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기름을 따르던 강용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장소월은 조심하지 않아 유리에 손끝을 베었다. 피가 흘러내렸지만 덤덤한 얼굴로 휴지로 닦아내고는 말했다.“하지만 강용은 이미 대가를 치렀잖아? 오빠에 비하면 강용은 그저 성격이 조금 거칠 뿐이야. 친구 사이에 투덕거리는 건 흔한 일이지.”그는 손과 발이 부러져 몇 개월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쁜 짓을 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처벌을 받지 않는다.그녀는 더는 이 화제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전연우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빠, 같이 밥 먹을래? 쟤 음식 솜씨 좋아.”전연우는 그녀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순수하고 무해해 보였지만 낯선 거리감도 자리 잡고 있었다.전연우는 그녀가 이렇듯 상냥한 말보다 마음속의 감정을 꺼내 자신에게 토해내기를 바랐다. 지금처럼... 거짓된 모습이 아니라 말이다.“하지만 집에 남는 그릇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빠는 접시에 담아 먹어야 해. 그릇 하나는 강용이 직접 갖고 온 거야.”전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색 정장의 단추를 잠그며 싸늘하게 말했다.“너한테 3일을 줄 테니까 짐을 정리해. 내가 데리러 올게.”장소월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거절했다.“난 돌아가지 않아!”“네 뜻대로는 안 돼. 의부님은 나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잖아.”전연우가 집에서 나갔다.강용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얼른 와서 거들어.”그는 고추를 씻으며 고추 고기볶음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생각을 거두고 주방으로 걸어갔다.그렇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주시할 것이다.이제 장소월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조용한 밥상 위.장소월이 고추를 한 입 깨물었다.“내일...”“아직 오늘 음식도 채 먹지 않았는데 벌써 내일 끼니 생각을 해? 너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야?”그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강용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었
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강용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그의 성적 향상을 지켜보고 있었다.저번에 치른 지리 시험에서 강용은 그녀가 준 필기대로 공부해 꽤 높은 점수인 89점을 받았다. 마지막 두 문제의 풀이 과정에서 몇 점을 깎였다.문과는 모두 암기 과목이라 그에겐 별로 어렵지 않았다.예전 성적이 형편없이 낮았던 건 그저 공부와 담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공부하겠다는 결심만 선다면 강용은 그 누구보다도 잘할 것이다.오후 세 시, 장소월은 흥취반 수업에 갔다.강용도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강용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소월을 찾아갔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곧바로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책가방을 바닥에 던지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두 다리를 책상 위에 걸쳐놓았다. 널찍한 교복 바짓자락이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말 안 듣는 불량학생 기운이 짙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어디에 있어?”허철이 걸어왔다.“또 왔어? 너 계속 이렇게 괴롭히다간 쟤 미쳐버릴지도 몰라. 그만둬. 장소월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잖아? 학교에서 쫓겨난 것도 쟤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강용은 어깨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툭툭 털며 입술을 꽉 깨물고 허철과 시선을 마주했다. 방서연은 그의 손목을 잡고 구석으로 끌어간 뒤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얌전히 사람으로 살 것이지, 꼭 말도 못 하는 개가 되고 싶어 한단 말이야.”강용이 짜증이 잔뜩 섞인 얼굴로 일어나 책상을 쾅 내리치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학생들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앞으로 똑똑히 기억해. 장소월을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 누가 감히 내 뒤에서 허튼소리를 지껄인다면 학교 뒤 호수에 집어넣어 그 더러운 뇌를 깨끗이 씻어내게 만들 거야.”강용이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장소월에게 카드를 건네며 비아냥거렸던 곽원주였다.당시 강용은 학교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월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곽원주는 강용에게 짓눌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용은 학교에 오기만 하면 한 손으로
방서연이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허철... 장난은 그렇게 치는 게 아니야!”“만약 네가 장소월이 받은 상처를 입고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고 생각해봐. 그게 웃기겠어?”방서연은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허철은 머리가 아둔해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한다.허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아버지의 죄 어쩌고 하는 것도 그만해. 요즘 법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야. 장해진은 분명 언젠가 법의 심판을 받고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장소월에게 왜 아버지의 죄를 들먹이며 비아냥거리는 거야?”“...”“강용은 양아치 같아도 무슨 일에서든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행동해. 강용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망나니가 아니야. 공부와 담을 쌓고, 술을 마시고, 카드를 치며 제멋대로 살지만 언제 한 번이라도 다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거 본 적 있어?”허철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그 자식 설마 성경험도 없는 거야?”“아니. 대학교 퀸카와 했다는 건 거짓이었어!”“그럼 백윤서는? 백윤서를 좋아하지 않았어? 그날 두 사람은 늦은 밤까지 차를 타고 돌아다녔어. 걔들은 진짜지!”허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눈앞의 호수를 바라보며 바람에 날리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내 생각이 맞다면 장소월에게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야!”그는 어쩌면 훨씬 전부터 장소월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허철은 도저히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대체 왜! 너 어떻게 알아? 난 못 믿어!”“실은 병원에 있을 때부터 장소월을 측은하게 생각한 것 같아.”“거짓말!”“그때 병원에서 강용이 옷을 들어 올렸을 때 봤던 복부에 새겨졌던 달 모양 문신을 기억해?”허철은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당시 강용이 왜 이런 문신을 새기고 있는지 의아해 그에게 물었지만 강용은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그럼 처음부터 장소월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건가?“그럼 왜 사귀자고 하지 않는 건데? 예전 장소월이 백윤서를 괴롭힌 줄 알
저번 있었던 일을 떠올린 장소월은 여덟 시가 되기 전 돌아갔다. 가는 도중 병원에 들러 실을 뽑았다. 상처는 이제 어느 정도 치료되어 작게 힘을 주는 거론 다시 찢어지지 않는다고 한다.강씨 집안 서재.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방 안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강영수는 책상에 앉아 영상 회의를 마치고 나서야 삐뚤어진 옷차림으로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요즘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밖에서 뭘 한 거야?”“뭘 했겠어? 다 알고 있잖아.”강용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강영수가 몸을 축 늘어뜨리고 의자에 기댔다.“네 말이 맞아. 난 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어. 사람을 보내 널 감시한 건 네가 나한테 위협이 될까 봐가 아니라 밖에서 문제를 일으켜 날 귀찮게 하는 게 싫어서야. 강씨 성을 갖고 있으면 제멋대로 날뛰어도 된다고 여기는 거야?”“오늘 회사에 법원에서 보낸 기소장이 도착했어. 네가 학교에서 다른 학생을 괴롭혔다고...”강영수가 책상 위의 서류를 강용에게 던졌다.“요즘 회사 일이 바빠 너한테 관심을 쏟지 못했어. 조용히 지내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네? 어?”강용이 웃으며 바닥에서 서류를 주웠다.“친구 사이에 장난을 좀 친 것뿐이야. 형은 걔들 말 들을 필요 없어.”강용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형이라는 글자가 흘러나왔다.그때 누군가 서재 문을 두드렸다. 이어 3,4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미모의 여자가 우유 두 컵과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왔다.“일이 바쁜 것 같아 간식을 좀 만들어왔어. 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심유는 40세가 거의 되었지만 피부관리를 잘해 30세가 갓 넘은 아가씨 같았다. 매끈한 눈썹과 가늘게 뻗은 눈, 강남 여자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내뿜고 있었다. 강용은 심유를 쏙 빼닮았다.심유의 등장은 본래의 괴이했던 분위기를 미묘해지게 만들었다. 강영수는 그녀에 대한 적의를 종래로 감추는 법이 없었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가요!”심유는 화를 내
“너 도대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엄마가 그 성격을 죽이고 살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아저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안 그래도 지금 강씨 집안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단 말이야.”심유는 마음이 약해져 따끔하게 혼내진 못했다.강용이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가서 쉬세요.”강용은 그녀를 돌려보낸 뒤 서재 문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저녁 열한 시 반이 되었지만 서재 안에 있는 사람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강용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힐끗 본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장소월은 욕실에서 씻고 나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냈다. 지금은 강용의 밤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돌연 검사에 나선 것이다.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는 끊겼다.장소월이 이마를 찌푸렸다. 전화를 꺼버린다고?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그녀는 곧바로 다시 걸었다. 하지만 야속한 연결음만 울릴 뿐이었다.네 번이나 걸어서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장소월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제야 받아? 강용, 너 대체 뭐 하는 거야?”강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꼭 여자친구 같네. 왜! 내가 바람이라도 필까 봐?”“또 밖에서 허튼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공부 열정이 벌써 식은 거야? 오늘 너한테 내준 시험지는 다 풀었어? 너 계속 이러면 내 전부 시간을 너한테 낭비한다고 해도 널 구제할 수 없어.”“진짜 사납네. 앞으로 어떤 남자가 이런 널 데려가겠어. 잠시 후에 얘기해. 일단 끊어!”통화가 끊긴 순간, 장소월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핸드폰 너머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다가 받은 걸 보면 아마 그녀에게 들킬까 봐 조용한 곳을 찾아 숨어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강용이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시험지는 다 풀었어. 수학 마지막 문제는 작년 수능 시험 문제랑 비슷하더라
새벽 두 시.강용은 방으로 돌아와 채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안에선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언가를 애써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강용은 문을 열려고 뻗은 손을 결국 내려놓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복도 끝자락에 걸어가 불을 붙였다.끝도 없이 펼쳐진 칠흑 같은 깜깜함 속에서 강용의 눈동자엔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그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하늘에서 빛나는 몇 안 되는 별을 올려다보았다....다음 날,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았다.따뜻한 햇볕이 방에 내리쬐었다...장소월은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물을 주었다. 거리에선 몇 명의 상인들이 수레를 끌고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었다. 또 누군가의 집에서 만든 음식 냄새도 바람을 타고 풍겨왔다.이곳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고단해 보였지만 그녀는 그들이 살고 있는 평안하고 인간미 넘치는 삶이 부러웠다.오늘 그녀는 집을 쓸고 닦으며 깨끗이 청소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심심할 때, 그녀는 항상 집안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그녀는 전연우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3일 후 그는 틀림없이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다.그녀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하지만 이제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졌다.그녀는 계속 월세를 낼 생각이었다. 설사 줄곧 살지 않는다고 해도 만에 하나 또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면 이곳에 머무를 수 있으니 말이다.점심 12시까지 기다렸는데도 강용은 오지 않았다.예전 그는 항상 아무리 늦어도 열한 시 반엔 도착했었다.장소월도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홧김에 대명산의 스키장으로 향했다.다음 날 새벽 5시쯤, 산꼭대기에 올라가 설산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풍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버스로 한 시간가량 달리자 산에 도착했다. 그녀는 표를 산 뒤 사람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20분이 지나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이곳의 기온은 너무 차가워 장소월로 하여금
호텔 뒤편으로 몇 분 걸어가니 스키장에 도착했다. 장소월은 보드 장비를 착용하고 조심스레 뒤뚱뒤뚱 움직였다.“... 걱정하지 말고 대담하게 이동해요. 리듬을 잘 장악하고요. 넘어지면 제가 일으켜 줄게요.”거의 처음으로 이런 액티비티를 접한 장소월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보호장치를 입고 있다고 해도 만에 하나 부딪힌다면 분명 아플 것이다.한편으론 그녀는 눈앞의 사람들처럼 시원하게 맨 밑까지 내려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발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코치가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어떻게 보드를 통제해야 하는지 가르쳐줬다.“넘어지면 얼마나 아플지를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럼 영원히 배울 수 없어요.”“네.”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30분이 넘게 연습했음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반면 함께 배웠던 8살짜리 남자아이는 빠른 속도로 배워냈다.그 외 애굣덩어리 아가씨가 한 명 있었는데 연습하며 수차례 미끄러 넘어져 결국엔 코치에게 벌컥 화를 냈다. 남자친구와 함께 왔지만 그는 혼자 스키를 타러 가버렸다고 한다.“아빠, 저 누나 진짜 멍청해요! 아직도 못해요.”남자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장소월을 가리키며 깔깔 웃어댔다.아버지는 얼른 아이의 입을 막고는 호통을 쳤다.“그런 말 하면 안 돼. 빨리 이모한테 사과해!”이모?장소월은 화살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시큰거렸다.올해 18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모라니.저 부자 두 명은 똑같이 예의를 모른다.장소월은 예쁜 얼굴을 살짝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꼬마야, 사람을 욕하면 입술이 뭉개지고 승냥이한테 뜯겨간다는 거 아빠가 안 알려줬어?”남자아이는 그 말을 정말 믿었는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아무리 타일러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코치님, 우리 저쪽으로 가서 해요.”“그래요.”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고작 꼬마보다도 못하다는 걸 말이다.가장 아래는 경사가 작은 초급자의 구역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급자 구역에서 즐기고 있었다.남자들은 보통 예쁜 여자를 대할 때 인내심이
전연우의 주위에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장소월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전연우는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밖에서 방탕한 습관을 고칠 수 없었다.장소월은 스키 코치의 연락처를 추가했지만 그저 형식적이었다. 아마 다시는 이 스키장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스키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이곳은 설산 정상이고, 영하 십여 도의 날씨라서 장소월이 두껍게 입었지만 여전히 추웠다.전연우가 그 여자에게 다가갔고, 장소월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녀는 고글과 복면 안대를 쓰고 자신을 꽁꽁 싸맸다.그녀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전연우는 그녀를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장소월이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았다.갑자기,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비켜, 비켜!”장소월이 고개를 들자, 누군가 산비탈에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미 멈출 수 없었고, 장소월과 부딪치려 할 때, 한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 장소월의 허리를 잡고 옆으로 옮겨, 장소월은 위기를 모면했다.장소월은 눈동자가 움츠러들고, 빠르게 내려오던 사람을 보았다. 서 있던 사람이 지금은 굴러내려 가고 있었다.장소월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을 구한 사람을 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고마워요!”“전연우!”나청하가 재빨리 달려와 전연우를 잡아당기고 말했다.“자기야. 왜 낯선 여자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져? 봐봐, 안 다쳤어?”전연우는 나청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깊은 눈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이제 오빠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확신에 찬 그의 눈빛을 보니 장소월은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담담하게 웃었다.“그럴 리가? 그저 오빠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나청하는 장소월에 대한 적개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소월이였구나. 학교에서 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난 너보다 한 학년 위야. 내 이름은 나청하고 지금은 연기 반에 있어.”나청하는 손을 내밀었고, 장소월도 서서 악수를 했다.“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