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은 한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펜을 들고 문제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럼 무릎 꿇고 깨끗이 닦으라고 하면 되지.”다른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재미난 구경을 하고 있었다.설채윤은 더러워진 발을 치켜들고 비웃으며 말했다.“뭘 봐? 무릎 꿇고 깨끗이 닦으라는 말 못 들었어?”“그.. 그래.”소현아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 시골에서 올라왔다. 돼지고기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고 나중에 서울로 이사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학 온 것이다.하지만 이 학교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전학생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그녀의 집에서 돼지고기를 팔았기 때문이다.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인삼도 있고 녹용도 있고 다양한 장사를 하지만 친구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계속 비웃기만 했다.“무슨 신발이 2천 만 원씩이나 하지?”문 어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은 소현아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미소를 지었다.“소월아!”방금 옆 반에서 장소월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장소월은 다가가 값비싼 신발을 보았다. 확실히 최근 출시한 전 세계에 단 다섯 켤레밖에 없는 한정판이었다. 하지만... 장소월은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그 다섯 켤레가 모두 그녀의 신발장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소월은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현아가 더럽힌 신발 세탁비는 내가 물어줄게.”장소월은 지갑에서 5만 원을 꺼냈다.“이거면 충분하지. 남은 돈은 택시 타고 다녀와.”“장소월?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고작 5만 원만 주고 퉁치겠다? 이 신발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설현아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장소월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그녀는 돈을 장소월의 얼굴에 던졌다.“지금 뒤에 백이 생겼다고 내가 널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마. 남의 일에 신경 끄고 꺼져.”“현아는 날 도와준 적이 있으니, 이 일은 꼭 참견해야겠어.”강영수라는 든든한 백이 없다고 해도 장소월은 이런 상황에서 돕
‘강용 전에는 멀쩡하더니 지금은 왜 미친놈처럼 굴지? 본성이 나쁜 애는 아닌데 대체 왜 저렇게 화가 났지?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저 자식을 상관하겠어? 계속 저러면 자기만 손해지!’올림피아드 시험이 곧 다가왔으니 소월은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다.학교가 끝나고 장소월은 특수반에 갔다. 어젯밤 그 시험은 자격시험이었고, 결국 세 명 만 남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칠판에는 어젯밤 시험 성적이 붙어있었고, 장소월은 단연 1등이었다.“누구는 든든한 백 있어서 좋겠다. 보름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1등을 하고. 우리는 쟤 들러리야 뭐야? 기차를 몇 시간이나 타고 왔는데, 결국 내일 돌아가야 하잖아.”“됐어. 우리는 능력 있는 남자친구가 없잖아. 우리처럼 가난한 애들은 여기 와본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쉿, 그만해!”여러 명의 시선이 장소월에게 쏠리더니,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즉시 입을 다물었다.비꼬는 말들, 그리고 곱지 않은 시선들, 모두 무언가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았다.장소월은 담담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난 분명 내 실력으로 시험에 합격했어. 그런데 너희는 뭐가 불만이지? 지난번 시험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 한 번 더 보면 되겠네.”몇몇 남학생이 나서서 장소월의 편을 들었다.“그래도 전교 2등 하던 소월이가 굳이 이런 시험에서 불공정한 수단을 썼겠어? 거기 지방 애들,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땡땡이치고 쇼핑하러 가지 않겠나. 그 정성을 공부에 쏟았으면 남의 성적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겠네.”원래 수군대던 몇몇 여학생들의 얼굴은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갔다.떠나는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한 사람과 부딪혔다.백윤서가 들고 있던 자료는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미안, 미안. 고의가 아니었어.”“괜찮아. 너무 어두워서 내가 주의하지 못했어.”백윤서는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몸을 구부린 채 책을 주웠다.특수반에서 막 나온 몇몇 여학생들은 모두 멍하니 여자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강한 그룹 대표 같은 남친이 없는 걸 어떡해!”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걸었고, 백윤서도 마침 뒤에 있던 여학생들의 말을 들었다. ‘소월이가 요즘 특수반에 있어서 집에 늦게 돌아갔구나. 그럼 진짜 올림피아드 팀에 다시 들어오려나?’장소월은 스테이플로 자료를 정리하다가 갑자기 검지에서 강렬한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 사이에 새빨간 피가 맺히고 눈꺼풀이 동시에 뛰면서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다행히 녹슬지 않아서 따로 파상풍 치료를 할 필요가 없었다.저녁 9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업이 끝났고, 장소월은 화장실에 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뒤를 보았지만 컴컴한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왠지 누군가 몰래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장소월은 손에 남은 물기를 털고 교실로 돌아와 가방을 들고 떠날 준비를 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누군가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비상계단으로 끌고 갔다. 장소월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강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고 음성 감지 제어 등이 켜졌다. 눈앞의 사람을 본 장소월은 순식간에 평온해졌다.강용은 술에 취했는지 그녀를 끌어안고, 자신의 온몸을 여자의 몸에 기대고 있었다. 뒤에 벽이 없었다면 장소월의 허리는 끊어졌을 것이다.“강용, 뭐 하는 거야!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변했어. 장소월, 너 번했어!”그의 말투는 사나웠지만 약간의 슬픔이 담겨있었다.“강용, 이거 놔! 이러면 곤란해!”장소월은 그의 얼굴을 밀었지만, 남자의 힘이 너무 셌다.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여자친구도 생겼는데 이러는 건 좀 아니지?”장소월은 차갑게 말했다.“가짜야!”장소월은 흠칫 놀랐다.“뭐라고?”“여자친구 아니라고. 너 열 받으라고.”남자를 밀어내던 장소월의 손은 천천히 내려갔다. 순간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고, 귓가에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몸에서는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다...그녀는 뭐라 말하고
그녀는 강용을 힘겹게 부축해서 학교 밖으로 나갔다.강씨 집안의 기사가 차를 몰고 다가왔다.장소월과 함께 있는 사람을 보고 기사는 즉시 차에서 내려 그를 차에 태웠다.“아가씨, 왜 둘째 도련님과 같이 있는 거죠?”장소월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설명하자면 길어요. 일단 먼저 돌아가요!”“죄송합니다. 일전에 노부인께서 허락 없이는 둘째 도련님을 절대 강씨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장소월은 이 일을 잊고 말았다!“그럼 일단 셋집으로 가요.”장소월은 조수석 뒷자리에 강용을 태우고, 그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조수석에 앉아 길을 안내했다.어느새 한 골목에 도착했다. 장소월이 한동안 머물던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장소월과 기사는 함께 인사불성이 된 강용을 부축하여 올라갔다.화단 밑에 숨겨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벽 뒤의 등불을 만져 켜보니 집안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했다. 계속 누군가 머물렀던 집 같았다.테이블 위에는 남은 반찬이 있었다.‘설마... 강용이 계속 여기서 지냈나?’강용을 침대에 눕히고, 기사는 그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장소월은 침대 위에 있는 사람을 보고 말했다.“제가 여기서 돌봐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와서 봐 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사모님은 이 시간에 분명 잠드셨을 겁니다.”“그럼 됐어요. 제가 좀 더 생각해볼게요. 혼자 여기에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강용의 어머니는 아주 아름답고 온화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좀 몸이 약해 보였다.강용도 분명 어머니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아가씨, 안심하세요. 둘째 도련님 별일 없을 거예요. 우리는...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큰 도련님께서 아신다면 분명 화내실 겁니다.”“그럼 우린 돌아가죠!”장소월은 강용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방의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강용은 그녀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좋은 친구이지만, 결코 남녀 관계가 될 수는 없었다.그녀가 좋
전생에 전연우와 살면서 깨우친 사실이다.장소월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켰다. 강영수가 여러 통의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녀는 받지 못했다. 창문가에 서서 잠옷을 입고 머리카락은 약간 젖은 채로 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익숙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 안 잤어?”그녀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그녀의 목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초승달이었다.“언제 돌아와?”남자는 피식 웃었다.“소월아,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어. 정확히 말하면 15시간 12분밖에 안 지났다고. 왜? 학교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장소월은 긴장한 듯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렸다.“너... 보고 싶어!”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그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머릿속에는 그녀가 전연우에게 수없이 이런 말을 했던 전생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소리뿐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소리! 더이상 방해하지 말라는 내연녀의 목소리!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장소월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고,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강영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넥타이를 잡아당기고는 창가로 갔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이쪽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게. 늦었어. 어서 자.”“끊지 마. 조금만 더 통화하면 안 될까?”“그래, 너 잠드는 거 기다릴게.”부스럭대는 소리, 그리고 이불 소리. 아마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장소월은 이불 속에 누워 손을 머리에 베고는 머리맡에 휴대폰을 놓으니 여전히 통화 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잤어? 아니면 아직도 바빠?”“방금 샤워했어. 조금 있다가 잘 거야.”“영수야... 나 이야기 들려주면 안 돼? 한 번도 자기 전에 누군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어.”장소월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은 후 바로 세상을 떠났다.어릴 때부터 오 아주머니가 그녀를 키웠고, 아버지는 그녀를 거의 안은 적
오전 수업 동안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장소월은 자꾸 어젯밤 비상 계단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그의 말들!장소월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생각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잡념을 떨쳐버리고 칠판을 보는데, 선생님이 어디까지 강의했는지 알 수 없었다...1교시는 흐리멍덩하게 지나갔다.첫 번째 줄 창가 자리에 앉은 장소월은 뒤에서 인시윤과 백윤서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골드 색 초대장을 백윤서 앞에 내밀며 말했다.“이 초대장은 내가 인씨 가문 미래 후계자 자격으로 너랑 연우 오빠를 정식으로 초대하는 거야. 이번 주말 인하 그룹은 발표회 만찬이 있을 예정이야. 둘이 함께 제시간에 참석하기를 바라.”백윤서는 한 번도 이렇게 귀한 초대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인시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미안, 시윤아. 회사 일에 대해 난 잘 몰라. 하지만... 이걸 연우 오빠한테 전달하지 않을 거야. 만약 오빠가 가겠다고 하면 내가 꼭 같이 갈게.”“응, 격식 있게 잘 차려입고 와. 괜히 장씨 가문 체면 구기지 말고.”백윤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얼굴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시윤은 또 장소월에게 다가와 초대장을 건넸다.“이건 너한테 주는 거. 우리 큰 오빠랑 만나고 있으니 미래에 내 새언니가 될지도 모르잖아. 지난번 일은... 큰오빠한테 이미 호되게 혼났어. 걱정 마. 강용의 일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 큰 오빠한테 꼭 전해줘. 난 큰 오빠가 꼭 왔으면 좋겠어.”인시윤이 장소월과 백윤서를 대하는 말투는 확연히 달랐다. 백윤서를 대할 때는 말투가 강하고 약간 불쾌함도 섞여 있었다.하지만... 장소월을 대할 때는 훨씬 부드럽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잘 전할게.”“고마워.”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인시윤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강영수 외에 장소월밖에 없을 것이다.인시윤은 자리로 돌아갔고 장소월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회사 일이라면 왜 하필 인시윤을 통해 부탁하
하지만 장소월을 미래의 새언니로 생각해 몇 마디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진짜 한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그리고... 백윤서와는 영원히 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전연우의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장해진 그 음흉하고 간교한 늙은이는 줄곧 계산이 빨랐다.한 편으로 딸을 통해 강씨 집안과 손을 잡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양자를 통해 인씨 집안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었다.장해진은 이를 얻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아이도 버릴 수 있는 인간이다.전연우도 그저 백윤서 하나를 버리는 것에 불과했다...남천 그룹.장해진은 퇴임한 후 간만에 회사에 왔다. 그는 대표 자리에 앉았고, 전연우는 아래에 앉아 최근 재무제표를 건넸다.이번 매출액은 이전보다 32%나 올랐고, 회사 창립 이후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그리고 이 별 볼 일 없는 숫자들은, 장씨 가문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요즘 회사 상황이 좋아. 네가 잘 이끌어준 덕분이야.”전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닙니다. 강씨 가문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년 안에 회사 규모를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장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딸의 공로가 컸다. 용케도 강영수의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요즘 소월이는 강씨네 집에서 어떻게 지낸대? 가봤어?”“소월이는 학업이 바빠 거의 만나지 못했어요. 가끔 윤서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만나면 몇 마디 나누곤 합니다.”백윤서 얘기를 꺼내자 장해진의 얼굴이 급히 어두워졌다.“너희 아직도 만나는 거냐?”전연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네.”“잘 생각해. 보잘것없는 여자를 원하는지, 아니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피라미드 위에 널 세울 수 있는 여자를 원하는지. 너도 이제 어리지 않아.”장해진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전연우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너도 내 아들이야
그녀의 스타일만 본다면 어느 유흥업소의 간판 마담인 줄 알 것이다.10여 년 전 무도장에서 가장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에 귀걸이는 에메랄드 주얼리였다.손목시계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어 40억은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이다.하지만 이런 돈들은 장해진의 피를 조금 빼는 정도에 불과했다.강만옥은 다가와 전연우의 몸에 달라붙더니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저 인간이 네 여자친구한테 손을 쓰려나 보네? 조심해!”전연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슴 위에 얹은 여자의 손을 보더니 단번에 뿌리치고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때마침 사무실 도어벨이 울리기 시작했다.“들어와요!”전연우가 돌아서는 순간, 강만옥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깃들었다.기성은이 들어와 보고했다.“윤서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들여보내.”“네.”강만옥은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 붉은 입술로 활짝 웃었다.“왜? 우리 사이를 남들이 오해할까 봐?”남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강만옥은 피식 웃었다.“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했어. 장해진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난 못 속여...”백윤서도 어쩌면 전연우의 도구일지 모른다.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이용할 수 있는 그는 정말 진심이라곤 없는 인간이다.그런 전연우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피라미드에서 내려오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지 강만옥은 너무 기대되었다.전연우는 과연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강만옥은 허리를 비틀며 사무실을 나섰고 마침 입구에서 백윤서와 마주치고는 가볍게 웃고 떠났다.백윤서는 손에 보온병을 들고 말했다.“오빠, 미안해요. 제가 방해했죠?”전연우는 얼굴에 부드러운 가면을 썼다. 방금 강만옥을 대할 때의 무뚝뚝함은 보이지 않았다.“여기까지 웬일이야?”“우리 같이 밥 먹은 지 너무 오래됐잖아요.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삼계탕을 샀는데... 우리 같이 먹어요!”“와서 앉아.”전연우는 소파에 앉았고 백윤서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보온병을 열고 보니 안에는 남자가 집에서 즐겨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
온몸에 토사물을 뒤집어쓴 강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머리 위에서 소현아는 계속하여 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에도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강지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고 화장실로 데려갔다.엉망진창이 된 바닥과 자신의 몸을 확인한 강지훈의 몸에서 오싹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주... 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전화 한 통에 달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정리된 후였지만 주변을 맴도는 살기는 여전히 무시무시했다.“저녁에 대체 뭘 먹인 거야!” 강지훈이 소리쳤다.규영과 미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냥 중국 요리 몇 가지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드셨습니다.”강지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장 요리사 불러와. 너희 둘은 알아서 벌을 받을 준비 하고.”곧이어 요리사부터 식재료 구매 담당과 음식을 나르는 도우미까지 모두 불려왔다. 그 누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얼마 후 소현아는 마침내 구토를 멈추고 창백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너무 힘들어 눈물까지 글썽거렸고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아까 규영 씨랑 미진 씨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소현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강지훈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처벌받으러 갔어.”소현아는 못마땅한 듯 그를 쏘아봤다. “왜 벌을 줘요? 제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데. 배가 불편한데도 아기가 노는 거라고 착각해서 계속 먹었던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규영과 미진은 그녀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강지훈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강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평소에도 많이 먹었잖아. 언제 이렇게 심하게 토한 적 있었어?”소현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평소에도 아주 많이 먹는다. 오
소현아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단순히 아기가 뱃속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입을 크게 벌려 음식을 삼켰다.그렇게 한 술씩 떠먹다 보니 어느덧 세 사람 몫의 음식을 모두 비워냈다. 그러고는 꺼억 트림까지 내뱉었다.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덩달아 만족감을 느꼈다.특히 직접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준 미진은 벅찬 성취감까지 느끼는 듯했다.“오늘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나왔나 봐요. 기억해뒀다가 요리사님께 말씀드려서 앞으로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어요.”소현아는 급기야 목구멍까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먹었던 음식들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애써 눌러 참으며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저는 뭐든지 다 잘 먹어요. 가리는 거 없어요. 다만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가고 싶어서 밥을 안 먹는 거예요.”규영과 미진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방문이 활짝 열렸다.강지훈이 제복을 입고 검은색 군화를 신은 채 매서운 냉기를 휘감으며 들어왔다.“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즉시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공손하게 인사했다.강지훈은 곧장 소현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때를 발견하고는 휴지로 닦아주었다.“오늘 많이 먹었어?”규영과 미진이 대답했다.“네. 모두 드셨습니다.”강지훈은 텅 빈 식판을 힐끗 보고는 명령했다.“나가 봐.”곧이어 방 안에는 그들 둘만 남게 되었다.강지훈은 외투를 벗고 셔츠 차림으로 성큼성큼 침대 곁으로 걸어가 앉았다.“이리 와.”소현아는 배를 감싸 안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싫어요. 당신 손이 닿으면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아기도 당신 싫어해요. 매번 당신이 만질 때마다 발로 찬다고요. 발로 차면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은 매일 총을 잡고 있는지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런 손이 얇고 부드러운 피부에 닿았으니 무척이나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더욱이 그는 요즘 그녀의 배를 만지는 것에 푹 빠져버렸다. 만질 때마다 너무 아파 미칠 지경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