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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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가연이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때 한 남자가 긴 다리를 휘적이며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임가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한 번 파는 걸론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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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고 검은 머리에서 채 닦아내지 못한 물을 떨구며 나온 남자를 빤히 보다 보니 허리 아래로 두른 수건 밑으로 그의 치골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말을 하며 침대 맡의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임가연을 바라봤다.수려한 외모와 굵직한 선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자꾸만 사람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임가연은 서둘러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한번은 소파, 한번은 욕실, 그렇게 총 두 번이나 단 하나의 절제도 없이 자신의 욕구를 풀어낸 남자 때문에 임가연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입기 시작했다.직접 벗은 탓에 어디 찢어지거나 한 것도 없이 아주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걸치는데 그 와중에도 연이진의 시선이 느껴졌다.불편한 몸 때문에 임가연은 연이진이 담배를 반쯤 태울 때가 돼서야 원래대로 옷을 다 갖춰 입을 수 있었다.“아직 계산을 안 하셨어요.”나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며 말하는 임가연에 연이진은 금방 담배를 피운 탓에 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얼마를 원해?”“그냥... 적정가격 맞춰서 주세요.”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를 요구할지 몰랐던 임가연이 대충 말하자 연이진은 그녀의 몸을 훑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적정가격?”“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몸으로 무슨 돈을 요구해? 그래도 네가 대학생이니까 4만 원은 줄게, 그냥 하룻밤 잔 값이라고 생각해.”이런 일도, 남자도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임가연은 남자의 조롱에 입술을 깨문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마치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연약한 토끼처럼 빨개진 눈시울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임가연에 연이진은 더는 말하지 않고 명함을 건네주었다.“이거 스캔해서 나 추가해. 계좌이체 해줄게.”그에 임가연은 답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친구 추가를 신청했는데 아무것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연이진의 프로필 사진은 그처럼 차가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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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챕터
제1화
선명한 복근을 드러내고 검은 머리에서 채 닦아내지 못한 물을 떨구며 나온 남자를 빤히 보다 보니 허리 아래로 두른 수건 밑으로 그의 치골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말을 하며 침대 맡의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임가연을 바라봤다.수려한 외모와 굵직한 선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자꾸만 사람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임가연은 서둘러 그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한번은 소파, 한번은 욕실, 그렇게 총 두 번이나 단 하나의 절제도 없이 자신의 욕구를 풀어낸 남자 때문에 임가연은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에 떨어진 옷들을 주워입기 시작했다.직접 벗은 탓에 어디 찢어지거나 한 것도 없이 아주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걸치는데 그 와중에도 연이진의 시선이 느껴졌다.불편한 몸 때문에 임가연은 연이진이 담배를 반쯤 태울 때가 돼서야 원래대로 옷을 다 갖춰 입을 수 있었다.“아직 계산을 안 하셨어요.”나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며 말하는 임가연에 연이진은 금방 담배를 피운 탓에 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얼마를 원해?”“그냥... 적정가격 맞춰서 주세요.”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를 요구할지 몰랐던 임가연이 대충 말하자 연이진은 그녀의 몸을 훑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적정가격?”“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몸으로 무슨 돈을 요구해? 그래도 네가 대학생이니까 4만 원은 줄게, 그냥 하룻밤 잔 값이라고 생각해.”이런 일도, 남자도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임가연은 남자의 조롱에 입술을 깨문 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마치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연약한 토끼처럼 빨개진 눈시울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임가연에 연이진은 더는 말하지 않고 명함을 건네주었다.“이거 스캔해서 나 추가해. 계좌이체 해줄게.”그에 임가연은 답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친구 추가를 신청했는데 아무것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연이진의 프로필 사진은 그처럼 차가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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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연이진도 바로 전화를 끊었지만 그가 끊는 대로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연이진은 결국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그러자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장난 전화 아니에요! 저 올해 20살이고 북성 대학 다니고 있어요. 어리고 건강해서 난자 질량은 진짜 좋을 거예요. 필요하시면 저도 한번 고민해 달라고 연락 드렸어요.”대학생이나 돼서 이런 사기 수법에 당하는 게 어이없었던 연이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갑게 대꾸했다.“난자 파는 거 불법이에요, 그 정도 상식도 없어요?”연이진의 말에 임가연은 허를 찔린 듯 오래도록 답을 못했고 연이진은 여자의 호흡 소리밖에 듣지 못하였다.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였으나 연이진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연달아 맹장 수술을 진행한 연이진은 머리가 아파와 바로 수술실을 나와 수술복을 벗어 던졌다.원래 같으면 연이진이 직접 이런 수술을 할 리는 없었겠지만 손이 부족한 병원상황에 어려운 병만 도맡아 하던 연이진도 수술실에 배정받게 된 것이다.연이진이 밖으로 나오자 마침 퇴근하던 육지성이 그에게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연 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술 좀 마셔줘.”“다크써클이 꼭 저주 걸린 사람 같아. 지금 술 마시면 죽을 것 같은데 조심 좀 해.”“이게 다 아까 열 받아서 그런 거야.”육지성은 연이진을 따라 걸으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아까 회진 도는데 전에 난자를 팔았던 대학생을 만났었거든. 검사결과대로 자궁도 다 상하고 난소에도 문제가 생겨서 이제는 임신 못 한다고 알려주니까 병실에서 막 우는 거 있지. 그거 듣고 있었더니 머리가 다 아파.”그의 말에 연이진은 자연스레 아까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쑥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으면서도 자신을 소개하던 여자아이는 나름대로 진지해 보였다.어디서 그런 광고를 봤는지는 모르지만 속세에 물들지 않은 스무 살이었기에 누구한테 속아 넘어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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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어, 어떻게요?”여자는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지금 어디야?”“북성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건물이요.”“디자이너야?”“네...”제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신분에 임가연은 빨개진 얼굴을 옷소매에 파묻은 채 대답했다.한편 물을 잠근 연이진은 수건을 하나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패리스 타운 6동 1009호로 와.”집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버릇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시간에 나가기도 귀찮았던 연이진은 바로 집 주소를 불러주었다.아이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불러준 거긴 하지만 만약 온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다시는 이런 제안을 하지 못하게 단단히 혼내줄 생각이었으니까.연이진의 목소리에 귀부터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임가연은 입술을 짓이기고 있었다.30분 뒤면 통금이라서 나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이 와중에도 엄마의 목소리는 귓가에 선명했다.“힘들게 먹이고 입히고 어찌저찌 돈까지 모아서 대학 보내놨더니 넌 어떻게 매일 돈 없다는 소리밖에 못 하니? 옆집 민영이 봐, 중학교만 나왔는데도 매달 집에 200만 원 씩 보내는 거, 넌 할 줄 아는 게 그렇게 없니?”그때 임가연의 대답을 기다리던 연이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올 엄두도 없으면서 그딴 제안은 왜 했어 설계사님, 쉽게 돈 벌 생각 말고 얼른 잠이나 자.”“갈게요.”연이진의 말에 어두운 복도에 홀로 앉아있던 임가연이 주먹을 꽉 쥔 채 답했다.“갈 테니까 좀만 기다려주세요.”북성대학교에서 꽤나 가까운 패리스 타운은 버스 타면 네 정거장,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였다.지도 앱을 보면서 막차에 오른 임가연은 텅 빈 지하철에 잠시 앉아있다가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타운에 들어서서 한참을 헤매다 6동 입구까지 도착하니 고급타운답게 카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한 엘리베이터에 로비에 앉은 임가연은 핸드폰을 꺼내 연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도, 도착했는데 카드가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요.”“기다려.”임가연이 정말 올 줄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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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남자의 말에 임가연의 머리는 또 한 번 터질 듯 울려왔다.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아주 험악하게 느껴졌었는데 예상외로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가만히 서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 와중에 심장이 두근거린 임가연은 연이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통화를 할 때처럼 무서워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는 건 매한가지였다.금방 씻고 나온 듯 물기를 머금은 머리칼과 그 아래로 보이는 살짝 찌푸려진 미간은 그의 차가움을 극대화 시키고 있었다.아무에게나 곁을 내주진 않을 것 같은 그 분위기에 임가연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네.”“따라와.”남자의 말에 임가연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 빠르게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급타운이라 한 층에 두 가구밖에 살지 않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 앞으로 다가가 지문인식을 마치고 문을 열어주는 연이진의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임가연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들어가.”100평은 돼 보이는 큰 집은 그레이와 화이트로 모던하게 장식되어있었는데 별거 아닌데도 아주 고급져 보였다.찾아보니 여기는 상류층들만 사는 곳이라던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일반인들은 평생을 벌어도 살 수 없는 집인 것 같았다.연이진은 현관에 뻘쭘하게 서 있는 임가연을 보더니 그 옆 서랍장에서 실내화를 꺼내주었다.연이진이 준 실내화로 갈아신고 드디어 안으로 들어온 임가연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연이진을 마주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의 시선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 임가연은 마치 자신이 값이 매겨지길 기다리는 물건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연이진이 말을 하지 않으니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임가연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바지 벗어.”그때 갑자기 들려온 낯간지러운 말에 임가연이 눈을 크게 뜨자 연이진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물건 보자고 했잖아, 보지도 않았는데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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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확연히 작아진 동공과 문에 딱 붙어 애처롭게 떨고 있는 몸을 가만히 바라보는 연이진에 임가연은 울먹이며 소리쳤다.“싫어요... 정말 죄송해요, 앞으로 다시는 연락 안 드릴 테니까 저 이번 한 번만 보내주세요...”눈도, 코도 빨개진 채 눈물을 떨구고 있는 아이에 연이진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물었다.“진짜 안 팔 거야?”“네.”“앞으로도?”“네, 절대로 안 팔아요. 저 보내주시면 정말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는 임가연을 보던 연이진은 그녀의 야윈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가봐.”울면서 고개를 돌린 임가연이 여전히 열리지 않는 문에 끙끙대자 연이진은 큰 손으로 잠금을 풀어주었다.반대 방향으로 잠가졌던 문이 열리자 임가연은 실내화를 갈아신을 정신도 없이 집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그리고는 더는 못 참겠는지 벽을 부여잡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고요하기만 한 층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입을 막은 채 눈물을 삼키던 임가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이럴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오긴 했지만 처음 겪는 상황에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고 이빨까지 떨려와서 조용한 그곳에 딱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렇게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참이나 소리 없이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았는데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아까 무서웠다고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들려오는 건 역시나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들이었다.“넌 양심도 없어? 네 아빠 하나로 부족해서 너까지 내 등골 빨아먹고 살 작정이야? 돈 보내라고 했잖아! 네가 계속 안 보내고 버티면 나도 네 아빠 신경 안 써 이제. 휠체어에서 죽으라고 하지 뭐.”엄마의 말에 임가연은 더 울지도 못했다.임가연이 다섯 살 나던 해에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함께 나갔던 임정식은 그날 임가연에게로 돌진하는 트럭을 막기 위해 몸을 내던졌는데 그 뒤로 하반신 불구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다.가족의 기둥이 무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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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연이진의 눈에 다시 들어온 임가연은 짙어진 눈물 자국과 얼마나 깨물었는지 다 터져버린 입술을 하고 있었다.그 어떤 자극을 받은 듯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려보내느라 빨개진 눈시울에 연이진은 서랍장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진심이야?”“돈이 필요해요.”“그럼 바지부터 벗어.”임가연의 패기를 보려고 던진 말인데 임가연은 고민도 없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더니 겉옷부터 벗어내기 시작했다.상의부터 벗던 임가연은 이번에는 벨트에 손을 올리더니 아까의 그 주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죽음 앞에서 두려 따윈 없다는 듯 바지를 벗어 내렸다.안 그래도 큰 바지가 벨트가 풀림에 따라 아래로 툭 떨어지자 임가연은 손을 들어 속옷도 풀어내었다.불빛 아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하얀 피부는 눈이 부실 정도였고 곧게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까지 나름대로 봐줄 만한 몸이었다.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이 와중에도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 때문에 한결 더 가여워 보이는 임가연의 모습은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다 못해 마음껏 유린하고 싶은 충동까지 일으켰다.그에 한 줌 남았던 동정심마저 사라져버린 연이진은 소파에 앉은 채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20분 줄 테니까 알아서 나 유혹해봐. 만약 20분 뒤에도 내가 너한테 흥미가 안 생긴다면 그땐 네 발로 나가.”이토록 시린 연이진의 말을 들으면서도 임가연은 몸을 낮춘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연애 경험도 없고 이런 19금 영화나 영상도 본 적 없었던 임가연은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시구대로 움직이고 있었다.“입술은 마르고 목은 잠겨 등이 가려우니, 옥 항아리의 맑은 술 한잔이 간절히 그립구나.”임가연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 연이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제 입술에 닿아오는 연이진의 입술도 차가웠고 또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그의 숨결도 시려서 임가연의 호흡은 저도 모르게 가빠졌다.키스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임가연은 그저 입을 뗐다 붙이길 반복하며 또 살짝씩 깨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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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패리스 타운에서 나온 임가연은 홀로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임가연이 도착했을 때는 다들 수업 때문에 나가 있어서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는데 온몸에 흔적들을 잔뜩 새긴 임가연이 거울에 비치자 그녀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다정함보다는 폭력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남자를 떠올리며 임가연은 더욱더 깨끗하게 제 몸을 씻어냈다.깔끔히 씻고 침대에 누워 익숙한 환경을 둘러보니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핸드폰을 들어보니 아직 돈을 보내오지 않은 연이진에 재촉해볼까 싶어 대화창을 열고 열심히 타자를 하던 임가연은 이내 얼굴이 빨개진 채 썼던 내용들을 싹 다 지워버렸다.어젯밤 그 일에 대한 값을 요구하기엔 임가연은 아직 어리숙했기에 그녀는 좀 더 기다려보는 쪽을 택했다....오전에 연이진은 수술 때문에 임가연을 잊고 있었던 연이진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 수술실을 나설 때, 핸드폰을 든 자신의 팔에 새겨진 지난 밤의 흔적들을 보고서야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카카오톡을 열어 임가연을 찾아보니 검은색 캐릭터 사진으로 되어있는 프로필과 JY.라는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아 텅 비어있는 대화창을 보던 연이진은 그렇게 돈이 필요하면서도 자신이 돈을 보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그녀가 우스워 입꼬리를 올렸다.계좌이체를 해주려고 비밀번호를 누르던 연이진은 문득 임가연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지 궁금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진료실 병동으로 다시 돌아간 연이진은 요 며칠 휴가를 떠난 소화기내과 교수를 대신해 환자를 보러 담당 진료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사람도 얼마 없어 조금 있다 나갈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바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예의 바른 그 소리에 연이진이 대꾸하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저... 아랫배가 아파서요.”처음에는 차트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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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 말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은 연이진이 임가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얼마가 필요한 거야?”얼마가 필요하냐는 질문은 처음이라 적정가격도 몰랐던 임가연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그에 무언가를 검색하던 연이진이 핸드폰을 보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졸은 400에서 600, 대학생은 천에서 천 육백, 그리고 명문대는 2천부터 시작이래.”“넌 얼마가 필요한데? 천이야 2천이야?”학교 화장실에 붙어있던 광고문구와는 전혀 다른 금액에 임가연은 살짝 놀랐지만 아빠 병원비로 들어갈 돈이 만만치 않았기에 나지막하게 말했다.“천이요.”그 말에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긴 연이진은 바로 임가연에게 돈을 보내주었다.“띵”하고 울리는 문자 수신음에 역시나 핸드폰을 확인한 임가연은 제가 요구한 돈의 두 배가 입금되어있자 눈을 크게 뜨고 연이진을 바라보았다.정말 난자를 판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이진과 어떠한 관계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나 싶어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연이진은 그를 보며 물었다.“안 가?”사실 연이진은 임가연이 다시는 난자를 팔겠다느니 몸을 팔겠다느니 그런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해서 천만 원은 용돈 삼아 보내준 것이다.그 정도면 대학생 신분으로는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감사합니다.”연이진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임가연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연이진은 한결같이 무표정인 얼굴로 컴퓨터를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말했다.“다음 환자분.”처방전을 가지고 방을 나서던 임가연은 마침 연이진을 찾아오던 육지성과 마주치게 되었다.임가연은 그가 누군지 몰랐기에 약을 타는 데에만 급급했지만 육지성은 여자의 손에 들린 처방전에 적힌 약이 심상치 않아 그녀를 주의 깊게 보며 연이진의 진료실로 들어갔다.“소화기내과에서 왜 산부인과 약을 처방해줘?”“신경 꺼.”자신을 힐끗 보며 말하는 연이진에 육지성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의 팔을 낚아채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자 훤히 드러나는 할퀸 흔적에 육지성은 의미심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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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송태준의 말을 들은 임가연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전화도 사람 없는 구석에 숨어서 하며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은 일을 송태준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임가연은 일단 부정부터 했다.“아니니까 헛소리하지 마.”들켜선 안 될 걸 들킨 사람처럼 입술을 깨물며 말하던 임가연은 더 이상 송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지만 송태준은 그런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 세웠다.“너 돈 필요하잖아, 난 있는 게 돈이야. 나랑 하룻밤 자면 하루에 200씩 줄게. 어때?”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는 송태준에 자신이 정말 장난감이라도 돼버린 것 같은 수치스러움에 임가연은 빠르게 팔을 빼냈다.비록 어젯밤 돈을 대가로 다른 남자와 몸을 섞으며 밀려오는 고통도 참아내던 임가연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어제보다 더 모욕적인 것 같았다.“이제 돈 필요 없으니까 나 찾아오지 마.”그에게서 벗어나 도망치듯 기숙사로 향하는데도 송태준의 혼잣말이 선명하게 들렸다.“도망쳐도 소용없다니까, 네 발로 날 찾아오게 될 거야.”약봉지를 손에 꽉 쥐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쿵쾅거림이 다 들릴 정도로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있었다.오늘은 사람이 있는 기숙사에 임가연은 가방을 침대에 던져놓고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마음을 진정시켰다.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일이라 그걸 아는 건 연이진과 자신 둘뿐이었는데 임가연은 도대체 어디서 말이 새어나간 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러다가 연이진의 그 차가운 표정을 떠올리는 순간 임가연은 혹시 아까 돈을 많이 받아서 그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아닐까 싶어 문자를 보내보았다.[저기요.]그런데 문자와 함께 뜨는 차단 멘트에 임가연은 눈을 크게 뜨고 한참동안이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계산을 마쳤으니 이제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건지 바로 차단해버린 연이진이었다.이제 보니 아까 돈을 많이 준 것도 임가연이 병원에 찾아간 게 우연이 아니라 질척거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그는 돈으로 하룻밤 파트너일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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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무슨 큰돈?”임가연이 돈이라는 말에 흥미를 보이자 문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라운지에 가서 술 따라주고 술 파는 일인데 하룻밤에 20만 원이래, 그리고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는데, 너 할래?”술 파는 일은 당연히 해본 적도 없고 라운지처럼 혼란스러운 곳엔 더더욱 출입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망설여졌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열 배에 달하는 일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아빠의 병원비로 많은 돈이 들어가기에 이왕이면 많은 돈을 버는 일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걱정 마, 거기는 고급라운지라서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내 친구도 몇 번 다녀봤는데 괜찮대.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소개시켜 주는 거지. 너 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 점심에도 컵라면 먹던데.”임가연의 우려를 보아냈는지 문채영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알겠어, 나 이것만 다 완성하면 갈게.”대학 4년 동안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는 다 문채영이 소개해준 것이기에 임가연은 이번에도 그녀를 믿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리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마무리했다.그리고 저녁 7시, 임가연은 문채영과 그녀의 친구와 함께 라운지로 향했다.내부추천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담당자는 임가영과 문채영을 잘 챙겨줬는데 그래서 일부러 조용한 분위기의 방에 배치해주기도 했다.말을 잘하지 못해서 술은 못 팔 것 같았지만 20만 원의 아르바이트 일당으로도 충분했기에 임가연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래도 다행히 손님들이 말이 잘 통하는 분들이라 그들과 세 시간 동안이나 얘기하다가 손님들이 일어날 때가 돼서야 임가연은 화장실로 향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한 남자에게 들이받을 뻔해서 임가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는데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본 건지 임가연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임가연, 너 여기서 뭐 해? 설마 술 따라주는 거야?”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 여기서 송태준을 마주친 것이다.송태준은 술을 거나하게 마셨는지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임가연에게로 달려들었다.“술 따르지 말고 나랑 놀면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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