씨 가문에서 제공했다.당시 주식 시장은 급격히 요동쳤었다. 서울 제일 명문가인 강씨 가문도 위기를 맞아 휘청거렸으니 인씨 가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가까스로 연명해나가던 중소기업들은 파산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인씨 가문에도 크나큰 위기가 닥쳤다.2년 전.전연우는 인씨 저택에 가 인경아를 만났었다.인경아는 전연우가 상업계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강씨 집안이 남원 그룹을 지지하기 전에도 그는 아름다운 성과를 냈고 서울 업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했으나 장해진의 충실한 개로 살아온 그는 유혹적인 이익 앞에서도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야심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전연우는 장씨 가문 전체를 집어삼키고 싶어 했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3000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장해진의 양자라는 것을 떠나 솔직히 난 자네를 좋아하네. 인하 그룹에도 자네와 비슷한 출신의 사람들이 많네. 자네 같은 성과를 이루는 건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야. 오늘 난 시윤이의 얼굴을 봐서 한 번 자네를 만나보기로 했네.”인경아가 손을 뻗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나가게.”그녀는 이어 인시윤을 노려보았다.“넌 네 방에 돌아가. 오늘 일은 이후 다시 따져 물을 거야.”인시윤은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전연우를 두둔했다.“엄마... 연우 씨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돼요? 그 돈 인씨 가문에게도 적지 않은 액수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여기저기 모아보면 충분히 도울 수 있잖아요.”그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인경아는 인시윤의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어렸을 때부터 인시윤은 엄마의 손에서 애지중지 자랐다. 이렇게 뺨을 맞는 건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극히 드문 일이었다.“너 저놈한
전연우가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는 담배연기를 뿜어냈다.“과정은 중요하지 않아요.”본래 담배를 피우지 않던 전연우였지만, 그녀가 떠난 이후 니코틴 냄새에 중독되어 버렸다. 끊으려고 해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자네가 황준엽을 죽였나?”인경아의 말에 인시윤도 전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인시윤은 전연우와 처음 접촉했을 때부터 그에게 적잖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바로 그런 신비로움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한 번 깊숙이 빠져버리니 그다음엔 발을 뺄 수가 없었다.전연우가 말했다.“사모님, 살인을 말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또한... 오늘 전 돈에 대해 논의하려고 온 겁니다.”이건 전연우가 쥐고 있는 최고의 패이기도 했다.인씨 가문은 각종 영역에 손을 뻗고 있다. 유독 석유 분야만 빼고, 말이다. 예전 인씨 가문은 황씨 가문과 협력하려고 했었지만 황준엽이 감옥에 간 탓에 무산되고 말았었다.오늘 전연우가 그 계약서를 자신의 눈앞에 들이밀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전연우는 이미 인경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그가 서울의 주인이 된다면, 그때의 서울에 어떤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그 유전은 가치가 무려 1조 달러를 넘어서는 황씨 가문이 탐내던 먹잇감이다.황씨 가문은 황준엽이 갖고 있던 이 유전을 찾으려다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그런 유전이 전연우의 손에 있었을 줄이야.인경아 또한 그 먹잇감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못해 망설이기 시작했다.장사꾼은 이익 앞에선 거리낄 게 없다는 말에 인경아도 예외는 아니었다.“사모님, 잘 생각해보세요.”인경아가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며 그에게 방어막을 쳤다.“그 좋은 패를 가졌으면서 왜 우리 인씨 가문을 선택했는가? 아무 은행에나 찾아가 담보로 맡긴다면 3000억을 빌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그건 저에게 사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모님, 저와 도박 한 번 해보지 않으시겠어요?”“이 일에 위험이
전연우와 인시윤의 약혼식은 그다지 성대하지 않았다.신문에 실리긴 했지만 많은 회사의 파산 소식에 묻히고 말았다. 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전연우는 그 돈으로 가장 낮은 가격으로 부동산과 금융 증권, 그리고 곧 무너질 기업들을 사들였다.경제 위기가 끝나자 모든 회사를 가동했고 성세 그룹을 창립했다. 3년도 채 되지 않아 성세 그룹의 주식 가치는 당시 최고의 기업인 강한 그룹을 뛰어넘었다.3000억... 전연우의 손에서 그 돈은 열 배로 불어났다.단번에 서울에 혜성같이 나타난 신귀족이 된 것이다....장소월은 인시윤이 프랑스에 나타났을 때부터 어딘가 찝찝함을 느꼈었다.참으로 웃기는 노릇이지 않은가!전연우는 인시윤과 약혼까지 했으면서 왜 또...장소월의 존재가 전생의 송시아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그럼 그녀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가정을 깨는 제삼자?또한 인시윤은 전생의 가엾은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장소월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뒤 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손발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경련했다.그는 여전히 전생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장소월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를 듣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귀를 막아버렸다. 단 한 글자도 듣고 싶지 않았다.이렇게 더러운 관계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역겹다!얼마나 지났을까, 고요했던 복도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은 그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을 잠가 버렸다. 이어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뒤 분노에 차올라 탁자 위 장식품을 힘껏 문으로 던졌다.“가! 날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란 말이야!”문 위쪽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그녀의 바람대로 소리가 멈추었다. 하지만 전연우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이제 더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우리 둘뿐이야.”장소월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네 말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아. 너무 역겨워. 전연우!”전연우가 그런 방식으로 성세 그룹을 세웠을지는 생각지도 못했
도우미가 말했다.“사모님께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입니다. 모두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전연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도우미는 겁에 질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는 주방에 내려가 모든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렸다.4명의 도우미가 바삐 돌아쳐 다시 한 상을 차려냈다.반 그릇 정도의 설탕물을 먹이니 장소월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또 어디 불편한 곳 있어?”장소월은 침묵하다가 30초가 지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네가 날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어.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나 내일 이 집에서 나갈 거야.”전연우가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잖아. 그냥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면 안 돼? 이제 아무도 와서 널 귀찮게 하지 못 할거야. 날 제외하곤 그 누구도 오지 못하게 할게.”장소월이 말했다.“날 미쳐버리게 하고 싶은 거야? 전연우, 난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어. 난 널 죽일 수도 있단 말이야!”전연우가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너 몸이 회복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줄게.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작업실을 만들어 줄게. 응?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해.”오늘 밤의 전연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다.평소의 그가 맞는지 믿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아직도 모르겠어? 전연우, 난 죽을 때까지 널 받아들이지 못해! 생판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더라도 너와는 함께하지 않아. 남자라면 인시윤의 옆으로 돌아가 아껴주고 사랑해줘. 너에 대한 인시윤의 마음에 상처 주지 말고.”장소월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와 더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미 그녀의 앞날을 모두 결정해 놓았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그가 정해놓은 운명에 따를 수밖에 없다.그의 차가움, 그의 외면, 그의 배신!이 모든 것들은 이미 장소월의 마음속에 날카로운 비수로 꽂혔다.잊으려 노력해본 적도 있지만 익숙한 사람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전생에서 당했던 고통이 고스란히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