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백사장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17 14:23:10
패리스 타운에서 나온 임가연은 홀로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

임가연이 도착했을 때는 다들 수업 때문에 나가 있어서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는데 온몸에 흔적들을 잔뜩 새긴 임가연이 거울에 비치자 그녀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정함보다는 폭력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남자를 떠올리며 임가연은 더욱더 깨끗하게 제 몸을 씻어냈다.

깔끔히 씻고 침대에 누워 익숙한 환경을 둘러보니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아직 돈을 보내오지 않은 연이진에 재촉해볼까 싶어 대화창을 열고 열심히 타자를 하던 임가연은 이내 얼굴이 빨개진 채 썼던 내용들을 싹 다 지워버렸다.

어젯밤 그 일에 대한 값을 요구하기엔 임가연은 아직 어리숙했기에 그녀는 좀 더 기다려보는 쪽을 택했다.

...

오전에 연이진은 수술 때문에 임가연을 잊고 있었던 연이진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 수술실을 나설 때, 핸드폰을 든 자신의 팔에 새겨진 지난 밤의 흔적들을 보고서야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카카오톡을 열어 임가연을 찾아보니 검은색 캐릭터 사진으로 되어있는 프로필과 JY.라는 이니셜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아 텅 비어있는 대화창을 보던 연이진은 그렇게 돈이 필요하면서도 자신이 돈을 보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그녀가 우스워 입꼬리를 올렸다.

계좌이체를 해주려고 비밀번호를 누르던 연이진은 문득 임가연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지 궁금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진료실 병동으로 다시 돌아간 연이진은 요 며칠 휴가를 떠난 소화기내과 교수를 대신해 환자를 보러 담당 진료실로 들어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사람도 얼마 없어 조금 있다 나갈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바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예의 바른 그 소리에 연이진이 대꾸하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저... 아랫배가 아파서요.”

처음에는 차트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는데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해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 아니나 다를까 임가연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임가연 역시 뜬금없이 보인 연이진의 얼굴에 놀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젯밤 일 때문에 임가연의 얼굴은 빠른 속도로 빨개지고 있었지만 연이진은 벌써 다 까먹은 건지 태연하게 처음 보는 환자 대하듯 진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아프세요?”

의사라는 그의 직업을 알게 돼서 놀란 것도 잠시, 임가연은 빠르게 그의 질문에 답을 했다.

“찌릿찌릿해요. 앉아있을 때도 아프고 걸을 때도 아파요.”

“가서 누워요, 옷 위로 올리시고요.”

남자의 말에 따라 좁디좁은 진료실 침대에 몸을 뉘이니 하얀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의료용 장갑을 낀 연이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지만 임가연은 그의 의사 가운에 새겨진 이름밖에 볼 수 없었다.

“소화기내과, 연이진.”

임가연이 그 이름을 조용히 기억하고 있을 때 소독약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던 연이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아랫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어젯밤과 비슷한 분위기에 임가연의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할 때쯤, 아랫배를 꾹꾹 누르던 연이진이 질문을 해왔다.

“여기 아파요?”

“아니요, 좀 더 아래쪽이에요.”

“여기요?”

2센티쯤 아래를 눌러보자 임가연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장갑을 끼고 의사로서 진료를 하는 것이었지만, 연이진의 손이 자신의 맨살에 닿자 임가연은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위치를 바꿔가며 어디가 아픈지 특정하던 연이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손을 뗐다.

결국 아랫배가 아니라 자궁의 문제였다.

어제 자신이 워낙 과격하기도 했고 임가연도 처음이니 아파할 건 예상했지만 하루 만에 몸이 이 정도로 상할 줄은 몰랐었기에 연이진도 당황스러웠다.

건강하다더니, 본인의 말과는 다른 몸 상태에 자리로 돌아가 앉은 연이진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약 줄 테니까 하루에 세 번씩 식후에 꼭 챙겨 먹어요.”

옷을 다시 갖춰 입은 임가연은 얌전히 연이진의 앞에 마주 앉은 채 그가 처방전을 떼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방전만 건네주려던 연이진은 임가연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일주일 안에는 성관계하시면 안 돼요.”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진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임가연이 연이진에게서 처방전과 의료보험카드를 받아들려 하자 연이진이 카드를 꼭 잡은 채 다시 한번 물었다.

“기억했어요?”

“네.”

“그럼 다시 말해봐요.”

“하루 세 번 식후에 약 먹고 일주일 동안은 성관계 금지.”

빨개진 얼굴로 연이진의 말을 반복하던 임가연은 밀려오는 수치스러움에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것도 다 어젯밤 일 때문인데 연이진만 없다면 성관계를 할 상대도 없었기에 마지막 당부는 사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가요.”

임가연의 대답을 듣고 난 뒤 연이진이 처방전과 카드를 건네주자 그녀는 빠르게 진료실 입구로 걸어갔다.

그런데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임가연은 고개를 돌려 연이진을 보며 말했다.

“돈 아직 안 보내셨어요.”

Related chapters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8화

    그 말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은 연이진이 임가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얼마가 필요한 거야?”얼마가 필요하냐는 질문은 처음이라 적정가격도 몰랐던 임가연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그에 무언가를 검색하던 연이진이 핸드폰을 보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졸은 400에서 600, 대학생은 천에서 천 육백, 그리고 명문대는 2천부터 시작이래.”“넌 얼마가 필요한데? 천이야 2천이야?”학교 화장실에 붙어있던 광고문구와는 전혀 다른 금액에 임가연은 살짝 놀랐지만 아빠 병원비로 들어갈 돈이 만만치 않았기에 나지막하게 말했다.“천이요.”그 말에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긴 연이진은 바로 임가연에게 돈을 보내주었다.“띵”하고 울리는 문자 수신음에 역시나 핸드폰을 확인한 임가연은 제가 요구한 돈의 두 배가 입금되어있자 눈을 크게 뜨고 연이진을 바라보았다.정말 난자를 판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이진과 어떠한 관계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나 싶어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연이진은 그를 보며 물었다.“안 가?”사실 연이진은 임가연이 다시는 난자를 팔겠다느니 몸을 팔겠다느니 그런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해서 천만 원은 용돈 삼아 보내준 것이다.그 정도면 대학생 신분으로는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감사합니다.”연이진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임가연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연이진은 한결같이 무표정인 얼굴로 컴퓨터를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말했다.“다음 환자분.”처방전을 가지고 방을 나서던 임가연은 마침 연이진을 찾아오던 육지성과 마주치게 되었다.임가연은 그가 누군지 몰랐기에 약을 타는 데에만 급급했지만 육지성은 여자의 손에 들린 처방전에 적힌 약이 심상치 않아 그녀를 주의 깊게 보며 연이진의 진료실로 들어갔다.“소화기내과에서 왜 산부인과 약을 처방해줘?”“신경 꺼.”자신을 힐끗 보며 말하는 연이진에 육지성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의 팔을 낚아채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자 훤히 드러나는 할퀸 흔적에 육지성은 의미심장한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9화

    송태준의 말을 들은 임가연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전화도 사람 없는 구석에 숨어서 하며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은 일을 송태준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임가연은 일단 부정부터 했다.“아니니까 헛소리하지 마.”들켜선 안 될 걸 들킨 사람처럼 입술을 깨물며 말하던 임가연은 더 이상 송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지만 송태준은 그런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 세웠다.“너 돈 필요하잖아, 난 있는 게 돈이야. 나랑 하룻밤 자면 하루에 200씩 줄게. 어때?”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하는 송태준에 자신이 정말 장난감이라도 돼버린 것 같은 수치스러움에 임가연은 빠르게 팔을 빼냈다.비록 어젯밤 돈을 대가로 다른 남자와 몸을 섞으며 밀려오는 고통도 참아내던 임가연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어제보다 더 모욕적인 것 같았다.“이제 돈 필요 없으니까 나 찾아오지 마.”그에게서 벗어나 도망치듯 기숙사로 향하는데도 송태준의 혼잣말이 선명하게 들렸다.“도망쳐도 소용없다니까, 네 발로 날 찾아오게 될 거야.”약봉지를 손에 꽉 쥐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쿵쾅거림이 다 들릴 정도로 심장박동이 거세지고 있었다.오늘은 사람이 있는 기숙사에 임가연은 가방을 침대에 던져놓고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마음을 진정시켰다.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일이라 그걸 아는 건 연이진과 자신 둘뿐이었는데 임가연은 도대체 어디서 말이 새어나간 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러다가 연이진의 그 차가운 표정을 떠올리는 순간 임가연은 혹시 아까 돈을 많이 받아서 그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아닐까 싶어 문자를 보내보았다.[저기요.]그런데 문자와 함께 뜨는 차단 멘트에 임가연은 눈을 크게 뜨고 한참동안이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계산을 마쳤으니 이제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건지 바로 차단해버린 연이진이었다.이제 보니 아까 돈을 많이 준 것도 임가연이 병원에 찾아간 게 우연이 아니라 질척거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그는 돈으로 하룻밤 파트너일 뿐인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0화

    “무슨 큰돈?”임가연이 돈이라는 말에 흥미를 보이자 문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라운지에 가서 술 따라주고 술 파는 일인데 하룻밤에 20만 원이래, 그리고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다는데, 너 할래?”술 파는 일은 당연히 해본 적도 없고 라운지처럼 혼란스러운 곳엔 더더욱 출입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망설여졌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열 배에 달하는 일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아빠의 병원비로 많은 돈이 들어가기에 이왕이면 많은 돈을 버는 일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걱정 마, 거기는 고급라운지라서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내 친구도 몇 번 다녀봤는데 괜찮대.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소개시켜 주는 거지. 너 돈 필요한 거 아니었어? 점심에도 컵라면 먹던데.”임가연의 우려를 보아냈는지 문채영은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알겠어, 나 이것만 다 완성하면 갈게.”대학 4년 동안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는 다 문채영이 소개해준 것이기에 임가연은 이번에도 그녀를 믿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리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마무리했다.그리고 저녁 7시, 임가연은 문채영과 그녀의 친구와 함께 라운지로 향했다.내부추천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담당자는 임가영과 문채영을 잘 챙겨줬는데 그래서 일부러 조용한 분위기의 방에 배치해주기도 했다.말을 잘하지 못해서 술은 못 팔 것 같았지만 20만 원의 아르바이트 일당으로도 충분했기에 임가연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래도 다행히 손님들이 말이 잘 통하는 분들이라 그들과 세 시간 동안이나 얘기하다가 손님들이 일어날 때가 돼서야 임가연은 화장실로 향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한 남자에게 들이받을 뻔해서 임가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는데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본 건지 임가연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임가연, 너 여기서 뭐 해? 설마 술 따라주는 거야?”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하필 여기서 송태준을 마주친 것이다.송태준은 술을 거나하게 마셨는지 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임가연에게로 달려들었다.“술 따르지 말고 나랑 놀면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1화

    비싸 보이는 정장 차림으로 문밖에 서 있던 연이진은 여전히 감정 없는 표정으로 송태준과 그의 아래에서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시끄럽게 뭐 하는 짓이야.”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본 임가연은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연이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상황을 보니 연이진이 송태준 삼촌인 것 같았다.송태준은 제 삼촌의 질문에 임가연의 어깨를 으스러질 듯이 잡으며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여자친구랑 얘기하고 있었어요.”“여자친구?”송태준의 말에 연이진은 임가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웬일로 화장을 했는지 깔끔하게 말아 올라간 속눈썹에 발그스레한 볼을 하고 큰 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채 저를 올려다보는 임가연은 마치 괴롭힘을 당하는 토끼 같았다.연이진과 눈이 마주친 임가연은 빠르게 송태준에게서 몸을 빼내며 말했다.“여자친구 아니에요...”“그런 걸 꼭 말로 해야 해?”“삼촌, 나 오랫동안 못해서 지금 엄청 급해요. 학교 동기인데 그냥 하룻밤만 불러서 놀게요, 돈도 줄 거고요.”라운지에서 오고 가며 몇 번이나 봤지만 연이진은 한 번도 저를 터치한 적이 없고 그저 각자 놀다가 헤어졌었기에 송태준은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임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화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그런데 임가연이 연이진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연이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삼촌, 왜 그래요?”“꺼져.”“하지만 얘는...”갑작스러운 연이진의 행동에 의아했던 송태준이 뭐라고 더 얘기하려 했지만 날이 선 그의 눈빛을 보고는 자연스레 입이 다물어졌다.“한 번만 더 이딴 짓 하고 다니면 너희 아빠한테 말해서 네 그 다리부터 분질러버리라고 할 거야.”그 말에 송태준도 어쩔 수 없이 임가연을 한번 째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순식간에 조용해진 화장실에서 임가연은 연이진과 단둘이 마주하게 되었다.연이진은 하얀 셔츠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넥타이까지 맨 임가연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누가 봐도 술을 홍보하는 직원 같았는데 임가연도 자신에게로 꽂히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2화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임가연은 머리가 띵하게 울려왔고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정말 튀어나오기라도 할 듯이 강하게.코끝은 이미 닿아있었고 여기서 조금만 움직이면 입술도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연이진이 있었다.진득하게 맞닿아오는 눈동자와 간간이 느껴지는 서로의 숨결에 부끄러워진 임가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일주일 동안은... 성관계 못 한다고 하셨잖아요.”“일주일 지났잖아 이미.”“그래도...”“의사인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그 말을 끝으로 연이진은 임가연의 뒤통수를 잡고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키스와 자신의 코끝에 닿아오는 뜨거운 숨결에 임가연의 얼굴은 이미 달아오른 것처럼 뜨거웠다.생애 두 번째 키스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달콤했고 임가연은 이미 그 속에 녹아든 듯 정신이 아찔해졌다.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랐지만 임가연은 연이진의 호흡을 그저 따라가고 있었다.오늘 밤은 차에서 한 번, 현관에서 한 번 이미 두 번이나 한 상태였다.두 번을 연달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진은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임가연에게 전혀 쉴 틈을 주지 않았다.저번에 한 번 호흡을 맞춰봤다고 경험이 생긴 것인지 연이진은 더 강하게 자신의 욕구를 풀어내고 있었는데 그 탓에 다리가 풀려버린 임가연은 그의 팔뚝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이렇게 여러 번 장소를 바꿔가면서 자신을 괴롭히면서도 한 번도 침대로는 향하지 않는 연이진에 임가연은 그가 겉모습만 신사다워 보이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렇게 두 번이 끝나고 연이진이 또다시 소파에 누워있는 임가연을 덮쳐올 때 임가연은 그의 팔뚝을 붙잡으며 물었다.“침대에서 하면 안 돼요?”그 말에 연이진은 임가연을 내려다보았다.흘러내린 땀 때문에 이마에 붙어버린 머리카락과 빨개진 눈시울, 그리고 홍조를 띤 볼과 불안정하게 내뱉는 호흡까지, 한낱 대학생이 버티기에는 버거워 보여 연이진은 결국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그래, 가서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3화

    임가연은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저번에 하고 나서도 이삼일은 아팠었는데 그게 다 낫자마자 또 몰아친 연이진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니 그 익숙한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그 말에 연이진이 임가연의 두 다리 사이를 보며 물었다.“또 아프다고?”“네, 저번처럼 찌릿찌릿거려요.”임가연이 솔직하게 말하자 연이진은 입술을 말아 물고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더니 말했다.“기다려.”연이진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약을 가지고 나오더니 임가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진통제인데 하루에 한 번씩 식후에 먹어. 이틀 지나도 계속 아프면 병원으로 오고.”“네, 감사합니다.”“가봐.”임가연이 약을 가방에 넣자 연이진은 역시나 매정하게 그녀를 내보내려 했다.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까이에서 몇 번 보다 보니 임가연은 이미 연이진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다른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그가 자신을 하룻밤 재워준 것도 참 다행이라고 여긴 임가연은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에 임가연은 깜짝 놀라며 현관문 근처에 있는 인터폰을 확인했다.그 화면에 비친 송태준의 모습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던 임가연은 빠르게 거실로 달려가며 빨개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왜 그래?”“밖에 연이진 씨 조카 와 있어요.”갑작스러운 임가연의 행동에 연이진이 묻자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어젯밤 둘이 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건 알게 되었지만 이렇게 집 주소까지 알 정도로 친한 줄은 몰랐었다.만약 여기서 들킨다면 아주 어색할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자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연이진이 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들어가 있어.”임가연이 한달음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자 연이진은 조금 어지러운 거실을 한번 보더니 현관문을 열어주었다.“삼촌, 왜 이렇게 늦게 열어요? 이거 아빠가 전해주라고 해서...”“물건 받았으니까 이제 가봐.”연이진은 용건이 끝나자마자 송태준을 쫓아냈지만 임가연은 그의 목소리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4화

    그 소리에 머리가 새하얘진 임가연은 제자리에 굳어버렸고 송태준의 고개는 절반쯤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금방이라도 정체가 들킬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 연이진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송태준 앞을 막아서고 임가연을 제품에 넣어버렸다.“송태준, 나가 당장.”“삼촌, 집에 여자가 있었어요?”연이진과 여자는 나란히 있을 수 없는 키워드라 놀란 송태준이 여자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빼 들었다.임가연은 그런 송태준 때문에 연이진 품속을 더 깊이 파고들었는데 송태준은 그 여자의 뒷모습이 어딘가 익숙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런데 그때, 연이진이 송태준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꺼지라고, 못 들었어?”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듯이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풍기는 연이진에 그가 정말로 화났다는 걸 눈치챈 송태준은 더 볼 엄두를 못 내고 바로 밖으로 달려나갔다.억울하다는 듯 문을 닫으며 송태준은 입술을 삐죽였다.평소에 신사다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아무도 모르게 여자까지 집에 들이고, 가만 보면 연이진이 자신보다 더 잘 논다고 생각하는 송태준이었다.한편 바깥이 잠잠해진 지 한참 돼서야 연이진의 품속에 나온 임가연은 아직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깐 고마웠어요.”그가 아니었다면 정말 아찔했을 상황에 임가연은 여전히 손이 떨려왔다.“난자 팔겠다고 연락한 사람 나 말고 더 있어?”“없어요, 연이진 씨한테만 연락했어요.”우연이 붙은 광고에서 고작 하나의 전화번호만 외운 탓에 임가연이 연락한 사람도 연이진뿐이었다.“앞으로 전화할 때는 주위부터 잘 둘러봐, 저렇게 엿듣는 사람이 있을 줄도 모르니.”아까 안에서 송태준과 연이진의 대화를 다 들은 탓에 임가연도 연이진이 저런 말을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송태준이 벽에 붙어서 자신의 통화를 엿들었던 것이다.그래도 전화를 건 상대가 송태준의 삼촌이니 망정이지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말 큰 일로 이어졌을 것 같아 임가연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Last Updated : 2024-12-17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15화

    연이진의 집을 나와서도 혹시나 송태준이 있을까 한참을 방황하던 임가연이 마침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그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가연아, 네가 왜 여깄어?”“진... 교수님?”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본 임가연은 제 눈앞에 서 있는 잘생긴 남자에 허리를 곧게 펴고 인사를 건넸다.호칭을 교수님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는 단순한 선생이 아니라 북성대학교 이사장인 진하온이었다.매년 북성대학교 학생들에게 큰 액수의 장학금을 주시는 분인데 임가연이 그 장학금을 4년 내내 받다 보니까 진하온과 사진도 찍고 이렇게 얘기도 나눌 사이가 된 것이다.“여기서 널 만날 줄은 몰랐는데, 친구 보러 왔어?”회색 티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진하온을 향해 임가연은 대충 둘러댔다.“일하러 왔다가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참이에요.”임가연이 돈을 버느라 이일 저일 가리지 않는다는 건 학교 교수님들이면 다 아는 사실이니 진하온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래? 그런데 가연이 곧 졸업이지? 4학년 아니야?”“네, 한 달 뒤면 인턴 일 시작해요.”“아...”임가연의 말에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진하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럼 내가 교수님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인턴 나한테 와서 하는 게 어때?”“네?”갑작스러운 제안에 임가연이 깜짝 놀라자 진하온은 다정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나한테도 설계 건이 하나 들어왔는데 마침 조수가 필요했거든, 가연이가 해줄래?”“네, 당연하죠! 열심히 할게요 교수님! 너무 감사드려요.”대학 이사장인 진하온과 같이 일을 한다면 당연히 많이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이런 흔치 않은 기회가 제 발로 굴러들어오자 임가연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내가 며칠 뒤에 너희 학과로 갈게.”“네! 안녕히 계세요 교수님.”이렇게 좋은 인턴 자리를 따낸 임가연은 갑자기 다리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아 신난 발걸음으로 단지를 빠져나왔다.지금 보니 연이진이 참 복을

    Last Updated : 2024-12-17

Latest chapter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40화

    어느덧 밤이 어두워졌다.임가연은 진하온과 식사를 마친 후에 천지국제센터로 왔다.그는 대문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옆문으로 들어가 기다란 지하 복도를 지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람석으로 올라왔다.“여기서 내려다보면 건물 내부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어.”진하온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임가연은 눈을 떼지 못했다.4년 만에 드디어 이 건물을 내부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책에 사진이 있어도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이곳은 북성의 모든 건축학자들의 꿈이다.임가연은 넋을 놓고 구경했다. 대들보와 기둥 하나하나를 열심히 보면서 나중에 그녀도 이런 건물을 설계할 거라고 다짐했다.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다. 로비에 몇몇이 들어왔는데 위층에 있는 진하온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아주 친한 사이 같았다.“진 대표, 거기서 뭐 해? 내려와서 같이 놀자.”진하온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오늘은 일이 있으니까 너희들끼리 놀아.”“여자 친구랑 데이트하는 게 뭐 큰일이라고. 거기 가만히 서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어. 내려와서 우리한테도 좀 소개해줘. 우리가 나쁜 사람도 아닌데 뭐가 무서워서 그래?”그때 누군가가 분위기를 띄웠다.“그러게 말이야. 알고 지내면서 앞으로 도움도 주고 좋잖아.”그들의 말에 진하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임가연에게 물었다.“가연아, 내려갈래? 다들 북성에서 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앞으로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건축하는 사람이라면 인맥은 필수였다. 게다가 저 무리는 딱 봐도 꽤 괜찮은 사람들 같았다.임가연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에게 고객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뜻이었다. 조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진하온이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내가 쏠 테니까 룸 하나 잡아. 금방 내려갈게.”그들은 크게 웃으면서 종업원에게 룸을 잡아달라고 했다.그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9화

    그의 얼굴만 봐도 송태준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삼촌,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어요? 소리라도 좀 내지.”연이진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말했다.“봐야 하는 거, 보지 말아야 하는 거 다 봤어.”송태준은 등골이 오싹했다.“난 그냥 걔랑 장난한 거예요. 뭐 어쩌지도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연이진은 시선을 거두고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아들이 강간 미수, 납치, 폭행, 집단 범죄 혐의를 받고 있어요. 오늘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당신 대신 내가 경찰서에 보낼 겁니다.”송태준은 머리가 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삼촌...”상대가 뭐라 했는지 연이진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에 차가운 기운이 더 짙어졌다.“꺼져. 네 아버지가 널 찾고 있어.”아버지라는 소리에 송태준은 안색이 다 창백해졌다.평소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든 아버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진이 한마디만 해도 적어도 3개월은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했다.지난번에 연이진을 건드렸을 때 갈비뼈와 두 다리가 부러져 창고에 3개월 동안 누워있었는데 진통제조차 주지 않았다.송태준의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삼촌, 여자 때문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혹시 걔랑 진짜 뭐라도 있는 거예요?”연이진이 날카롭게 째려보았다.“한마디만 더 물었다간 처벌이 배가 되는 수가 있어.”송태준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연이진이 탄 랜드로바가 사라질 때까지도 송태준은 어두운 얼굴로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형님, 이제 어떡해요?”옆에 있던 부하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물었다.“어떡하긴 뭘 어떡해? 피가 나는 거 안 보여? 가서 약 발라야지.”송태준은 화를 내면서 손에 묻은 피를 털고는 초라한 모습으로 엘리베이터에 탔다.‘X발, 임가연 이 나쁜 년. 언젠가는 널 따먹고 만다, 내가.’...그 시각 차 안, 진하온은 운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8화

    임가연이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러운 것들을 싹 다 씻어버리고 싶었다.그 후 며칠 동안 임가연은 연이진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맞은편에 살아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임가연은 매일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늦게 퇴근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진하온과 함께 현장에 나가 설계를 배웠고 저녁에는 집에서 복습했다.진하온이 그녀가 습득력이 빠르다고 칭찬을 했으니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났다.임가연은 진하온과 함께 매일 병원에 나가 현장에서 일했는데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퇴근 시간이 거의 다가올 무렵 임가연은 공구를 잔뜩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현재 진하온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퇴근할 때 자주 차를 얻어타곤 했다.진하온이 다른 일 때문에 아직 내려오지 않아 임가연이 주차장에서 잠깐 기다렸다.그때 옆에 람보르기니 한 대가 멈춰 섰다. 임가연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길을 피했다. 그런데 차 문이 열리더니 남자 몇몇이 차에서 내렸다.“임가연 아니야? 돈 많은 남자라도 만났어?”‘이 껄렁껄렁한 목소리는...’임가연이 고개를 들자마자 맨 앞에 선 송태준과 눈이 마주쳤다.오랜만에 만나는데도 여전히 건달처럼 껄렁한 모습이었다.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임가연이 고개를 돌리고 피하려는데 송태준이 앞길을 막았다.“왜 도망쳐? 오랜만이라 이 오빠를 잊었어?”송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진 교수님 따라서 건축을 배우더니 꼴이 이게 뭐야? 얼굴에 먼지가 가득하잖아. 내가 닦아줄게.”그가 손을 대려 하자 임가연은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저리 치워.”“어머? 그동안 성격이 좀 사나워졌다, 너? 그러니까 더 재미있어. 오늘 기분도 좋은데 나랑 갈래?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괜찮으니까 그냥 가던 길 가.”임가연이 싸늘하게 거절하자 송태준도 표정이 굳어졌다.“뭐야?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부하가 매정하게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7화

    ‘뭐라고?’화들짝 놀란 임가연이 고개를 들었다. 연이진의 얼굴이 그녀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불빛에 그의 눈빛도 어두웠지만 그 속에 욕망이 가득 숨어있는 게 보였다.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할 것만 같았다.임가연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만나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못 알아듣겠어? 그럼 더 알아듣기 쉽게 직설적으로 얘기할게. 내 애인이 돼줬으면 좋겠어. 쭉 해주면 더 좋고. 지금 내가 너한테 관심이 있을 때 많은 걸 요구해도 돼.”연이진이 그녀의 볼을 만지면서 차갑게 말했다.“얼마 줄까? 얼마든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줄게.”쿵...임가연은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를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손가락마저 부들부들 떨었다.‘지금까지 나한테 그랬던 게 다 그 목적 때문이었어? 잠자리해주는 애인이 되어주길 바라서?’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힘껏 고개를 돌렸다.“싫어요.”“뭐?”연이진이 얼굴을 찌푸렸다.“잠자리나 하는 애인이 되기 싫다고요. 만나기도 싫고요.”임가연이 용기 내어 말했고 눈빛도 아주 확고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거절할 줄은 몰라 멍하니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날 만나지 않으면 진하온을 만나려고?”임가연은 어이가 없었다.‘여기서 갑자기 사부님 얘기가 왜 나와?’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연이진이 계속하여 말했다.“진하온이 돈이 많긴 하지만 여자한테 별로 쓰지 않아. 지금 네 월급으로 생활하는 데 쓰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을 텐데 열심히 일해서 밑 빠진 독 같은 가족을 다 챙길 수 있을 것 같아?”“연이진 씨...”임가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우리 집 일을 어떻게 알고 있지?’연이진이 덤덤하게 웃었다. 처음 잠자리한 그날 밤 그녀가 잠든 후 베개 옆에 놓인 그녀의 휴대전화가 한밤중까지 진동했다. 슬쩍 보았을 뿐인데도 임가연이 지금 돈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다음 날 오전에 조사해본 결과 그녀의 가족들이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6화

    그녀는 고개를 들고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연이진을 쳐다보았다.진하온이 옆에 있는데도 이렇게 당당하게 건드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가연아, 왜 그래?”진하온이 물었다.“아니에요. 방금 손에 경련이 일어나서요.”임가연은 숟가락을 줍고는 경고의 눈빛으로 연이진을 쳐다보았다. 연이진은 고개를 숙인 채 느긋하게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는데 표정이 어찌나 무뚝뚝하고 차분한지 평소의 금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식탁 밑에서 까불거리는 발이 그의 발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가식 덩어리야, 진짜.’임가연은 숟가락을 꽉 잡고 조용히 종아리를 뒤로 피했다. 그런데 연이진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무릎을 지나 허벅지 사이를 터치하려 했다. 그녀가 물러설수록 그는 더욱 제멋대로 움직였다.결국 임가연은 참다못해 고개를 들어 연이진의 도발 섞인 두 눈을 빤히 째려보았다.‘날 난감하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틀림없어.’“가연아, 자. 고기 많이 먹어. 너 너무 말랐어.”진하온은 아무것도 모르고 임가연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 그녀는 불편함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사부님.”“그래. 많이 먹어.”식탁 밑의 발이 그녀의 허벅지를 터치했다. 임가연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허벅지로 발을 꽉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힘이 너무 세서 손쉽게 빠져나왔고 임가연이 아무리 저항해봤자 괜히 힘만 빼는 격이었다.임가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진하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어떻게 된 게 점점 못된 짓만 골라 해?’그러다가 진하온이 집어준 반찬을 먹을 때마다 연이진이 툭 건드린다는 걸 알아챘다.임가연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다 막혔다.결국 귀까지 다 빨개졌고 진하온이 집어준 반찬마저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식사가 거의 끝나갔다. 대충 식사를 마친 임가연은 그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황급히 일어나 설거지하러 들어갔다.진하온이 설거지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또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주방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수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5화

    연이진은 갑자기 나타난 임가연을 보고도 전혀 놀란 기색이 없이 무덤덤하게 문에 기대어 있었다.“이사했어?”그가 덤덤하게 묻자 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우리 이웃이 됐어요.”그녀가 일부러 접근했다고 오해할까 봐 괜히 설명까지 덧붙였다.“여긴 우리 회사가 제공한 직원 숙소예요. 오후에 신청했었는데 이 집으로 분배받아서요. 정말 공교롭죠?”연이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직원 복지가 아주 좋은 회사네.”임가연은 더는 할 얘기가 없었다. 웬일인지 연이진이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려는데 연이진이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잠깐.”“왜요?”임가연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너한테 돌려줄 게 있어.”연이진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그런데 손에 하얀 꽃무늬 팬티를 들고 있었다.임가연은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윙 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이걸 아직도 남겨두고 있었어?’아침에 옷을 급하게 갈아입을 때 다른 잠옷은 다 챙겼지만 팬티를 화장실에 놓고 나왔다. 그런데 연이진이 팬티를 챙겨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돌려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임가연은 민망한 나머지 재빨리 팬티를 받고 옷 주머니에 넣었다.“다른 일... 더 있나요?”“없어.”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거두더니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손가락 끝을 비비적거렸다.임가연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쓰레기를 들고 도망쳤다.쓰레기 수거통이 복도에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연이진네 집 문이 열려있었고 그녀의 집 앞에도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연이진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사부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임가연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진하온은 커다란 봉지를 흔들면서 웃으며 말했다.“금방 이사해서 필요한 게 많을 거 아니야. 생활용품이랑 냉장고에 넣을 음식 재료 좀 사 왔어.”그녀는 감동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사부님, 숙소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4화

    ‘세상에... 이런 일이. 연이진 씨랑 같은 동인 건 물론이고 게다가 맞은편 집이라고? 고급 아파트라 한 층에 두 집뿐인데 그렇다면 이 층에 나랑 연이진 씨밖에 없단 말이야?’임가연은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사부님, 여기가 바로 회사에서 마련해준 직원 숙소란 말이에요?”그녀는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았다.“응. 지금 남은 집이 이 집밖에 없어. 근데 사람이 오랜 시간 살지 않아서 청소 좀 해야 해.”진하온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덜컥 열렸고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왔다.임가연은 집 안의 인테리어 스타일과 가구를 본 순간 또다시 넋이 나갔다.‘소파, 티테이블, 서랍장, 침대... 어떻게 된 게 이진 씨네 집 거랑 똑같을 수가 있지?’방향마저 똑같았더라면 잘못 들어온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진하온은 그녀의 표정이 이상해진 걸 보고 바로 물었다. 임가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에요. 그냥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요.”‘재벌들의 인테리어는 한 설계사가 대량으로 설계한 건가? 어쩜 가구 브랜드까지 똑같지?’“그렇게 긴장해할 필요 없어. 어차피 혼자 사는 건데 그냥 편하게 지내. 일만 열심히 하면 돼.”진하온은 임가연이 겁을 먹은 줄 알고 일부러 농담을 건넸다.임가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물었다.“제가 혼자 여기서 사나요?”진하온은 머리를 긁적이며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현재는 너 혼자야. 근데 잠시뿐이야. 다른 숙소에 자리가 나면 다시 이사 가도 돼.”단기라는 소리에 임가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긴장됐던 마음도 조금은 놓였다.“네. 고마워요, 사부님.”“고맙긴.”진하온은 그녀의 짐을 방 안으로 옮겨주었다. 집구경을 마친 후 임가연이 짐을 정리하려 하자 눈치 있게 먼저 나가려 했다.“그럼 먼저 정리하고 있어. 오늘 반차 줄 테니까 편히 쉬어.”임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아파트를 나선 진하온은 차 안에서 비서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3화

    “난 아무한테도 세를 줄 생각이 없어.”연이진이 매정하게 거절하자 진하온이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너무 급해서 그래. 우리가 친구로 지낸 지 몇 년인데 나 좀 도와주라. 한 달이라도 돼.”연이진이 물었다.“그 집을 맡아서 뭐 하려고?”진하온이 대답했다.“어젯밤에 회사의 한 직원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데 이사 가겠다고 하더라고. 걔네 아파트가 너무 복잡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직원 숙소가 패리스 타운에 있으니까 오라고 했거든.”“임가연?”연이진이 덤덤하게 물었다.“어떻게 한방에 알아맞혔지? 역시 너한테는 아무것도 못 숨긴다니까. 어쨌거나 내 제자인데 잘 챙겨줘야지, 안 그래? 근데 네가 세를 주기 싫다면 할 수 없고. 다른 집을 알아봐야지, 뭐.”진하온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의사들은 대부분 결벽증이 있었고 남이 자기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는 걸 매우 싫어했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연이진이 잠깐 침묵하다가 불쑥 말했다.“세를 줄 수는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 되고 최대한 한 사람만 지낼 수 있게 해. 직원 숙소로 쓰는 건 절대 안 돼.”진하온이 바로 대답했다.“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마.”임가연만 이사를 보낼 수 있다면 그건 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연이진은 전화를 끊은 후 번지수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보냈다. 진하온이 감사의 인사 겸 돈을 보냈지만 받지 않았다.액수가 적은 돈은 눈에 차지 않아 아예 받질 않았다. 진하온도 이미 적응하여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친한 친구라서 나중에 밥 한 끼나 사주면 되었다.진하온은 번지수를 인사팀에 보냈다. 그러고는 인사팀에 절대 말실수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임가연은 빠르게 신청을 마쳤고 숙소 분배도 아주 빨리 진행되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하온이 차 키를 들고 찾아왔다.“가연아, 가자. 마침 오후에 일이 없으니까 이사 도와줄게.”임가연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사부님, 이사는 제가 혼자서 하면 돼요. 짐도 별로 많지 않은데요, 뭐.”“아무리

  •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제32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이만 출근해야겠어요. 게스트룸 써도 될까요?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임가연은 연이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게스트룸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아침에 음식 재료를 배달한 것 말고 옷도 구매했다. 음식 재료와 함께 연이진의 아파트로 배달됐다.시간이 없어 옷을 씻지도 못하고 태그만 떼고 입었다. 그러고는 가장 저렴한 캔버스화를 신고 부랴부랴 출근했다.다행히 어젯밤에 진하온과 식사하면서 공구 상자를 그의 차에 뒀기에 바로 회사로 가면 되었다.그녀는 집을 나설 때까지도 연이진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연이진은 거실에 앉아 게스트룸에서 거실로 나왔다가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현관문이 쾅 하고 닫혔다. 동작 전체가 아주 물 흐르듯이 깔끔했다.그는 소파에 앉아 넋을 놓았다. 차분했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한참이 지나서야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밑반찬 두 가지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돈 받고 그냥 가버려? 장사를 엄청 깔끔하게 하네? 임가연, 아주 잘났어, 그래.’...임가연은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병원에 가서 사이즈를 재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가 있다고 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에 할 일을 전부 끝내고 나니 오후에는 좀 여유가 생겨 진하온을 찾아가 휴가를 신청했다. 이사할 집을 빨리 찾아야 하니까.“금방 이사한 거 아니었어?”진하온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임가연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대충 얘기했다. 지금 머무르는 아파트가 너무 복잡해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만 했다.눈치 빠른 진하온은 그녀의 어려움을 눈치채고 이렇게 제안했다.“가연아, 너만 괜찮다면 우리 아파트에서 살래? 회사와도 가까워서 출퇴근이 편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고.”‘사부님네 아파트? 패리스 타운?’임가연은 놀란 나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부님, 저 아직 인턴이에요. 한 달 월급으로 패리스 타운의 집을 맡는 건 턱도 없어요.”‘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무슨 돈으

DMCA.com Protection Status